-김수정 안무·출연의 『기막힌 상상』
김수정의 『기막힌 상상』은 김수정이 한국사회를 바라보는 차가운 시선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그녀가 느낀 세상은 느끼하고 냉기가 감돈다. 그녀의 코드를 찬찬히 따져보면 낭만적 이미지의 축적이라든가 세마이 클래식에 젖은 쁘띠부르조아의 땀 냄새나 아름다운 몸체를 우회한 처단하고 싶은 제물들이 수사학처럼 착색된다.
‘피의 제전’, ‘피와 살’을 넘어 혁명적 기운이 감도는 김수정의 상상은 사회적 상징과 기표를 함의하고 있다. 그녀의 망상의 실체는 사실은 무한대의 욕망이다. ‘내전’의 흔적같은 김수정의 난장이 성립하는 것은 윤병주, 김형남, 김영재, 김준기, 홍찬주, 박상미 등이 갓 터진 탄피 냄새가 풍기는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모던 댄스의 핵심인 ‘이슈’를 차용한 김수정의 춤은 미클로스 얀초의 루즈가 묻은 듯 명제적 선문답 ‘무엇이 크고, 무엇이 작은가?’를 코믹하게 보여준다. 의자의 높낮이와 복장으로 신분과 지위를 비교하면서 현세에 사는 세속적 인간들의 행위에 조소를 보낸다.
그 속에는 가벼운 협박도 들어 있다. 우리사회에서 연좌제에 묶여 있는 불쌍한 사람들, 약자들 장애자들도 오브제가 됨을 암시된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얽혀 있는 동물의 왕국과 유사한 현실은 좀처럼 파라다이스적 도피의 공간을 주지 않는다.
진보, 도발, 혁명, 아방가르드 상상의 원형질은 욕망이다. 포스트라는 접두어가 사실 별것도 아닌데 의미있는 의미로 차용되어 호사가들의 구미에 맞게 사용되고 변질되었듯 욕망의 껍질을 계속 벗겨 가다보면 순수의 터널이 나오고, 요나 콤플렉스의 결론도 마찬가지이다.
시지프스의 신화처럼 욕망이 겉돌면 나태한 종족과 느림의 미학은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반신반인(半神半人)의 스토리가 많이 등장하는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객관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구성은 열린 공간 영역으로도 가능하다.
몸의 정치학은 이미 시작되었다. 이대 탐무용단의 단원이었던 김수정, 툇마루 무용단 상임안무자 김형남, 무정(舞丁) 김영재 등의 춤 수사는 거칠 것 없이 사회를 향해 외치고 있었다. “트루씨니스! 트루씨니스!” 그러나 욕망의 구현은 영혼을 빼앗기는 파우스트적 상황에 처할 수 있음을 누구나 알 수 있다. 어쩔 수 없이 빠져 들어가는 블랙 홀, 그러나 김수정이 지금 부르짖고 있는 것은 평범한 삶이다.
오염된 부분을 도려내고 감염원을 차단하는 것이다. 그 방편으로 춤꾼들은 춤꾼으로 할 수 있는 대부분의 제스처들을 사용한다. 인간은 어느 순간에나 어쩔 수 없이 납치되거나 휩쓸려 동료가 되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도 있다.
김수정의 『기막힌 상상』은 코미디적 상황에서 출발하여 중간 기착지에서는 한 판 멋진 전쟁을 치르고 이윽고 평화를 기구하는 사제의 모습으로 끝을 맺는다. 도발적 춤이다. 그녀는 자신의 성향을 과감하게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한국사회의 반응에 눈치를 보는 듯한 기분도 느낀다. 이미 미국이나 유럽에서 사용되었던 몸의 이데올로기화 같은 장치들은 한국에서는 망설이는 듯한 분위기가 있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안무한다. ‘레몬 꽃이 피고, 황금빛 귤이 반짝이는 나라, 그곳으로, 그곳으로 나의 욕망을 순수로 잠재울 수 있는 순수한 그대와 함께 가고 싶음을….’
체향이 사라질 정도로 노력한 『기막힌 상상』팀 모두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
/장석용 문화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