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연극축제의 양적 팽창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정순모(한국교육문화학회총무, 극단수업상임연출/이론가)
Ⅰ. 연극축제(演劇祝祭, theatre festival)의 고금의 의미
서구에서 신성한 날(聖日)로 번역하는 라틴어 festivalis(축제)란, 지나반도어(支那半島, china)어로는 祝祭, 프랑스어로는 페뜨(fête), 프랑스어에서 파생된 영어로는 festival이다. 갑골문자로 보면, 보일 示(시) 뿌리고 거둔 바람직한 정수(씨)를 제상에 올려 보이고 가르치고 알리는 제사지냄을 의미하므로, <빌 축>(祝)은 신 옆에 머리를 조아려 굵어 앉아 뭔가를 고하고 빌고 기원하며 놀음(가무악극)으로 섬기(놀이)하는 것을 업으로 하는 사내(박수)의 상형(그림)문자이고, <제사 제>(祭)는 살아 있는 사람과 신이 서로 접하여 원초적 금기(억압)을 터트려 새로운 궁극적 가치관계로 사귀는 성스러운 날(聖日)을 의미하는 상형(그림)문자이므로, 위의 분석을 종합하면, 축제는 '신 옆에 머리를 조아려 신이 좋아하는 놀음(선물)을 매개로 섬기며 쌓인 해묵은 것이나 잘못된 계약을 불태워 떨어 트려 신과 새롭게 어울려 사귐(의사소통)하는 행위가 일어나는 곳(空間) 또는 시간(기회, 日, 際)'라고 할 수 있다.
<멀리 흐를演+심할劇>으로 구성된 연극(演劇, 프랑스어 theâtre, drama)이란 무엇인가? 극(劇,)이란 <헤아릴(근심걱정) 우(虞)+돼지(돝) 시+도마(칼, 법칙) 도>로 구성된 것으로 보아 <강(바다)처럼 멀리 흘러 통하고 스며들어 윤택해지도록 하기 위해 구성원이 공유하는 두려운(경외하는) 것을 규칙(원리)에 따라 최대한 돝(돋, 돼지의 순수고어를 동음가차한 것)보이게 하는 반성적 행위>를 말한다. 그러므로 갑골문자와 수메르 신화 및 순수한글로 종합하면, ‘신과 인간 사이에 근심걱정되는 것을 멋지게 드러냄을 매개로 신과 인간, 인간과 인간의 어루는 행위를 통해 상호위해(危害)가 될 수 있는 것을 털어내고 떨어뜨려 신과 인간(구성원, 동료) 모두 상호이익이 되도록 새로운 곳(골, 그릇, kore, korea)에 새 씨(알, 子)을 담아 새로운 알이나 싹이 돋게(adon) 하는 어루는 행위’를 말한다.
따라서 연극축제란 어루는 행위(sex)를 통해 신과 인간관계에서 잘못된 것을 드러냄으로써, 구성원(참여자) 모두가 온몸으로 떨치고 털어내는 새롭게 사귀는(의사소통) 하는 계기가 되는 시공간, 즉 <새 곳과 새 날>(聖所聖日)을 말한다. 이것의 유산이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 예의 무천 등이다. 부여의 영고(迎鼓)는 마음으로 신의 큰 뜻(한알=하날=하늘), 즉 하늘의 (타)이름(云)을 헤아려 새끼를 칠(育成) 것을 신과 마주하여 맹서(서약)의 밝(북)힘의 의미이고, 고구려의 동맹(東盟(은 푸른 새싹이 돋는 봄(동쪽)의 맹서이고, 예맥의 무천(舞天(은 한알(하늘, 태양)의 운행법칙에 대한 서약과 감사에 대한 추임새이다. 따라서 오늘 날 축제도 부여/고구려/동예시대의 것과 본질적으로 변화된 것은 없다. 인간이면 누구나, 이신론적 무신론자라고 해도, 각자 나름의 믿음(신)이 있다. 따라서 같은 시공간을 살아왔고 살아갈 인간이라면, 함께 어울려 정직하게 이루고자 하는 공동체제적 바람직한 가치들이 있기 마련이고, 그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관통하는 공동의 가치를 신이라고 한다면, 축제란 그것이 어떤 것이든, 과거의 경험의 담지체이자 현실반성의 거울이요 동시에 미래의 불행을 예비하고 준비하는 방향타로서 몸의 공학에 근거를 두어야 한다.
Ⅱ. 한국의 지역문화축제 관련 인식의 변화와 한국연극축제의 현황
한국에서 지역문화축제의 발전은, 1965년 ‘지방문화사업 조성법’을 시작으로, 1972년의 한국문화예술진흥원과 아시아의 4마리 작은 용으로 회자되었던 1970~80년대의 지속적 경제성장, 그리고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 한민족의 혼을 일깨운 2002년의 월드컵 등등의 직간접적 중간계기들, 그리고 21세기 문화의 시대라는 21세기 화두와 맞물려, 중앙정부의 관광수입을 통한 지역경제의 활성화 정책, 1994년의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이후, 당면과제가 된 지역 나름의 독자적 정체성 확보와 질적 삶에 대한 역량확보 정책의 하나로 지역문화제 보존 및 생산적 활성화 전략이 정치적 우선순위로 부각되면서, 엄청난 숫자의 크고 작은 지역문화예술축제들이 우후죽순격으로 생산되었다.
연극예술 또는 공연예술계 역시, 전국각지의 지역별 연극관련 축제의 수와 규모의 팽창과 더불어, 1998~2001년까지 3년간 전문 및 일반대학의 연극관련 학과도 기존의 3배인 50여개, 연극 및 영화, 영상산업 관련 공연예술관점으로 보면 80여개 학과로 증식, 2009년 현재 적어도 100여개가 된다. 연극관련 학과 수의 팽창에 따른 연극관련학과 학생들이 주최하는 젊은 연극제의 수와 규모도 급격히 확대, 1998년 ‘제6회 젊은 연극제’의 6개교가 2001년 제9회 젊은 연극제의 참가학교 수는 30개교, 그 결과 2008년에는 적어도 60여개가 되었다. 어쨌든, 연극공연 및 관람문화의 저변교육이 이제 막 이루어지고 있는 한국에서, 대학 연극학과의 경쟁적 증가와 함께, 지역문화의 세계화를 비전적 구호로 내건 거대한 문화축제사업의 경쟁적 증가는, 그 질적 성공여부를 떠나, 경이롭다.
문화관광부의 전국지역축제에 대한 문광부 자료에 의하면 2003년 452개로 추산하였고, 전남이 54개로 1위(11.9%), 경남이 52개(11.5%), 경기도가 49개(10.8%)로 2, 3위였다. 이 중 2003년 문광부지정 전국 문화관광축제만 30개였는데, 세부적인 예를 들면, 고대 가야문화의 발상지라고 자부하는 경상남도 향토문화제경남의 경우, 중앙지원 지역축제는 2건, 창녕군 지원 2건, 중앙지원 우수축제는 4건, 경남도 지원축제는 41건(김해시 4건), 시군자체지원 지역축제는 41건(창원시 6건)이었고, 축제유형별로는 전통(31개), 종합(24개), 산업(17개), 예술(11개), 기타(11개)로 분류되었다. 그러나 일반자료로 보면, 1996년에는 총 412개, 1999년에는 200여 개가 증가한 약 650여 개, 2002년 약 800개, 2009년 현재는 통계가 불가능할 정도이나 대소 모두 합치면 적어도 1000~2000개가 될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연극축제의 자료의 예를 들면, 2000년도 100건 정도의 국내 예술관련 축제의 수 중 공연예술 관련 축제는 40여개, 그 가운데 연극축제는 14건에 불과했다(이화원, 2001). 그러나 2001년 5월 경기도 남양주의 ‘세계야외공연축제’와 2001년 7~8월 경상남도 ‘밀양 여름공연예술축제’등이 신설되기 시작, 축제의 매년 증가추세는 계속되어 2004년 제1회를 맞는 <부산 국제연극제>와 전국연극제 예선장치로 출발한 <울산연극제> 등이 폭발적으로 이어진다. 2004년 한 해, 문화관광부 연극제 지원정책에 의거하여 지원대상으로 선정되어 실천된 14개의 연극제들을 보면, <춘천 인형극제>, <거창국제연극제>, <영호남 연극제>, <포항바다연극제>, <남양주 세계야외공연축제>, <아시아 1인극제>, <밀양여름공연 축제>, <서울 프린지 페스티벌>, <의정부 음악극 축제>, <전국 민족극 한마당>, <서울 국제아동청소년 공연예술축제> 그리고 <연극의 날 축제행사> 등등이었는데, 현재 유초중고학생 대상 10여개의 청소년(아동) 연극제을 포함하여 국내 연극제의 수만 40~50여개가 될 것으로 추산되는데, 한국연극협회, 문예진흥원, 문광부 등도 정확한 파악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Ⅲ. 한국의 문화축제 및 연극축제의 공통과제
어쨌든 연극관련 교육기관과 연극관련 축제의 양적 증폭에 비해, 대학로 중심의 전문연극환경의 열악한 작업조건은 여전히 답보상태에 있다는 기이한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표리부동의 현상의 철저한 의미분석과 교육기관과 연극축제의 수 증대가 한국의 연극지형 발전에 어떤 기여와 병폐를 끼쳤는지를 모색하는 것은 21세기 초반 한국연극계의 과제로 남아 있다. 연극시장의 전반적 확장과 대조적인 연극현장의 답보상태를 어떻게 해석하고 해결해야 할 것인가는 2009년 현재도 큰 숙제로 되물림 되고 있다는 보고가 압도적이다.
그동안 실제로 연극축제사를 통관해 보면 기존의 연극관련축제들도, 예술발표 환경의 급성장에 맞물려, 자구책을 치열하게 모색하는 과정을 거쳤다. 예를 들면, 가장 오래 된 ‘서울연극제’의 경우, 대한민국연극제로 출발했다가 비슷한 시기에 개최되던 서울무용제와 병합, 2001년부터 약 3년 간 ‘서울공연예술제’로 규모를 확장 하였으나, 결국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서울을 제외한 15개 시도가 참여하는 한국지역연극제를 파생시켰다. 2001년 5회를 맞은 수원화성연극제’도 조직구도를 국제적으로 개편하였고, 비제도권의 언더그라운드 음악예술 연극인들의 축제인 ‘독립예술제도, 2001년(9월7일~ 23일)을 기점으로 홍대 앞 전역을 무대로 음악축제, 전시, 공연, 거리축제 등을 아우르는 대규모 종합행사로 확장되었다. 그 결과 대부분 국재규모 아니면 종합예술축제로 평준화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역을 막론하고 2003~2005년 까지 한국의 축제의 문제점은 크게 정체성미비, 축제시기의 편중, 낮은 주민참여, 참여추진자의 전문성부족, 과학적이고 체게적인 평가의 미비, 문화상품으로서의 가치저하 등이었다.
축제마다 차이는 있지만, 예술가 중심의 집행부에 의한 예술적 자율성의 확보의 확장과 지역관객의 성황으로 성공적으로 보이나. 중앙정부의 지원금과 지방자치정부로부터의 보조금, 지역 유력자로부터의 지원금에도 불구하고, 연극과 문화에 대한 사회의 무관심과 몰이해의 상징인 2001년 기업의 문화기부금에 대한 조세감면 혜택을 철폐법안 등으로, 여전한 물질적 환경의 태부족, 예술가 중심의 집행부가 갖는 비전문적 경영경험, 행사결과의 정직한 반성에 의한 결과의 공유과 지속적 개선의 주체의 불문명, 지역사회를 상징하는 문화축제로서 운영의 전문성과 객관적 예술성의 획득, 자율적 체제의 구축의 불가능 등등은, 여전히 연극계의 위기를 논하는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반복되고 있고, 연극계의 현실을 근본적으로 개선할만한 뚜렷한 방안은 여전히 중요한 현안으로 남아 있는 것으로 사료된다. 예술적 방향성 및 자율성을 지속적으로 모색해야 할 과제는 모든 지역 연극제 공통문제로 부각되어 있다.
정치와 경제가 문화와 예술과 어우러져 지역사회, 한국사회의 질적 상승은 여전히 문제로 남아 있다. 더구나 대부분의 한국 지역연극제들은 공통적으로 지역행사를 통해 지역 경제의 활성화와 지역문화예술의 발전 그리고 지역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한 화합을 최대의 과제로 삼고 있다. 그러나 한국 지역연극제의 대다수는 투자대비 실효성은 극도로 낮아, 본래의 비전과 목적과 목표당성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보고되어 있다. 이러한 불만족 현상은 축제 운영자들의 문제인식과 실천의지의 부족, 과감한 정치적 재정적 개선을 위한 지원여건 미비 등 지역축제들 공통점도 있지만 조금씩 다르기도 하다. 그 중 가장 큰 문제점들은 다음과 같다.
1. 한국 지역연극축제들의 지역성과 자율성
한국연극협회와 전국의 지부/지국들에 의하여 주도되는 서울연극제’나 전국연극제를 제외하면 지역연극축제의 서장을 연 것은 춘천에서의 마임축제와 인형극제이다.
1988년경 시작되어 연극에서의 마임극과 인형극이라는 차별화되는 장르에 초점을 맞추고 춘천이라는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차별성을 내세울 수 있는 모범적 연극축제로 자리매김을 한 매년 5~6월에 개최되는 ‘춘천마임축제’와 8월의 ‘춘천인형극제’는 마임극과 인형극이라는 개별장르에 종사하는 연극인들에 의하여 주도되었으며, 현재 지역사회 주민들과 예술가가 공동으로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축제로서 꾸준한 성장을 이루어 내었다.
연극계 전반에 걸쳐 연극축제에 대한 본격적 관심과 논의를 불러 모은 계기는, 1997년 국제극예술협회(I.T.I.)총회 유치기면으로 서울의 ‘세계연극제’와 나란히 선보이게 된 이 축제는 1997년에 이어 1998년 지역 주민들의 정성어린 공조하에 성공적으로 출발, 중도에 과천시 행정당국이 예술감독 업무마저 행정조직 구도 속에 편입시키고자 하여 예술감독직이 연이어 교체되는 진통을 겪기도 했지만, 2000년 ‘과천 마당극제’라는 공식명칭으로 재출범하였다.
한편 1989년 창설되어 경상북도 거창에서 근 10여 년간 지속되고 있는‘거창국제연극제’나 올해 창설된 ‘남양주 세계야외공연축제’와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의 경우, 해당지역에서 작업하는 연극인의 개인적 노력에 의하여 축제가 창설되고 주도되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축제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지방자치 정부로부터의 보조금이 결코 풍족하지 않은 가운데, 오히려 예술가 중심의 집행부가 축제를 발의하고 이끌어 가면서 예술적 자율성이 확보되고 있는 셈이다. 결국 최근 전국 각 지역에서 성황을 이루고 있는 연극관련 축제들의 운영에 있어, 지역사회를 대표하는 문화 행사로서 지역 정부로부터 충분한 경제적 지원을 확보하면서도, 축제의 예술성을 예술가 주도 하에 전문적으로, 자율적으로 구축해 나가야 하는 문제가 가장 중요한 현안으로 부각되어 있다.
2. 업적 과시용이 아닌 진정한 의미의 지역축제
<부산국제영화제>와 <광주비엔날레>와 같은 대형축제는 집중된 목적성과 주제의식, 그리고 전폭적인 투자를 통해 장기적 발전 가능성을 획득한 것처럼, 한국 지역연극제도 인식된 문제점을 올바른 야외극적 정체성을 찾기 위해 밀도 있는 사유와 행정적 반영이 이루어져야 하고 특히 지방자치단체의 막대한 예산지원과 인력동원 대비 효과의 적절성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필요하다. 현재 각 시도가 경쟁적으로 벌이는 축제들은 사실상 역사성을 지니지 못한 채 갑작스럽게 급조한 것들이 너무도 많다. 또한 축제 진행이 선출된 지역 단체장들의 차기선거를 겨냥한 업적 과시욕으로 치루는 경우도 없지 않은 듯하다. 그러기에 지역연극제를 포함, 현 한국 지역축제들의 올바른 발전을 위해 올바른 지원정책, 예를 들면, 우선 축제에 대한 철저한 사후평가에 의해 성공한 축제에 대해서는 과감한 지속적 지원, 뚜렷한 목적과 준비 없이 지나치게 외형적으로 흐른 것은 수정조치 필요가 있다고 본다.
3. 지역민들의 관심과 참여, 지역적 다원성을 고려한 지역연극제로의 변환
지역민들의 관심과 참여, 지역적 다원성을 고려한 지역연극제로의 변환으로 인한 풍성한 프로그램과 볼거리 준비, 야외극의 정체성을 위한 다양하고 지속적인 개선안 모색과 실천이 시급하다(이원현, 지역연극제, 뿌리가 흔들리고 있다: 지역연극제의 문제점과 정체성 확립을 위한 개선 방안306호, 2005, pp.62-65)
4. 지역 연극제의 국제화 전략-공연예술의 국제마켓팅-가장 확실한 상품으로 승부내야.
1998년 아비뇽 한국특집공연은 전통에 기반을 둔 창작 내지는 창의적인 연주, 안무는 한국의 과거와 현재를 세계와 연결시키는 상징적, 독창성과 현대적 창의성을 내보이는 계기가 되었다. 일제, 전쟁, 독재정치, 무리한 고도성장, IMF시대 등 근세사적 한국의 이미지를, 한국 출신의 탁월한 서양음악 연주자들이 예술적 기질과 함께, 한국인의 정신과 문화, 역사가 담긴 전통예술이 7,299명(900석×8일)의 ‘특별한’ 관객에게 직접 다가가, 수백, 천만 명의 공연예술 애호가들에 의해 한민족의 내면에 관심을 갖도록 했다. 한편, 우리 공연단(이매방, 안숙선, 김덕수패, 국립국악원 등) 그 자체로도 쉽사리 전문가와 애호가들, 언론의 관심 프로그램으로 아비뇽 페스티발의 절정을 이룰 수 있는 좋은 조건이 되었다. 사실 무엇을 했느냐오 함께, 사후 파급효과는 국제예술제에서 더 중요하다(최준호, 1998, 문화예술). 저렴한 물건을 많이 팔아 이익을 남기는 경제정책은 문화․예술상품화를 위해서는 절대 피해야 할 점이다. 세계연극제로 인하여 관객이 가장 먼저 눈을 뜨고, 행정, 기업, 예술가가 참을성 있는 단계적투자와 협의로 좋은 상품을 준비하여, 전통예술을 출발하여 세계의 관객에게 내놓을 작품들을 하나씩 창조하여야 하며, 국제교류를 담당인력들이 국내외의 조직에서 그 판을 체계적으로 준비하여야 한다(최준호, 예술속에 담긴 정신과 혼의 이미지를 문화 상품으로: 제52회 아비뇽 페스티발 한국특집, 문화예술 224, 1998, pp.30-32).
5. 미래를 가리키는 방향타로서 몸에 호소하라
의학이 그렇듯이, 성공적인 축제, 특히 연극축제는 몸에 대한 앎의 체제에 기반을 둔 교육공학(educational technology)으로 감동을 주는 학습공동체 기반 예술교육환경설계작품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축제의 역사는 몸을 어떻게 이해했는가에 대한 건강한 문화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동양의 고대축제는 자연 또는 자연과 연결된 고리로서 자연환경과 조화하는 몸을 전제하였고, 따라서 몸의 구성요소 역시 자연에 있는 것들과 동일하다고 보아 오행론 에 근거하여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의 오행이 몸 안의 간(肝), 심(心), 비(脾), 신(腎)의 오장에 대응한다고 보았다.
르네상스시기에 발달한 해부학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시선을 바꿔, 무정형한 몸을 구조와 형태를 갖춘 몸으로 보았으며, 그래서 데카르트는 이런 사유형식의 변화를 철학 체계로 세워 몸과 마음을 나누고 몸을 기계로 보아 고대의 우상을 파괴했다.
이로써 몸은 보편성과 합리성의 잣대로 분석하고 평가할 수 있는 기계와 같은 존재가 되면서, 그것이 근대의 축제관이 되었다. 지금도 한국은 이러한 사고에 안주하고 있다는 한계를 갖고 있다. 몸을 다양한 부품으로 이루어진 기계로 받아들이면서 사회의 질병은 그런 기계가 고장 난 것이라고 생각했고, 고장 난 기계를 고치듯 사람의 몸을 고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자의 건강이 문제가 되고 위생과 환경이 몸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 되는 산업 혁명기를 거치면서, 몸은 기계일 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회관계로 얽혀있는 유기체임을 자각했다. 아는 바대로 20세기 말 몸에 대한 새로운 연구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기계로서의 몸이라는 구도가 크게 흔들린다. 면역학은 몸의 자기정체성은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라, 환경과 상호 작용을 통해 만들어가는 것, 진화라는 긴 시간의 관점에서 규명하는 진화의학 역시, 우리의 몸이 끊임없이 변하는 시간과 공간 속 경험의 흐름임을 주장해왔다. 21세기의 우리들은, 우전공학의 발달로, 기계라는 근대의 우상을 해체하고 새로운 미래의 준비, 즉 우리의 몸은 과거의 경험을 담고 있는 그릇일 뿐만 아니라, 미래를 가리키는 방향타라는 몸의 의학과 몸의 역사, 몸의 철학으로 바뀌고 있다. 세균과의 끝없는 전쟁에서 살아남은 우리 몸속 세포들은 그 치열한 전투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똑같은 적이 또 침입하면 처음보다 훨씬 쉽게 물리칠 수 있다. 수많은 전염병을 겪은 유럽인의 몸속 세포들은 이렇게 단련된 세포들로 바뀌었고 과거에는 무척 위험했던 세균들과 공생관계를 구축했다.
며칠 전, 멕시코 돼지에서 파생된 독감이, 마치 수백 명의 스페인군대의 천연두균이 수십만 명의 아즈텍 인디언을 거의 전멸시켰듯이, 우리인류를 위협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서구문화의 수많은 질병을 경험한 몸은 그렇지 못한 한국인의 몸에 목숨을 빼앗는 무기가 될 수도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몸과 몸을 구성하는 세포는 모두 우리 삶, 즉 사회관계의 소산이이듯이, 사회적 맥락을 무시한 축제는 한국인의 몸의 건강과 행복을 보증하는 핵심요소들과 그들 간의 관계망(시냅스)을 파괴하는 실수가 될 수 있다.
우리의 몸은 관계와 시간속의 몸으로서 경험의 덩어리인 것처럼, 우리 한국인의 몸의 경험은 한국인의 삶에서 얻은 것이거나 선조들에게서 이어받은 것이다. 몸의 경험의 내용은 탄생에서 죽음까지 다양하며, 몸은 경험을 기억하고 저장한다. 몸은 끔찍한 질병과 전쟁의 경험도 달콤한 사랑과 시린 이별의 기억도 내 몸속에 기억한다. 그런 경험들을 후대에 전해주는 우리 몸의 장치가 신경학과 면역학, 그리고 유전학이며, 그런 현상들의 오랜 결과가 바로 진화라는 것이다.
신경학은 기억, 지각, 감정, 인식 등의 현상을 신경세포와 섬유의 작용으로 설명하고, 면역학은 다양하게 역할을 분담하는 림프세포와 그들이 생산하는 물질에 관심을 갖는다. 유전학은 형질의 유전을 유전자라는 물질의 기초에서 설명하려는 것이다. 신경학, 면역학, 유전학 모두 근대정신의 충실한 상속자인 셈이다. 신경학, 면역학, 유전학, 진화론은 이렇게 환원론에 바탕을 둔 유기론의 사유양식이 낳은 몸에 대한 이해방식이다. 따라서 우리 한국인의 몸의 각 부분들은 수없이 많고 복잡한 우리들의 ‘관계’로 이어지며 그 관계는 다시 시간이라는 흐름 속에서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몸은 몸속 부분들의 수많은 관계들이 흘러가면서 그 바탕을 변화시키는 시간과 공간의 흐름이다.
의학치료사로 보면, 관계 속의 몸-신경체과 면역체을 가진 몸은 바로 앎과 삶이며, 이 앎과 삶의 기본은 바로 기억과 경험이다. 기억을 통해 과거와 이어지고 경험은 그 기억을 가공해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과거의 일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기쁨에 가득 차기도 하고 눈물을 글썽이기도 하는 것은 모두 그런 기억이 내 삶과 이어진 어떤 ‘의미’를 생산(구성)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기억을 담당하는 장소가 우리의 뇌이다. 뇌의 각 부분에 자리한 신경세포는 저마다 역할이 있으며, 나머지 부분과 상호 작용해 각종 감각, 인지, 소통, 언어, 기억, 감정 등의 기능을 수행하고, 그런 사건을 하나의 패턴으로 기록해 둔다. 축제란 바로 최근 발견된 두뇌학 또는 첨단공학 성과의 지혜로운 활용과 무관할 수가 없다. 유전공학이 아무리 발전한다 해도, 이러한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신경세포와 신경세포를 연결하는 시냅스라는 무척 복잡한 장치, 즉 인간의 몸은 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장치는 신경세포들의 연결망이지만 경험에 따라 수시로 그 모습을 바꾸며 화학 신호를 매개로 사용하기도 한다. 시냅스는 몸속에 있는 신경세포들과 연결망을 형성하는데 잘 바뀌고, 다양하며 복잡하다. 그래서 우리가 아직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최후의 영역 가운데 하나다.
신경계가 몸의 경험과 기억을 기록하고 가공하는 넓은 의미의 기억 장치라면, 면역계는 세포들의 경험과 기억을 처리하는 좁은 의미의 기억의 조정 장치다. 이 둘은 각자 작동하는 전혀 다른 체계지만 사실은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는다.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사람이 면역력이 약해지고 쉽게 병에 걸리는 것도 이 두 체계가 서로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건전한 문화의 신경계가 외부세계의 인상을 우리 몸에 새기며 그렇게 새겨진 인상에 따라 반응하는 순응 기재라면, 건전한 문화의 면역계는 외부에서 받는 자극과 도전의 성격을 파악해 나중에 일어날 일에 대비하는 일종의 감시체계라 할 수 있다. 면역세포들이 몸을 감시하는 가장 간단하고 효율성이 뛰어난 방식은 모든 것을 자기 자신과 견주어 같은지 다른지를 판단하는 것처럼, 한국인은 한국인만의 문화면역세포를 가져야 한다. 이것이 바로 문화교육이요, 공동체 학습환경이 된다. 이러한 의학사와 교육학적 학습이론과 함께 발전하고 있는 몸의 원리를 무시한 축제는 그것이 어떤 것이든 실패이거나, 한국인의 문화의 면역체계와 신경간 스냅스를 망가뜨리는 것이 독약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