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적인 사상 및 정서의 발현이 바로 경쟁력
신 항 섭 (미술평론가)
미술품 가격은 작가의 죽음을 딛고 일어선다. 적어도 인상파로 상징되는 19세기 후반에 활동한 작가들까지는 그랬다. 인상파와 후기인상파 그리고 야수파 등 일련의 새로운 미학의 출현을 선도한 19세기 후반 작가들은 그림을 팔아서는 연명하기조차 힘들었다. 고흐가 생전에 딱 한 점을 파는데 그쳤다는 사실은 그 단적인 예이다.
하지만 입체파의 주역이자 20세기를 대표하는 피카소는 생전에 작품을 팔아 온갖 영화를 다 누렸다. 예술가로서 피카소만큼 화려한 생애를 살다간 이가 또 있을까. 어쩌면 피카소는 예술가도 거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 하나의 본보기였다. 다시 말해 미술품 가격은 작가의 죽음을 딛고 일어서는 것이 아니라, 작가 자신에 의해 그 가치가 재창조될 수도 있음을 보여주었다.
현대는 바야흐로 광고와 PR의 시대이다. 신문과 방송을 비롯하여 인터넷 등 각종 인쇄 및 전자매체가 범람하는 정보홍수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현대인의 삶은 스스로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각종 정보의 강요 및 공격으로부터 노출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지구 반대편의 일들이 실시간으로 전해지는 놀라운 세상이 된 것이다. 미술가들도 이러한 시대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현실적인 요구에 직면하고 있다. 가만히 앉아 있어서는 각박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나갈 수가 없다. 따라서 자신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알리는 일이 필요하다. 이는 무한경쟁시대에서 자신의 존재를 지키기 위한 당연한 선택이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를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어서일까. 오늘 현대미술가들은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데 보다 적극적이다. 존재성의 과시뿐만 아니라 자신의 작업을 물질적인 가치로 환산하는데 능숙하다. 자본주의 경제논리에 놀랍도록 잘 적응해가고 있다. 예술과 돈은 별개라는 생각은 이제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으로 치부되고 있을 정도이다. 실제로 적지 않은 미술가들은 작품을 팔아 치부하는데 열중한다. 심지어 돈이 되지 않는 작품은 하지 않는다는 생각조차 당연하다는 식이다.
이와 같은 작가들의 태도는 미술품을 상업적인 가치로 바꾸어내는 화상들과 전혀 다를 바 없다. 이제 이러한 태도를 보인다고 해서 나무라는 이도 없다. 보편적인 추세인 것이다. 그래서 작가들 스스로가 자신의 작품가격을 결정하는 일이 다반사이다.
수요가 일어남으로써 공급이 이루어지고 그에 따라 가격이 정해지는 시장원리가 통용되지 않는 기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수요가 없는 상황에서도 임의적으로 가격이 정해지고 있다. 이렇게 정해진 미술품 가격은 주변 친지들이 한 두 점 사주는데 힘입어 공식적인(?) 가격으로 통용되는 실정이다.
아무개가 호당 얼마를 하니, 나도 그 정도는 받아야 한다는 식이다. 화상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림의 완성도나 예술성 및 내용은 물론이요, 객관적인 평가기준이 되는 화단활동 상황, 창의성, 시장성 따위를 면밀히 분석하지 않은 채 우선 판매 가능성만을 따져 작가가 제시하는 가격을 무조건 받아들이는 상황이다.
한국미술시장에서 가격산정 과정은 대체로 대학교수에게 가장 높은 점수가 주어지고 출신학교와 미술대전 등 주요공모전이나 해외유학경력 등이 뒤따른다. 명문대학교수 및 명문대학 출신여부가 가격산정에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무원칙하게 정해진 미술품 가격이 미술시장에서 그대로 통용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한국미술품의 가격은 국제미술시장 상황과 비교해서 지나치게 높다고 지적되는 형편이다. 한국의 경제력과 문화수준 및 생활수준에 비해 비현실적이라는 얘기다. 한마디로 한국미술품은 과대평가되고 있다는 말이다. 바꾸어 말해 한국미술품 가격은 단지 집안잔치용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처럼 한국작가의 작품 가격이 비싸졌을까.
88서울올림픽을 전후해서 미술품이 투자대상이 되면서 일시적으로 주요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과수요 현상이 일어났다. 이 시기에 이른 바 인기작가들의 작품은 수요를 따를 수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화상들은 이윤창출을 위해 작품가격을 올리는데 앞장섰다. 도대체 미래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하루살이 같은 시장상황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러나 미술시장의 호황은 불과 2-3년으로 끝이 났다. 일부 투기자본이 이윤을 낸 뒤 미술시장에서 빠져나갔고 미술애호가층이 얇은 미술시장은 금세 그 영향을 받았다. 미술품 투기 열기가 사그라지면서 이 때 한껏 부풀려 놓은 가격은 미술시장을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IMF가 닥치자 그렇지 않아도 수요가 크게 감소한 미술시장은 가장 먼저 타격을 받았다. 가격이 급락하고 수요가 일어나지 않는 상황에서 급전을 필요로 하는 매물이 일시에 쏟아져 나왔던 것이다. 수요가 없는 상황에서 매물이 쏟아져 나오자 가격하락으로 이어졌다.
적게는 20-30% 많게는 50-60%까지 하락했지만 구입하겠다는 사람은 없었다. 물론 가지고 나오면 언제라도 되사겠다며 매입을 부추겼던 화상들도 작품을 인수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냉각되기 시작한 미술시장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요지부동이다.
이처럼 한국미술시장이 얼어붙자 일부 화랑들은 해외미술시장으로 눈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파리의 FIAC과 막2000을 비롯하여 시카고, 마이애미, 로스앤젤레스, 뉴욕, 쾰른, 바젤, 도쿄, 시드니, 멜보른, 모스크바 등지의 아트페어에 참가하여 한국현대미술 판매 가능성을 타진했다.
이들 아트페어는 대부분 현대미술이었고 어느 정도 성과도 있었다. 어느 중견작가는 매진을 기록, 화단의 화제가 됐던 일도 있었다. 그러나 설령 작품을 모두 판다고 해도 적지 않은 참가경비를 제외하고 나면 그리 남는 장사라고는 할 수 없었다.
미국이나 유럽 등지의 아트페어에 참가하려면 작가와 화상 두 명의 여행경비를 포함하여 부스 사용료 따위를 합쳐 적어도 1만-1만5천 달러 이상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설령 매진을 기록한다고 해도 10점 내외이고, 한 점당 평균 2천 달러 정도라고 하면 이익이 그리 많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이익을 내는 경우는 극히 드문 편이다. 대체로 적자를 면치 못한다. 한국작가들의 경우 국제무대에서는 신인에 불과한데다가 여전히 제삼세계권에 머물고 있는 까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작가들의 작품이 팔리고 있는 것은 어쩌면 백남준의 영향이라고도 볼 수 있는지 모른다. 한국미술의 인지도 향상에 백남준이 큰 역할을 한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미술시장에 관한 한 그 속사정을 보면 외국화상들은 이미 88서울올림픽을 전후하여 한국시장의 잠재력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한국이 해외시장을 노크하기 전에 먼저 한국미술시장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말이다. 초기 한국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관심은 일부 발빠른 외국화상들의 판매전략과 맞물려 있었다. 국제아트페어에서 한국작가들의 작품을 구입한 사람들 중에는 외국화상들도 있었다는 사실이 이를 시사한다. 즉, 한국화랑들과 손잡기 위한 상업적인 의도가 내포되어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미국이나 유럽시장이 침체되어 있는 상황에서 한국은 일부 화랑들에 의해 미국을 중심으로 한 현대작가들의 전시회를 열어 기대이상의 판매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세계미술시장이 전반적으로 얼어붙고 그에 따라 현대작가들의 미술품 가격이 하락하고 있는 추세에서도 유독 한국시장만은 비록 그 규모가 크지는 않을지언정 새로운 시장으로 부각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일본이라는 거대 시장을 잃은 상황에서 한국시장은 현대미술의 새로운 수요처가 되는 것을 의미했다.
1990년대 초반 이후 세계미술시장에서 가장 구매력이 큰 시장으로 각광을 받아온 일본이 버블경제로 서서히 퇴조하면서 미술경기가 급격히 식었다. 이러한 때에 한국미술시장이 새로운 수요처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이처럼 현대미술이 한국에서 각광받기 시작한 데는 일부 재벌들이 경쟁적으로 현대미술을 수집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더불어 때마침 한국미술시장이 개방되었다는 현실적인 여건이 이러한 분위기를 만드는데 일조 했다.
국내작가들의 작품가격이 하락하면서 수요가 끊긴 사실과는 달리, 세계미술계를 리드하는 현대미술의 스타들의 작품에 대한 수요가 새롭게 일어난 것이다. 미술관을 운영하거나 준비를 하고 있는 일부 재벌 부인들에 의해 유명작가들의 작품이 소문 없이 팔려나갔다. 그 덕분에 일부 현대미술을 취급한 화랑은 적지 않은 자금을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IMF는 이러한 상황을 급반전시키고 말았다. 일부 대기업들이 무너지고 자금압박에 시달리는가 하면 구조조정 등으로 상황이 악화되면서 해외 현대미술의 주고객들도 더 이상 콜렉션을 할 수 없게 됐다. 이 과정에서 대기업이 만든 개인미술관이 문을 닫는가 하면, 미술관을 준비해오던 기업들조차 일시에 손을 놓게 된 것이다.
일부 화랑들에게 국한된 문제이기는 하지만 해외 현대미술품에 대한 수요마저 끊김으로써 한국미술시장은 완전히 붕괴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유명화랑들은 판매가 부진하자 아예 국내 유명작고작가들의 작품전을 열어 입장수입을 챙기는 데 급급한 모습이 시장상황의 악화를 단적으로 말해주었다. 국내미술시장이 거의 고사직전 상태가 되면서 일부 화랑들이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리게 된 것이다. 하지만 해외시장은 생각처럼 호락호락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한국화랑들이 참가하고 있는 국제아트페어는 미술견본시장이다. 새로운 작가를 소개하고 발굴하는 하는 한편 시장가치를 가늠하는 중요한 자리인 것이다. 한마디로 아트페어는 한 작가의 상품적인 가치여부를 알아보는 바로미터인 셈이다.
아트페어에서 작품이 팔린다는 사실은 국제적으로 상품적인 가치를 인정받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작가들의 현대미술은 국제아트페어에서 대체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표현방법은 서구미학에 동조하면서도 세부적으로는 동양적인 가치를 실현하고자 하는 데서 일단 서구작가들과 차별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정서적인 면에서는 서구작품과 확연히 구별되면서도 작품성은 뒤지지 않았다. 따라서 어느 지역 아트페어든지 충분히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런데 문제는 가격이다. 아무리 작품이 새롭고 수준이 높다고 해도 한국작가들은 국제무대에서는 신인이고 제삼세계권일 따름이다. 이는 작품 구매자들을 망설이게 하는 요인이다. 그런데다가 작품가격이 만만치 않다. 한국에서 통용되는 가격을 그대로 적용해서는 팔릴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것이다.
40대 중견작가의 경우 10호 기준으로 해서 호당 20만원이면 2천 달러인데 신인치고는 아주 비싼 가격에 속한다. 50호이면 적어도 7천-8천 달러를 호가하게 된다. 이 정도면 이미 국제적으로 지명도를 쌓은 작가들의 그림 값에 해당하는데 개인이 구입하기에는 무리다.
가령 90년대 말 뉴욕에서 활동하는 50대 중반의 한국 작가가 뉴욕 57번가의 미국인화랑 초대전에서 받는 작품가격은 2천-5천 달러정도였다. 그는 20년 가까이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중견작가이다. 이 작가와 비교해 볼 때 한국작가들의 작품은 그 수준여부를 떠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가격이 아니다.
얼마 전 한국에서 열리는 국제아트페어에서 프랑스 중견작가의 작품이 30호 기준으로 하여 2천 달러 정도였다. 작품도 좋았고 가격도 적정했기에 판매가 이루어졌음은 물론이다. 당시 이 전시회에 참가했던 한국의 중견작가들 스스로 자신들의 작품가격이 국제시세에 비해 너무 높다는 사실을 시인했다.
90년대 중반 파리의 한 유명 화랑에서 대관전시회를 가졌던 국내의 중견작가의 경우, 파리의 화상들로부터 전속계약 제의를 받고도 한국에서의 가격과 파리화랑이 제시하는 가격의 차이가 너무 커 결국 빈손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그로서는 국제무대에서 활동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날려버린 셈인데, 그 때 파리화랑의 제의를 수락하지 못했던 데 대해 지금껏 후회하고 있다. 50대 후반의 중견작가도 수년 전 로스앤젤레스의 저명한 유태인 화상으로부터 초대전 제의를 받아놓고도 사소한 일을 문제삼아 응하지 않았다. 이런 일들은 한국작가들에게는 그야말로 눈앞에 놓인 밥상인데도 그냥 물리치는 결과가 되고 말았다. 이는 역시 국제감각이 부족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여러 형태의 외국전시회에서 일부 한국 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구입의사를 전해오는 경우가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판매로 이어지지 못하는 것은 현지작가들의 가격과 차이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소수의 중견작가는 유럽화랑을 통해 현지 작가들과 대등한 가격에 지속적으로 작품을 판매하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파리를 중심으로 한 유럽과 뉴욕 등지에서 활동하는 젊은 작가들 중에는 작품판매만으로 생활하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한마디로 현지 문화에 적응해가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작품이 팔린다는 것은 철저히 현지화되어 가고 있음을 말해준다. 한국작가로서가 아니라 현지작가로서 인정받고 있다는 뜻이다.
한국인으로서 세계현대미술사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백남준의 작품가격은 수만 달러에서 수십만 달러에 달한다. 적지 않은 작품이 외국 유명미술관에 소장되고 있을 만큼 현대미술의 스타가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전시회 때마다 작품준비에 필요한 경비 때문에 애를 먹고 있다. 작품의 특성 상 재료비와 연구 개발비 따위가 그림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까닭이다.
2000년 구겐하임미술관 초대전 때만 하더라도 수십만 달러가 제작비로 들어갔다고 한다. 그런데 이처럼 천문학적인 제작비의 상당액이 한국기업 및 개인 콜렉터들에 의해 해결되고 있다. 다시 말해 백남준의 작품제작비의 상당액이 한국의 콜렉터들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국제적인 명성을 가지고 있고 미술시장에서의 상품가치를 인정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각처럼 작품이 많이 팔리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백남준이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면서도 정작 배가 고플 수밖에 없는 것은 제작비가 높은 비디오아트라는 특수성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가정에 설치하고 감상하기에는 부적합한 것이다. 하지만 백남준은 누가 뭐라고 해도 한국인으로서 유일하게 세계현대미술사의 흐름을 바꾼 인물로 기록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적어도 비디오아트에 관한 한 그에게 경쟁상대는 없다.
백남준의 경쟁력은 바로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전혀 새로운 세계를 제시한 데 있다. 누구도 시도하지 못했던 새로운 매체 및 표현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한 것이다. 미술의 국제경쟁력이라는 문제의 해법은 바로 백남준에게서 찾을 수 있다.
전혀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보면서 새로운 매체 또는 표현방식을 제시, 자기확신에 의한 세계무대로의 과감한 도전, 그리고 자신의 존재를 납득시키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야말로 국제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이다.
백남준 이외에도 김창렬과 이우환은 국제적인 성가를 높이고 있는 한국작가들이다. 이들 작품은 국제무대에서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이들 역시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본 덕분에 독특한 조형세계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이들의 작품 기저에는 동양사상이 자리하고 있다.
동양적인 감수성 및 사상으로 접근함으로써 서구인들이 진입하지 못한 조형세계를 창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세계무대에서 통용될 수 있는 미술이란 두 가지이다. 백남준이 그랬듯이 전혀 새로운 아이디어로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내는 일과 한국적이면서 동양적인 사상 및 정서를 매개로 하는 개별적인 조형언어 및 어법을 구사하는 일이다.
이 두 가지가 세계미술시장에서 통용될 수 있는 경쟁력이다. 서구인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우리만의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세계는 좁아졌다. 세계단일시장을 꿈꾸는 사람들의 노력이 서서히 현실화되고 있다. 한국미술가들이 활동할 수 있는 무대는 어느 곳에나 열려 있다. 그렇지 않아도 새로운 스타의 출현에 갈증을 느끼고 있는 세계미술계는 전혀 엉뚱한 꿈을 꾸는 천재들을 기다리고 있다.
21세기에 들어와서도 여전히 침체국면에 있는 현대미술을 이끌어 갈 천재는 바로 한국에서 나올 수도 있다. 그렇다. 21세기는 동양시대가 될 공산이 크다. 그런 흐름이 세계 도처에서 감지되고 있다.
최근 요가법이나 불교가 서양에서 새로운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도 우연한 일이 아니다. 이런 시기야말로 한국미술이 세계미술계에 독자적인 자리를 확보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