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 연극읽기 1 .............................................................고 인배
“세일즈맨의 죽음 (Death of a salesman) ”
미국의 대표적인 극작가 중 한 사람인 아서 밀러(1915-2005)는 1915년 뉴욕에서 숙녀복 제조업자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미시간 대학에 진학하여 케네스 로우 교수 밑에서 극작을 공부하면서 Avery Hopwood 상을 두 번이나 수상하여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그러나 그는 극작가로 입문하기 전 다양한 직종의 일들을 체험하며 미국의 보통사람들의 삶에 대해 배웠고 이러한 경험은 사회적 비평인 동시에 보통사람들을 탐구하는 그의 작품에 반영되었다.
1938년 대학을 졸업한 그는 뉴욕에서 라디오 극본을 쓰기 시작하였고 1945년, 그의 세편의 소설 중 반유태주의 연구인 “Focus"가 출판되었다.
그의 첫 번째 희곡인 “The Man Who Had All the Luck"(1944)는 네 번밖에 공연하지 못하고 막을 내린 비운을 겪었지만 1947년, 자본주의 사회의 병폐를 그리면서 사회에 대한 개인의 책임을 부각시킨 ”모두 다 내 아들(All my sons)“로 뉴욕 연극비평가상을 수상하여 미국의 중요한 극작가로 인정받았다.
1949년, 현대 미국 연극의 가장 두드러진 업적의 하나라고 칭하는 ”세일즈맨의 죽음“으로 뉴욕 연극비평가상과 퓰리처상을 함께 수상한 밀러는 미국의 대표적인 극작가라는 명성을 얻었고 ”세일즈맨의 죽음“은 지금까지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 가장 자주 공연되는 미국 희곡 중 하나가 되었다.
현대비극의 극치라는 ”세일즈맨의 죽음“은 사실주의와 표현주의적 기법을 완벽하게 결합하여 미국 자본주의와 산업화의 이면에 시들어가는 도덕적 사회적 균열, 그리고 개인의 존재론적 귀속의 문제들을 파헤치면서 맹목적인 물질적 성공의 추구가 초래하는 인간정신의 붕괴과정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형식과 수법에 있어서 당시로선 획기적인 실험을 보여준다.
“브룩클린에 있는 윌리 로먼의 집과 뒷마당, 뉴욕과 보스톤의 몇몇 군데.
집 앞에 에이프린(무대 막 앞으로 내민 부분)이 있으며 이 에이프린은 윌리의 환상장면에서 사용된다.
또한 그가 자주 다니던 도시 장면에서 사용될 뿐 아니라 이 집의 뒷마당이 된다.
극의 진행이 현재일 경우에 배우는 상상의 벽을 인식하면서 출입해야 하지만 과거 장면일 경우엔 이러한 한계는 없어지고 인물들은 마음대로 벽을 통해 출입할 수 있다.”라는
무대 설명처럼 자유자재로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과거와 환상의 장면으로 옮길 수 있도록 투명장치를 시도하고 과거 장면일 경우 제4벽(가상의 벽)을 넘어 앞무대로 나오게 하는 수법은 종래에 없었던 새로운 시도였다.
환갑이 넘은 63세의 세일즈맨인 윌리 로먼이 견본이 가득 들은 커다란 가방 두개를 양손에 들고 녹초가 된 모습으로 집안에 들어서는 장면으로 시작되는 이 작품은 미국 상업주의의 개척자 역할을 해온 외판원의 몰락과정을 통해 물질주의의 희생물인 평범한 인간의 비극을 극명하게 보여주면서 대량생산과 직매 체제로 사회경제 구조가 바뀐 현대 물질사회를 예리하게 비판한다.
물질적인 성공을 상징하는 형 벤과 조건없이 베푸는 사랑을 상징하는 아내 린다 사이에서
물질적인 성공은 사람의 값어치를 재는 척도이며 자식들의 사랑도 그것으로 살 수 있다는 집념에 사로잡힌 윌리 로먼은 아직도 외판원으로 성공해 보려는 꿈에 매달려 있다.
성공이란 싸워서 이기는 동시에 호감을 사야만 얻어질 수 있다는 미국적인 신화를 믿고 있는 그의 뜻과는 반대로 일정한 직업과 미래에 대한 확신도 갖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고 매사에 무관심한 막내아들 해피는 물질주의자며 모든 행동이 자아중심적이고 여자 꽁무니나 쫓아다닌다.
평생 세일즈맨으로 힘들게 일만하다 쓰레기처럼 버려진 늙은 외판원 윌리 로먼은 그가 살아오면서 터득했던 삶의 가치관의 몰락과 물질적 성공에 대한 꿈의 좌절,
축구선수였던 큰 아들 비프에 대한 지나친 기대와 집착,
거기에서 오는 실망으로 현실에서 낙오되어 행복했던 과거에 대한 향수에 지탱하여 살아가지만 결국 자신의 생명 보험금으로 이루지 못한 꿈을 자식에게 넘기기 위해 차 사고로 위장하여 자살한다.
아서 밀러는 진정한 사회극이란 단순히 사회악을 고발하고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은 또한 주관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그는 자기 자신과 가족에게 속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바깥의 세계에도 속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 만큼 그의 초기 작품 주인공들은 자신이 속해 있는 사회의 여러 가치와 편견들로 형성된 자기 자신의 모습을 자신의 정체로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거부하는데서 생기는 갈등으로 고통스러워한다.
자신의 꿈에 너무 집착한 윌리 로먼은 과거와 현재, 사실과 허구가 하나가 되는 착각으로 인해 큰 아들 비프가 그의 참 모습을 인식시키려 해도 받아들이지 않고 결국 자신의 생명 보험금 2만 달러로 아들이 성공할 것을 확신하며 기꺼이 생을 마감한다.
이 작품이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려지면서 세일즈맨 윌리 로먼을 연기한 아서 케네디는 토니상을 수상했고 1990년 73편의 영화를 남기고 뇌종양으로 타계했다.
“세일즈맨의 죽음”이 라즐로 베네데크 감독에 의해 영화로 제작된 것은 1951년으로 “지킬박사와 하이드”와 “우리생애 최고의 해”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프레드릭 마치가 윌리 로먼 역을 열연하여 그 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후보에 올랐지만 비평가의 혹평으로 수상하진 못했다.
그 이후, “세일즈맨의 죽음”은 TV영화로 두 번이나 제작되었는데 알렉스 시걸 감독의 1966년도 작품과 “양철북”으로 명성을 얻은 볼커 슐뢴도르프 감독의 1985년도 작품이다.
당시 무대에서 윌리 로먼 역으로 정점에 오른 리 제이 콥과 초연부터 린다 역을 했고 1951년도 영화에도 출연한 밀드레드 던녹이 다시 린다 역으로 열연한 이 TV영화는 희곡의 특징을 그대로 재현한 스튜디오 세트에서 전개된다.
굳이 무대와 구분을 짓는다면 하워드의 사무실과 찰리의 사무실, 식당과 화장실, 호텔방을 사실적인 세트로 대치한 점이다.
그런 만큼 두드러진 영화의 장점과 카메라 워크 없이 연기자들의 연기에 의존하여 연극을 그대로 녹화한 듯한 평면적인 TV영화의 한계점을 드러낸다.
물론 “워터프론트”, “12인의 성난 사람들”, “까라마죠프가의 형제들”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던 리 제이 콥의 날카로우면서도 중후한 연기와 밀드레드 던녹의 앙상블 연기는 오랜 세월 같은 배역으로 무대에서 호흡을 같이했던 경력만큼 뛰어나다.
영화 데뷔작인 “졸업”과 “미드나잇 카우보이”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고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와 “레인 맨”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더스틴 호프만이 윌리 로먼으로 출연한 1985년도 작품은 1986년도 골든글러브 TV부문 작품상과 남우주연상, 남우조연상, 여우조연상후보에 올랐다.
더스틴 호프만이 남우주연상을 수상하여 작품성과 연기력을 인정받은 이 작품은 중절모를 쓰고 안경을 낀 더스틴 호프만이 밤길에 번쩍이는 헤드라이트와 지나가는 자동차의 소음 속에서 피곤한 모습으로 운전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은 현실을 똑같이 표현하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이것은 단지 세트일 뿐이라는 것을 명확히 표현하는 거죠.
현실을 세트로 똑같이 재현한다면 더 이상 대사는 필요 없게 됩니다.
이 드라마의 현실성은 대사로써 표현이 되어야 합니다.
카메라로 찍히는 것이 모두 실제처럼 보인다면 이 작품의 많은 대사가 필요 없죠.
어울리지 않으니까요.
연기를 통해서 현실을 말하는 연기자들이 이 영화의 큰 공헌자입니다.”라는 볼커 슐뢴도르프 감독의 말처럼 적절한 환타지와 현실성을 아우르는 이 영화의 세트는 연극무대의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영화로 옮기는데 가장 적합하다는 아서 밀러의 동의처럼 완벽하면서도 입체적이다.
또한 등장인물들의 심리적인 상황에 따라 변하는 조명 디자인과 다각도로 인물과 세트를 어우르는 카메라 워크도 희곡을 그대로 따라가는 이 영화의 장점이다.
무엇보다 성공에 대한 환상과 아들에 대한 집착을 뛰어난 해석으로 승화시킨 더스틴 호프만의 연기는 “윌리는 성공하려는 욕구가 대단 하죠. 이 연극은 낙오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환상에 대한 이상을 가진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그것을 쟁취하려고 하죠.” 라는 아서 밀러의 말과 부합된다.
이 영화의 정점은 윌리와 큰 아들 비프의 마지막 언쟁장면으로 아버지를 너무 사랑했던 비프의 애증의 심리를 정확하게 포착한 존 말코비치의 열연과 더스틴 호프만의 뛰어난 연기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진한 감동을 준다.
이 영화는 단순히 사회를 비판하는 사회극이 아니라 촬영 내내 지켜봤던 아서 밀러의 의도처럼 가족들 간의 애증 관계를 통해 시대를 초월한 가정비극으로 승화시켜준다.
“저는 LA에 사는 중하층 집안에서 두 형제 중 막내아들로 자라났죠. 그때 제 생각으로는 우리 아버지가 바로 윌리였죠.
지금 살아계시는 우리 아버지는 자신은 극중의 윌리가 아니라고 생각하시죠.
하지만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 같은 것은 윌리라는 캐릭터의 감정과 비슷합니다.
윌리 역에 제가 맞는지는 모르지만 항상 그 캐릭터를 잘 알고 있는 듯한 느낌은 들었죠. 극중에서의 윌리와 아들들과의 관계는 불행히도 우리가족의 관계와도 연결이 되더군요.
제가 40대 후반이고 형은 50대인데도 여전히 아버지를 사랑하지만 한편으로는 소원함이 동반되더군요.” 라는 더스틴 호프만의 말처럼 지극히 미국적이면서 보편적인 주인공 윌리 로먼은 현대의 비극적인 가장을 대표하는 인물인 동시에 우리들의 평범한 아버지로서 언제 어디서건 시대와 장소, 인종과 국가를 초월하여 관객들의 연민과 공감대를 이끌어낸다.
“크루서블 (The Crucible) ”
1947년 반미활동조사위원회의 의장 파넬 토마스가 모션픽쳐 산업의 공산주의 연계에 대해 파헤친다는 선언을 하면서 시작된 헐리우드의 마녀사냥은 1950년 버지니아의 휠링 연설에서 미 국무부안에 205명의 공산주의자들이 있다고 주장한 위스콘신 출신 상원의원 조셉 맥카시가 반미활동조사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되면서 절정에 달했다.
1950년 4월, 감독 에드워드 드미트릭과 허버트 비버만을 비롯하여 당시 “헐리우드 10인”으로 찍혔던 유명한 시나리오 작가와 제작자들이 의회모독죄로 연방감옥에 수감되었고
날이 갈수록 “맥카시 선풍”은 극에 달하였다.
1951년 말, 재개된 반미활동조사위원회의 청문회 과정은 텔레비전으로 방영되었고 진술을 거부하는 증인은 자아비판과 함께 자신의 과오를 뉘우친다는 “충성서약”을 해야 했다.
위원회에 소환되었던 사람들이 포기하라고 요구받은 신념은 보다 의미가 깊었다.
자신을 위한 면죄부를 얻기 위해 타인들의 삶을 파괴하는 것과 관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소환된 그들은 자백을 강요당했고 아는 용의자의 이름을 명단에서 찍어내라는 요구를 받았다. 배반의 대가는 시민권을 준다는 것이었고 자백은 평등주의자와 자유사상가가 숙청된 미국 국가에 가입하는 의식이었다.
그 결과 공산주의자로 밀고된 300여명의 영화인이 소속 스튜디오에서 해고되었고 헐리우드에서 일하는 것이 금지되었다.
1952년 봄부터 그 해 말까지 재개된 청문회로 110명이 증언했고 그들 중 58명이 공산당 당원에 가입했거나 동조한 사실을 고백했다.
30년대 중반 그룹 씨어터에 가담했었다는 전력 때문에 소환당한 “세일즈 맨의 죽음”에서 윌리 로먼 역을 했던 명배우 리 제이 캅은 20명,
30년대 중반 공산당에 가입했던 전력으로 블랙 리스트에 올랐던 명감독이며 “세일즈 맨의 죽음”의 연출가 엘리아 카잔은 11명을, 시나리오 작가인 마틴 버클리는 무려 155명의 공산주의 혐의자를 댔고 감독 로버트 로슨은 54명을 밀고했다.
당시 블랙리스트에 오른 유명한 영화인 중 시나리오 작가인 릴리안 헬만과 마틴 리트 감독, 극작가 베르롤트 브레히트, 액터즈 스튜디오로 유명한 배우 리 스트라스버그, 조셉 로지 감독과 줄스 다신 감독, 명배우 풀 무니는 맥카시 선풍 이후 헐리우드에서 사장되었고
동료들을 밀고하여 광란의 시대를 빠져나온 엘리아 카잔 감독은 평생 배신자로 낙인이 찍혀 아카데미 평생 공로상 시상식에서 영화인 선,후배들의 냉정한 야유를 받았다.
1953년, 아서 밀러는 1692년 메사추세츠주 세일럼이라는 엄격한 청교도 마을에 불어 닥친 마녀사냥을 소재로 공산주의로부터 국가를 보호한다는 미명아래 정적을 “빨갱이”로 몰아붙여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는데 악용된 미국의 매카시즘을 비판한 “크루서블(THE CRUCIBLE)"을 발표하였다.
상원의원 조셉 맥카시의 공산주의자 마녀사냥이 정점에 올랐던 초연 당시 미국 내의 냉담했던 반응과는 달리 “크루서블”은 세계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런 만큼 미국 정부는 이 작품이 유럽에서 공연되는 것을 적극적으로 제지했지만 프랑스 좌익 진영의 지식인이었던 장 폴 싸르트르가 제작을 하고 시몬느 시뇨레와 이브 몽땅이 출연하여 큰 화제를 모았다.
중세에서 시작하여 현대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재생산된 마녀사냥 중 냉전의 산물이며 극우적 집단광기인 ”맥카시 재판“은 현대판 마녀사냥의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이다.
더욱이 이 작품을 쓴 아서 밀러 역시 1956년도 반미활동조사위원회에 소환되어 공산주의자와 관련된 혐의를 받는 협회에 대해 다른 관련자의 이름을 대도록 강요받았고 외국으로의 도주 혐의가 있다는 평결에 의해 여권발급까지 중지당하여 활동을 저지당했으니 ”크루서블“은 세일럼의 종교적인 마녀사냥으로 정치적 마녀사냥인 맥카시 재판을 탄핵한 작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그는 공산주의자라는 누명을 쓰면서도 끝내 협조를 거부하여 국회모독죄를 선고받았지만 1958년 대법원에서 무죄를 입증하며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당시 정치적 색깔논쟁에 휘말려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크루서블”은 세월의 흐름과 함께 또 하나의 고전으로 인정받고 있다.
1958년 조셉 맥카시가 죽은 뒤, 미국 영화인들이 숨기고 싶은 역사적 사실인 “맥카시 재판”을 다룬 영화는 “크루서블”이 영화로 만들어지기 전에 여러 편이 제작되어 국내에도 소개 되었다.
당시 블랙리스트에 올라 활동을 중단해야했던 마틴 리트 감독의 1976년도 작품인 “프론트”는 블랙리스트에 오른 작가들의 작품을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하여 명성을 얻게 된 한 사나이의 전도된 삶을 통해 블랙코미디 형식으로 맥카시즘을 희화한다.
어윈 윙클러 감독의 1991년도 작품인 “비공개(Guilty by suspicion)”는 맥카시즘 폭로영화로 블랙리스트에 오른 한 감독의 고뇌와 저항을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1950년대 초, 프랑스에서 돌아온 명감독 데이비드는 12년 전 반핵시위 및 집회에 참가했었다는 이유만으로 “반미활동조사위원회”의 소환을 받는다.
동료들의 입당 사실을 증언하면 사면해 주겠다는 위원회의 협박에도 불구하고 정의를 사수하려던 그는 마침내 헐리우드에서 쫓겨나게 되고 친구를 밀고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된다. 공권력에 의해 희생된 한 영화감독의 갈등을 통해 진정한 휴머니티를 그린 이 영화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서로를 밀고해야했던 당시 암울했던 상황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맥카시즘의 피해자들을 다룬 이 작품들과는 달리 ,당시 맥카시 상원의원의 오른팔로서 “맥카시 선풍”을 진두지휘한 변호사 로이 마커스 콘의 일대기를 그린 프랭크 피어슨 감독의 1992년도 작품인 “권력자 콘(Citizen Cohn)”은 로이 콘의 위선적이면서도 어리석은 생의 말로를 통해 권력과 광기의 속성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진정한 삶의 의미와 가치를 되새기게 한다.
1950년의 미국은 냉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반공 사상이 극에 달했던 시기였다.
줄리우스와 로센버그 사건의 법적 집행자이며 맥카시 반공정책 하원의원회 고문관이였던 로이 콘(Roy Marcus Cohn: 제임스 우즈 분)은 집요하고도 전례 없는 열성으로 공산주의에 반발하여 싸워온 인물로 한 인간의 경력과 일생을 망칠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권력을 가진 자였다.
그러나 맥카시(Senator Joseph McCarthy: 죠 돈 베이커 분)가 폭로한 상위급 공산주의자 명단이 단지 빈 종이에 불과하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허풍꾼으로 낙인 찍힌 맥카시가 1957년에 사망하면서 정점에 달했던 위원회의 활동은 사향길에 접어든다.
그러나 콘은 이 상황에서도 생존했을 뿐 아니라 계속 그의 일에서 성공을 거듭한다.
유태인이면서 동성연애자였던 로이 콘은 누구보다 유태인과 동성연애자를 멸시했는데
에이즈로 병상에 누워 환영에 시달리면서도 자신이 파괴시킨 인물에 대해 일말의 죄책감과 동정심도 없었던 그는 끝까지 권력의 후광을 업고 삶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오만방자하였다.
정작 1692년 세일럼 마을에서 있었던 실화를 토대로 맥카시즘 시대의 알레고리로 부활한 “시련(크루서블)”이 영화화된 것은 희곡이 발표된 지 44년만인 1997년도이다.
“조지왕의 광기”로 영화에 데뷔한 영국의 연극 연출가 니콜라스 하이트너는 전작과 마찬가지로 영화 “크루서블”에서도 “광기의 역사는 권력의 역사이다.”라는 명제를 부각시킨다.
하이트너 감독은 “맥카시는 마치 티끌과 같이 사라져 갔지만 연극은 여전히 살아있다. 그것이 예술의 복수이다.”라고 “크루서블”을 평하지만 그가 영화에서 보여주는 것은 세월이 흘러도 결코 변하지 않는 광범위한 광기의 역사와 사랑을 갈구하는 아비게일의 광기에 찬 복수극이다.
이민 세대로 이루어진 미국 초창기 개척지대의 작은 마을인 메사추세츠 주 세일럼.
마을사람들이 모두 잠든 깊은 밤, 잠든 척 누워있던 마을 소녀들이 여기저기서 몰래 빠져나온다.
어디론가 황급히 가는 소녀들, 이윽고 한적한 숲에 당도하여 빙 둘러 앉는다.
사랑의 소망을 이루어준다는 마법을 벌이는 소녀들은 각자 좋아하는 남자들의 이름을 대고 광란에 빠져들어 춤을 추기 시작한다.
우연히 이들을 발견한 패리스 목사(롭 캠벨)는 그들 중에 딸 베티(에슐리 펜던)와 조카 에비게일(위노나 라이더)이 있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패리스 목사의 출현에 혼비백산한 소녀들은 도망을 치지만 아버지에게 들킨 베티는 겁을 먹고 의식을 잃은 척 한다.
이를 두고 마을에는 악마의 소행이라는 소문이 번지고 에비게일을 선두로 소녀들은 애꿎은 마을 사람들을 악마추종자로 고발한다.
소녀들의 단순한 마법놀이는 온 마을을 광란의 도가니로 만들고 가혹한 “마녀사냥”이 시작된다.
세일럼에 있는 사뮤엘 패리스 목사의 이층 침실, 힘없이 침대에 누워있는 그의 열 살 먹은 딸 베티 옆에서 페리스 목사가 기도하는 장면으로 시작되는 연극과는 달리 영화 “크루서블”은 무대에선 보여 지지 않는 소녀들이 벌이는 마법 장면으로 시작된다.
희곡은 진행 중인 드라마 사이사이에 당시의 재판 기록과 그 밖의 사료에서 발췌한 인물들 간의 갈등과 불안을 암시하는 다양한 자료를 제시하여 지극히 사실적인 내용 전개와 결말을 보여준다.
그래서 성직자들 간의 체면으로 인한 사태악화와 집단 광기에 의한 거짓 자백,
그리고 처형되는 과정을 통해 에비게일 윌리엄스와 존 프록터(다니엘 데이 루이스) 집안의 관계가 마녀사냥의 근본원인임을 제시한다.
그런 만큼 복수심에 불타 음모를 꾸미고 (아서 밀러의 노트에 의하면) 보스턴의 창녀로 전락하는 원작의 에비게일과는 달리 직접 아서 밀러가 시나리오를 쓴 이 영화에서는 현대적인 해석으로 에비게일을 모든 사건의 원천인 악녀가 아닌 사랑에 눈 먼 보통여자로 그려 보편성을 부여한다.
하지만 에비게일이 감옥에 갇혀있는 프록터를 찾아가 간수를 매수할 수 있으니 같이 도망가자고 종용하는 장면은 원래 희곡엔 없는 장면으로 에비게일의 성격을 순화시키고 위노나 라이더를 부각시키려 했지만 효과적이진 않다.
그러한 변화만 제외하면 이 영화는 빼어난 희곡의 강점을 그대로 보여준다.
또한 페리스 목사의 이층 침실과 프록터의 집, 법정 대기실로 쓰이는 세일럼 교회의 제복실, 세일럼 교도소의 한 감방으로 제한된 희곡과는 달리 “이번에 이 작품을 처음 보는 사람은 이 영화가 원래 희곡이었다는 것을 짐작조차 못 할 것이다.”라는 아서 밀러의 장담처럼 다양한 장소 이동과 스펙터클한 군중 신, 고증에 의해 세일럼의 마을을 그대로 재현한 야외 대형 세트로 연극과 차별화한다.
하지만 폐쇄된 공간에서 인물들 간의 심리적인 대사로 팽팽한 긴장감과 전율을 느끼게 하는 연극에 비해 장소의 잦은 이동으로 극적 긴장이 분산되어 아쉬움을 준다.
그것은 사색과 추리를 유도하는 희곡과는 달리
“미신과 무지에서 비롯된, 인간이 불러일으키는 태풍, 나는 그 생각대로 영화를 만들었다.”라는 하이트너 감독의 의도처럼 과장되면서도 사실적인 카메라의 시점으로 장중한 스펙터클 서사극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러한 영화적인 장치들로 인물들 간의 심리적인 갈등이 희석이 되었지만 “권력의 속성은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다”라는 감독의 전언과 출연진들의 열연, 그리고 아서 밀러의 노련한 각색과 뛰어난 대사만으로도 감동을 주는 것이 이 영화의 포인트이다.
강요된 비극을 예견하지 못하고 맹목적인 미신에 매달려 집단적인 히스테리를 일으키는 인간군상의 어리석음, 그것은 “이... 어리석은 사람아”라는 댄포스 부지사 역으로 냉혹한 열연을 보여주는 노장배우 폴 스코필드의 탄식을 통해 각인된다.
아서 밀러는 “크루서블”이후, 1955년에 발표한 “다리에서의 전망”의 주인공 에디 카본 역을 리 제이 캅에게 제의했다.
캅은 얼마 전에 하원 반국가행위 조사위원회에 협력할 것을 동의하고 친구와 친지들을 밀고했기 때문에 아서 밀러는 친척을 밀고하는 에디 카본 역을 통해 그에게 속죄를 위한 기회를 제공하는 의미로 출연 제의했지만 정치적 박해를 두려워한 캅은 그 제안을 거절했다.
아서 밀러는 1956년 첫 부인과 이혼하고 세기의 스타 마릴린 몬로와 재혼을 하여 당대의 지성과 미의 결합이라며 세인의 관심을 끌었지만 이 결혼도 5년 만에 끝이 났다.
1964년도에 발표한 “추락 이후”는 마릴린 몬로와의 만남과 이별의 과정을 주인공 쿠엔틴의 고백형식과 회상기법으로 보여주는 동시에 반미활동위원회의 조사 과정에서 친구들이 서로를 배반하고 그 결과 한 친구가 자살하기까지의 과정을 통해 맥카시즘의 파괴성을 직접적으로 고발한다.
“추락 이후”를 발표한 뒤로 그는 이전의 명성에 이르지 못하지만 “비시에서 생긴 일(1965)”, “대가(1968)”, 민중의 적(1971)“, ”천지창조와 다른 일들(1972)“,”모간 산을 내려오며(1991)“ 등, 역작들을 꾸준히 발표하였다.
유진 오닐, 테네시 윌리엄즈 등과 함께 20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극작가이자 행동하는 지성의 상징이었던 그는 2005년 2월 10일, 89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뉴욕 타임스의 논설위원 밥 허버트는 예술의 오락화, 우민화, 상업화의 홍수 속에 매몰되어가는 인간성과 개인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싸워온 극작가이자 위대한 사상가를 잃게 되었다고 통탄하였고 그의 뒤를 잇는 미국의 대표적인 극작가 에드워드 올비는 그의 작품들을 필수불가결한 현대의 고전들이라고 칭송하며 그를 애도하였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테네시 윌리엄스(1911-1983)는 아서 밀러와 함께 제 2차 대전 이후의 시기에 미국이 낳은 가장 중요한 극작가 중 한명이다.
Thomas Lanier Williams(테네시란 이름은 그의 대학시절의 별명이었는데 나중에 필명으로 채택하였다.)는 1911년 미국남부의 미시시피주 콜럼부스에서 외판원이던 아버지와 목사의 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1918년, 외판원에서 내직으로 옮긴 아버지를 따라 온 가족이 St. Louis로 이주했지만 감수성이 강하고 신체적으로 허약한 그는 북부 도시에 적응하지 못하고 외톨이로 지내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그의 누나가 정신질환을 앓게 됨으로써 어둡고 우울한 성격이 형성되어 현실에서 더 고립되었다.
14세때부터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글을 쓰기 시작한 그는 시, 소설, 수필 현상모집에 응모하여 상금을 타기 시작했고 1929년 미조리 대학교에 입학하여 2년 동안 캠퍼스 생활을 하지만 경제적 궁핍으로 대학을 그만두고 속기술을 배워 아버지가 다니는 회사의 사무원 겸 타자수로 일을 했다.
일을 하면서도 밤에는 끊임없이 글을 쓴 그는 1935년, 조부모의 후원으로 St. Louis의
워싱턴대학교에 등록하게 되어 그곳에서 아마추어 소극단을 위해 작품을 썼다.
1937년, 극작을 공부하기 위해 Iowa대학으로 옮긴 그는 누나 로즈가 뇌엽절제 수술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뉴올리언즈로 내려가 다시는 St. Louis로 돌아가지 않았다.
1939년, 테네시 윌리엄즈라는 필명으로 스토리 메가진에 단편소설을 발표한 그는 4편의
단막극을 수록한 'American Blues"를 미국 연극 경연대회에 출품하여 100불의 상금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1940년, 그의 대리인인 오드리 우드의 주선으로 록펠러재단의 극작 보조금 1000불을 받고 “Buttle of Angels"를 완성하여 보스턴에서 초연했지만 흥행과 비평, 모두 실패하여 ”유리동물원“이 발표되기 까지 무명의 설움을 견뎌야했다.
1945년, St. Louis에서의 그의 가족과 그들의 생활을 바탕으로한 두 번째 희곡인“유리 동물원”으로 일약 미국의 중요한 극작가로서의 명성을 확립한 그는 1947년에 발표한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로 플리쳐 상을 받아 비평과 흥행에서 성공을 거두었고 대중들에게 큰 인기를 모았다.
그는 무엇보다 남부에서 태어나 남부에서 자라난 인간들의 불안과 절망을 작품 속에 투영했는데 몰락하는 남부의 옛 귀족들의 모습과 억압된 성을 다룬 그는 현실에 꿈을 빼앗긴 실의의 인간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물론 그들을 시적인 경지까지 승화시켰다.
“이리하여 나는 허망한 사랑을 찾아 황폐한 이 세상에 헤메어 들었다.
어디로 불어간지 알길 없는 바람 속 찰나의 그 음성
암담한 소망의 갈피 갈피 마저
걷잡을 겨를 없어라. -하트 크레인 “무너진 탑”에서- “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희곡 권두에 사랑이 깨지기 쉬운 것을 확인 해 주는 하트 크레인의 “무너진 탑”을 인용문으로 쓴 테네시 윌리엄즈는 그 글이 암시하는 것처럼 중심 주제로 “상실”을 내세워 상실과 시간의 흐름에 예민한 여주인공 블랑쉬의 파괴된 삶과 몰락을 통해 화려했던 과거 남부의 신화와 생동감을 상실한 현재 남부의 메마르고 궁핍한 삶을 투영시킨다.
과거는 신화로서가 아니면 이제는 살아남을 수 없고 미래는 붕괴의 위협을 의미하는 문화를 암시한다. 개인의 환상과 대중의 가치는 형식과 도덕의 타락을 내포하는 현대의 가속화되는 속도에 의해 깨졌다.
그런 만큼 주위환경에 극도로 민감한 블랑쉬는 “유리 동물원”의 로라처럼 현실 도피성 인물인 동시에 자기도취자이며 작가의 본성이 포함된 캐릭터이다. 또한 물질주의에 의해 망가진 우아하고 멋있는 남부의 신화를 대변한다.
그녀는 정서적으로, 성적으로 손상을 입었고 우아했던 과거의 환상에 사로잡혀 비참한 현실을 숨기고 허구적인 것, 비현실적인 것을 추구하기 때문에 육체적, 정신적인 붕괴로 정신이상의 영역으로 끌려간다.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큰 성공을 거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1951년, 테네시 윌리엄스가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이 연극의 연출가인 엘리아 카잔 감독이 연극에 출연했던 말론 브랜도, 칼 말텐, 킴 헌터를 그대로 영화에 출연시켜 영화사에 길이 남을 족적을 남겼다.
단지 누구나 탐을 냈던 블랑쉬 역은 스타를 기용하라는 영화 제작사의 요구대로 브로드웨이 공연에서 블랑쉬를 열연하여 앙투아네트 페리상(일명 토니상)을 수상했던 제시카 댄디(”드라이빙 미스 데이지“로 1990년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대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비비안 리가 블랑쉬 역을 맡아 두 번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물론 비비안 리 역시 이미 런던 무대에서 로렌스 올리비에가 연출했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 블랑쉬 역을 했었다.
비록 남우주연상이 유력시되었던 스탠리 코왈스키 역의 말론 브랜도가 (“아프리카 여왕”의 험프리 보가트가 수상) 수상엔 실패했지만 1951년도 아카데미 여우주연, 여우조연, 남우조연상을 수상하여 아카데미 최초로 연기부문 3개 부문 수상기록을 세웠다.
2004년 7월 1일 80세의 나이로 작고한 말론 브랜도는 1947년 초연무대에서부터 당시로선 새롭고 독특한 연기 스타일인 사적인 경험을 끌어들여 캐릭터에 동화 해 가는 “메소드 연기”로 스탠리 내면에 공존하는 양면성(욕망과 분노는 물론 남성적인 야수성과 부드러운 여성성)을 표출하여 살아있는 전설이 되었다.
땀에 절은 셔츠와 찢겨진 런닝, 몸에 붙는 청바지로 야성적인 남성의 표본을 보여주는 동시에 열정적이면서 거친 성격 이면에 숨겨져 있는 나약함을 넘치는 성적 에너지로 부각시킨 그는 전후의 불안과 혼돈, 허무와 분노는 물론 남부에 존재하는 폭력과 무신경, 야비하면서도 냉혹하고 실용적이면서 강력한 미래가 되는 스탠리의 생존능력과 지배능력을 극명하게 각인시켜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다.
미국 남부의 뉴올리언즈 역전, 네온의 불빛이 바삐 오가는 자동차와 사람들의 물결을 비추고 이윽고 하얀 증기를 내뿜으며 열차가 도착한다.
붐비는 승객들 사이로 우아한 옷차림의 블랑쉬 드보아(비비안 리)가 지치고 두려움에 찬 표정으로 두리번거리며 걸어오다가 잘 생긴 젊은 수병 옆에 멈춘다. “도와드릴까요?”라는 수병의 친절에 블랑쉬는 그에게 말을 건넨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탄 다음 (묘지)라는 이름의 전차로 갈아타서 여섯 정거장 가면 (엘리시안 필즈-극락정토)라던데요.” 라는 블랑쉬의 첫 대사는 바로 인생을 빗대는 말인 동시에 이 극의 상징성을 미리 짐작하게 해 준다.
그녀는 과거의 환상에 매달려 사는 몰락한 남부지주의 딸로 모든 것을 잃고 여동생 스텔라(킴 헌터)에게 의지해서 살려고 뉴올리언즈 빈민가에 있는 전세아파트로 온다.
그녀는 연약하고 매력적이지만 신경쇠약 상태이며 남편의 자살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점점 더 정신적 불안이 심해진다. 그녀는 여동생 남편인 스탠리의 원시적이며 야수같은 성격에 충격을 받고 그의 거칠고 짐승같은 생명력과 천박함을 경멸한다.
스탠리 역시 매사에 귀족적인 오만함과 세련된 언행으로 가식을 부리며 자신을 멸시하는 블랑쉬를 자기 집 생활 분위기를 위협하는 성가신 불청객으로 인식하고 미워하기 시작한다.
블랑쉬는 스탠리의 친구인 미치(칼 말덴)와 가까워지게 되고 미치 역시 그녀에게 청혼까지 하게 되지만 그녀의 과거의 비밀을 알아 낸 스탠리의 폭로로 그녀의 마지막 지푸라기 같은 꿈도 무산되고 만다.
집안의 가산을 잃은 다음 블랑쉬는 이른 나이에 어떤 소년과 결혼을 하지만 남편이 중년남자와 동성연애하는 현장을 그녀가 발견하게 되고 어린 남편은 죄책감 때문에 총을 입에 물고 자살한다.
그 이후, 그녀가 영어선생으로 가르치고 있던 고등학교에서 17세난 소년학생을 유혹하여 정사를 벌인 것이 탄로나 그녀는 교직에서 쫓겨나고 매춘을 했던 과거의 비밀이 스탠리의 집요한 추적으로 밝혀지고 만다.
그런 스탠리의 비열한 행동을 비난하던 스텔라는 분만의 진통이 시작되어 병원으로 가고 블랑쉬에 대한 스탠리의 증오심은 성적 격정으로 폭발하여 집에 혼자남아 술에 취해 있는 그녀를 강간한다.
몇주일 후, 완전히 정신이 이상해진 블랑쉬는 “나는 언제나 낯선 사람들의 친절에 의지해 왔어.”라는 말을 남기고 요양원으로 실려간다.
아름답고 감수성이 예민한 연약한 여인이 시간의 냉혹함과 물질주의가 지배하는 사회의 비정한 현실에 치어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그 정신이 붕괴하는 과정을 해부하듯 파헤친 희곡과 마찬가지로 불행한 삶 때문에 이중 인격적인 분열증을 보이는 블랑쉬의 내면적 붕괴를 보여주는 이 영화는 끈적끈적한 무더위와 습기로 점철된 뉴올리언즈 밤의 눅눅한 열기와 방안 가득히 끈적거리는 성적 긴장감을 시종일관 흐르는 재즈의 선율과 몽환적이면서도 사실적인 흑백영상으로 부각시킨다.
과거의 신화 속에 살아가는 블랑쉬와 과거의 신화를 내팽개치는 세력을 상징하는 스탠리 사이의 성적 견인력과 상호간의 미움이 이 극의 핵심인데 그들이 대면할 때 계층과 성은 애매한 대결을 벌인다.
블랑쉬는 그의 투박한 사교성과 솔직한 남성적 기질에 강하게 이끌리고 있고 스탠리 역시 그녀에게 성적관심을 보이지만 서로가 경멸한다. 그들에겐 끌림과 거부감이 공존한다.
무엇보다 블랑쉬가 스탠리 코왈스키의 동물적인 힘에 의해 강간당하고 정신이상이 되어 정신병원으로 이송되는 결말까지 연극적인 요소를 배제하지 않고 팽팽한 긴장감을 조성하는 극적 템포와 효과적인 공간분할을 보여주는 것이 이 영화의 포인트이다.
그것은 좁은 공간에서의 빠르면서도 뛰어난 카메라 워킹으로 흑백화면의 강렬한 음영과 번뜩이는 배우들의 내면 연기를 심리적 사실주의로 잡아낸 엘리아 카잔 감독의 역량과 정교한 연출에 기인한다.
또한 재즈와 클래식, 두가지 스타일을 접목하여 인물들의 심리상태를 음악으로 표출한 알렉스 노스의 뛰어난 음악이 극적 융합을 이룬다.
연극은 스탠리 집에서 모든 사건이 이루어지지만 영화에선 뉴올리언즈역과 볼링장, 호숫가의 누각 등 최소한의 열린 공간을 보여주면서 실제 연극무대와 같은 세트 촬영을 통해 좁은 공간의 폐쇄적인 느낌을 그대로 이어간다.
무엇보다 블랑쉬를 극한 상황까지 몰아넣고 폭력으로 그녀를 유린하는 스텐리의 동물적인 행동의 결말을 당시 검열 때문에 간접적으로 깨지는 거울로 대치시킨 상징적인 장면이 은유적이면서도 인상적이다.
블랑쉬가 뉴올리언즈 역에 도착하는 첫 장면과 스텔라가 자신을 부르는 스텐리에게 다시는 돌아가지 않겠다면서 이층에 있는 유니스의 집으로 올라가버리는 마지막 장면은 연극의
결말과는 다르다.
그것은 언니를 강간한 스탠리를 스텔라가 받아들이지 않고 그에게서 떠난다는 설정으로 수정하라는 검열위원회의 압력에 의해서다.
연극에선 언니를 보내고 아이를 안고 흐느끼는 스텔라가 달래듯 “이리 좀 봐”하면서 그녀의 가슴을 손으로 애무하는 스탠리의 행동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것으로 막이 내린다.
하지만 스탠리가 스텔라를 때려 그녀가 이층으로 가버리자 층계 밑에서 아내를 절규하듯 부르는 “오! 스텔라”장면에서 스텔라는 자석에 이끌리듯 이층 층계를 내려와 그에게 안기는 장면을 통해 스탠리의 육체적 매력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하는 스텔라의 욕망과 그들의 관계의 핵심인 내부의 욕망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관능적이면서도 도발적이라는 이유로 검열에 의해 현악기 선율로 바뀐 음악과 킴 헌터의 표정을 볼 수 없게 롱샷으로 대치시켜 공개되었던 이 장면은 원상복구된 알렉스 노스 작곡의 재즈 선율과 킴 헌터의 클로즈 업이 추가되어 거부할 수 없는 욕정에 사로잡힌 스텔라와 그녀를 끌어들이는 스탠리의 끈적끈적한 욕망이 정점을 이루는 이 영화 최고의 명장면이다.
결국 블랑쉬의 믿음처럼 욕망은 죽음을 무력화할지라도 그 길을 따라가도록 허용된 욕망은 죽음에 도달한다.
자신의 작품을 통해 아서 밀러는 성욕을 배신과 죄악에 연관시켰지만 테네시 윌리엄즈에게 성욕은 배신과 구원, 고통과 위안의 이중구조였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성욕이 모든 주요 인물의 생활의 핵심부에 분명히 자리 잡고 있는 최초의 미국연극이라는 평을 얻었다.
그런 만큼 연극으로 공연 될 때부터 당시 검열기준에서 성애묘사가 지나치다는 검열당국의 부분삭제 명령으로 블랑쉬의 고백을 통해 드러나는 연하 남편과 중년 남성의 동성애 관계를 암시하는 대사가 삭제되어 남편의 자살 동기가 미흡한데 당시 동성애묘사가 금기 시 되었던 헐리우드의 민감한 반응을 엿 볼 수 있다.
“뜨거운 양철지붕위의 고양이”
1955년 3월 24일, 뉴욕의 에델 베리모어 극장에서 개막하여 1956년 11월 17일까지 719회 공연된 “뜨거운 양철지붕위의 고양이”는 뉴욕 극평가상과 도날드슨상은 물론, 퓰리처상을 수상하여 비평과 흥행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 이어 테네시 윌리엄스에게 두 번째 퓰리처상을 안겨준 “뜨거운 양철지붕위의 고양이”는 작가가 가장 의욕적인 시기에 쓴 작품으로 알콜 중독, 성도착주의, 황금만능주의 등 현대문명이 안고 있는 온갖 죄악과 부패상을 금기시된 동성애와 가족간에 벌이는 물욕의 암투로 부각시켰다.
밝고 아름다운 인간상보다는 음습하면서도 추악한 등장인물들의 내면을 통해 현대인의 황량한 정신세계를 그린 이 작품은 작가 자신의 일그러진 세계관과 병적으로 비뚤어진 성에 대한 욕망과 갈등을 노골적으로 표출시킨 대표작으로 인간의 심리와 내면을 정신분석학적으로 파헤치는 작가의 근본적인 세계를 각인시켜준다.
미시시피 델타 어느 대지주 저택의 침실 겸 응접실로 쓰이는 방에서 전개되는 이 작품은 미국 남부 대농장의 주인인 빅 대디(벌 아이브스)의 생일날을 시점으로 어느 여름날 저녁에 시작된다.
대지주인 빅 대디는 암에 걸려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지만 그 사실을 모른다.
아버지의 마지막 생일파티에 온 장남 쿠퍼와 그의 아내 메이, 차남인 브릭(폴 뉴먼)의 처 마가렛(엘리자베스 테일러)은 재산상속 문제로 사사건건 서로를 헐뜯는다.
빅 대디가 총애하는 차남 브릭은 허위와 간계로서 축재를 한 아버지의 막대한 재산을 조소하며 인생의 낙오자처럼 술로 삶을 달랜다.
절친했던 친구인 스키퍼가 자살한 이후부터 아내와의 잠자리마저 거부하고 술에 절어 사는 브릭이 술을 마시는 이유는 허위와 위선, 가식과 죄책감 때문이다.
친구 스키퍼와 동성애 관계였다는 비밀이 밝혀지면서 부부간에 균열이 생겨 브릭은 아름다운 마가렛을 멀리한다.
스키퍼는 자기 남편에 대해 동성애적인 애정을 갖고 있다는 마가렛의 말을 듣고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려고 그녀와 동침하지만 실패하자 술과 마약에 빠진다.
술에 취한 그는 그러한 사실을 전화로 브릭에게 고백하지만 브릭은 전화를 끊어버리고 스키퍼는 자살을 한다. 이 모든 것이 마가렛 때문이라면서 브릭은 그녀를 비난하고 그녀와의 잠자리를 거부한다.
빅 대디는 브릭에게 마가렛의 의심은 당연한 것이며 스키퍼에 대한 그의 우정 또한 동성애적인 것인데 스스로 그것을 인정하지 않아 친구의 죽음을 초래했다고 힐책한다.
그것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게 된 브릭은 홧김에 아버지가 시한부 생명이라는 것을 폭로한다.
브릭을 정열적으로 사랑하는 마가렛은 뜨거운 양철지붕위의 고양이처럼 괴롭고 힘든 처지에서도 자신에게 냉소적인 남편의 사랑과 재산상속을 받기위한 노력을 포기하지 않는다.
자식을 갖는 것만이 상속을 받는 최선의 길임을 파악한 그녀는 빅 대디에게 자신이 임신했다고 거짓말하고 브릭을 그녀의 침대에 들도록 설득한다.
젊고 아름다운 마가렛, 자신에 대한 증오감으로 술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브릭, 아이의 숫자와 재산상속은 비례한다고 믿는 쿠퍼와 메이, 사라져가는 옛 남부의 상징인 빅 대디,
브릭의 성적억압에 대한 탐구이며 브릭과 스키퍼의 잠재적 애착에 관한 이야기로 억압된 동성애에 대한 스토리가 상징적으로 부각된 이 작품은 가족 전체간의 허세가 공존하며 위선과 탐욕으로 거짓말의 그물에 걸린 사람들의 심리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 내가 노린 점은 어떤 한 사람의 심리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한 그룹의 사람들이 겪는 체험의 진정한 성격- 즉 위기에 처한 사람들의 잘 보이지 않으면서도 변하기 쉬운 성격을 잡는데 있다. 똑같은 위기의 번개구름 속에서 생생한 인간들의 상호작용을 파악하려는 것이다.”라는 작가의 의도처럼 뛰어난 극적 장치와 시적인 대사로 각 인물들의 신경질적인 불안과 초조를 부각시킨 이 작품은 1958년에 영화로 만들어져
큰 성공을 거두었다.
영화적 출발은 문학이라고 주장하면서 “까라마죠프가의 형제들”과 “로드짐”등 문학작품을 각색하여 영화화한 리처드 브룩스 감독의 “뜨거운 양철지붕위의 고양이”는 브릭역의
폴 뉴먼과 마가렛역의 엘리자베스 테일러, 그리고 연극무대에서 빅 대디로 출연했던 벌 아이비스의 호연으로 1958년도 아카데미 작품, 감독, 남우주연, 여우주연, 촬영, 각색상 후보에 올라 평단의 호평을 얻었다.
무엇보다 남편 마이크 토드의 죽음을 슬퍼할 겨를도 없이 이 영화촬영을 강행한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자신을 거부하는 남편을 침실로 끌어들여 아이를 갖고 재산상속을 받으려는 마가렛의 고양이 같은 교활함과 절심함을 뛰어난 열연으로 각인 시켜준다.
하지만 당시 절친했던 여배우인 데비 레이놀즈의 남편 에디 피셔와의 염문으로 그녀는 스캔들 메이커로 부상하였고 결국 에디 피셔와 결혼을 한 그녀의 행각은 숱한 비난을 받아 전국극장주연합회는 그녀에게 주려던 올해의 스타상을 취소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통해 그녀는 미워할 수 없는 묘한 매력으로 미모만 내세우는 스타에서 연기파 배우로 인정을 받았고 폴 뉴먼 역시 우울하면서도 냉소적이며 죄책감에 사로잡힌 브릭 역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라 스타가 되었다.
이 작품의 여주인공인 마가렛은 “유리 동물원”의 로라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블랑쉬처럼 현실과의 괴리로 인해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파멸을 초래하지 않는다.
현실적이고 타산적인 마가렛은 뜨거운 양철지붕위에서 뛰어 내리지 않고 고난을 극복하는 지혜로운 여성으로 그려져 진취적인 여성상을 보여준다.
이 영화는 술에 만취한 브릭이 새벽 2시경, 고등학교 운동장에서 육상 허브를 세워놓고 장애물 뛰어넘기 하다가 발목을 다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연극무대에서 마가렛의 대사를 통해 관객들에게 전해지는 브릭의 발목부상을 구체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영화적 특성을 살린 리처드 브룩스 감독은 제1막의 장황한 마가렛의 대사를 함축 있게 짜깁기해서 원활한 장소 이동으로 팽팽한 브릭과 마가렛의 갈등을 부각시킨다.
그것은 제2막에서 장황하게 펼쳐지는 빅 대디와 브릭의 논쟁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둘만의 대화로 진행되는 연극과는 달리 영화에선 지하실 방에서의 논쟁으로 대치하고 마가렛을 등장시켜 긴장과 이완으로 등장인물들 간의 심리적 갈등을 고조시킨다.
물론 동성애 문제를 금기시 했던 당시의 상황 때문에 희곡에 언급된 무대 세트의 핵심인 침대, 즉 그 방의 소유자였으며 동성연인이었던 잭 스트로와 피터 오켈로에 대한 언급은 물론, 그들에 의해 빅 대디가 대지주가 될 수 있었다는 대사, 그리고 브릭의 친구 스키퍼가 자살하던 날 밤의 상황을 실토하는 마가렛의 대사와 술로 삶을 회피하는 브릭에게 진심을 털어 놓으라면서 둘의 비정상적인 우정, 즉 동성애를 이해한다는 빅 대디의 대사들이 각색과정에서 삭제되어 브릭의 고뇌가 전형적인 아버지와의 갈등 그리고 마가렛에 대한 질투로 순화된 점이 아쉬움을 준다.
물론 1950년대 미국에서의 최악의 존재는 공산주의자였고 두 번째 최악의 존재가 동성연애자였다.
연극은 그러한 당시의 장벽을 깨기 위한 사회적 선언장치로 성적인 면과 성적 정체성, 부부간 성적 불화를 핵심으로 억압된 동성애에 대한 스토리를 확장시켰다.
그런 만큼 동성애가 금기시 되었던 영화에선 스키퍼의 자살의 비밀을 다룰 수 없었고 브릭의 우울증과 알콜 중독의 원인을 원작 그대로 살릴 수 없었다.
연극에선 마가렛이 브릭의 질투심을 유발하려고 스키퍼를 유혹, 동성애에 대한 미묘한 조롱을 보여주지만 영화에선 단순한 불장난으로 대치시켜 브릭의 죄책감의 원인을 아버지와의 불화로 설정을 바꿨다.
원래 브릭의 문제는 자신이 사랑하고 우상시하던 친구가 괴로워 할 때 질투심 때문에 거절한 죄책감에 있지만 영화에선 아버지와의 불화 때문에 브릭에게 스키퍼는 아버지를 대신하는 친구로 수정, 잦은 음주 장면을 추가시켜 부자간의 관계나 술의 위험에 대해서 강조 해 준다.
연극의 은유적이면서 상징적인 신비롭고 시대를 초월한 세트는 영화의 특성상 사실적이면서 구체적인 대저택의 대형 세트로 제작되어 상황이 바뀔 때 마다 장소를 이동시켜 극적 상황에 의한 인물들의 내면을 부각시켜준다.
특히 브릭과 빅 대디의 지하실에서의 대면 장면은 연극엔 없는 확장 씬으로 먼지투성이의 수집품들, 브릭의 젊었을 때 사진과 자전거 등을 배치하여 빅 대디와 브릭의 화려했던 과거와 패배자로서의 현재, 그리고 가족의 부패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부자간의 갈등에 대한 구체적인 확장묘사로 스토리상의 주요부분을 감소시키지만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는 구태의연한 부자간의 갈등을 승화시켜준다.
“무성영화 시대부터 지금까지 영화를 통해 받는 선물은 인간의 얼굴에 드리운 신비한 명암을 포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카메라는 복잡한 과거의 복잡한 감정도 나타낸다.
영화의 위대한 점은 인간 본성을 인간의 얼굴에서 볼 수 있다는 것,
그게 바로 영화가 주는 위대한 유산이다.”라는 말처럼 빅 대디 역의 벌 아이브스는 자신의 엄청난 재산으로 인해 불행의 굴레에 갇힌 인간의 모습을 절실하게 보여준다.
결국 부자가 화해를 하고 빅 대디가 다리를 다친 브릭을 도와 계단을 오르는 장면은 상투적이지만 가족애를 부각시켜 영화상으론 효과적이다.
가족의 고리는 다시 만들어지고 고통의 시간은 지나갔다. 브릭은 자신의 열정을 되찾고 마가렛을 받아들인다.
원작과는 달리 브릭이 계속 마가렛을 원했다는 암시를 보여주는 이 영화는 가족애를 강조하는 헐리우드식 앤딩이지만 두 배우의 미와 재능이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어 깊은 인상을 남겨준다.
테네시 윌리엄즈는 이 작품에서 인간의 아름다움보다는 추악상을, 그늘지고 음습한 곳에 움츠러든 인간상을 그리려고 했다.
그의 작품은 언제나 그의 인생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으며 어떤 의미에선 그 자신과의 논쟁이다. 그는 패배자 브릭이며 생존자 마가렛이다.
분열된 자아, 즉 육체와 영혼, 정신과 상상, 죽음의 본능과 삶의 본능이 서로 쪼개진 것과 관련되어있으므로 인물들은 그의 분열된 개성 이상으로 그와 연관성이 있다.
원래 첫 번째 공연대본은 마지막 장면에서 마가렛이 브릭에게 사랑한다고 말하자
“그게 정말이라면 웃기는 게 아닐까?”라는 브릭의 회의적인 대답으로 극이 끝나지만 이 대본을 연출한 엘리아 카잔은 이 대사를 삭제하여 브릭이 메기를 칭찬하는 것으로 수정하였고 윌리엄즈는 처음엔 반대했지만 카잔이 요구한 수정에 동의하여 지금까지 이 버전으로 공연되고 있다.
“지난 여름 갑자기”
“지난 여름 갑자기”는 1958년 1월 7일, 단막극인 “말할 수 없는 것”과 함께 “정원지역”이라는 제목으로 오프 브로드웨이의 요크 극장에서 초연된 작품으로 테네시 윌리엄즈는 “우리 시대의 우화”라고 했다.
이 작품은 미국의 남부 뉴올리언스에 있는 화려한 빅토리아 시대풍의 고딕식 대저택을 배경으로 파리를 삼키는 끈끈이 주걱이라는 식물이야기를 선두로 갓 태어난 거북 새끼들이 바다로 돌아가기 직전에 하늘에서 덮치는 새들에게 쪼아 먹히는 이야기의 복선을 통해 동성애자인 한 젊은 시인이 일단의 허기진 아이들에게 잡아먹힌다는 충격적인 결말을 보여준다.
테네시 윌리엄즈는 195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심층적으로 인간의 심리적 공황상태,
그리고 미국사회의 가치관 혼란의 양상을 작품에 반영하였고 내용적으로 과격한 글들을
발표했는데 이 작품 역시 미묘한 어머니와 아들의 근친상간적인(?) 분위기와 동성애,
그리고 식인습관이라는 당시엔 금기시 되었던 소재를 바탕으로 인간세계의 극단적인 폭력성과 파괴적인 잔혹성을 부각시키는 것은 물론, 자신의 성적 정체성과
작가로서의 직업과 연관 있는 개인적 공포심을 간접적으로 표현하였다.
테네시 윌리엄즈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감성은 그들이 살고 있는 세계와 마찬가지로 언제나 파멸 직전에 있다.
이 극에 등장하는 세바스찬은 시인이며 동성애자이다. 그는 일년에 시를 한편만 쓴다.
해마다 임신기간인 9개월 동안 시를 구상하고 “여름의 시”라는 한권의 장시를 쓰는 그의 문학적 재능은 퇴보하는 것처럼 그려진다.
그는 결국 돈으로 매수하여 같이 지내려던 청년들에 의해 파괴되고 소멸된다.
그는 타락한 사회의 희생양이 아니라 죽음으로써 부패한 사회의 모습을 드러내는 힘을 거부한다.
그의 육체적인 성적욕구는 이 극에 등장하는 모조 정원처럼 철저히 위장되어 있다.
그가 쓰는 시는 탐미적이면서 현학적이지만 성의 상대자를 찾기 위해 어머니와 사촌여동생을 미끼로 던지는 그의 노골적인 욕망과 잔혹성을 감추게 하는 수단이 된다.
그것은 테네시 윌리엄즈의 누이 로즈가 실제로 받았던 뇌엽 절제수술을 이 극의 여주인공인 캐서린이 받게 되는 것처럼 작가 자신의 개인적 요인인 감성의 파괴적인 이원성에 근거한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와 “뜨거운 양철지붕위의 고양이”가 영화로 만들어져 큰 성공을 거둔 이후, “지난 여름 갑자기”는 무대에서 초연된 바로 다음 해인 1959년도에 영화로 만들어져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불세출의 클래식 영화인 “이브의 모든 것”으로 뛰어난 각본가로 알려진 조셉 L. 맨케비츠 감독이 캐서린 헵번과 엘리자베스 테일러, 몽고메리 클리프트를 캐스팅하여 제작당시부터 화제를 모았던 이 영화는 “세바스찬이 비록 극중에서 사망하지만 동성애자임이 명백하므로 상영을 허가할 수 없다.”라는 상영금지 처분을 받았다.
더욱이 동성애는 범죄이며 동성애자를 범죄자로 취급했던 당시 미국의 영화 검열을 주도했던 “고품질 영화연맹”의 의장은 예수회 목사가 맡았는데 이 영화를 타락한 영화로 규정했고 “근친상간, 강간, 수간, 식인풍습, 변태를 좋아하는 사람이 볼 영화.”라고 논평했다.
하지만 “죽음으로써 죄값을 치룬다.”라는 제작자 샘 스피겔의 호소를 통해 죄를 지으면
대가를 치룬다는 제작규범이 근본적인 원칙을 도출시켜 “성도착증을 다루고 있지만 그러한 삶의 대가를 묘사하기에 부도덕하다고 볼 수 없다.”는 윤리위원회의 마지못한 승인으로 상영허가를 얻었다.
이 영화에 대한 혹독한 논평과 상영금지처분은 대중들의 관심을 끌었고 어둡고 추잡한(?) 내용의 이 영화를 흥행시킨 불씨가 되었다.
1937년이라는 자막과 함께 라이온스 뷰 주립정신병원의 높다란 벽을 배경으로 시작되는
이 영화는 정신병동 내부의 환자들의 모습을 음산하게 스케치하면서 시카고 출신의 유능한 신경외과 전문의 존 쿠크로비치 박사(몽고메리 클리프트 분)가 집도하는 대뇌백질 절제술을 견학하는 의학도들을 보여준다.
수술도중 조명등이 꺼지고 더 이상 수술을 할 수 없는 상황을 통해 재정이 빈약한 원시적 조건의 주립병원이라는 것을 암시 해 준다.
어느 날 존 쿠로로비치 박사(몽고메리 클리프트)는 최고의 갑부인 미망인 베너블 부인(캐서린 헵번 분)으로부터 특별한 제안을 받는다.
베너블 부인은 지난 여름 심장마비로 갑자기 사망한 자신의 아들 세바스찬의 일로 충격을 받은 질녀 캐서린(엘리자베스 테일러)에게 대뇌 절제 수술을 해 주면 병원 후원금으로 백만달러의 기부금을 내놓겠다고 제안을 한다.
그러나 존 박사는 베너블 부인의 지나친 아들에 대한 칭송과 흠모, 그리고 캐서린에 대한 비방으로 의문을 갖게 된다.
세바스찬이 사망할 당시 현장에 있었던 캐서린은 그날의 충격으로 입을 다물고 있었지만 존의 세심한 배려로 베너블 부인 앞에서 진실을 털어놓는다.
결국 지난 여름, 캐서린의 미모와 자신의 돈을 이용 해 동성애적 욕구를 탐닉했던 세바스찬의 죽음을 목격한 캐서린의 기억을 없애고 동성애자인 아들의 비리를 은폐하려는 베너블 부인의 음모와 계략이 밝혀진다.
이 영화는 테네시 윌리엄즈가 고어 비달과 직접 각본을 쓴 만큼 영화적 특성인 촬영이나 사운드에 의지하지 않고 가장 연극적인 배우들의 연기와 시적이면서도 형이상학적인 대사에 의존한다.
존 박사와 캐서린의 잠재의식으로 접근하는 과정은 영화의 모든 미스테리가 해결되는 과정이면서 파국으로 치닫는 요인이 된다.
특히 무대에선 재현할 수 없는 지난 여름 세바스찬과 캐서린의 행적이 플레시 백으로 오버 랩되면서 몽환적인 흑백영상 속에 소름 돋는 극적 긴장감을 증폭시킨다.
작가는 캐서린의 고백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식인적이며 인간은 언제나 지위, 이해관계, 쟁취, 탐욕, 명예, 무엇을 위해서든지 타인을 잡아먹는다는 상징성을 각인시켜준다. 이 영화의 꽃은 강렬한 베너블 부인 역의 캐서린 헵번과 공동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에 오른 캐서린 역의 엘리자베스 테일러이다.
무엇보다 아쉬운 것은 존 박사 역의 몽고메리 클리프트(애칭은 몬티)이다.
그와 말론 브란도, 제임스 딘, 폴 뉴먼은 “메소드 연기”로 근대의 영화 연기 방식을 뒤바꾸어 놓은 선두주자였다.
제임스 딘은 세편의 작품을 찍고 요절하여 영원한 신화가 되었고 말론 브란도와 폴 뉴먼 역시 말년까지 대배우로서 명성을 유지하며 지속적으로 활동 했다.
정작 미국의 가장 대표적인 배우로 손꼽혔던 몬티는 1956년 교통사고를 당해 얼굴의 왼편이 마비가 되고 코와 입이 약간 비뚤어져 연기자로서 벼랑 끝에 서게 된다.
그와 절친한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도움으로 이 영화에 출연한 그는 지적이면서도 우울한 연기를 보여주지만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인한 쇄락한 모습은 복귀할 수 없는 예전의 매력적인 모습과 대비되어 연민을 자아낸다.
동성애자였던 그의 불운은 “지난 여름 갑자기”의 세바스찬처럼 바로 자기 자신 때문이었다.
그는 “젊은이의 양지”와 “지상에서 영원으로”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라 최고의 스타가 되었다.
하지만 그는 최고 전성기였던 당시에 “세인”, “하이눈”, “에덴의 동쪽”, “뜨거운 양철지붕위의 고양이”, “워터프론트” 등 불세출의 작품들의 출연제의를 거부하고 난잡한 파티와 폭음, 여행으로 젊음과 재능을 탕진하면서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가장 아름다운 배우, 가장 뛰어난 감성의 소유자로 칭송받았던 그는 무절제한 사생활로 파산지경에 이르렀고 교통사고로 손상된 얼굴 때문에 고통 받다가 결국 알콜 중독으로 45세의 나이로 쓸쓸히 숨을 거두었다.
동성애자였던 윌리엄즈 역시 1963년, 가장 친한 친구인 프랭크 멀로가 암으로 사망한 후 그의 인격이 말살될 정도로 술과 마약에 빠져 어두운 나락의 시기를 보내기 시작했고
1969년, 결국 정신적인 붕괴 상태를 일으켜 세인트 루이스에 있는 반즈 병원의 정신과 병원에 입원하였다.
나락의 시기를 거쳐 1972년, “작은 배 경고”가 오프 오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되어 “이구아나의 밤”이후로 처음 성공을 얻은 그는 해마다 새로운 작품을 발표했지만 그 이후의 작품들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1983년 2월 25일, 뉴욕의 엘리제 호텔에서 약병의 플라스틱 뚜껑에 목구멍이 막혀 숨진 그는 가장 외롭고 세기말적인 성도착증의 오뇌를 안고 그의 이상한 사망 원인을 반추하는
히스테리컬한 일생을 마쳤다.
당시 금기시 되었던 동성애로 감성의 파괴적인 이원성을 보여준 테네시 윌리엄즈,
“지난 여름 갑자기”의 시인 세바스찬은 그의 분신인 동시에 몽고메리 클리프트의 분신이다.
“피크닉”
테네시 윌리엄스(1911-1983)와 아서 밀러(1915-2005)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시기에 미국이 낳은 가장 중요한 극작가로 인정받고 있지만 윌리엄 인지(1913-1973) 역시 그들과 함께 1950년대에 브로드웨이를 장악했던 극작가이다.
남부에 사는 사람들의 불안과 절망, 억압된 인간 본능을 파헤친 테네시 윌리엄스와 현대 미국 사회를 비판하고 경종을 울린 아서 밀러와는 달리 윌리엄 인지는 미국의 작은 도시에 사는 서민들의 일상적이면서도 평범한 사건을 그려 큰 성공을 거두었다.
캔사스 주 인디펜던스에서 태어난 그는 주로 중류 하층 계급의 중서부 미국인들의 가정문제를 사실적으로 그려 인기를 누렸지만 진부하면서도 피상적인 사실주의라는 혹평도 얻었다. 1950년에 발표한 “사랑하는 시바여 돌아오라”는 그의 첫 번째 성공작으로서 브로드웨이에서 6개월이나 공연되어 큰 인기를 모았다.
1953년에 발표한 “피크닉”으로 퓰리쳐상 과 뉴욕연극비평가상을 수상한 그는 “버스 정류장(1955년)”과 “어두운 층계 위(1957년)”의 연 이은 성공으로 미국의 대표적인 극작가로 명성을 얻었다.
1959년에 발표한 “A Loss of Roses"의 실패 이후, 영화를 위해 처음으로 쓴 각본인 엘리아 카잔 감독의 ”초원의 빛“으로 1961년도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한 그는 희곡으로는 더 이상 성공작을 내놓지 못하고 1973년,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다.
프린스턴 대학에서 연출을 공부하고 모스크바로 유학을 떠났던 조슈아 로간은 1953년, 귀국하자마자 “피크닉”을 무대에 올려 큰 성공을 거두었다.
윌리엄 인지는 이 작품으로 퓰리쳐상과 뉴욕연극비평가상을 수상하였고 무대연출가 조슈아 로간은 브로드웨이 무대연출의 제1인자로 부각되었다.
이를 계기로 1955년, 조슈아 로간은 “피크닉”을 영화화하면서 영화감독으로 데뷔하였다.
그의 영화 데뷔작인 “피크닉”은 큰 호평을 얻어 그 해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고 미술감독-세트장식상, 편집상을 수상하였다.
영화 “피크닉”의 성공으로 다시 윌리엄 인지의 희곡인 “버스 정류장”을 영화화하여 명성을 얻은 그는 뮤지컬 “남태평양”과 “사요나라”, “파니”를 통해 미국영화의 낙천주의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피크닉”의 사건은 미국 중서부 캔사스 주의 어떤 소도시에서 서로 가까이 붙어있는 두개의 조그마한 집의 현관과 뜰 안에서 전개된다.
우측에 있는 집은 플로라 오웬스부인의 소유인데 이 부인은 18세의 매지와 16세의 밀리라는 딸들과 같이 사는 40대의 과부이다. 좌측에 있는 집은 헬렌 팟츠라는 60대의 과부가 나이가 들어 병이 든 어머니와 살고 있다.
영화 “피크닉”은 할 카터(윌리엄 홀덴)가 무임승차한 화물열차가 작은 마을에 도착하면서 시작된다.
무대극에선 이미 할 카터가 헬렌 팟츠에게 아침식사를 대접받고 뜰에 나와 일을 시작하면서 극이 전개되지만 영화는 희곡에서 생략된 부분을 자세히 보여주면서 정처 없이 떠도는 할 카터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때는 늦은 여름철, 9월의 첫째 월요일인 노동절날 이른 아침이다.
이 마을에 살고 있는 대학시절의 친구 앨런을 찾아 일자리를 구하러 온 할 카터는 웃옷을 벗어 붙인 채 헬렌 팟츠의 정원손질을 한다.
이웃집에 살고 있는 과부인 플로라(베티 필드)와 그의 큰딸 매지(킴 노박), 둘째딸 매리(스잔 스트라스버그), 그리고 하숙인인 올드미스 여선생 로즈마리(로잘린드 러셀)가 낯선 그를 지켜본다.
할 카터는 일을 마치고 친구 앨런(클리프 로버트슨)을 찾아가고 앨런은 그의 아버지가 경영하는 거대한 곡물창고를 구경시켜준다.
할은 이 마을에 정착 해 보려고 앨런에게 부탁하여 그곳에 일자리를 구한다.
이곳 마을사람들에게는 노동절날 피크닉을 떠나 한 곳에 모여 축제를 벌이는 풍습이 있는데 축제에서는 여름의 마지막을 즐기는 각종 장기자랑과 경기가 벌어진다.
할과 앨런, 매지와 밀리, 헬렌과 플로라, 로즈마리와 홀아비 하워드 베번즈(아더 오코너), 이들은 모두 피크닉에 와서 마음껏 즐긴다.
황혼이 지고 어둠이 깔리면서 축제의 클라이맥스를 장식하는 댄스파티가 열리고 노동절 미의 여왕으로 뽑힌 매지가 어둠속에서 보트를 타고 나타난다.
할과 매지는 같이 춤을 추게 되고 서로에게 강하게 끌린다.
그리고 그날 밤, 그들은 사랑에 빠지게 되고 매지를 사랑하는 앨런과 그와 결혼하기를 바라는 플로라부인은 이 사실을 알고 격분한다.
할에게 배신감을 느낀 앨런은 그를 자동차 도둑으로 거짓신고하게 되고 할은 매지에게 간곡하게 청혼을 한 뒤 그를 추적하는 패트롤카를 피해 달려오는 화물열차에 몸을 싣는다.
노동절 아침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 24시간 동안 벌어지는 이 영화는 부호의 아들인 앨런의 용서와 구애를 뿌리치고 매지가 할을 쫓아 버스를 타고 이 마을을 떠나면서 끝이 난다.
두개의 조그만 집과 현관, 뜰 안에서 전개되는 연극과는 달리 영화 “피크닉”은 아름다운 리버사이드 공원을 배경으로 이 영화의 타이틀인 “피크닉”의 화려하면서도 다채로운 경기와 행사를 뛰어난 편집으로 보여주는 만큼 영화의 장점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특히 플로라부인 집 뜰과 거실, 이층에 있는 매지의 침실을 자유롭게 드나드는 안정적인 카메라 워크가 뛰어나다.
또한 희곡의 대사는 그대로 인용하면서 다양한 장소 이동을 통해 적재적소에 재배치한 다각적인 편집은 이 영화의 포인트로 느슨했던 희곡의 상황과는 달리 보다 극적인 상황으로 유도하여 극적 긴장감을 조성한다.
연극에선 할과 매지가 피크닉을 가지 않고 사랑의 도피행각을 뜰 안에서 보여주지만 영화에선 리버사이드 공원을 무대로 펼쳐지는 각종 경기와 피크닉을 즐기는 군중들의 모습을 다양한 카메라 이동과 편집으로 스케치하듯 보여주면서 할과 매지의 로맨스를 부각시킨다.
특히 전성기였던 윌리엄 홀덴과 킴 노박의 댄스 장면은 아름다운 영상으로 첫눈에 반한 사랑의 열정을 각인시켜준다.
그리고 연극에선 등장하지 않는 앨런의 아버지를 등장시켜 앨런과 매지, 할과 앨런의 관계를 부각시키는데 무엇보다 피상적이었던 등장인물들의 성격들이 보다 적극적이고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이 영화의 장점이다.
“액터즈 스튜디오”의 창시자인 리 스트라스버그의 딸인 스잔 스트라스버그의 첫 영화 데뷔작인 이 영화에서 “슬픔은 엘렉트라가 되다”로 1947년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던 로잘린드 러셀이 주연이 아닌 조연인 노처녀 여선생 로즈마리로 출연하여 화제를 모았는데 연기자는 어떤 역이든지 소화할 수 있어야 한다는 연기수칙을 실증적으로 보여준 귀감이 되었다.
조역을 마다하지 않고 열연한 로잘린드 러셀은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할 것이라고 자신만만해 했지만 후보에도 오르지 못했고 그녀의 파트너인 홀아비 베번즈 역의 아더 오코너가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윌리엄 인지는 비연극적인 조그만 사건을 통해 피상적인 것들을 다루지만 실제로 진리를 발견할 때 수반되는 충격과 경이를 가져온다고 주장했다.
비록 그의 작품들은 한 시기가 지나면서 생명력을 얻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내지만 추억의 영화인 “피크닉”과 “버스 정류장”, 그리고 “초원의 빛”을 통해 50년대 미국 연극계를 풍미했던 그의 재능을 확인할 수 있다.
“7년만의 외출”
1962년, 36세의 나이로 약물과다복용으로 사망한 마릴린 몬로의 죽음은 헐리우드 아이콘의 탄생인 동시에 전설의 시작이 되었다.
1926년 6월 1일 로스엔젤레스 시립병원의 자선 병동에서 사생아로 태어난 노마 진 베이커는 생활비 때문에 아이들을 양육하는 아이다와 알버트 볼렌더 부부 밑에서 8년 동안 지냈다.
필름 현상소에서 일했던 마릴린의 어머니 글래디스 베이커는 한달에 25달러씩 양육비를 지불하며 고달픈 삶을 살았다.
그녀의 첫 두 아이는 전 남편이 맡아 키웠고 노마 진이 9살이 될 무렵, 헐리우드 근처에 집을 얻어 딸과 함께 살게 되었지만 3개월 후, 정신병으로 입원하게 되어 노마 진은 헐리우드 사설 고아원에서 자라게 된다.
그 이후, 어머니의 친구인 그레이스 맥키가 후견인이 되었지만 그녀의 결혼으로 몇 년 동안 여러 집을 전전하게 되는데 그레이스 맥키의 친척인 애나 집에 맡겨진다.
12살에 노마 진은 애나의 집 근처 에머슨 중학교를 다녔다. 이집에서 저 집으로 옮겨 다니며 따돌림을 당하면서도 평균성적을 유지했던 그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하고 16세라는 어린나이에 결혼 하게 된다.
그녀의 후견인인 그레이스가 남편의 전근으로 웨스트버지니아의 헌팅턴으로 이사를 가야했기 때문에 노마 진은 다시 고아원으로 가야할 처지였고 고아원에 가기엔 나이가 많아서
그레이스는 당시 21세였던 제임스 도허티와 결혼시킬 결심을 했고 제임스의 어머니의 허락으로 순조롭게 결혼식을 올렸다.
전쟁이 발발하자 도허티는 상선대의 일원으로 참전, 노마 진은 군수품 공장에 취직했는데 동료들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용모로 전시 홍보용 사진의 모델을 하게 되고 이를 계기로 그녀는 모델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아름다우면서 전형적인 미국인의 인상인 그녀는 블루북 모델 에이전시의 대표였던 에밀린 스나이블리에게 사진 모델이 되는 법과 포즈, 동작과 미소 짓는 법을 배우게 되고 그녀는 모델로서 성공을 거둔다.
20세가 되던 1946년, 모델 활동을 반대하는 남편과 이혼한 그녀는 한달에 무려 다섯 잡지의 표지를 장식했고 20세기 폭스사와 계약을 맺은 그녀는 마릴린 몬로로 이름을 바꿨다.
폭스사와 계약한 첫 해엔 아무런 기회도 얻지 못하고 철저하게 무시당한 그녀는 콜럼비아 영화사의 뮤지컬 “숙녀들의 합창”에서 천진난만한 주인공 역을 하게 되고 헐리우드의 스타 군단에 합류하게 된다.
사교계의 남자들과 클럽을 전전하다가 “러브 해피”에 출연한 그녀는 처음으로 금발의 백치 미녀를 연기했는데 한동안 그러한 캐릭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 당시 배우로서는 가망이 없다는 주위의 평에 그녀는 두 명의 조력자를 곁에 두게 된다. 그녀의 첫 스승이라 할 수 있는 연기 코치 나타샤 라이테스와 매니저이자 친구인 조니 하이드는 그녀가 기회를 잡는데 큰 역할을 했다.
무명시절 사진작가 톰 켈리는 그 유명한 마릴린의 누드 캘린더를 찍어 그녀를 전 세계에 알렸다.
1949년, 여전히 무명이었던 그녀는 존 휴스턴 감독의 “아스팔트 정글”에 출연하였고 그 영화 개봉이후, 그녀는 배우로서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폭스사는 마릴린 몬로 스타 만들기 작전에 돌입, 그때부터 그녀는 아름다운 전시용 상품이 되었다.
4년 동안 “나이아가라(1953)”, “백만장자와 결혼하는 법(1953)”, “신사는 금발을 좋아한다(1953)”, “돌아오지 않는 강(1954)”, “쇼처럼 즐거운 인생은 없다(1954)“, 등 16편의 영화에 출연하면서 연기와 춤, 노래로 관객을 사로잡은 그녀의 입지는 더욱 확고해 졌다.
물론 역할은 모두 금발의 백치미 여인이었다.
평론가들은 그녀를 바보 취급하며 농담거리로 삼았지만 “나이아가라(1953)”부터 그녀의 인기는 급상승했고 헐리우드의 스타가 되었다.
은퇴한 뉴욕 양키즈의 슈퍼 스타 야구선수 조 디마지오는 한때의 화려했던 영광을 뒤로
하고 마릴린 몬로와 가정을 꾸리기를 원했다.
1954년, 그들의 결혼은 세기의 사건이었고 폭스사와 재계약을 체결하면서 마릴린의 영화출연료는 편당 10만달러로 뛰어올랐다.
더욱이 “7년만의 외출”에서 주인공을 맡게 되어 최고의 섹스 심볼로 부각되었다.
1952년 브로드웨이에서 큰 인기를 모은 조지 액슬로드의 유명한 연극 “7년만의 외출”은 유부남이 아름다운 위층 아가씨와 불륜에 빠진다는 내용이다.
헐리우드는 이 연극의 영화화를 학수고대했는데 50년대의 영화들은 연극과는 달리 예술적 측면에서 제약을 받았다.
정부가 개입하여 검열을 강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 모든 영화는 헐리우드 영화사들이 자체적으로 만들어낸 검열 기관인 “헤이스 사무소‘에서 검열을 받아야했다.
저질스러운 것, 천박한 것, 풍기문란을 조장하는 영화들은 영화관에서 상영할 수 없었고 영화계 자체에서 용인하지 않았다.
“불륜은 코미디의 주제가 되거나 웃음거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라는 제작법의 조항 때문에 헐리우드 스튜디오는 “7년만의 외출”의 영화화를 포기했지만 “잃어버린 주말”과 “이중배상”, “선셋 대로”에서 논란의 소지가 많은 알콜 중독과 불륜을 다루면서도 엄격한 검열 조항을 비켜갔던 빌리 와일더 감독은 극작가인 조지 액슬로드와 과감하게 판권을 계약했다.
액슬로드는 브로드웨이에서 연극이 막을 내릴 때까지 영화를 개봉해선 안 된다는 조건을 내걸었고 20세기 폭스사는 관능미의 화신인 28세의 마릴린 몬로를 내세워 판권 구매에 뛰어들었다.
폭스 사가 영화 판권을 사들이게 되자 누가 마릴린의 상대역이 될 것인가에 세간의 관심이 쏠렸다.
리차드 셔먼 역은 평범한 남자의 이미지였기 때문에 빌리 와일더 감독은 잘생긴 헐리우드 스타를 배제하고 브로드웨이 연극에서 셔먼 역을 맡았던 탐 이웰을 과감하게 끌어들여 평범하면서도 소심한 중년 남성의 환상을 극대화시켰다.
1954년, 이 영화의 촬영이 시작되었을 때 신혼부부였던 야구 선수 조 디마지오와 그녀의 일거수 일투족은 언론을 강타했다.
그런 만큼 헐리우드의 관심은 이 영화의 촬영에 집중되었다.
검열기관은 대본의 복사본을 들고 촬영을 주시했고 자기 파괴적인 마릴린의 변덕스러운 행동으로 빌리 와일더 감독은 이중으로 곤궁에 빠졌다.
“헤이스 사무소”는 섹스 코미디 대사에 재능이 있는 작가인 액슬로드에게 재기발랄한 대화들을 대폭 삭제할 것을 요구했고 감독과 작가는 불륜을 드러낼만한 장면들을 모두 없애는 대신 가정부가 이웰의 침대에서 머리핀을 발견하는 것으로 암시만 하려했지만 제작법 위반을 두려워한 영화사 사장인 대릴 자눅의 반대로 그것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아내가 없는 사이에 잠시 한눈을 파는 남자에 관한 이야기인 “7년만의 외출”은 좌충우돌 남자가 죄의식을 느끼며 망상에 사로잡히는 상황이 극적 포인트이다.
불륜 없인 죄책감도 없고 영화 자체가 의미가 없기 때문에 빌리 와일더 감독의 고심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더욱이 마릴린은 우울증이 심해져 집중을 못했고 대사를 외우지 못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필름에 담긴 마릴린의 빛나는 모습은 반복된 촬영과 지체된 시간을 보상하고도 남을 만한 것이었다.
또한 유부남과 유부녀의 불륜을 소재로 한 데이빗드 린 감독의 “밀회”에서 사용했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2번을 주제곡으로 사용하여 불륜에 대한 남성의 환상을 극대화시킨 빌리 와일더 감독의 재치와 천재성 역시 빛이 난다.
영화 “7년만의 외출”은 리처드 셔먼의 아파트에서 전개되는 연극에 비해 불륜 장면과 노골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한 대사들이 대폭 삭제되었지만 영화의 장점을 살려 원작의 감흥을 충분히 느끼게 해 준다.
특히 지하철 바람에 환풍구 위에 서 있던 마릴린 몬로의 하얀 홀터넥 드레스 스커트가 들어올려지는 장면은 최고의 명장면으로 만인의 연인으로 칭송받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수많은 군중 앞에서 이 장면을 촬영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남편 조 디마지오는 격분하여 그곳을 떠났고 결국 그들의 결혼은 9개월 만에 파국을 맞았다.
영화는 1954년 11월 4일에 완성되었다.
동명의 연극이 공연되는 동안 영화 개봉을 허가하도록 작가인 액슬로드에게 17만 5천달러를 지급하였다.
마릴린은 더욱 눈부시게 빛이 났고 이 영화만큼 세간의 주목을 받은 영화는 거의 없었다. 약 16m 높이의 마릴린 모형이 뉴욕 타임 스퀘어에 세워졌다.
그것은 그녀에겐 성공과 좌절의 상징이었다.
이 영화는 1955년 6월 1일 그녀의 29번째 생일에 개봉되었다.
그녀는 전남편인 조 다마지오와 시사회에 참석했고 관객들은 마릴린의 연기와 매력에 탄성을 질렀다.
이 섹스 코미디는 1955년 폭스사의 최대흥행작이 되었다.
그녀는 헐리우드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스타 중 하나였으며 대본과 감독을 마음대로 골라잡을 수 있었다.
정부의 도덕적 규제가 심했던 시절에 검열의 한계를 시험했던 이 영화는 당시 상황으로 볼 때 표현의 자유를 쟁취한 작품으로 미국 영화계에서 여전히 찬사를 받고 있다.
“버스 정류장”
“7년만의 외출”의 촬영을 끝낸 마릴린 몬로는 자신은 상품이 아니라 인간이라면서 “멍청한 금발”로 인기를 얻었으니 그 이미지를 바꿀 필요가 없다는 폭스 사와 계약 위반문제로 신경전을 벌였다.
1954년 겨울, 재충전을 위해 뉴욕으로 간 그녀는 사진작가 밀튼 그린 부부를 통해 안식처를 찾았다.
그린은 그의 사진을 통해 새로운 먼로를 창조해냈고 이때부터 더 자유롭고 개방적이며 순진무구하면서도 친근한 그녀의 새로운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섹스 심벌의 노예에서 벗어나 진정한 배우로 거듭나기 위해 마론 브란도와 제임스 딘, 폴 뉴먼을 배출한 “액터즈 스튜디오”에서 전문배우들과 연기를 배우기로 결심한 그녀는 선생인 리 스트라스버그와 그의 아내 폴라의 지도아래 메소드 연기를 배웠다.
그녀는 불우했던 어린 시절의 경험들과 파란만장했던 자신의 고통스러웠던 삶이 섹스 심벌이 아닌 진정한 연기자가 되는데 도움이 되고 독특한 이력이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녀는 항상 배우가 되고 싶어 했어요. 하지만 스타를 꿈꾸진 않았죠.
배우가 되기만 바랄 뿐이었죠. 항상 그 꿈을 가슴속에 품고 살았어요.
그래서 많은 악조건 속에서도 빅 스타가 될 수 있었죠.
하지만 그녀는 만족을 몰랐어요. 뉴욕으로 오고 나서 그녀는 진정한 배우로서의 꿈과 가능성을 감지하기 시작했죠.”라는 리 스트라스버그의 말처럼 이때부터 그녀의 연기 인생에서 따뜻한 봄날이 시작되었다.
자신을 존중 해 주는 유명한 작가들, 예술가들과 친분을 쌓은 그녀는 위대한 미국의 극작가 아서 밀러와 연인이 되고 영화 “7년만의 외출”의 대대적인 흥행 성공으로 확고부동한 최고의 스타가 되었다.
뉴욕에 온지 14개월 후, 그녀는 헐리우드로 돌아와 당시 브로드웨이에서 큰 인기를 모은 연극을 영화화한 윌리엄 인지의 “버스 정류장”에서 순진한 나이트 클럽가수 체리 역을 맡아 호평을 받은 것은 물론, 1957년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라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70mm 대형 뮤지컬 영화 “남태평양”으로 널리 알려진 조슈아 로간 감독의 “버스정류장”은 폭설 때문에 그레이스 식당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된 여섯 명의 버스 승객들이 다음날 다시 출발할 때 까지 서로를 알게 되고 자신을 알게 되는 여러 가지 일들을 식당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보여주는 연극과는 달리, 몬타나의 광활한 목장과 소떼들을 배경으로 시작된다.
그런 만큼 영화는 연극에선 생략되었던 그레이스 식당에 도착하기까지의 과정을 세심하게 묘사하여 영화적 특성과 재미를 부각시켜준다.
태어나서 한번도 몬타나 목장을 떠나본 적이 없는 21세의 시골뜨기 카우보이 보 데커(돈 머레이)는 친구이면서 인생의 조언자인 기타 치는 카우보이 버질과 로데오 경기에 참가하려고 도시로 간다.
순진하고 우직한 그는 카우보이들과 함께 자랐기 때문에 여자를 사귄 경험도 없고 여자에 대한 매너도 전혀 모르는 천방지축이다.
그들이 투숙한 호텔 옆 블루 드레곤 카페에 들른 보 데커는 나이트 클럽 가수 체리(마릴린 몬로)에게 첫눈에 반한다.
순진한 체리 역시 거칠고 우직한 그에게 잠시 호감을 갖지만 로데오 경기에서 우승한 그가 막무가내로 결혼을 강행하려하자 그를 피해 LA행 티켓을 끊는다.
연고나 계획도 없이 무작정 헐리우드에서 스타가 되겠다는 막연한 꿈을 가진 체리는 버스 탑승 직전 보에게 잡혀 강제로 몬타나 행 버스에 오르게 된다.
호시탐탐 탈출의 기회를 노리던 체리는 물론, 그 버스의 승객들은 폭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레이스 식당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된다.
선량한 지방 보안관 윌 마스터스, 순진한 가수 체리, 그녀를 자기 목장으로 데려가려는 숫총각 카우보이 보 데커, 기타 연주가인 그의 친구 버질, 식당 여주인 그레이스와 잠자리를 같이 하게 될 버스 운전사 칼, 거침없이 셰익스피어 대사를 주절대며 10대 여종업원 엘마를 매혹시키는 알콜중독자인 전 교수 제랄드 리먼이 등장하는 연극과는 달리,
조슈아 로간 감독은 등장인물을 축소하여 연극의 주무대였던 그레이스 식당에서의 상황을 클라이맥스로 설정하고 보안관과 전 교수를 없애는 대신 보 데커와 체리, 버질과 칼, 그레이스를 중심으로 갈등의 폭을 확장 시킨다.
특히 연극에선 보여 질 수 없는 버스 안에서의 에피소드는 물론, 각양각색의 화려한 퍼레이드 장면과 말타기, 소잡기, 소타기, 소몰이 등, 로데오 경기장면이 이 영화의 압권이다.
무엇보다 고독하면서도 순진한 가수 체리의 행적은 마릴린 몬로의 과거 행적과 흡사하다. 그런 만큼 몬로가 열연한 체리는 현실성을 부여하면서 연민을 자아낸다.
탈출을 원하지만 피신처가 없는 체리가 보 데커와 함께 몬타나 목장으로 가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 이 영화는 해피 앤딩이긴 하지만 천진한 희망을 안고 찾아간 몬타나 목장에서 과연 체리가 환멸을 느끼지 않고 잘 살 수 있을지 미묘한 불안감을 조성한다.
그것은 순진한 사람들이 낯선 정서와 싸우고 욕구와 경험이 똑 같이 조화를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생겨난 절망을 보여주는 윌리엄 인지의 작품세계에 기인한다.
1956년, 이 영화의 촬영을 끝내고 마릴린 몬로는 첫 부인과 이혼한 아서 밀러와 결혼식을 올렸다.
그러나 완고하고 진지한 작가인 아서 밀러와 관능미의 여신은 “어울리지 않는 한 쌍”으로 불렸다.
설상가상으로 그녀는 자신의 아기를 갖고 싶어 했지만 잇따른 유산의 충격으로 수면제를 복용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녀를 현실로부터 고립되게 만들었고 그녀는 점 점 더 약에 의존하게 되었다.
가정을 이루는데 실패한 그녀는 폭스 사와의 계약 때문에 다시 영화계로 돌아왔고 코미디 영화 “뜨거운 것이 좋아”에 출연하여 뛰어난 연기로 1960년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멍청한 금발”에서 진정한 연기자로 변신을 한 그녀는 한층 더 빛을 발했지만 그녀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 몬로의 애정결핍은 아서 밀러를 지치게 만들었고 그녀와 사는 동안 그는 희곡 한편 쓰지 못했다.
결혼생활 5년 동안 밀러가 집필한 유일한 시나리오 “기인들”은 1960년, 존 휴스턴 감독에 의하여 영화화 되었다.
명배우 클라크 케이블과 몽고메리 클리프트가 출연한 “기인들(The Misfits)“은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투영한 작품으로 여주인공 로즐린은 마릴린 몬로와 흡사하다.
순수하면서도 상처받기 쉬운 여주인공 로즐린을 연기한 몬로는 지금까지 보여줬던 이미지를 뛰어넘어 고혹적이면서도 가장 성숙된 연기를 보여준다.
하지만 촬영 도중 과다한 수면제 복용으로 그녀는 입원하게 되고 결국 아서 밀러와 이혼하였다.
이혼의 상처와 언론의 무자비한 공격으로 자살을 시도했던 그녀를 보호 해 준 건 전남편이었던 조 디마지오였다.
그의 보호아래 플로리다에서 휴식을 취한 몬로는 1962년, 폭스 사와 계약한 마지막 작품인 “썸씽 갓 투 기브” 촬영 때문에 헐리우드로 다시 돌아온다.
1962년 1월까지 몬로는 10년간 폭스 사의 흥행 보증 수표였다.
마릴린이 출연한 20편의 영화로 폭스 사는 2억 달러를 벌었고 그녀는 셜리 템플 이후로 최고 상품이었다.
“기인들”이후 그녀는 2년 동안 영화에 출연하지 않았고 촬영도중 병에 걸린 엘리자베스 테일러 때문에 ”클레오파트라“가 지연되면서 막대한 제작비를 낭비한 폭스 사는 재정난에 허덕이기 시작했다.
마릴린 먼로를 내세워 ”썸씽 갓 투 기브“를 제작하려는 폭스 사에 노예 계약으로 묶여 있었던 그녀는 내키지 않아했고 폭스 사는 계약을 내세워 촬영을 종용했다.
하지만 그녀는 촬영 첫날부터 감기를 핑계로 촬영장에 나타나지 않았고 31일 중 그녀가 세트에 나온 날은 고작 12일이었다.
더욱이 촬영을 지연시키고 케네디 대통령의 생일 파티에 등장하여 축가를 불러 염문설이 나돌았다.
그녀 때문에 예산은 백만 달러를 초과했고 결국 폭스 사는 제작을 중단, 104명이 일자리를 잃었고 모두 그녀를 책망했다. 고소를 당한 그녀는 모욕감을 느끼면서도 폭스 사와 타협을 하고 재촬영하기로 계약했다.
재촬영 직전인 1962년 8월 4일 밤 9시, 그녀가 침실에 들어가는 것을 본 가정부가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혼수상태에 빠진 그녀를 발견한 건 새벽 2시였고 새벽 3시, 의사가 그녀의 사망을 선고했다.
8월 8일 오후 1시, 장례식은 웨스트우드 빌리지 교회에서 거행되었고 수백만의 팬들이 길가에서 조의를 표했다.
그녀의 여성다움, 섹시함과 아름다움은 그녀가 남긴 영화속에 살아 숨 쉬고 세대가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
꿈 많았던 그녀는 이제 많은 사람들의 꿈속에 존재한다.
“12명의 성난 사람들”
검사가 기소하면 판사가 재판과정 전체를 주재하고 유죄와 무죄여부도 판단하는 국내와는 달리 미국은 재판과정은 판사가 주재하지만 유죄와 무죄여부의 판단은 일반 시민인 배심원이 판단한다.
배심원의 자격은 미국시민이며 적어도 18세 이상인 자, 지역에 1년 이상 거주한 자, 1년 이상의 유죄판결을 받은 전과가 없는 자, 영어독해력이 있는 자, 배심원의 직무를 행할 정신적, 신체적 장애가 없는 자이다.
대개 법률가, 의사, 군인, 경찰관, 성직자 및 교수 등은 배심직무의무를 면제 받는다.
만일 배심원들의 의견이 대립되어 필요한 정족수를 채우지 못하면 "미결정 심의"라 부르며 이 경우 판사는 "결론 없는 재판종결"을 선언하고 다시 배심원을 구성하여 새로 재판을 진행한다.
배심원들이 등장하는 미국의 법정드라마 중 시드니 루멧 감독의 1957년도 작품인 “12명의 성난 사람들”은 50년이 지났지만 걸작으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1924년 6월 25일, 필라델피아에서 유태인의 아들로 태어나 4세 때부터 뉴욕의 연극무대에서 아역배우로 활동했던 시드니 루멧은 컬럼비아대학 졸업 후, 연극배우를 하다가 생방송 텔레비젼의 황금시대인 1950년, 미국 CBS 텔레비젼에서 드라마 연출자로 활약하였다.
당시 텔레비전 드라마와 텔레비전 영화는 엄격히 구분되었다.
즉, 스튜디오에서 생방송되는 것을 텔레비전드라마라 하고 필름에 수록하여 편집과정을 거치는 것을 텔레비전영화라고 했다.
그러나 요즈음은 스튜디오에서 제작되는 드라마도 녹화 후에 편집을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되어 텔레비전드라마와 텔레비전영화의 한계나 구분은 거의 없어졌다.
1950년대에 스튜디오에서 생방송으로 방영된 텔레비전드라마는 기계매체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텔레비전이 생기기 이전의 연극과 영화 그리고 라디오 등의 요소를 모두 배합해서 만들어졌다.
무엇보다 한정된 시간 내에 특정한 장소에서 연기를 하는 것은 연극적이지만 카메라에 의해서 촬영되어 브라운관 매체를 통해서 송출된다는 점에서는 영화적이었다.
1954년, CBS에서 생방송으로 방송된 TV드라마 “STUDIO onE"을 본 명배우 헨리 폰다는 정교하게 짜여진 레지놀드 로즈의 대본에 감명을 받고 주인공인 8번 배심원이 자신의 침착하고 진지한 이미지에 완벽히 들어맞는다고 생각하고 직접 투자하여 영화화할 결심을 하였다.
1957년, 헨리 폰다는 생방송 텔레비전 드라마의 베테랑이 된 시드니 루멧에게 이 영화의 연출을 의뢰했고 그는 전문가다운 노련함으로 촬영감독 보리스 카우프만과 함께 생방송 드라마이기 때문에 다분히 연극적인 레지놀드 로즈의 탄탄하면서도 치밀한 대본을 가지고 20일 만에 가장 경제적인(?) 영화 ”12명의 성난 사람들“을 완성했다.
시드니 루멧은 후덥지근하고 밀실공포증을 유발할 듯한 배심원실이라는 한정된 공간과 등장인물들 간의 팽팽한 대사로 이루어진 이 작품의 연극적인 성격을 오히려 강조하여 96분의 러닝타임 내내 벌어지는 12명의 지루한 논쟁을 탁월한 연출로 긴장감 넘치게 끌고 간다.
그런 만큼 다이나믹한 시각효과를 활용하지 않고 절제된 카메라 워크와 12명의 앙상블 연기가 어우러진 흑백영상으로 가장 연극적인 특성을 보여주는 것이 이 영화의 큰 장점이다.
정적이 감도는 법정. 침묵만이 사태의 심각성을 말해주고 있다.
한 소년의 살인사건에 관한 재판은 이제 최종 결정만을 남겨두고 있다.
최후의 판결을 앞둔 12명의 배심원들은 최종결정을 위한 회의에 소집되고 자신의 결정에 관해 투표를 하게 된다.
스페인계 18세 소년이 자신의 친아버지를 예리한 나이프로 잔인하게 살해한 혐의로 이미 재판장은 소년의 유죄를 예상하는 분위기가 압도적이다.
스스로의 알리바이를 내세울 수 없는 소년의 죄는 의심할 여지가 없고 빨리 집에 돌아가고 싶은 12명의 배심원들은 모두 피고인에 대한 편견으로 만장일치로 유죄라는데 동의한 상태이다.
배심원들은 서로 이름도 직업도 모르고 단지 번호로만 불려지며 배심원의 결정은 전원 일치되어야 한다.
그러나 첫 번째 투표결과는 12명의 배심원 중 1명을 제외한 11명 전원이 소년에게 유죄 판결을 내린다.
11대 1로 단 한사람, 8번 배심원(헨리 폰다)만이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정당한 의심"을 내세우며 무죄에 손을 올린다.
이제 8번 배심원이 11명의 다른 배심원을 설득해 의견을 일치시키든가, 아니면 반대로 11명의 배심원들이 8번 배심원의 의견을 바꿔야 한다.
찌는 듯한 무더위에 에어컨은 고장이고 12명의 배심원들은 모두 땀을 흘리며 11대 1의 열띤 격론을 벌인다.
소년의 유죄를 확신하는 배심원들과 무죄를 밝히려는 그와의 대립이 점차 거칠어지자 배심원들은 일단 그의 주장을 들어보기로 하고, 사건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기 시작한다.
어느 더운 여름 날 오후, 뉴욕 법원의 법정에서 시작되는 이 영화는 판사의 지시로 배심원이 퇴장하는 오프닝 신을 제외하곤 법정이 등장하지 않고 무더위로 푹푹 찌는 배심원실에서 벌어지는 일만을 다루고 있다.
대부분의 법정 영화가 변호사와 검사의 반론과 변론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에 반해 이 영화는 배심원들이 최종 판결을 내리는 부분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 특이하다.
합리적인 의심과 논리 정연한 반론으로 나머지 11명의 배심원이 처음의 성급한 유죄평결로부터 점차 생각을 바꾸게 만드는 8번 배심원으로 헨리 폰다가 열연을 보여주는 이 영화는 불안정한 배심원으로 등장하는 마틴 발삼과 호전적이고 분노에 사로잡힌 3번 배심원 역의 리 J. 콥은 물론, 모든 등장인물이 각자 뛰어난 개성과 역동적인 조화로 각 인물들의 심리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단 한번도 회의실 밖으로 나가지 않고 열띤 논쟁을 벌이는 12명의 대사만으로 전개되는 이 영화의 포인트는 의견의 충돌과 반전이 일어나는 한정된 실내공간을 절제되고 긴장감 있는 롱테이크와 몽타주를 통해 긴장감 넘치는 공간으로 창출하여 흑백논리와 군중심리, 계층과 인종에 따른 편견과 각 개인의 관점과 개성을 부각시키는데 있다.
무엇보다 카메라는 미국사회의 민주주의와 사법제도의 모순을 간접적으로 비판한 이 영화의 주제인 사회적 편견으로 얼룩진 “진실”의 문제를 드러낸다.
시드니 루멧 감독은 데뷔작인 이 영화로 1957년도 베를린영화제 금곰상을 수상하였고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 각본상에 노미네이트되어 명성을 얻었다.
이후 시드니 루멧은 유진 오닐의 “밤으로의 긴 여로 (Long Day's Journey into Night)”(1962)와 아서 밀러의 “다리에서 본 전망 A View from the Bridge”(1962), 그리고 피터 세퍼의 <에쿠우스 Equus>(1977) 등, 유명 희곡을 영화화 하여 성공을 거두었고
알 파치노가 주연을 맡은 “형사 서피코 (Serpico)”(1973)와 “뜨거운 오후 (Dog Day Afternoon)”(1975), “폴 뉴먼의 평결(The Verdict)”(1982)은 물론,
현대 자본주의 대중매체의 실상을 폭로한 “네트워크 (Network)”(1976)로 1976년도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여우조연상, 각본상을 수상하여 미국의 대표적인 사회파 감독으로 인정받았다.
32편의 영화를 연출한 그는 4차례나 아카데미 영화제 감독상 후보에 올라 명감독 지위에 올랐지만 한번도 수상을 못했다.
하지만 82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영화 “파인드 미 길티”를 발표하여 노익장을 과시한 그는 2005년, 제 77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아카데미 공로상을 수상했다.
명석한 연기와 돌연한 반전, 정열적인 독백으로 진지한 연극을 본 듯한 감동을 주는 “12명의 성난 사람들”은 연극과 영화의 간극을 좁힌 법정 심리 드라마로 무대에서도 공연되어 큰 인기를 모았다.
또한 1997년에 “프랜치 코넥션”과 “엑소시스트”로 유명한 감독 윌리엄 프리드킨이 TV영화로 리메이크하였지만 이 영화의 명성을 뛰어넘지 못했다.
“태양 속의 건포도 (A Raisin in the Sun)”
1930년, 시카고에서 태어난 로레인 한스베리는 흑인이지만 성공적인 부동산 사업가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1948년, 위스콘신대학에 진학하였고 1950년, 뉴욕으로 이사하여 극작가 로버트 네미로프와 결혼한 뒤 그녀의 처녀작이자 대표작인 “태양 속의 건포도”를 쓰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1959년, 흑인 연출가 로이드 리차드가 연출을 맡고 할리우드 영화계에서 가장 두드러진 활약을 보인 흑인스타 시드니 포이티어가 월터 리 영거 역으로 출연하여 브로드웨이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고 뉴욕비평가상을 수상하여 예술성을 인정받았다.
백인과 흑인 간의 갈등보다는 진정한 통합이 해결의 실마리라는 근본적인 흑백문제에 대한 비젼을 보여주는 이 작품이 큰 인기를 모은 것은 삶의 질을 높이려는 미국인은 물론 모든 인종 누구에게나 공감이 가는 보편성 때문이다.
3막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장소의 이동 없이 협소하면서도 누추한 영거씨네 거실에서 진행된다.
막이 오르면 루스가 대용침대에서 자고 있는 11세의 아들 트라비스와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은 남편 월터를 깨워 다른 입주자들보다 먼저 세면장을 사용하라고 종용한다.
그런 만큼 건물 입주자들이 공용으로 쓰는 세면장을 두고 다투는 첫 장면은 흑인들이 사는 슬럼가의 각박한 생활을 암시한다.
35세의 월터는 백인의 리무진 기사로 일하고 있으며 아내 루스는 파출부로 가계를 꾸리고 있다. 그리고 여동생 베니사는 이 가정의 실질적인 가장인 어머니 르나의 도움으로 의대에 다니고 있지만 오빠인 월터는 못마땅하게 여긴다.
협소한 주거공간에서 다섯 식구가 사는 이 가난한 흑인 가정에 아버지 빅 월터의 죽음으로 거금 1만달러의 보험금이 들어온다.
그러나 보험금 때문에 가족들의 갈등이 시작된다.
백인들의 풍요로운 생활을 염원하는 월터는 흑백의 경제적 차이에서 오는 굴욕감과 열등감으로 허황된 “미국의 꿈”을 꾸게 되고 1만달러의 보험금을 불확실한 주류사업에 투자하려고 하지만 어머니인 르나는 보험금의 일부로 백인들의 지역인 클리본 파크에 집을 장만하고그 집은 손자인 트레비스 것이라고 선언한다.
새집으로 이사 갈 기쁨에 들떠있는 가족들과는 달리 월터는 어머니가 독선적으로 집안을 이끌어왔으며 자신의 꿈과 희망을 망쳤다며 집을 나가고 직장에도 나가지 않는다.
결국 르나는 집을 사고 난 돈을 제외한 6천5백불을 월터에게 맡기고 가장으로서의 결정권을 부여한다.
사회현실에 무지한 월터는 흑인이라는 동질성 하나만 믿고 즉시 그 돈을 동업자인 윌리에게 전달하지만 윌리의 사기행각으로 여동생의 학비가 포함된 그 돈을 전부 날리고 만다.
사랑과 관용으로 가족들의 유대를 강화해온 어머니의 뜻과는 반대로 가족들의 신뢰는 깨지고 위기에 봉착한다.
랭스턴 휴의 시 “montage of a Dream Defered" 중에서 ”꿈이란 태양 속의 건포도처럼 말라비틀어질 수도 있고 좌절된 꿈은 폭발할 수도 있는 것이다.“에서 제목이 유래된 ”태양 속의 건포도“는 1961년, 다니엘 패트리 감독에 의해 영화화 되어 큰 호평을 얻었다.
로레인 한스베리가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1959년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공연했던 월터 역의 시드니 포이티어, 어머니 역의 클라우디아 맥닐, 루스 역의 루비 디, 베니사 역의 다이애나 샌드가 영화에서도 같은 배역으로 출연하여 빈틈없는 앙상블 연기를 보여주는 것이 이 영화의 포인트이다.
물론 거실에서만 진행되는 연극과는 달리 월터가 어머니에게 호소하는 절박한 장면을 술집으로 이동하고 이사 가기 직전 가족들이 어머니에게 정원을 가꿀 삽과 태양을 가릴 모자를 선물하는 장면을 클리본 파크의 집으로 대치한 것은 상당히 효과적이다.
하지만 어머니에게 돈을 받아 동업자에게 넘긴 뒤 금방 성공할 것처럼 월터가 아들인 트레비스에게 들려주는 미래의 꿈 장면이 삭제된 것은 아쉬움을 준다.
무엇보다 단조로운 카메라 워크와 담백한 흑백영상으로 월터 가족의 꿈과 좌절, 갈등과 화해, 절망과 희망이 교차되면서 극적 긴장감을 조성하는 것이 이 영화의 장점이다.
특히 1950년-60년대에 흑인들의 영웅(?)이었던 시드니 포이티어의 반항아적인 연기가 인상적이다.
바하마제도에서 성장한 그는 육군에 입대하면서 뉴욕으로 진출, 미국흑인극단에 입단하였고 1946년 “Lysistrata"에 출연하여 평론가들의 호평을 얻었다.
1950년, 영화 ”노 웨이 아웃“으로 강한 인상을 남긴 그는 "The Defint ones"와 ”폭력교실(The Blackboard Jungle)"등에서 기성세대들의 그릇된 가치관에 반항하는 역을 맡아 이전의 흑인배우들이 꿈도 못 꾸는 배역을 맡아 기량을 과시했다.
1958년 “흑과 백”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그는 1960년 “포기와 베스”, 1961년 “태양 속의 건포도”로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고 1963년, “들백합”으로 흑인 최초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하여 최고의 스타가 되었다.
미국사회에서 기본적인 소속감이나 사회가 공유하는 가치를 향유하고 싶어하는 흑인가족들의 정체성 찾기를 그린 “태양 속의 건포도”는 흑인들도 백인들과 똑 같다는 인간의 존엄성을 부각시킨다.
또한 강인한 어머니의 신념과 가족을 위해 늙은 말처럼 일만하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정신적 유산으로 가장의 권위를 회복한 월터를 통해 흑인 스스로의 자기 인식과 반성, 통합과 화해를 위한 노력을 강조한다.
월터가족이 백인거주지역인 클리본 파크로 이사를 가면서 막을 내리는 이 작품은 실제로 백인거주지역의 가옥을 매입하기 위해 로레인 한스베리 가족이 대법원에 법정투쟁을 벌렸었고 그 지역에 이사했을 때 인종주의 폭도들이 공격을 하여 위기에 처했던 그녀의 경험이 녹아들어있다.
그녀는 34살에 암으로 사망할 때 까지 5개의 작품을 발표하고 흑인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총각 쫄병 (빌록시 블루스)”
세계적인 인기 극작가인 닐 사이먼(1927- )은 1927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를 마친 뒤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군대에 들어가 병영생활을 하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정식으로 대학교육을 받은 일이 없는 그는 작가생활 초기에 텔레비전 드라마와 시나리오를 집필하다가 1961년 그의 첫 희곡인 “나팔을 불어라”가 뉴욕과 런던에서 성공을 거두고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명성을 얻었다.
1963년, “맨발로 공원을”로 더욱 주목을 받은 그는 1965년, 한 이혼남과 결벽증을 지닌 상대의 대립을 통해 현대인의 사랑을 비꼰 “희한한 한쌍”으로 토니상을 수상했다.
1966년 “Sweet Charity"와 ”별을 수놓는 여자“, 1967년, ”플라자 스위트“,
1969년, ”최후의 뜨거운 연인들“, 1970년, ”진저브레드 레이디“,
1971년, ” 2번가의 죄수들“, 1972년, 선샤인 보이즈, 1973년, ”굿 닥터“,
브로드웨이에 데뷔한 이래 끊임없는 작품 활동으로 대성공을 거둔 그는 1983년부터 자서전적인 작품인 ”브라이튼 해변의 추억“, ”빌록시 블루스“, ”브로드웨이 바운드“를 연이어 발표하여 새로운 스타일을 보여주었다.
혹평가로 유명한 연극 비평가인 클라이브 반스는 ”이 불확실한 브로드웨이에서 가장 확실한 것은 닐 사이먼 뿐이다.“라고 그를 극찬했고 ”브라이튼 해변의 추억“ 공연 시 뉴욕 브로드웨이 웨스트 52번가에 있는 알빈 극장은 그의 이름을 따서 ”사이먼 극장“으로 개명되어 최고의 명예를 얻었다.
1991년, ”용커스 탈출(Lost in Yonkers)"로 두 번째 토니상과 퓰리처 연극상을 수상한 그는 현재 미국에서 가장 성공적인 극작가인 동시에 가장 인기있는 극작가이며 그의 작품은 거의 영화화되고 국내에서 공연되어 현대 미국 극작가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편이다.
자서적전인 작품으로 군대 시절을 소재로 한 “빌록시 블루스”는 1984년 12월 8일 로스엔젤레스의 아맨슨 극장에서 초연되었고 1985년, 뉴욕의 사이먼 극장에서 공연되어 큰 인기를 모았다.
1988년, “빌록시 블루스”는 영화 “졸업”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마이크 니콜스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졌다.
1931년, 독일의 베를린에서 태어나 7세 때 미국으로 이주한 마이클 니코스는 코미디언으로 출발하여 사회 풍자적인 코미디 영화로 뿌리를 내린 감독이다.
1953년, 코미디언인 엘레인 메이와 파트너를 이루어 남녀관계의 모순과 사회 억압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로 인기를 끈 그는 1961년, 팀을 해체하고 연극 연출가로 변신하여 “맨발로 공원을(1963년)”, “러브 LUV(1964년)", ”희한한 한쌍(1964년)“, ”플라자 스위트(1965년)“ 등을 성공시키며 브로드웨이에서 명성을 얻었다.
1966년, 영화연출 데뷔작인 에드워드 올비의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로 엘리자베스 테일러에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그는 ”젊음의 순수가 기성의 모순을 이겨냈다.“라는 호평 속에 1968년, 미국 최고의 흥행기록을 세운 영화 ”졸업“으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하여 허리우드의 명감독 대열에 서게 되었다.
”캐취 22(1970)“, ”Carnal Knowledge(1971)“, ”돌고래의 날 (1973)“, ”포춘(1975)", "실크우드(1983)“, ”제2의 여인(1986)“으로 명감독으로서의 확고한 지위를 차지한 그는 1988년, 연극 연출가 시절에 닐 사이몬의 작품을 성공시켰던 경험과 저력으로 ”빌록시 블루스“를 영화화했다.
”총각 쫄병“이라는 다소 엉뚱한(?) 제목으로 극장 개봉 없이 비디오와 DVD로 국내에 출시된 이 영화는 오랜 시나리오 집필로 누구보다 영화적 특성을 잘 아는 닐 사이몬이 직접 시나리오로 각색하여 연극과는 또 다른 재미를 느끼게 해 준다.
“난 2차대전을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은 그 후의 사소한 분쟁이 더 커 보이니까.
이제 2차대전은 좋은 추억거리로 여겨진다. 한편으론 괜찮은 전쟁이었다.
싸우는 이유를 알았고 참전을 자랑스러워했다.
군가와 군복을 좋아했고 여자와 우릴 좋아하는 모두를 좋아했다.
돌아보면 괜찮은 전쟁이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군사훈련을 받은 지 두달만에 진흙탕 속에서 싸운 걸 뺀다면....
우린 기차를 타고 미시시피주 빌록시에 있는 기초훈련장으로 가고 있었다.
가는 동안 내내 아무도 씻지 않았다. 독일, 일본과 싸울 준비를 했지만 아직 미국에 머물러 있었다. 군대생활 5일짼데 난 모두를 미워했다.“
1945년이라는 자막과 함께 기차를 타고 미시시피의 빌록시 신병훈련소로 가는 유진 모리스 제롬(매튜 브로데릭)의 나레이션을 오프닝으로 이 영화는 연극처럼 열차 객실의 에피소드로 시작된다.
열차 객실, 군 막사와 식당, 싸구려 호텔방과 창녀 로웨나의 방, 무도회장, 투미상사의 방, 걸프포트 여학교 밖이라는 한정된 공간의 연극과 달리 군 연병장과 미시시피 늪 행군장면, 사격장에서의 훈련장면 등, 오픈된 야외 촬영으로 영화적 특성을 보여주는 것이 이 영화의 포인트이다.
2차대전 기간 중의 신병 훈련소가 배경인 이 영화는 오픈된 장소의 이동을 제외하곤 연극의 에피소드와 사건을 그대로 유지한다.
무엇보다 뉴욕 브룩클린 출신의 유진과 뉴욕 퀸스 출신의 엡스타인, 코네티컷 주 브리쥐포트 출신의 와이코우스키, 뉴 저지 주 몽클레어 출신의 돈 카니, 그리고 셀리쥐와 헤네시,
6명의 신병들과 10주 동안 그들의 훈련을 담당한 머윈 투미 상사(크리스토퍼 월켄)의 대립과 갈등이 축을 이루면서 군대 식사와 잠자리, 그리고 복종만을 강요하는 군대 규율에 익숙하지 못한 신병들의 애환이 웃음을 자아낸다.
전쟁 중에 작가가 되는 것, 사람을 죽이지 않는 것, 총각 딱지를 떼는 것을 목표로 삼은 유진의 소원은 창녀 로웨나와의 첫 경험과 데이지와의 첫 사랑을 통해 이루게 되고 동료들에 대한 인상과 사건을 적은 일기장이 공개되면서 작가로서의 책임감을 배우게 된다.
특히 같은 유태인으로서 이해할 수 없다는 유진의 말에
“넌 늘 목격자 노릇만 해, 항상 무슨 일이 있나 주위를 맴돌다가 사람들이 뭘 하는 지 노트에 끄적거리지.
너도 그 속에 끼어들어야 해, 어느 쪽이든 편을 들어야 해, 싸움에 한 몫 하라구.
뭐든지 간에 네가 믿는 걸 위해 싸워, 그럴 때 까진 작가가 될 수 없어.”라는 엡스타인의 충고는 유진에게 각성의 시간을 준다.
군대생활을 통해 완전한 성인이 되고 작가가 된 닐 사이몬의 자전적인 성장영화로서 연극과 차별화 되는 것은 퇴역군인 병원으로 전출하게 된 투미상사가 만취한 상태로 엡스타인에게 권총으로 위협하는 클라이맥스 장면이 영화에선 주인공인 유진으로 바뀐 점이다.
물론 이것은 남자와 군인으로서 성장하는 주인공 유진을 부각시키려는 연출의 의도이지만 복종을 강요하는 것은 인간성의 말살이라고 주장하는 엡스타인과 신병들을 명령에 복종하고 잘 훈련된 육군의 자랑으로 만들려는 투미상사의 팽팽한 대립이 결여되어 아쉬움을 남긴다.
또한 유진이 훈련을 마치고 부대를 이동하기 직전 데이지와의 이별장면에서의 감동적인 대사들이 생략되고 인서트와 나레이션으로 대치된 것 역시 아쉬운 점이다.
그러나 투미상사 역의 크리스토퍼 월큰과 유진 역의 매튜 브로데릭의 열연, 뛰어난 음악과 깔끔한 연출만으로도 향수어린 감동과 흐믓한 미소를 짓게 하는 것이 이 영화의 장점이다.
“수십년이 지나 돌이켜보면 군 생활을 하던 때가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다.
군대가 좋아서가 아니다.
더구나 전쟁은 안 좋아했지만 가장 이기적인 이유로 그 시절이 좋다. 젊었기 때문이다.
엡스타인, 와이코우스키, 카니, 셀리쥐, 헤네시, 그리고 투미상사까지.
우리 모두 그땐 그들을 안 좋아했지만 지금은 그들 하나하나를 사랑한다.
인생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프랭키와 자니”
“프랭키와 자니는 서로 굳게 사랑을 맹세한 사이였네.
그러나 그는 그녀를 배신했네.
어느 날 11시에 만날 약속에 모습을 안 보이는 그를 찾아 그녀는 술집에 갔네.
여기 오지 않았느냐고 묻는 그녀에게 바텐더는 자신의 충고를 듣고 집에 돌아가라고 했네... .”라는 가사로 시작되는 미국의 가장 대중적인 포크 발라드의 하나인 “프랭키와 자니”는 프랭키라는 여자가 질투 때문에 연인 자니를 사살한다는 내용의 노래이다.
작가미상의 이 노래가 불려진 시기에 대해서는 정확하진 않지만 민요 연구가 톰 그레이저는 1850년 이전부터 불려지고 있었다고 했고 칼 샌드버그는 1880년대의 노래라고 기록하고 있다.
1966년, 이 노래를 담은 엘비스 프레슬리 주연의 “프랭키와 자니”가 영화로 제작되었고 이 노래는 엘비스 프레슬리, 브룩 벤튼 등의 음반을 통해 시대를 초월하여 미국에서 널리 사랑받고 있다.
수많은 희곡과 텔레비전 대본을 쓰고 록펠러 상과 미국 문학예술 아카데미의 표창을 받은 미국의 극작가 테렌스 맥널리는 뮤지컬 “링크”와 브로드웨이의 히트작 “리츠”로 유명한데 1987년, “프랭키와 자니”를 남녀 주인공의 이름으로 설정한 희곡 "달빛 속의 프랭키와 자니(Frankie & Johnny in The Claire de lune)“를 뉴욕 시티센타 맨하탄 연극클럽 스테이지 2에서 초연하여 큰 인기를 얻었다.
“달빛 속의 프랭키와 자니”는 뉴욕의 한 패스트푸드 식당에서 함께 일하는 30대 중반의 웨이트리스 프랭키와 40대 중반의 요리사인 자니의 러브 스토리이다.
등장인물이 프랭키와 자니, 두 주인공으로 이루어진 이 2인극에서 라디오에서 들리는 아나운서의 목소리와 드뷔시의 아름다운 명곡 “달빛”은 극적 효과를 극대화 하는 감동적인 장치로 쉴 새 없이 주고받는 두 주인공의 대사로 이루어진 이 연극의 포인트이다.
어둠 속에서 남녀의 사랑행위 소리로 시작되는 이 연극은 장소의 이동 없이 프랭키의 방에서 진행된다.
수표 싸인 위조죄로 18개월 동안 복역한 후, 프랭키가 일하는 식당에 즉석 요리사로 취직한 자니가 6주 만에 프랭키와 첫 데이트를 하게 된 하룻밤을 그린 이 연극에서 이혼남인 자니는 노래 “프랭키와 자니”처럼 웨이트리스인 프랭키와의 만남을 운명적인 사랑이라 생각하고 그녀에게 구애한다,
하지만 사랑의 상처로 사랑과 결혼을 거부하는 프랭키의 마음을 열기는 쉽지 않다.
섹스와 사랑, 결혼이라는 문제를 과거의 상처를 지닌 가난한 연인인 프랭키와 자니의 서민적이면서도 일상적인 대화를 통해 부각시킨 이 연극은 1991년, 이 희곡의 원작자인 테렌스 맥널리가 직접 시나리오로 각색하여 게리 마샬 감독에 의해 영화화 되었다.
1990년, 시간당 몸을 팔며 살아가는 거리의 여자와 뉴욕의 억만장자와의 사랑을 그린 영화 “귀여운 여인”의 대대적인 성공으로 로맨틱 코미디의 황제로 등극한 게리 마샬 감독은 사랑하고 싶은 남자와 사랑에 상처받은 여자와의 미묘한 갈등과 화합을 부드러운 영상에 담아 큰 호평을 얻었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포인트는 자니로 분한 명배우 알 파치노와 프랭키로 분한 미셸 파이퍼의 호연이다.
1940년 4월 25일 미국 뉴욕의 이스트 할렘에서 이태리계 외판원의 아들로 태어난 알 파치노는 부모의 이혼으로 할아버지 손에서 자랐다. 잦은 말썽으로 고등학교를 중퇴한 그는 오프 브로드웨이 극장에서 연기를 공부하면서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으로 “THE ACTORS STUDIO”에 입학하여 본격적인 연기수업을 받았다.
브로드웨이 데뷔작인 “Does a Tiger wear a nectie"로 토니상을 수상한 그는
1969년, ”나, 나탈리“로 영화에 데뷔했고 1971년, 마약중독자로 열연한 ”알 파치노의 백색의 공포“로 연기력을 인정받아 1973년, ”대부“의 마이클 콜레오네로 캐스팅되어 스타반열에 올랐다.
”대부“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그는 1974년, ”형사 서피코“와
1975년, ”대부 2“, 1976년, ”뜨거운 오후“와 1980년 ”모두에게 정의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고 1990년, ”딕 트레이시“, 1992년 ”글렌게리 글렌로즈“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라 특유의 카리스마스적 연기로 최고의 개성파 연기자로 인정받았다. 1992년, 연기생활의 승부작으로 내건 ”여인의 향기“로 대망의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그의 저력은 ”프랭키와 자니“에서도 빛을 발한다.
프랭키가 그레이하운드를 타고 고향인 알투라로 가는 장면을 오프닝으로 이 영화는 프랭키가 출소하여 뉴욕으로 가는 장면과 프랭키가 조카 세례식에서 대모를 서는 장면이 대치되면서 시작된다.
무엇보다 이 영화가 연극과 차별화 되는 것은 무대에선 보여줄 수 없는 뉴욕의 풍광과 프랭키와 자니가 일하는 아폴로 식당의 분주한 모습, 뉴욕 뒷골목과 거리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이다.
도시인들의 외로움과 서민들의 고달픈 일상을 부각시킨 이 영화의 포인트는 연극에서 프랭키와 자니의 대사 속에 소개되는 인물들이 조연과 단역으로 등장하여 평범한 캐릭터들을 사실적이면서도 정감 있게 보여주는데 있다.
프랭키는 임신한 상태에서 애인에게 폭력을 당해 애를 잃고 가장 친한 친구에게 애인마저 빼앗긴 씻을 수 없는 상처가 있다.
이혼한 자니는 재혼한 부인에게 아이들을 빼앗기고 전과자라는 낙인이 찍혀있지만 평범하기 그지없다.
그리고 종업원들인 코라와 네다, 티노와 루터, 호르세와 피터는 물론,
프랭키가 밤마다 지켜보는 건너편 건물 창가의 각기 다른 인물들 모두가 프랭키와 자니처럼 외롭고 희망 없이 살아가는 도시인의 군상이다.
특히 분주한 하루일과가 끝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가 보여지는 그들의 갈망과 외로움은 프랭키와 자니의 외로움과 동등하다.
그런 만큼 나이가 들수록 혼자 남겨진다는 것에 대한 그들의 고독과 두려움이 영화 전편을 흐른다.
단지 프랭키의 이웃 친구인 게이 팀과 그의 동성애인인 바비는 가장 행복하게 보여지는데 동성간이지만 서로 사랑하고 의지하기 때문이다.
또한 식당 사장인 닉을 통해 평범한 가정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냄으로써 힘든 일상 속에서 사랑을 찾으려 애쓰는 평범한 캐릭터들을 유머러스하면서도 따스하게 그려낸다.
결국 프랭키는 인생의 밝은 면을 보여주는 능청스러우면서도 진솔한 자니에게 마음의 문을 열고 그의 사랑을 받아들이게 되고 그들은 함께 이를 닦는다.
새벽 창가에 앉아 프랭키와 자니가 서로 마주보며 양치질을 하는 라스트 신은 얼굴을 마주하고 이를 닦듯이 사랑은 일상적이고 푸근한 존재라는 것을 각인시켜주는데 드뷔시의 피아노곡 “달빛”과 함께 감동적이면서도 아름답다.
주인공들의 섬세한 감정변화를 탁월하게 보여주는 연출과 연기, 그리고 가장 영화적으로 재구성한 탄탄한 각색이 뛰어난 이영화의 보석은 연극에서처럼 그들의 화합을 이끄는 음악인 드뷔시의 “달빛”이다.
“프루프(Proof)"
2000년 5월, 맨하탄 극장에서 초연되어 브로드웨이에서 최고의 흥행과 관객 동원으로 화제를 모은 David Auburn 원작의 연극 “프루프(Proof)"는 2001년 토니상 최우수 연극상, 여우주연상, 최우수 감독상은 물론 퓰리처상을 수상하였고 20년 만의 브로드웨이 최장기 연극(918회)으로 기록되는 영예를 얻었다.
수학적 공식이 인간관계의 함수보다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아는 천재 수학자의 딸에 관한 이야기인 “프루프”는 작가 데이비드 어번이 천재적인 수학자의 상당수가 정신병으로 고통을 겪었다는데 착안하여 영화 “뷰티풀 마인드”의 주인공인 천재 수학자 “존 내쉬”를 모티브로 쓴 작품이다.
천재수학자로 학계가 깜짝 놀랄 수학적 업적을 남겼지만 정신분열증 증세와 정신적인 불안장애로 혼란의 시간을 보낸 로버트 르웰린의 장례식 전날 밤에 시작되는 이 연극은 아버지 로버트와 가장 친밀했고 각별한 공생관계 속에서 아버지를 돌보아 온 수학자인 젊은 딸 캐서린의 “증명”, 즉 그녀가 “진실”을 발견하게 되고 자신의 존재를 증명함으로써 희망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25번째 생일을 맞은 캐서린은 아버지의 장례식 전날 밤, 아버지와 함께 지내던 집의 뒤편 테라스에서 아버지의 제자이자 수학자인 청년 할이 로버트가 남긴 103권의 노트 속에서 가치 있는 연구물을 찾고 있는 작업이 끝나기를 기다린다.
그녀는 뉴욕에서 증권전문가로 성공한 그녀의 언니 클레어의 방문을 꺼린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아버지를 피해 뉴욕에 정착한 클레어는 아버지로부터 천재적인 수학적 재능과 신경증을 물려받은 동생 캐서린 역시 아버지처럼 정신적으로 불안정해질까봐 노심초사한다.
죽음에 쫓기듯 자신만의 노트를 채워나갔던 로버트의 “증명”이 담긴 노트를 찾으려는 할과 사랑에 빠진 캐서린은 문제의 노트를 할에게 넘긴다.
캐서린은 뛰어난 수학적 증명이 담긴 그 노트가 자신의 노트이며 자신의 연구결과 임을 밝히지만 할과 클레어는 그녀의 주장을 의심한다.
또한 클레어는 캐서린의 동의 없이 집을 팔고 아버지의 정신병을 물려받을까봐 두려워하는 캐서린을 뉴욕으로 데려가 돌보겠다고 결정한다.
과연 그 증명은 누가 한 것일까?
정신적 광기가 있는 아버지를 돌보느라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아버지의 죽음으로 우울증에 빠진 캐서린과 그녀를 사랑하는 할이 노트속에 숨겨진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을 과거와 현재의 교차로 보여주는 이 작품의 중요한 주제는 천재들의 이야기지만 가족의 이야기에 있다.
데이비드 어번은 수학적 증명이 극의 중심임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에게 전혀 복잡한 수학적 공식을 이해하길 강요하지 않고 성배처럼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을 생동감 있게 부각시켜 “증명”은 수학적인 증명인 동시에 사랑에 대한 증명, 헌신에 대한 증명, 믿음에 대한 증명이라는 것을 각인시킨다.
그런 만큼 캐서린과 로버트, 할, 그리고 클레어와 나누는 대사들은 캐서린의 자아 찾기의 중요한 단서가 되고 시종일관 긴장감을 느끼게 해 준다.
특히 캐서린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순간, 그녀와 아버지, 할, 그리고 클레어와의 관계가 끈끈한 감동으로 부각된다.
영화 “셰익스피어 인 러브”로 익히 알려진 존 매든 감독은 런던 돈마극장에서 “프루프”를 연출하면서 “셰익스피어 인 러브”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기네스 펠트로를 캐서린 역으로 출연시켰다.
런던 무대에 선다는 것은 기네스 펠트로에겐 위험한 도전이었다.
런던은 평가에 있어서 한 치의 동정도 없고 아무리 영화에서 성공한 대스타라고 할지라도 영국무대라는 잣대만을 잔인하게 들이대기 때문이다.
좌석이 300석 규모의 스튜디오식 극장인 돈마극장의 무대에 선 그녀의 연기는 찬사를 얻었고 회전무대를 사용하여 관객들이 여러 각도에서 배우들의 연기를 볼 수 있게 연출한 존 매든 감독은 매번 공연을 보면서 “프루프”를 어떻게 영화화할 것인지 고민을 했다.
결국 연극 극본에 충실하게 하되 구조를 달리 하기로 결정한 그는 성공적으로 무대에서 깨질 것 같은 위태로운 캐서린을 열연한 기네스 펠트로와 “양들의 침묵”과 “한니발”에서 강력한 카리스마를 보여준 안소니 홉킨스, “브로크백 마운틴”의 제이크 질렌할, 그리고 기네스 펠트로와 자매 같은 중후한 연기자인 호프 데이비스를 캐스팅하여 영화화했다.
장면들의 배경이 집안으로 한 세트안에서 이루어지는 연극과는 달리 존 매든 감독은 수학적인 형태를 보여주는 대학 교정의 X자 길과 장례식 장면의 록펠러 기념교회, 공항 등, 야외장면을 추가하고 과거와 현재의 뛰어난 교차편집을 통해 영화적인 특성을 강조한다.
“사실 많은 수학자들이 더욱 더 강박적으로 수학에 탐닉하도록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를 밝혀낸다는 느낌이다.
캐서린이 쓴 것처럼 ”증명“은 명백한 사실이지만 인생에 있어선 전혀 그런 완성의 희열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 없다.
진리를 밝혔다는 엄청난 쾌감, 그것은 수학적인 세계의 포기할 수 없는 매력이다.”라는 작가의 말처럼 존 매든 감독은 확실성이 요구되는 수학적 세계와 확실성이 있을 수 없는 인간적인 이해와 경험의 세계, 두 세계의 대립을 보여준다.
현재 일어나는 미스테리의 해답은 과거에 있기 때문에 이 영화에서 숨겨진 캐서린의 생각들은 관객을 이끌고 가는 통로이며 그걸 따라서 과거에서 현재까지 연결이 된다.
관객들은 캐서린과 같은 위치에서서 그녀의 기억을 풀어가게 되고 어떤 사건이 현재의 캐서린과 연결되는지 이해하게 된다.
비가 내리는 밤, 창문을 타고 빗줄기가 흘러내리고 멍하니 캐서린이 거실에서 TV를 보는 이 영화의 오프닝 신은 TV에서 보여지는 형형색색의 활력이 넘치는 세상과 단색의 텅 비어 있는 세상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암시하면서 캐서린이 그 사이에 갇혀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앞뒤시점을 계속 오고가며 여러 가지 요소가 혼합된 이 영화의 흐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이 첫 장면처럼 관찰자 시각을 강조한 시각적인 접근으로 캐릭터에게 일어나는 일에 따라 초점이 움직이는 카메라 워크와 과거 회상장면의 교차편집은 생생하면서도 팽팽한 긴장감을 조성한다.
무엇보다 프레임이 고정되어 있지 않고 약간씩 움직이기 때문에 캐서린의 심적 상태를 잘 나타내 준다.
아버지와 캐서린이 서로의 노트를 바꿔보면서 비밀이 밝혀지는 장면은 연극에선 눈 내리는 밤 장면 다음에 나오지만 영화에선 마지막으로 배치하여 끝까지 미스테리로 남긴다.
로버트가 눈 내리는 밤에 쓴 것은 “증명”이 아니라 횡설수설이었지만 자신이 “증명”을 썼다는 아버지의 확신 때문에 캐서린은 자기가 쓴 게 아니라고 믿는 것이 편하고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난 아버지와 닮았어요.”라는 캐서린의 말은 스토리의 핵심으로 할에겐 그녀가 천재라는 가능성이고 캐서린에겐 아버지처럼 미칠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하지만 할이 캐서린을 믿게 되고 그 믿음이 캐서린을 구하는 끈이 되어 관계의 변화와 발전을 이룬다.
클레어가 이삿짐을 싸는 장면과 할과 수학도들이 증명을 확인하는 장면, 캐서린의 과거 회상장면이 뒤섞인 라스트 시퀀스는 이 영화의 압권으로 영화적인 장점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아직은 많은 가설들이 증명되지 않은 채로 남아있겠지만 그래도 수학적으론 증명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인생엔 증명이 불가능한 것이 있습니다. 그럴 땐 믿음이 중요하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과 믿음이죠.” -존 매든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