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무가 이경은은 성별, 종교적 해석도 제쳐 둔 상태를 만들어 내안에 내재된 나를 만나기 위해 극단적(?)인 삭발을 택한다. 의상 컨셉은 여자 한복의 모티브를 갖고 있다. 백의민족이나 내면의 목소리를 상징하기도 한다. 특히 고름 가슴부분에 가득 쓰여진 한글은 암전되면 형광불로 바뀐다. 강한 한국 여성들이 난폭하게 돌변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
자기 정체성을 ?h아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생각하며 그녀들은 외치고 있었다. ‘어디 진솔한 사람 없어요? 유년의 진실을 갖고 싶어요. 내 손으로 저지르는 일, 내 눈으로 보는 나쁜 일들을 내 몸으로 상처를 치료해주고 내 땀으로 불협화음을 씻어내고 싶어요!’
소통과 단절을 넘어 우물가를 떠나고자 하는 마음으로 마무리되는 과정은 흥분과 긴장으로 가득 차 있었다. 땀이 범벅된 이마에서 그들은 수정처럼 빛나는 땀방울을 뿌린다.
문예회관 소극장에서 2001년 공연된 작품과 컨셉은 갖지만 시각적 비쥬얼과 다양하게 의미있는 상징들로 리메이크된 ‘2006 갈증’은 이경은만이 해낼 수 있는 몽타쥬와 생각하는 몸들의 건강한 외출이었다.
‘2004년 제8회 독일 국제 솔로 페스티벌에서 1등 안무상 수상자, 이경은의 무용단 이 케이 댄스(Lee K. DANCE)와 현대성을 앞세운 한스 댄스 캄퍼니( Hans Dance Company)가 함께 출연한 이 작품은 재구성의 전작과 확연한 차이를 구별 짓게 만든다.
음악은 가장 일상음에서 전자음까지 광범위한 영역의 음을 차용한다. 다양한 음의 영역을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섬’, 그 마음의 벽을 허물고자하는 노력을 계속한다. 갈등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기계간 통화가 아니라 입(목소리)을 통한 것이라고 강박적 반복 동작으로 보여준다. 공간에서 열린 지역으로의 이동은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땀 흘리면서 인간적으로 엉켜 만나 있다가 우물가 여인처럼 우물가 밖으로 나가보는 것이리라!
‘2006 갈증’속에는 엄청난 갈증이 들어 있고 또 그것을 해소할 수 있는 해답이 있다. 본능적 갈증도 들어 있고 진실에 대한 갈증도 들어 있다. 거짓말이란 다이로그가 그래서 자연스레 터져 나온다. 목표점에 대한 갈증은 손가락으로 기호화 된다. 사각의 정글안에 4인의 춤꾼들은 서로의 갈증 보따리를 풀어 놓고 관객들과 같이 얘기할 공간을 만들어 낸다.
갈증을 표출시키기에 적당한 무대는 핑크에 하얀 흰색이 떠다니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이 바른 일인가? 실험적 핫 핑크는 다양한 중의적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민족에 대한 애환, 피의 혁명, 갈증, 여성성….
무대자체는 거친 갈등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자기갈증과 정체성에 힘들어했던 출연자들은 명제에 대한 성찰과 인간 존엄성에 대한 물음을 무시하듯 쉽게 넘겨버렸다. 춤을 추면서 갈등은 해소되었다. 오랜만에 진실한 춤이 추어졌다.
전작의 감성적 표현에다 악세서리는 신작에서 컨템포러리성을 가미한 완전히 다른 작품이 되어 버렸다. 주제로 밀착되는 박진감있는 몸동작과 박을 탄 리듬감각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밀도 있는 안무와 무대로 관객들을 감동시킨 작품이 단 하루 일회공연에 끝나다니 아쉽다. Modafe(모다페, 국제현대무용제) 2006의 무대에서 체험적 진실이 깃든 이경은의 에너지를 느끼는 것은 행운이었다.
/장석용(문화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