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춤과 의식, 우리시대의 안무가전
2월 7일(수)~8(목), 포이동 M극장에서 공연된 ‘2007 춤과 의식, 우리시대의 안무가전’은 현재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원숙한 안무가들의 현주소를 읽게 해주는 뜻 깊은 공연이었다. 집중 지원을 받는 문화예술 지원정책의 폐단을 일거에 해소시키는 대안 춤이었기에 그 의의는 더욱 크다. 그들이 시대의 우울을 낭만적으로 풀어내는 작업은 오히려 담담하였다.
안산컨템포러리 무용단 상임안무자로 춤으로 시를 쓰는 김은희, 독일, 스위스, 멕시코 초청공연으로 작품성을 인정받은 최경실, 툇마루 무용단 안무자로 『겨울이야기』의 주역 무용수 김형남이 빚어낸 이틀간의 주옥같은 춤의 향연은 관객과 춤꾼이 완전한 호흡을 이룬 격정적 무대였다. 새로운 팬을 만들어 내는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춤들이었다.
김은희 안무 출연의 『주홍빛 화음, A Scarlet Harmony』, 최경실 안무의 『물 좀 주소, Give Me Some Water, Please!』,김형남 안무 출연의『낙서,Scribbling』는 창작 춤의 묘미와 춤 미학의 정체성, 기에 걸 맞는 작품이었다. 세 안무가들의 춤은 삼십 단체의 의례적인 댄스트루기를 훨씬 능가하는 품격과 오락성을 띄고 있었다.
대형 스타들의 실험 춤 참여는 용기가 필요하다. 특히 소극장에서의 창작 춤은 그 비용뿐만 아니라 제한된 공간에서 오는 거리감 때문에 땀방울과 먼지까지도 감지되고 자신을 완전히 노출시키며 능력을 인정받아야 하는 고난도의 테크닉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안무와 춤을 병행하는 추세에서 최경실은 약간 비켜서서 안무만 담당했다.
김은희는 『주홍빛 화음』에서 ‘사랑과 이별의 풍경’을 격정적 서정으로 담아내었다. 갈매기와 파도소리가 조율하는 가청범위 무한의 바닷가에서 여인은 그리움을 탄다. 이글거리는 태양과 사랑에 목마른 여인은 바닷가에 묻힌 ‘빠삐옹’의 죄수가 된다.
빠른 흐름으로 격정적 그리움을 회화적 이미지로 고조시키지만 언제나 푸른 바다와 서정적 톤은 유지된다. 바닷가에서 같이했던 친구들과의 아름다운 시절들은 빨간 로프 전구로 강약이 조절된다. 함축미 있고 다양한 수사학이 구사된 단편 춤의 특질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친구들을 투사하는 장치는 그들의 동경과 그리움을 담은 동화같은 몸짓에서 나타난다. 친구들을 연기해낸 성아름, 강현옥, 박희진, 윤선희의 조무(調舞)는 진한 향수와 그리움을 잉태하는 유닛들이다. 머쉰이라고 불리워지는 전문 춤꾼들은 로봇 이상의 정확성을 소지하면서도 서정성과 리듬감, 다양한 움직임의 묘미를 가지고 있다.
헌화에서 흩어지는 꽃잎들은 적,백의 꽃가루로 무심히 가버린 청춘을 상징한다. 다시 맞는 계절과 재회하기 전에 긴 기다림을 마무리해야 한다. 한 송이 꽃처럼 스포트 안에 동질감을 확인한 여인들은 몸으로 사고하는 길고도 심도 있는 음악 속에 하나가 된다.
그레고리안 성가 톤에 진행되는 의식 속에서 김은희는 ‘남쪽나라 바닷가의 따뜻한 모래가 하얀 까메리아 꽃을 그리워 하듯 그리움을 성스런 물의 제례로 대체한다. 청춘이 담긴 꽃들이 떨어지고 그녀는 순수로 탈의(脫衣)한다.
김형남은 독무인『낙서』로 자신이 춤의 도구가 되어 있음을 알린다. 발레리노의 품새로 누워있는 그의 몸은 손으로부터 작은 소묘를 시작한다. 독어 소음 도플러 오버랩, 그 속에 조명을 벽을 쫓아가고 벽에도 낙서가 진행된다. 전음유희(電音遊戱)와 샹송을 위한 현의 유쾌한 질주는 김형남의 ‘장님들의 코끼리’(촉감과 소회)란 화두를 심화시킨다.
탁자와 사다리를 소도구로 사용하고, 수평과 수직, 사선의 블로킹을 롤링과 점핑, 좌우 상하의 거리감과 공간감으로 채워 넣는다. 적절한 무대분할과 더불어 착의(착의)에서 상황 전개는 흑고니의 검정과 릴리의 백색, 모던 수묵의 분위기로 품격을 견지하면서 조명으로 문인화의 분위기를 선사한다.
군더더기 없는 춤은 시대의 우울을 반추하며, 움직임 하나하나가 몸체화(畵)의 정석을 밟아 나간다. 불안이 엄습하는 불확실성의 그늘, 이끼긴 공간이 그에게 엄습한다. 그는 ‘이 시대의 나의 삶을 진지하게 의식하는 시간도 많지 않지만, 그래도 깨어 있어야 한다. 바람직한 예술가의 삶은 현재의 삶의 가치를 진지하게 드높이며 자랑스럽게 여겨야 한다.’ 라고 주장하는 것 같다.
최경실의 『물 좀 주소』는 바람직한 사회의 희망에 대한 타는 목마름을 삼인무로 표현한 모던댄스 이다. 깨어있는 자들의 절규를 세 개의 의자를 주 소품으로 활용하여 나타낸다. 김현주. 이명훈, 김희중의 저돌적 춤은 빠른 몸놀림으로 위험을 감내하는 파격적 다이내믹 리듬감과 고난도의 테크닉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춤으로 풀어보는 무언극에 가세하는 타악과 현, 리듬과 율동을 조절하는 박은 모던 댄스의 장점을 잘 살리고 있다. ‘겨울성의 비밀’과 같은 신비감에서 일상의 평범으로 급선회하는 비급을 안무가는 잘 전수한다. 의자가 춤의 무기가 되고 한대수의 ‘물 좀 주소’가 주 모티브가 되어 움직이고 구르고 뛰고 구부리는 뻗치고 사랑을 표현하고 갈증들을 재현, 재창조 해내는 작업은 세 개의 잔에 물이 채워 질 때 까지 계속된다.
비보이의 춤이 원용되고, 바닥을 두드리는 리듬감, 급제동의 묘미와 코믹성 표출, 간결미와 통일성 소지, 연습량과 비례한 팀 웍이 살아있는 이 작품은 함성을 축약한 일체음 ‘야’에 따라 붙는 하이 키 조명과 같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 왔다.
‘2007 춤과 의식, 우리시대의 안무가전’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활발하게 춤 실험을 계속하고 있는 춤전용 소극장 ‘M’ 에서 우리시대의 안무가들이 춤에 대한 인식과 그들의 의식을 진솔하게 보여준 용기있는 작업이었다.
장석용(문화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