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인의 ‘물에 비친 바다’전
추상의 세계 속에 영속으로 치닫는 바다의 이미지
2006년 6월6일부터 11일까지 프레스센터 서울갤러리에서 ‘물에 비친 바람’이 전시되고 있다. ‘물에 비친 바람’와 ‘바람바다’는 ! 화가 한동인이 일관되게 추구해 온 작업의 명제이다. 작품과 명제에 관한 상관성은 그리 집착할 사안이 아니지만 그의 경우는 그 상관성이 밀접하기 때문에 그의 작업세계를 온전히 들여다 보기위해서는 그 명제에 관한 논의가 우선 되어야함은 물론이다.
물에 비친 바다를 포용하는 바람바다란 무엇인가? 얼핏 의미상으로 그 이미지의 선명함이 모호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비교 의미학적 방법으로 바람바다를 바다(닷)바람으로 도치시켜보면 그 의미에 보다 근접할 수 있다. 바닷바람이 바다에서 부는 바람이라는 뜻의 단순명사라면 바람바다는 바다 자체의 속성이 바람과 같은 형질을 내포한다는 의미의 추상성을 띄게 된다는 점에 유의해야한다.
바다 / 바람이라는 의미의 대립 항에 있어서 어느 쪽에 의미의 가중치를 두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가 수립되기 때문이다. 바닷바람은 '바람'이 '바다'를 종속화 함으로써 '바다'보 다는 '바람'에 의미의 가중치를 두어'바다에서 부는 바람'이란 의미가 되지만 바람바다는 '바람'이라는 의미 항이 '바다'에 종속되어' 바람 같은 속성의 바다'로 그 의미가 전혀 다르게 전용된다는 점이다.
이런 연유로 '바람바다'라고 명명하는 그의 속내의 일말을 이해할 수 있으려니와 동시에 그의 작품세계의 근간을 형성해온 물리적, 심리적 공간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그는 이 땅의 남쪽 청정바다로 둘러 쌓인 거제도에서 소년기를 보냈다. 그가 늘 체험해 왔던 물리적 공간으로서 그를 에워싸고 있는 것이 '바다'라면 때론 고요와 격랑의 파도와 같은 그의 가슴 속 깊이 켜켜이 숨겨진 삶의 노정이 심리적 공간으로서의 '바람'이라 할 것이다.
추상미술이 대상의 외견적 형상과 내재적 속성에 대한 주관적이고 조형적인 해석이라고 볼
때 그 역시 경험에 대한 적절한 조형적 방법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 진다.
바다로 설정된 사각의 화면에 반복되는 파도의 결처럼 물감의 덧칠이 반복되고 그 위에 뿌
려진 금빛 물감은 이제껏 행해진 물감의 개별적인 층을 통합하면서 화면을 진정시키는 것이
다.
진정(통제)된 화면은 수면 아래의 비밀스러움처럼 고요하지만 이내 순간적인 일필휘지의 드로잉으로 , 바람 닮은 바다와 바다 닮은 바람을 형상화 해내면서 마치 무속례(巫俗禮)처럼 바다(화면)에 무의식적으로 물감을 흩뿌리는 제사장으로서의 신명나는 드리핑을 통해 그가 희구 하는 우주의 끝자락을 조우하게 된다.
추체험(追體驗)으로서의 물리적 바다와 현재 진행형으로서의 심리적인 내면의 바람이 씨날처럼 교차하면서 그의 회화적인 고백은 진정한 고백으로서의 빛을 발하게 될 것이다.
선종선(서양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