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씻고 세상보기
장석용/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세상은 거울이다. 세상은 거울과 같아서 모든 사람들에게 그들의 얼굴을 비춰준다. 세상을 향해 얼굴을 찌푸려 보라. 그러면 세상은 당신을 험상궂게 바라볼 것이다. 세상을 향해 웃음을 지어 보이며 세상과 하나가 되어 보아라. 그러면 세상은 유쾌하고 친절한 동행이 되어 줄 것이다. - 윌리엄 메이크피스 새커리의 말입니다.
여러분 반갑습니다. 멀리도 오셨습니다. 다음번엔 좀 더 먼 완도나 제주도 같은 곳을 탐색해보면 어떨까하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는 1980년 발족되어 지금까지 33년의 나이테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의 우리를 떠나 많은 단체들이 생겼고, 우리행사를 원형으로 벤치마킹한 시상과 협회지들을 발간하고 있습니다.
저는 1970년부터 예술현장에서 잔심부름부터 시작하여, 영화조감독, 영화평론가협회 회장, 무용컬럼니스트, 숙명여대 문신미술관 연구위원, 시와 희곡 시나리오 집필, 연극협회회원, 음악회에서 작시제공 등 여러 분야를 섭렵하였습니다. 혼자 유럽영화제 가서 우리 영화현실을 애기하고, 그들과 어울리며 우리나라에 국제영화제를 만드는데 일조했습니다. 혼자 중국에 가서 우리 춤에 대한 애정을 호소했습니다.
유럽영화제 최초의 심사위원, 현대뮤지컬의효시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를 번역 공연했습니다. 때로는 연극배우로 서기도 하였고, 곳곳에서 사회를 보기도 하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산청에 내려오는 일도 문화행사의 일부입니다. 세상은 너무나 빠르게 변하게 있고, 생활은 윤택해졌다고 합니다만 예술가들의 삶은 아직 황량한 들판에서 먹이를 찾는 분위기에 쳐해 잇습니다. 풍요 속의 빈곤, 군중속의 고독을 몸소 체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예술의 생성과 향유 사이의 깊은 갭을 음미하고, 이것을 헤쳐 나갈 방안을 모색해야합니다. 인터넷에 흘러 다니는 정보는 이미 고유하고 있는 정보입니다. 자신을 침화시키고, 숙성 시키고 삭히는 작업을 염두에 두어야할 것입니다. 건전한 성장은 우리와 우리 주변을 따뜻하게 합니다.
마인드 퍽(Mind fuck) 현상을 들어봅시다. 이 현상은 우리 스스로가 성장과 발전을 거부하며 현재에 머무르고자 하는 심리입니다. 우리가 정신적으로 자신을 거부하면서 끊임없이 스스로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게 하여 자동차 핸드 브레이크가 당겨진 상태로 운전하도록 만드는 것을 말한다. 마인 퍽에 머리와 마음이 감염된 사람들은 '안 되는 이유' 만을 찾고, 자신의 한계에 부닥쳐 매너리즘에 빠집니다. 우리 예술평론가나 예술가들의 성장나이테는 무궁무진해야합니다. 엄청난 독서량과 자료보존, 정신자산의 축적 없이는 세계로 뻗어가는 통로가 없습니다. 우수한 콘텐츠 산업의 시발도 우리 소재의 창작품에서 나옵니다.
우수한 뮤지컬의 소재의 대부분도 과거의 문화유산에서 생기고 있음을 우리는 목도하게 됩니다. 콘텐츠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도모와 해외시장 진출 활성화는 기초 문화자산을 튼튼히 하는 데부터 나온 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유소년 축구가 없이 성인축구의 발전이 잇을리 없습니다. 국가문화융성은 예술가들을 줄세우기하는게 아니라 자유창작 정신을 공야하는데부터 나올 것입니다. 문화체육관광부라는 명칭을 살펴보십시오. 코미디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전문적 문화 육성, 집중과 선택보다는 보다는 행정 편의적 발상이 앞섭니다.
문화 전반에 걸친 활화산 같은 분출 욕구는 그 향방을 모른 채 표류하고 있습니다. 전국 2429개(전국매일신문 11월 14일자, 누적일수 1500일)이 넘는 축제현장에서 쓰이는 예산이 우리의 고서 보관이나, 우리문화재 찾기, 유무형의 전통문화 살리기에 쓰여 진다면 우리의 국격은 자동 올라갈 것입니다. 명장이나 장니들이 생계가 막연해서, 그 직을 살리지 못하는 세상에서 탄식과 한탄은 자명합니다. 골프는 치지만 문화 향유는 뒷전인 나라에서 우리 예술평론가들의 역할은 지대합니다. 예술계의 전 분야를 커버하는 엄청난 시간 투자와, 현장 답사, 자료 수집, 예술가들의 대화를 경청해야합니다.
우리 춤은 서로의 영역다툼으로 어지럽혀져 있으며, 우리 문학은 그 단체가 발행처거 너무 많아서 순수와 혼탁의 구분을 하기 힘들며, 미술계는 화가들의 등급을 인위로 조작하고 과대평가하며, 연극은 발성연습도 되지 않는 배우들이 객기를 부리고 있으며, 영화계에서 만들어지지 말아야할 영화들이 우후죽순으로 쏟아져 나옵니다. 수준을 알수 없는 음악회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세상의 이치는 ‘자연 도태될 것이다’로 결론나지만 너무 가슴 아픈 낭비들이 우리 사회를 위축 시킵니다. 그들을 계몽하고 이끌어야할 임무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평론가, 예술가라는 타이틀은 그에 걸맞은 글 힘과 통제력이 있어야합니다.
영화제목을 살펴보십시오, 외화는 영어 제목을 그대로 쓰고, 우리 영화도 영어 명을 쓰기를 좋아합니다. 지나간 영화제목을 차용하기도 하고, 외화이름 그대로를 드라마에서 쓰고 있습니다. 오스카 와일드는 평론가는 위대한 아티스트들이라고 했습니다.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고 서로의 견해를 묻고, 그 견해를 존중해야합니다. 다원화는 좋지만 자신의 견해만이 우월하다는 오만과 편견은 버려야 합니다. 그러자면 미래에 대한 예지력과 진단 능력이 잇어야합니다.
예술가들은 정부에서 던지는 떡밥에 현혹되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의 소신과 능력으로 좁은 우리나라에서만이 아닌 전 세계를 상대로 싸워야합니다. 그러자면 세계정보에 밝아야하고 , 미래전략과 ‘라이선싱 및 상품화’에도 관심을 두어야할 것입니다. 에술작품의 참신한 기회가 생산, 콘텐츠 시장 트렌드, 라이선싱, 상품화 전략, 유통의 다양화, 마케팅 등에도 관심을 두어야합니다. 차세대의 혁신과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자신감이 있어야합니다.
서울의 공연장, 부산의 공연장, 대전의 공연장, 전주의 행사, 광주의 행사에 나설 수 있는 건강도 유지해야합니다. 그들을 격려하고, 어울릴 수 있는 분위기를 마련해야합니다.
오늘 산청에서 예술창작 지속성 향상을 위한 연구 방안이 가가 다른 장르의 예술가들의 입장을 살펴보고, 예술가와 평론가의 다른 입장이 되어서 생가해보는 유익한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늘 생각해볼 몇 가지 문항을 생각해봅시다.
1.오늘 문화예술행사와의 만남이 있었는가? 2.형식적이 아닌 진정한 분석을 하였는가?
3.작품을 감상하고 구체적인 평론이나 예술가들과의 교류는 있었는가?
4.예술가들의 이면과 그들이 두드러지게 나타내고자 하는 부분이 진정이 있었는가?
5.그들의 노고에 진정한 감사를 드렸는가? 6.나는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7.그 작품이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8.예술가들에게 상처 준 일은 없는가?
9.그들을 따뜻하게 해줄 방안이아 충고를 해준 적이 있는가?
10.삼년을 하루처럼 생각하며 노력하는가?
예술가들은 자신의 창작 지속성 향상을 위해 총체적 능력에 대한 신뢰와 무서운 균형의 소유를 해야 한다. 직책에 걸 맞는 예술작품, 자신의 역할을 철저하게 소화해내는 예술가의 끼를 지니고 자기영역에서 창의적 역할로 자신의 작품의 등급을 승격시켜야한다.
전국을 카버 할 수 있는 능력으로 자신의 예술 존재감을 부각시키며 주변 예술인들이 인정하는 작품을 창작하여야 한다. 능수 능한 예술 수사학으로 견딤과 극복으로 자신의 자산으로 삼고, 자신의 의도대로 예술세계를 개척해야 그들의 노력이 에술구매자들을 매혹시킬 것이다.
인간의 총체적 염원의 틀에 담아 인간의 욕망과 현실의 갈등, 상상의 실현을 갈구하는 양식으로 환각파의 회화 같은 분위기로 예술을 창출해야할 것이다. 자신의 형식과 제재는 자유롭게 선택하되 그 구조 속다양한 테크닉을 구사해야할것이다.
자신의 고른 기량으로 예술적 가치를 입증해야한다. 자신의 로칼리즘이 국제화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무용, 문학, 미술, 연극, 영상, 음악, 전통을 아우르는 아트 판타지를 펼칠 수 있어야 한다.에술가는 작품성을 고려하면서도 과감하게 오락 시스템/흥행성도 고려해야한다.
예술가들은 도식적인 작품들이 타락시킨 부분들을 우회해야하고 자신을 연출할 수 잇어야한다. 암시적 직유는 필연적 만남을 창출하고, 전위(轉位)를 통한 화평의 물길은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낸다. 자연의 청량감에 일조하는 예술로 선계(仙界)의 신비감을 만들어 내야한다. 성공의 전조(前兆)는 많은 상징들이 잇을 수 있다. 예술가들은 무엇에 관해 자신의 상상의 예필(藝筆)을 사용할 것인가? 창작의 동인(動因)이 될 무수한 상상을 해야 할 것이다.
산청이라면 지역민의 대동단결을 염원하는 에술은 무엇인가를 생각해야하고, 그 목적성을 달성하기 위해 공무원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숙지해야한다. 이 스산한 초입에 먼 산청까지 원행한 큰 뜻을 알아야한다. 이 지역의 문화적 완성을 위한 일이 무엇인지를 파악해야한다.
산청 심포지엄, 지역 문화인들의 그들의 장점들로 우리를 기쁘게 만들어야한다. 배반의 시대에 신뢰를 주는 예술 작품들로 편력을 선택하게 해야 한다. 미학의 상층부를 넘나들며, 대중적 묘미를 찾아내는 심미안은 지고한 선에 이를 수 있다. 창의적 사고로 예술의의 격을 높이는 일은 전투에서 승리한 장수 같다. 우리 모두 즐거운 마음으로 이 심포지엄을 지켜봅시다. 감사합니다.
장석용(문화비평가,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