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의 국제 브랜드화 전략
- 유럽 지역에서 한국영화의 브랜드 가치 증진과 안정을 위한 방향성 모색
김 혜 신
(고려대 강의,
파리 소르본 누벨 영화영상학 박사)
I
영화의 모험성과 다양성을 억누르지 말라
문화예술 작품은 자유주의 경제 질서를 벗어날 수 없는 하나의 상품이면서 동시에 상업적 가치로 환언될 수 없는 이중적 숙명을 지니고 있다. 그 중에서도 대중성과 다수의 수용자를 전제로 한 영화는 그 두 가지의 갈등 혹은 봉합이 창작에서 기획, 배급, 상영에 이르기까지 가장 첨예한 방식으로 나타나는 분야라고 할 수 있다. 영화는 매우 혼종적인 문화이면서 동시에 이 ‘혼종상태’에서 순수성과 감동을 뽑아내야 하는 대중예술이다. 영화는 음악, 무용, 조각, 건축, 시, 회화에 이르는 종합예술로, 그 모든 것이면서 동시에 그 어느 예술로 귀속되지 않는, 리치오토 카누도의 표현대로 제 7의 예술이다. 이는 수사가 아니라 영화가 갖는 대단히 모험적인 본질을 나타낸다. 애초부터 지닌 산업적인 측면과 대중들이 원하는 쉽고 즉각적인 소통의 압박이 날로 커져가는 만큼, 이 점을 늘 고려하면서 동시에 과감한 모험성을 발휘할 수 있는 영화는 그 어느 분야에서보다도 실현되기에 지난한 일이 되고 있다. 특히 전자의 요구가 압도적인 한국사회에서, 영화가 대중산업을 넘어 독과점과 투기 산업으로 과열되어 많은 폐해가 눈앞에 나타나고 있는 오늘, 우리는 다시 하나의 영화가 영화로서 존속하도록 하고 장기적으로 안정된 브랜드 가치를 구축하는 바탕이 되는 품질과 내적인 매혹의 문제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기본으로 돌아가 생각해보면, 영화는 그 자체가 언어가 아닌 (동적) 이미지(image)를 통한 새롭고 국경과 인종을 초월할 수 있는 보편적인 방식의 시청각 커뮤니케이션이며, 이 방식을 회화에 빗대어 말하면, 아카데믹한 고전 회화 전통에 맞서 억눌려있던 빛의 에피파니와 삶의 에너지를 노래하기 시작했던 인상주의 회화의 표현정신과 표현방식에 가깝다고 볼 수 있겠다. 이것은 그 느낌에 있어 어둠에서 밖으로 갓 나온 듯 밝고 해방된 세계이며, 힘으로 꽉 찬 세계이다. 뤼미에르의 영화들이 담는 것이 건조한 기록이 아니라 이 형용할 수 없는 에너지의 발견이다. 화가는 물감을 가지고 그리지만, 영화는 빛에서 출발하여 어둠 속에 빛(물론 이제는 파일을 통한 디지털 영사도 고려해야 하지만)을 쏘아 영사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이는 구체성의 세계이면서, 동시에 주변에 존재하는 명백한 사물과 사람을 촬영하여 표현하는데도 사물을 잡는 카메라의 각도 하나 혹은 편집 순서나 리듬이 살짝 달라지는 것만으로도 그 대상을 새로운 것으로 보이게 하고 숱한 함의로 가득 차게 할 수 있는 섬세하고 오묘한 세계이다. 영화가 트리비알하고 유행에 민감한 대중문화이면서도 어둠과 빛이라는 세상에서 가장 오랜 시간의 아우라가 깃든 마티에르를 가지고 이 세계를 다루는 작업이다 보니, 가장 사소한 것을 보여주는 데도 은연중 정신성과 비물질성을 은유하게 되고, 때로는 의도했든 그렇지 않았든 최근 장민용의 단편 작업이 보여주듯이 우주의 리듬(우주가 들려주는 음악)과 분리할 수 없는 관계에 놓일 때도 있다. 빌 비올라가 보여주는 우주적인 미디어아트의 세계도 다름 아닌 영화적 상상력과 기제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배트맨>에서 백남준의 실험영화에 이르는 영화의 가능성을 다양한 시각으로 최대한 열어놓고 배우고 시도하고 토론해볼 수 있는 분위기가 경계를 넘나드는 기발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자주 그 싹을 틔우기도 전에 소외되고 마는 한국사회에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최근 디지털로 촬영된 이란 감독 키아로스타미의 <Five>와 같은 단편들을 보면, 그가 일상적으로 산보하는 카스피해의 물결을 따라 뒹구는 나무토막 하나를 가지고도 이 리듬을 잘 느끼게 한다(한국문화와 영화들에 애착이 많고 탈경계적인 삶을 살고 있는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 르 클레지오는 과거영화가 누벨바그의 것이라면 현재의 영화는 이란의 것이라는 통찰을 보여준다). 이에 완전히 무감하다면, 영화는 지루하디 지루한 소위 말하는 롱테이크 예술영화가 된다. 가령, 단순히 <바람>(스웨덴 영화)을 찍었을 뿐인데, 폭풍 후의 바다의 물결의 움직임(장 엡스탱의 <폭풍우 잠재우는 사람>)을 찍었을 뿐인 것 같은데, 거기에서 오는 감동과 영감은 비견할 수 없이 크다. 그 거칠고 소박한 이미지는 복잡하게 꾸며낸 줄거리가 없이도 관객에게 특별한 감각 체험을 선물한다. ‘카메라-눈’ 속에 포착된 이미지를 통해 부재했거나 -아니, 우리 눈에 보이지 않거나 미미했던- 세계가 혹은 현실이 마술처럼 나타나 현현하는 것이다. 이는 바로 단순하면서도 계시적인 영화 이미지의 존재성이다. 이는 우리가 아시아나 미국 뿐 아니라 유럽권에 더욱 안정적으로 진출하기 위해서이 기본적인 사항을 거듭 돌아보는 것은 골치 아프고 한가한 소리만은 아니고 필수적인 점검사항이라고 사료된다. 키아로스타미에 열광하는 고정 관객층이 유럽에는 어느 권역보다 두텁게 존재하는데, 이들은 결국 임권택의 영화나 홍상수 영화를 안정되게 지지하고 찬사하는 층과 상당히 겹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적 가치와 아름다움을 포착하는 시선이, 중국동포로서 부산영화제의 펀드를 받아 세계무대에서 선전하고 있는 장률(2007 베를린 영화제 진출)과 전수일 같은 감독들에게 한불 합작영화를 만들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기반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2007 베니스 영화제 비경쟁작 오리종티 상을 받은 전수일의 <검은 땅의 소녀와>(La petite fille de la terre noire) 는 한불 합작이며 국내 영진위에서 2억원의 합작영화 지원금을 포함해서 4억원의 제작비가 소요된 저예산 영화이다. 이 작품의 경우 배급에 대한 투자를 프랑스 공동 제작사와 배급사가 하고, 2009년 2월11일 프랑스 전역에서 개봉하게 되는데, 파리에서 5개관을 포함하여 전체 10개관에서 개봉하게 된다. MK2사의 제작, 배급 투자로 프랑스에서 홍상수 영화가 개봉되던 당시 못지않게, 한국영화의 미래를 위해 귀추가 주목되는 영화이다. 파리는 전 세계의 영화애호가, 문화예술애호가들이 모이는 곳으로 상업적 성공의 결과를 떠나 프랑스 합작영화로서 시내의 유수 극장에 걸린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사실적 홍보효과와 부가가치는 대단하다고 봐야 한다. 저예산 영화들이 유럽이나 아시아 지역과의 합작형식으로 이와 같은 활로를 찾아나가는 것은 지금의 한국 경제 상황에서 매우 중요한 전략이라고 보인다.
구분 |
2002 |
2003 |
2004 |
2005 |
2006 |
프랑스 주도 영화(a) |
163 |
183 |
67 |
187 |
164 |
(a) 중 공동 제작한 영화 |
57 |
78 |
37 |
61 |
36 |
소수 참여 영화(b) |
37 |
29 |
36 |
53 |
39 |
합 계 (a)+(b) |
200 |
212 |
203 |
240 |
203 |
II
한국영화 브랜드 전략의 한 예
: 한국영화 수출 수위권에 있는 유럽에서의 한국영화 브랜드 가치 안정화 전략
영화진흥위원회의 통계자료에 따르면(2005-6년), 한국영화 권역별 해외수출현황에서 유럽지역이 아시아 지역에 이어 20퍼센트로 2위를 차지하고 있고, 북미와 남미를 합한 것보다 점유율 면에서 앞서감을 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프랑스는 놀랍게도 그 국가별 점유율로 보아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한국영화를 많이 구매해온 나라로서 단연 돋보이는 위상을 차지해왔다. 프랑스는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한 작품을 위주로 구매하는 경향을 보여 왔는데, 최근 급격한 구매감소현상을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 2007년에는, 북미권의 약진과는 반대 현상으로 프랑스에서 한국영화의 점유율은 24.4 퍼센트에서 올 상반기 4.1퍼센트로 급락했다 (동향과 전망, 2008년 7월호). 그 원인은 현지의 경제적 위기에서부터 여러 가지로 나타날 수 있겠지만, 그간 지녀온 한국영화 전반의 브랜드 가치에 균열이 생기고 있는 것과 지속적인 양질의 콘텐츠 제공의 어려움과 고르지 못한 작품성 문제를 우선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겠다.
한국영화 권역별 수출
권역 |
수출액(US$) | |||
2005년 |
점유율 |
2006년 |
점유율 | |
아시아 |
66,143,686 |
87.04% |
17,029,759 |
69.47% |
북미주 |
2,014,500 |
2.65% |
1,959,200 |
7.99% |
중남미 |
235,600 |
0.31% |
384,000 |
1.57% |
유럽 |
7,315,970 |
9.63% |
4,902,054 |
20.0% |
오세아니아&태평양 |
147,830 |
0.19% |
71,215 |
0.29% |
아프리카 |
35,320 |
0.05% |
0 |
0.0% |
기타 |
101,674 |
0.13% |
168,500 |
0.69% |
계 |
75,994,580 |
100.0% |
24,514,728 |
100.01% |
2007년 유럽 24.4% --> 2008년 상반기 4.1%
연도별 한국영화 수출 실적 추이 (단위: US$)
연 도 |
2001 |
2002 |
2003 |
2004 |
2005 |
2006 |
수출액 |
11,249,573 |
14,952,089 |
30,979,000 |
58,284,600 |
75,994,580 |
24,514,728 |
증가율 |
59% |
33% |
107% |
88% |
30% |
-68% |
다른 어느 지역보다 유럽인들은 영화가 갖는 독창성, 시적 아름다움과 문화예술적인 브랜드 가치에 예민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현재 한국의 대부분의 일반 관객들과 영화를 대하는 마인드와 기대치와는 다른 사람들이다. 따라서 전략 문제를 다루는 데에 있어 이러한 소비자의 성향을 이해하고 넘어가는 것은 뜬구름을 잡는 이야기가 아니라 지역적 차별화 진출에 관련해 중요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유럽인들, 특히 프랑스인들에게 있어 타국의 영화, 특히 아시아영화는 크게 두 측면에서 소비되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는 문화적 측면, 즉 알려지지 않은 전통문화와 사회적, 생활문화적 상황에 대한 지적 욕구와 호기심의 측면이고, 둘째는 개인적으로 깊게 다가오는 예술적인 감동, 상상력, 독특한 스타일과 재미, 유머가 있는 영화라는 측면에서이다 (가령 홍상수의 영화에는 특히 묵직한 예술적인 감동, 김지훈의 영화에는 문화적 측면은 크게 없으나 <장화 홍련> 등에서 보듯 영화스타일 면에서 일정 관객들에게 인기가 있다.) 이 두 가지가 적절히 있으면 소비자로서는 더 할 나위가 없을 것인데, 임권택 감독의 <춘향전>, <취화선>과 같은 영화는 첫 번째 성격이 강하면서도 두 번째의 미덕도 갖추고 있기에 어필할 수 있었다. 판소리나 전통 미술(기메 미술관 한국관)에 대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 있던 관심은 영화에서 시너지 효과를 낳았다. 여러 인종과 문화와 개인의 다양성이 생활환경인 그들 사회는 늘 타문화를 향한 지적 호기심에 충만한 사람들이 그와 같이 문화를 배울 수 있는 양질의 콘텐츠의 변함없는 관객층을 형성한다. 유럽인들에게 효과적으로 다가가기 위해서 이 두 방향으로의 좌표 설정과 콘텐츠 개발, 작품의 질을 한불합작에 대한 제작과 배급 지원이 필요할 것이다. 다양한 영화를 위한 문화 콘텐츠와 스타일에 대한 공적 차원의 이해와 지원이 필요하되, 한류적인 드라마적 감성과는 다른 차원의 영화 미학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점, 기본에 속하는 예술적인 깊이가 있어야 한다는 점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구성(타란티노를 위시한) 덕택에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던 박찬욱의 <올드 보이>가 일부 젊은 층을 제외하고는 큰 대중적인 호응도 평단의 호평도 받지 못했던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프랑스인들은 그 폭력성에 공감하지 못했고, 그런 식의 억지스럽게 짜맞춘 드라마틱한 재미에 몰입을 못하는 듯하다). 중국의 경우, 지아장커의 영화를 보라. 그는 중국영화 뿐 아니라 <세계>에서 <무용>(프랑스와 합작하고 파리 현지 촬영. 중국의 옷을 소재로 한 뛰어난 영화. 올 전주영화제 상영)에 이르는 영화를 통하여 중국이라는 나라가 지니는 무게(자본규모가 아니라 그 세계관에 있어 커다란 스케일을 보인다)와 국가브랜드를 고급스럽게 바꾸고 있는 감독이다. 유럽의 영화계는 경탄어린 눈으로 그의 행보를 주시하고 있다. 그의 영화 속에는 일체의 피나 폭력도 없고 불필요한 근친상간 구도나 섹스도 없지만, 작품 자체에서 보이지 않게 뿜어 나오는 긴장감이 관객들에 기쁨을 준다.
III
제안과 결어: 문화 다양성과 다문화에 기반을 둔 차분한 영화 인프라의 구축
영화는 인간의 오감을 즐겁게 해주는 엔터테인먼트일 뿐 아니라, 동시에 오감을 동원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창’(바쟁)이다. 영화의 속성은 물질적이면서도 정신적이고, 명백하면서도 동시에 명백하지 않다. 비가시성이 가시성과, 이해 가능한 것이 이해할 수 없는 것과, 희극성이 어두운 그늘과 맞붙은 순간들이 사소한 사물들과 인간 군상들을 통해 시시각각으로 드러날 때 우리는 깊은 감동을 느낀다. 이는 표면, 그리고 화면에 충실한 자명함의 세계이면서 동시에 그 너머의 세계를 말하는, 의미심장한 표면의 세계이다. 무한히 다양한 방식으로 이 ‘표면’을 무한정 탐험하고 표현해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산업적으로도 결국 독창적인 피가 공급되어 만인을 사로잡는 매력적인 영화가 나오고 시간이 흐르면서 시너지 효과도 나오게 된다. 개척자에게 예술성이었던 것이 시간이 흐르면서 어느 정도 확산이 되면서 그것은 어느 시점에 이르면 대중이 거부감 없이 신선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토양이 되는데, 이 흐름을 적시에 활용하여 영화적 매혹을 이끌어낼 수 있을 때, 그 작품은 산업으로 성공한 영화가 됨은 주지의 사실이다 (한국에서 <왕의 남자>가 서서히 국내에서도 흐름을 타기 시작한 동성애 코드와 전통 문화 코드가 결합). 실험하고 개척하는 자의 쓴 실패와 재도전이 없이는, 그리고 이를 최소한으로나마 꾸준히 지원해주는 제도의 뒷받침 없이는, 산업논리 만으로 제작된 영화는 그 정체성을 잃고 게임 산업의 아류로 떨어지고 말 우려가 있다. 이때 그 사회에서 생산되는 영화들에서 안정적인 국제 브랜드 가치를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헐리웃 영화들이 자본과 기술, 기업화된 스토리텔링 그룹, 미술 효과만으로 이루어진 자족적인 세계 같아도 그 뒤에는 미국의 선댄스 영화제와 MOMA, 수많은 언더그라운드 실험영화로 대표되는 든든한 버팀목과 넓은 스펙트럼이 있다는 점을 잊곤 한다. 이와 함께 수많은 인종과 다문화라는 토대는 영화적 서사의 지평을 한층 넓힌다. 관객의 손에 땀을 쥐게 하고 몰입하도록 하는 추격씬이나 디즈니로 대표되는 헐리웃 영화미학의 중심에는 사실 러시아 에이젠슈테인의 몽타주 충격이론이 있고(전도되어 있지만), 종합예술인으로서 비견할 상대가 없는 프랑스 장-뤽 고다르의 틀을 깨는 발상(타란티노는 고다르)과 카메라 워크가 있음을 간과하곤 한다. (주-고 예술, 실험, 다양성이라는 말은 영화산업에서 경계해야 할 될 것이 아니라 기초 인프라로서 권장되고 보호되어야 할 사항이다. 여느 분야보다 더욱 영화는 예술성과 대중성, 그리고 상업성 사이의 팽팽한 견제와 균형 속에서만이 발전할 수 있다. 이를 위해 대중들의 기호를 좇을 뿐 아니라 때로 영화인들은 대중들을 선도하는 역할도 해야 한다.
저 유명한 한국영화사 강의에서 이영일 선생은, 시대상황과 관련한 한국영화 담론의 주류였던 리얼리즘 영화를 존중하면서도 리얼리즘적 시각이 일색인 당시의 경직된 상황을 경계하며 한국영화계에 다양한 시각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피력했으며, ‘시적인’ 영화들의 본연의 가치를 높이 산 바 있다. 사실, 리얼리즘 영화든 표현주의 영화든 환타지 영화든 시선의 진정성이 있고 그 이미지의 환기력이 강력할 (새로운 감각과 성찰을 불러일으킬) 때 이 시적 성격, 즉 영화적 흡인력은 드러난다. 이는 일반 논리로 다 풀어 말하기 어려운 것이다. 한국 영화 속에 부박하나마 이 뿌리에 대한 전통은 남아있다. 이 보편적이면서 한국적인 뿌리가 살아 있을 때, 우리 영화산업의 기초도 든든해지며 대외적으로 그 한국영화라는 전체적인 브랜드의 후광을 입어 각각의 우리 영화나 부가상품들은 선택되고 주목받을 수 있다. 70년대 ‘영상시대’, 특히 하길종 영화들이 보여준 것, 배용균이 <달마가 서편으로 간 까닭은>을 통해서 보여준 것, 홍상수의 영화들, 그리고 묵묵히 자신의 세계를 진화시키며 약간의 드라마를 가미함으로써 대중들 곁으로 조금 더 다가오고 있는 전수일의 영화들이 보여주고 것의 있는 정수는 결코 다른 것이 아닌 영화의 밑바탕에 있는 시적인 힘과 정신성이라고 생각된다. 이는 당장에 경제적 가치가 없는 것 같아도, 사실상 한국영화를 견인하는 힘이며 이것이 한국영화의 위상, 품격을 높이는 데에서 나오는 브랜드 가치는 숫자로 따질 수 없는 무형의 자산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인과 사회 양 차원의 다양성와 다문화에 대한 인식을 전환하고, 한국영화, 대중영화라고 경계지운 좁은 성에서 나와 소수의 풍요로운 영화 경향들과, 그리고 여타 예술들과 통섭하는 자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