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예술가-임권택
한국영화를 국제영화제에 본격적으로 알린 영화장인
감자 쩌 주는 형님, 옥수수 삶아주는 아저씨와 같은 이미지로 언제나 다가오는 임 감독은 1936년 05월 02일 전남 장성에서 태어났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가난과 이념의 후유증이 여름 그림자처럼 늘어져 있을 때 전쟁이 그를 또 덮쳤다.
호구지책으로 액션영화의 대부 정창화 감독의 연출부를 거쳐『두만강아 잘있거라, 61년』로 입봉해 백번 째 작품『천년학』에 이르는 연출 작업은 한국사의 이면, 감독의 가족사를 읽게 해주는 촉수역할을 한다.
추운 겨울과 뜨거운 여름의 열악한 촬영현장을 지켜 낸 그의 작품들은 베니스 영화제 여우주연상, 모스크바영화제 여우주연상, 베를린영화제 명예황금곰상, 칸영화제 감독상,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한국예술평론가협회 최우수예술인 상, 한국영화평론가협회 최우수 작품상, 대종상, 청룡상, 춘사상, 프랑스 문화훈장, 아시아영화제 감독상 등 영화제를 화려하게 빛나게 해주었다.
세계 4대영화제와 국내 영화제를 모두 석권하면서 국위를 선양시킨 임감독의 놀라운 장인 정신은 전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특히 고령에 만들어낸 수제품 『천년학』이 상영되고 있고, 서울 메가박스에서 그에 대한 헌정행사가 대규모로 취러진 점은 영화 후배들이 얼마나 그를 사랑하고 있는지를 반증한다.
『씨받이』 등 여러 작품들이 독일어로 더빙되어 판매되고 있을 지음 만난 국제영화 비평가 연맹(FIPRESCI) 클라우스 이더(KLaus Eder) 사무총장과 나의 인터뷰 내용에는 늘 임감독이 끼어 있었다. 이후 만난 국제 연맹 회원들의 입에는 늘 임감독이 들어 있었다.
임감독의 고운 품성이 엿보이는 부분은 품격 높은 영화를 만들면서도 예술작품만을 만들어야겠다는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제작자의 주머니 사정을 배려하는 상업영화 만들기에도 기꺼이 참여했다. 『노는 계집 창』을 감독하다가 『춘향뎐』을 만들었고,『취화선』을 찍다가 『하류 인생』을 연출했다.
이제 그의 영화들은 중간역 혹은 종착역 ‘천년학’에 머물러 있다. 학이 되고 싶은 것일까? 『장군의 아들』의 패기를 우회하여 영화에서 아버지처럼 그는 모든 엑기스를 후배들에게 남기고 떠나가는 심정으로 이 작품을 ‘후학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로 띄우고 있다.
이데올로기로 고민하는 인물들을 그린 『태백산맥』과 『개벽』, 불교를 소재로 인간본성을 파헤친『아제 아제 바라아제』,『만다라』, 이산가족문제를 부각시킨 『길소뜸』,『천년학』의 전편 『서편제』,여성인권을 그린 『씨받이』등은 그가 생각하는 우주관과 연결선상에 있다.
임 감독은 80년대 이후 우리 영화들이 국제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본격적 론 그라운드를 만들어 준 장 본인이다. 10여년 지난 뒤 자신으로 보아서는 51번째 영화 『잡초』가 소재 선택과 연출방향을 선회하는 계기가 되었다.
아시아 영화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던 베를린은『만다라』,『길소뜸』 등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물론 이 중심에 클라우스 이더가 있었다. 그의 작품은『씨받이』의 강수연과 『아다다』의 신혜수가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 타면서 존재가 크게 각인되었다.
80년대부터 근래까지 그의 연출 현장을 우연히 들를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 작은 만남에도 무조건 고마워하고, 정을 주는 그 살가운 마음씨가 고희를 넘긴 나이에도 아직 지속되고 있다. 겸양지덕을 겸비한 청년정신으로 영화 현장을 지키는 모습은 안주를 일찍 배운 후배 영화인들에게 귀감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예술가들은 나이가 들면 더욱 가치가 있어 보여야 한다. 임감독은 베를린영화제에서 한국영화가 최초로 본선에 오르게 하였고, 칸영화제에서 한국영화 최초 본선 진출작 『취화선』이 감독상을 타게 만들었다.
그가 세계무대에서 화려한 스포트를 받을 때 그는 그가 있게 해준 모든 난관과 역경이 스승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더 어려운 환경에서 작업해왔던 선배들을 생각했다. 그리고 그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던 수많은 동지들이 있었음을 모를 리 없다.
오늘 임감독과 만났던 수많은 모임들의 흔적들이 존경의 파편처럼 튄다. 그가 국내와 국외에서 평가 받는 부분들을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작은 족적을 남겼으면 한다. 『천년학』이 깜짝 시사되고, 귀한 시간을 할애한 임감독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2007.0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