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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페이퍼 위에 쓰는 創批(창비) 遭遇(조우) 一考(일고)

장코폴로 2013. 9. 22. 18:19

샌드페이퍼 위에 쓰는 創批(창비) 遭遇(조우) 一考(일고)

장석용(영화평론가, 한국영화학회 이사, 경희대 신문방송학과)

 

1.

한국영화 평단과 창작의 만남은 적대적인 관계설정의 위험지역을 떠나 평화공존의 시대로 가고 있다. 평단의 날카로운 銳鋒은 다 매체 평론의 영향으로 점차 빛깔과 특유의 향을 잊은 지 오래이다. 비평의 전 세계적 추이는 영화의 상품화를 홍보하는데 치중하고 있다.

 

깐느, 베를린 심지어 베니스영화제도 상업영화에 심각하게 오염되어 있다고 하는 비판의 목소리가 많다. 좋은 영화들이 좋은 평을 낳을 수 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한국영화평단의 미래지향적 방침을 담은 평문은 아직 발견되고 있지 않다.

 

 때론 테러리즘적 평이 필요하기도 하고 좋은 작품에 대해서는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의 賞讚이 필요하기도 하다. 이것을 조율하는 것은 바른 평론이고 바로 평론가들의 몫이다. 훌륭한 예술가이기도한 평론가들은 자신이 평단을 일구는 일꾼임을 생각하며 다음의 테제에 대해 간단하게 생각하고 창작주체인 예술가들과 의견을 개진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 아닐까 한다.

 

영화발전을 위한 테제(These)를 설정하고, 영화의 발전이 비평의 발전임을 믿으며 몇 가지 단편을 서술형으로 풀지 않고 단편으로 처리한다. 이는 중첩이 불가피 하며 양해를 구한다.

 

중심테제로서의 창작은 자기 중심의 독자적 작품전개와 독자적 체계를 형성하여야하고, 일회적이 아닌 영구적 가치를 지녀야 할 것이다. 예를 들면 유현목 감독의 『오발탄』은 영원한데 정인엽의 『애마부인』은 상품으로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또한 중심테제로서의 비평은 인물과 친분관계를 초월한 평이 기본이지만, 때론 거품 평이 유행하고, 평의 논조가 유사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중앙일보 영화 담당 이남 기자가 '억지로 영화창작작업에 참가했던 사람과 일정한 선을(친분관계가 생기기 전) 유지하고 객관적으로 평을 쓰려고 노력했다'고 몇 년 전에 했던 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정론지 보다는 유사 옐로우 페이퍼에서는 이런 현상이 심하고 심지어 검찰의 수사를 받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기도 하였다. 비평작업은 현상만이 아닌 다층적 다각적 분석이 평가항목의 범주에서 이루어지고 난 뒤, 자신의 논리와 비평적 견해가 곁들여 져야 할 것이다.

 

2.

 

창작과 비평의 슬기로운 만남은 냉정한 자기 철학의 전개가 선행되어야 한다. 어떤 사안에 대하여 작품에 대한 평가를 제외한 이면의 문제로 쉽게 흥분하거나 감정적 대립, 심지어 사법적 대응을 불사하는 작태는 삼가 하여야 할 것이다. 그런 관계로 성장하자면 창작자나 비평가가 서로 믿음이 있어야 하고 적대관계가 아닌 상호보완적 조언자, 건설적 비판자로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아트필름 및 실험성 있는 작품, 진보 성향의 작품은 비평의 전제 조건이다. 두드러진 작품이 평가에서 누락이 되거나 외면을 받아서는 안될 것이다. 평론가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영화를 선호하는 이유는 이해되지만, 일부 학자들이 흥행중인 영화들에 지나친 관심을 갖는 이유는 이해할 수 없다. 그런 여유가 있다면 B급 필름의 비평적 가치를 찾는 노력을 경주하여야 할 것이다.

 

한 때 영화평론 일각에서 국산영화에 대해 사보타지를 놓자는 소장 평론가들의 반란(?)이 있었다. 이들은 기성영화평론가들을 힐난하는 이런 움직임이 있었다. 사실 그동안 기성 평론가들은 신인들을 배양하지 않은 채 모든 이권을 독식하고 평단을 어지럽히는 단체로 의구심을 받아 오고 있었다. 그래서 방화와 외화 사이에서 비평은 차별화 될 수밖에 없었다.

 

로비성 있는 작품들은 가차없이 집중적인 비난을 받았다. 이 소장평론가들과 신생 신문사의 논조들은 독자들의 영화에 시각을 바꾸는데 일조를 하였고, 이후 창간된 영화잡지들도 신선한 시각을 담고 출간되어 기존의 평들은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새로운 물꼬를 트는 신인감독들의 작품들은 상대적으로 호평을 받았고 주로 에로 성이 짙은 향토 물이나 여성을 비하시키는 포르노물들을 주 소재로 삼던 기성감독들은 도태될 수밖에 없었다. 역사의 순리대로 비평의 새로운 틀이 짜여진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미장센의 탁월함이나 역사, 문학, 철학, 음악성이 탁월한 작품들이 쏟아져 나온 것은 아니고 절대평가 작들은 등장하지 않았다. 따라서 당대비평에 해당하는 평문은 쓰여지지 못했다.

 

멜로나 액션물등 장르간 전문비평은 절대적 필수사항인데 지금의 평단은 자기의 대학전공을 응용한 평들이 대접을 받고 있으니 코미디 적인 행태가 아닐 수 없다. 즉 신화에 관한 책 몇 권 읽고 영화분석에 신화성의 일부를 도입하거나 페미니즘이나 기호학 포스트 모던이즘등 책 몇 권 읽고 전문가로 행세해서야 비평의 심도를 헤아릴 수 있겠는가?

 

사실 비평에 있어서 패거리 짓기는 굉장히 위험스럽고 부담스런 행위이다. 성별에 따라 패거리를 짓고 다수의 힘을 신봉하는 무리들은 그 수를 세 삼아 비평의 입지를 위축시킨다. 예를 들어 김기덕의 『나쁜 남자』는 집중포화를 맞은 작품이다.

 

영화를 보는 관점에서 성별의 차이는 인정하나 영화는 픽션을 전제로 한다는 기본원칙을 잠시 이해하지 못하는 우(愚)를 맞대응 한다는 것 자체도 비평 대 비평의 입장에서 난감한 일이다. 이태리의 올미의 작업이나 헤세의 『베니스에서의 죽음』같은 작품을 이해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차별화는 사업성을 내세우면 도 예술성이나 정치적 함수를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비평은 창작과 만나기 위하여 곡필은 있을 수 없고, 소재에 따라 비평이 달라질 수 도 없다. 코미디 장르가 평가에서 비하되고, 아동․청소년 물이 매도되어질 수 도 없다. 바람직한 비평 태도는 바람직한 창작 태도와 마찬가지로 냉정한 객관적 기준 위에 자기 작품을 만드는 것 그것 외에는 어떠한 방법도 없다.

 

고른 발전을 위해 영화의 부문별 발전은 필수적이고, 완벽한 비평을 위한 전제 조건은 영화의 미장센을 위한 각 부문의 적극적인 노력 이외에는 방법이 없다. 이제 많이 개선되었지만 미술이나 음악의 괄목할 만한 성장은 특히 주목을 받을 만하다. 이에 따라 한국평단에 영화 전문가가 취해야할 전문지식의 상존은 필수적이다.

 

1919년 한국영화 탄생이래 지금까지 부문별 실험선상의 패로디와 리메이크가 이루어져 왔지만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이 제 55회 깐느영화제에서 미장센상을 수상한 것처럼 다듬고 수확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대만이나 일본 이란이나 중국이 해외영화제에서 젊은 감독들이 수상한 것처럼 칠순이 다되는 감독이 그것도 공동 수상의 아픈 영광을 해서는 않된다.

 

젊은 감독들이 일각의 映像富를 쫓아 헤매지 말고 자신의 페이스를 찾는 것만이 비평의 품격과 창작의 공동 목표를 동시에 추구하는 일이 될 것이다.

 

쉬운 카메라 앵글과 각도, 조명이 비평의 대상이 될 수 있을 정도의 기술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부문별로 뛰어난 테크닉은 연출이 부담 없이 자신의 작품을 전개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마치 축구시합에서 미들 필드를 장악하는 것과 같은 이런 작업은 필수사항이다.

 

한국에서 아시아 영화의 미학은 할리우드 상업영화와 동등하게 평가되어질 수는 없다.

 

한국영화는 한국인만이 공유할 수 있는 특정미학이 존재한다. 그것은 대사를 포함한 사운드의 문제가 될 수도 있고 독특한 창호지의 미학이라는 미장센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영화를 이끌어 가는 한국영화감독들의 드라마트루기가 독창적 일 수 있고, 장르의 순환구조도 나름대로 참신한 기획과 여건의 형성으로 단기간에 전 세계를 타겥으로 하는 한국영화의 면모를 보이고 있다.

 

다만 한국영화의 문학성과 정체성을 담보하는 작품들이 소수이고 할리우드 제작 시스템에 부합되는 작품들이 정형처럼 비춰지는 양상은 심지어 모든 영화의 수사를 수용하는 유럽이나 미국 본토 자체에서도 한국영화의 폭력과 에로티시즘에 경악을 금치고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영화운동의 역사는 저항과 반란으로 이루어져 왔다. 한국영화는 거대한 운동으로 분출하지 못한 부분이 순식간에 상업영화 쪽으로 선회했고, 이런 움직임은 복합영화상영관의 등장으로 전국 관객 천만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까지 이어지고 있다. 산업적 측면에서 영화는 평가의 대상이 되겠지만 아트 지향적 영화를 희구하는 평론가들의 바람과는 상치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거품 평론, 패거리 평론이 광고주들의 입김으로 존재할 여지를 남겨두었고, 그 세력들은 정치성향 마저 띄고 있다. 이들은 경제적 부를 채취할 공간을 넘보게 되었으며, 그 부로 이루어진 작품들이 정신을 순화시킬 창조적 자본으로 승화될 수 없었다.

 

그 문제는 창작자, 평론가 집단 자체의 문제로 비춰질 수도 있으나 사실 따지고 보면 이들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정치집단의 공작도 한 몫 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런 성향의 예술인들은 정치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결국 그 금빛 젖줄기를 위해 이권을 생각하는 집단으로 변질 될 수밖에 없다.

 

그 집단은 다수를 동원에 선동하고 소수가 이권을 챙기게 된다. 결국 창작 주최자도 경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에서 영화의 이미지를 얼마큼 생각하고 몽타주의 발전을 어떻게 기대할까?

영화산업과 평단의 함수관계는 거시적으로 관망하는 자세로 크게 잘못 되어지지 않으면 주체성에 힘을 실어주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도리가 없다.

 

영화평단은 세계 각국 영화에 대해 균형감각을 갖고 우리 창작자들이 가야할 바른 길을 인도해주는 조타수가 되어야 한다. 아울러 영화에 대한 지원금의 분배가 연령, 성별, 경력에 따라 합당한 자격을 갖춘 사람들에게 타당하게 집행되는지 감시하는 역할도 성실히 해야할 것이다. 즉 우리영화가 해외에서 예우 받는 구체적 실례와 현재 집행되고 있는 국내 예산은 바람직한 방향으로 투자되고 있는가 등을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 영화의 질적 향상을 위한 영화의 세부 부문들을 살펴보면 영화연기는 영화를 장악할 정도의 힘을 가져야 하며 상대역에 대한 유기적 연기의 연결이 뛰어 나야한다.

 

재능 있는 시나리오 작가의 탄생이 절실하다. 근래에 영화․영상 부문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젊은 작가들이 많이 있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시나리오 부문의 취약성이 영화 발전의 제약이 되었다는 사실은 모두 인정하는 바이다.

 

다행히 의식 있는 영화연출가들이 꾸준히 배출되어 영화의 역동성에 일조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88올림픽 이후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촬영기자재의 다양한 구사도 영상 예술 발전에 도움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이런 발전을 위한 장기 전략은 예술가의 노력과 정부 관련 부처의 적극적 도움이 필수적이다. 영화 기자재에 대한 세제 혜택이 따라 주어야 할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영화미술의 발전과 변화는 작품에 걸 맞는 부지 확충 등 세심한 배려가 필요한 것이고 지방 자치 단체의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영화 창작의 후반부 작업중 하나인 편집은 엄청난 연구와 노력이 필요한 것이지만 인력 확충과 지원 등의 문제가 남고 이후의 문제 편집의 독립권 등은 예술가들의 노력 여하에 따라 다르다. 영화녹음을 위한 작업도 변화의 사이클을 타야한다. 종합촬영소가 기여하는 바가 크지만 거리를 단축하고 지원할 수 있는 방안도 강구 되어야한다.

 

컴퓨터 그래픽 작업을 위한 지원사업도 중요하고, 영화배급업자들이 창작자를 위한 이면도 지원도 필요하다. 복합영화상영관이 창작자에게 제공할 수 있는 배려와 영화의 예술품으로의 규명운동이 병행해야하고, 영화의 위상 상승을 위한 작업도 더욱 필요하다.

 

이제 영화는 영화외적인 도움을 받아 다양한 장르로 확장과 가치의 전복이란 성과를 거두고 있다. 따라서 외국의 작품 분석 방법론의 국내 수용은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고 주체적 방법론, 한국식 평론 방법론 개발도 가능한 시점에 이르렀다. 그것은 토착 인접 학문의 접목이 필요한 것이다.

 

영화 기술적 수사학, 영화언어의 다양한 구사가 평론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야한다. 이를 위한 한국에서 새로운 영화운동도 필요하다. 한국에서 시네마텍 운동도 새로운 괘도에 올라있다. 따라서 비평가들은 요즈음 영화에만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아이다. 창작자들도 영화로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여러 담금질을 한 우리영화는 국제인지도를 가질 것이고 그 성적표는 우리영화의 새로운 역사로 쓰여질 것이다. 해외영화제에서 한국영화들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은 할리우드를 답습한 아시아의 이단아로 지금까지 평가되어 왔다. 아시아 중의 중국과 일본과 차별이 없는 영화로는 승부수가 없는 것이다.

 

그동안 해외유학파들의 국내 영화계에서의 활약상은 미미하고, 그네들이 우리영화의 국제화를 위한 노력은 인정하지만 객기의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영화예술에 대한 기록자와 관찰자 지도 선생으로의 영화평론가에 대한 지원책도 필요하다.

 

영화평론가의 여러 기관 평가사로서의 활용방안도 신중히 고려해야할 것이고, 영화와 타학문과의 교류도 필요하다면 지원해 주어야할 것이다. 현행 영화 제작 시스템과 타국과의 비교도 필요하고 영화저작권이 창작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여 지원책을 강구하여야 할 것이다.

 

영화 창작활성화를 위한 방안과 영화 후시 작업을 위한 진취적 공간조성, 구호에만 그치지 않는 지원은 창작과 매스컴의 지원으로 힘을 얻을 것이다. 영화박물관 건립과 유년․청소년들에 대한 실습지원, 영화발전을 위한 뱅크 상설운영, 중심가에 한국고전영화관 지원 등은 문화향수권 신장에 도움을 줄 것이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역할 재정립으로 영화․영상 산업의 활성화에 기여할 인물을 전진 배치 국제적 전략을 수립하고 ,종합촬영소의 세계적 관광명소 구상, 엑스포공원과 연계 영상산업단지 지방분권화 ,활성화에도 신경을 써야한다.

 

영화아카데미 활성화로 영상원에 재정, 인재 등을 빼앗긴 현실을 타파하며, 영화인 후생복지 사업도 연구하여, 원로영화인들에 대한 주택, 보건, 여가 등에 대한 혜택을 준다면 원로연기자들이 영화예술에 신명을 바쳐 일할 것이다.

 

독립․실험․예술 영화 등에 대한 전폭적 지원은 필수이고, 영화평론가들로 하여금 영화역사․자료보존․평가 등에 대한 균등 참여 기회도 제공해야 한다. 연륜과 연구경력, 활동사항에 따라 기회를 제공한다면 그들의 연구는 빛을 발휘할 것이다.

 

공무원과 가족들의 영화관람 기회를 제공하여 영화활성화 기여 및 선진문화를 습득 국가의 문화 전도사로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영화평론가들의 해외 영화제 참가에 대한 전폭 지원과 해외에 산재해 있는 영화필름 및 발굴에 대한 지원, 영화산업에 지원, 후원한 기업(특히 아트필름)에 세금혜택도 있어야 한다.

 

아트필름 지원창구 별도 개설로 한국영화 수준을 국제적으로 끌어올리고, 아트영화필름페스티발 창설도 필요하다.

 

영화세트의 상품화와 관광산업연계 시도, 영화상품의 캐릭터 사업 연구, 영화인력의 효율적 관리를 위한 여건 제공, 영화수출의 극대화를 위한 특별기구 창설, 영화연기자와 일반인과의 만남을 위한 기금지원, 청소년과 일반인을 위한 영화교육 장소 제공, 각 지역에 산재해 있는 교육기관, 영화제 등을 연계 효율적으로 이용 관리할 조직 연구, 예술영화전용관에 대한 지원 등은 급속히 이루어져야할 사안이다.

 

영화 전반에 대한 얼굴인 영화연감에 대한 과학적 연구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국민의 정부 들어 책 수준과 볼륨이 형편없이 나빠졌으며, 또한 진흥위원회내 영화 조사부를 부활시켜야 한다. 인원 감축이란 명분으로 자료 보관 부서가 없어진다는 것은 나라의 수치이다.

 

영화정책연구실에 대한 점검도 필요하다. 타 부서에 연구 인원을 분산하고, 국민의 정부 들어 입사한 인원에 대한 재검증 작업도 선행되어야 한다.

 

영화․영상산업 연구원을 설립하고, 만화영화산업에 대한 전폭적 지원도 고려하고, 영화․ 연극전공자들에 대한 교사 자격증 부여 및 인력 활용 방안과 한국영화에 대한 국제 홍보 사업 지원도 고려하여야 한다.

 

영화진흥법 중 현실성 없는 법에 대해 전향적 연구와 북한영화와의 교류를 위한 연구도 전향적으로 연구하여야 한다.

 

한국영화 파이낸싱을 위한 국외 투자자 설명회 개최와 전국에 예술영화전용관을 지정해서모범음식점처럼 각 지역 관광객들에게 한국의 우수한 영화를 관람할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영화제작 지원에 대한 다각적 배려는 나이, 경력, 남녀 구성비등에 따라 이루어 져야 반대하는 측이 없어질 것이다. 힘겨루기 양상으로 비춰지는 지원사업은 분열만을 나을 것이다.

 

영화산업의 활성화가 영화 평단을 살찌우는 것이다. 영화 및 다 매체에 대한 지원 방안 연구, 주변국과의 합작을 통한 영화인구 확대 방안, 한국영화 판매에 관련된 저작권․로열티 지원, 한국영화 공중파 방송 편성비율 의무화, 한국영화종합홍보관 활용, 등급외 전용관 수용, 청소년․대학생의 후시 작업 지원, 공공기관 및 군부대 등에 영화지원 사업, 투자를 기피하는 국책영화의 지원, 아동․청소년영화 제작 지원 등도 창작자들을 신바람 나게 하는 대책이 될 것이다.

 

찾아가는 영화관은 북한의 이동영사대처럼 새로운 영화인구 확대 책이 될 것이다. 가설극장이 주기적으로 열린다는 것을 생각하면 커다란 영화인구를 배출하는 것이고 우리영화 인구를 늘이는 일이 될 것이다. 한국영화 국제 영화제 참가 지원은 지금의 방식을 탈피해야 하고, 아트필름들을 집중소개 해야한다.

 

서울종합촬영소 및 영상자료원등 연계 사업도 강구해야하고, 문화원을 이용한 영화상영 사업과 대학 영화과와 공동연구과제에 대해 산학협동방안도 강구해야 한다.

 

3.

한국영화는 갈 길이 멀다. 영화에서 첨예한 이데올로기 문제도 해결해야 하고, 영화용어도 정비해야 한다. 평론과 인품의 함수관계는 비례하길 바라지만, 필화사건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영화비평의 범위와 한계는 결국 창작자의 생산품이 있을 때 가능하다.

 영상, 사운드, 몽타주의 현란한 조화는 바람직한 창작자와 바람직한 비평가가 지혜롭게 만났을 때 가능하다. 영화란 모름지기 그 민족의 커다란 문화유산이다. 창작자는 자기 만족만이 아닌 국민 정서에 부합되는 영화를 만들어야 하고, 비평가는 정확한 틀은 없지만 비평문의 품격을 갖춘 비평문을 써야할 것이다. 창작자는 민족의 주체성을 찾거나, 국제적 공감대를 갖춘 작품을 창작하거나, 시대성과 정신적 가치를 고양․고무하는 탁월한 작품을 선보여야 한다.

 

또한 비평가는 이들의 훌륭한 작업에는 역할을 높이 칭찬하고 ,역사적으로 기록하며,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계몽․계도하는 역할과 외부의 입김을 감지 차단하여 예술가들을 바른 방향으로 이끄는데 일조 함이 바람직하다.

 

또한 사안별로 요구사항이 이루어 질 수는 없지만 제시된 것들이 하나 하나 이루어 질 때 창작자인 예술가와 관찰․기록자인 평론가가 슬기롭게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글쓴 시점(2000년 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