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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歸去來兮(돌아가련다)72.7×60.6(㎝) | [그린경제=장석용 문화비평가] 황상오는 1996년 2월 제1회 개인전(황토소리전, 갤러리동주, 서울 / 태령금고 문화센터, 익산)을 연 이래 자연친화적 선(仙) 세계를 부드러운 붓 선(線)으로 바람에 흔들리는 보리결처럼 선(禪) 수행에 이르는 긴 그림 여정을 해오고 있다.
그는 선비들의 풍류와 시서화(詩書畵)의 대상이 되어왔던 소재 가운데 여성적‧서정적 부분들을 섬세하게 뽑아낸 인상을 준다. 이면의 급류, 지고의 노력, 이치를 헤아림은 감상자의 몫이다. 작가는 느낌의 공유를 필요로 하며 강요나 치밀한 독해를 원하지 않는다.
내 안에 이는 바람으로 자신을 가다듬으며 치유의 질감을 마음으로 느끼며 오감(五感)의 촉수를 자연에 드러내놓고 절대적 미감(美感)에 은근하게 호소하는 모습은 ‘반가사유상’의 평정심을 닮아있다. 황상오는 미술로 힐링아트(Healing Art)의 진수를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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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歸去來兮(돌아가련다)53.0×4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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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歸去來兮(돌아가련다)53.0×4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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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歸去來兮(돌아가련다)53.0×4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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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歸去來兮(돌아가련다)53.0×4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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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歸去來兮(돌아가련다)91.0×5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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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歸去來兮(돌아가련다)91.0×5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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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歸去來兮(돌아가련다)91.0×5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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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歸去來兮(돌아가련다)53.0×4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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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歸去來兮(돌아가련다)53.0×45.5(㎝) | 황금 보릿대의 비밀을 깨우치는 마음으로 닥나무(한지)의 신비를 깨우쳐온 그는 영락없는 자연인이다. 그의 자유혼은 자유인의 덕목으로 그림들을 빚어 왔다. 녹색 시심(詩心)이 알려준 사연은 그의 그림들의 스토리텔링에서 자연스럽게 밝혀진다.
그는 익산의 넓고 청령감이 이는 바람을 내버려두고, 오염되고 척박한 서울의 작은 공간에다가 싱그러운 한지의 바람결로 치유의 안식처를 뿌린다. 그의 그림들은 자정(自淨)의 치유력을 소지하고 있어 스치면 그립고, 그리우면 그 세계에 뛰어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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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로(歸路)53.0×45.5(㎝) | 그의 그림들은 토속정서를 초월하는 철학의 상부구조와 한지와의 만남을 주선하며, 까마득하게 그리운 어머니 품이 되어 당신의 마음을 보듬는다. 바람, 세월, 마음의 잔잔한 파고(波高)는 이끼진 도랑을 뛰어넘어 ‘방학동 나그네’의 시심을 훑어낸다.
그림 중, 귀로의 학(鶴) 이미지는 자신의 내면적 갈등을 성찰하여 참에 이르는 정신적 해방과 자유를 상징한다. 그가 창조해낸 이미지는 존재했지만 무관심과 외면으로 이질되었던 부분들이다. 작가는 잊혀져가는 것들에 대한 성찰을 우리들의 감성으로 찾기를 원한다.
2013년 8월 14일 서울 한국미술관, 전주 전북예술회관에서의 황상오의 제10회 개인전은 지난 4월 정수화랑에서의 9회 개인전의 감흥을 잇는다. 연의 소중함, 이어짐, 느낌의 천을 공유하는 황상오는 단체전 백여 회와 개인전 십 회의 화력(畵力)으로 세계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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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소(歸巢)53.0×4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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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다림(황상오)207.0×14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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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원(祈願)209.0×14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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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정(母情)207.0×14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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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설(傳說)207.0×145.0(㎝) | 황상오는 그림공부를 하면서 삶에 얽힌 자연과 사람을 공부하였다. 그림위에 가볍게 한지를 두르고 떠나는 그의 그림 여정은 ‘길 떠나는 나그네’ 같지 않고 자연 속에 그가 머문다는 느낌을 준다. 솟대에 걸친 새, 황상오는 늘 정지가 아닌 흐름으로 새를 본다.
황상오, 바람의 전설, 그는 늘 그리운 이가 되어 집으로 돌아오는 새가된다. 너무 높지 않고, 낮지도 않은 중턱에 집을 내고 햇살을 받아내는 소박함으로 세상을 살아왔다. 그의 ‘귀거래혜(歸去來兮) 돌아가련다!’는 신선의 일 경지 학인(鶴人)의 입문을 알리는 작업이다.
청정 자유 영혼을 구가하는 황상오의 자연반란(자유영혼의 구가)은 해바라기의 강렬한 빛에서 벗어나 풀빛이고, 타이티의 원색을 우회, 야생화의 소박함을 닮아있다. 그의 작품을 통해 요란하지 않고, 현란하지 않은 ‘자연닮기’와 ‘바보되기’에 동참할 수 있는 것은 축복이다.
/장석용 문화비평가(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