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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비평의 위기와 진단, 미래의 전망-한옥희(국제영화비평가연맹 한국회장)

장코폴로 2013. 8. 1. 06:59

영화비평의 위기와 진단, 미래의 전망

-대중 비평(mass criticism)의 등장과 전망-

 

한 옥 희(영화평론가)

 

1. 서론 ; 영화비평의 위기

2000년대 이후 한국 영화는 천만 관객시대를 열었지만, 영화비평의 위상은 갈수록 추락하고 있다. 영화 관객들의 증가로 한동안 번창일로에 있던 영화전문 잡지들이 줄지어 폐간되었고, “영화비평의 시대는 끝났는가?”라는 말이 곳곳에서 나온다.

그 원인은 인터넷의 보급으로 대중비평의 시대가 열렸고, 영화인들이나 영화관객들이 영화평론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풍토가 이루어졌다는 외부적인 원인들도 있으나, 영화평론가들이 영화계나 사회 전반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고 고립된 존재로 남아버렸고, 영화평론이 본래의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그 가운데, 2007년 대중과 전문 비평가들의 전면적인 대결양상으로 펼쳐진 심형래 감독의 <디 워>는 대중문화시대의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보여주었다.

<디 워>논란은 보이지 않는 대중들이 인터넷이란 매체를 통하여 전문가 집단의 비평을 공격하고 무력화시키면서, 자신들의 비평적 의견을 직접 피력하고, 그들의 비평적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매우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인터넷 문화의 급격한 확산과 공급이 대중들에게 단순히 수용자와 소비자의 입장이 아니라, 생산자와 비평가로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새로운 공간과 새로운 도전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대중문화 비평의 도래와 전문 비평의 위기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2. 본론 : 대중 비평(mass criticism) 시대의 등장과 특징

 

1)전문 비평의 위기와 비평계의 문제점

1980년대 후반 이후 한국영화는 내부적으로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된다. 그 전까지의 영화는 검열제도 등 정부의 통제아래 많은 제한을 지니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영화계는 종속적인 위치에서 벗어나 자체적으로 담론을 형성하고 대중에게 퍼뜨릴 수 있는 기반을 확보하게 되었다.

이러한 기반이 확보된 가운데, 90년대 초, 글로벌화가 확산되면서 한국영화계는 해외 영화와 직접적으로 경쟁하게 되었다. 그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는 영화인의 자생력과 관객들의 적극적 호응이 힘을 얻어 오히려 위기는 기회가 되었고, 한국 영화계는 거대한 규모로 성장하게 되었다. 이제 영화산업의 규모와 영향력은 종래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진 것이다.

이와 같은 급격한 변화를 겪으면서 영화비평도 변화했음은 당연하다. 단순히 영화를 관객에게 소개하는 영화 리뷰의 차원에서부터, 영화산업 모든 영역에 이르기까지 비평의 관심사는 꾸준히 확장되어왔으며, 그 내용의 깊이나 영화를 보는 다양한 시각의 도입으로 볼 때, 질적으로 꾸준히 성장해왔음을 알 수 있다.

90년대 들어서면서, 동구권의 몰락과 함께 대중문화를 주요한 분석대상으로 다루고 이념논쟁에 관한 사회과학 비평은 쇠퇴하고, 대학가 중심으로 대학문화가 확산되고, 영화가 가장 주목받는 대상으로 떠오른다. <스크린>등 전문 영화잡지들이 발간되어 영화 마니아층을 형성하는데 일조하였다. 그러나 영화 산업의 성공과 비평에 대한 변화가 비평문화의 성공적 발전으로 곧바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영화 산업은 급격히 발달했으나, 비평문화는 오히려 저널리즘의 약화나 평론 기능의 무력화 등의 위기를 겪으며 많은 한계를 드러내었다.

 

그러다, 2000년대 들어오면서 비평의 위기와 함께, 한국비평계의 문제점이 본격적으로 대두되기 시작하였다.

첫 째, 대중이 비평을 외면하고 영화비평이 영화 흥행에 별 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되었다. 오히려 비평가나 저널리스트들의 별점을 많이 받으면, 이를 감춰야 한다는 영화마케팅 담당자의 말처럼 대중들은 영화의 작품성보다는 재미있는 영화인가”, “재미없는 영화인가를 우선적으로 고려하게 되었다.

두 째. 영화비평가의 자질이 하락하고 자신의 견해를 소신 있게 피력하는 비평들이 줄어들었다. 언론매체는 전문가가 쓴 글을 딱딱하고 무겁게 여겨 대중이 외면하고, 믿고 맡길 평론가가 없다.” 고 언론계에서는 반박하였다.

세 째, 아카데믹한 비평과 저널리즘의 비평이 구분되지 않고, 너무 닮아 버렸다.

영화에 대한 학술적이고 체계적인 비평이 매우 부족하다. 비평가들이 그동안 비평의 공간과 시간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던 평론가의 영향을 영화기자들에게 빼앗기면서, 비평의 내용과 질적 측면에서 영화기자들의 리뷰와 크게 다를 게 없고, 비평의 깊이가 없는 글들이 독자층을 잃어버렸음을 보여준다.

네 째. 영화 잡지의 폐간은 영화 저널리즘의 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대중비평이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영화잡지들의 폐간이 본격화되고 있다. 영화잡지 <필름 2.0>이 발행을 중단한 상태이고, <프리미어>도 폐간 결정이 내려졌다. 영화 저널리즘의 위기가 재정적 위기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영화잡지 스스로가 자초한 면이 있다. 전통적인 영화잡지는 영화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기능뿐만 아니라 관객과 영화의 소통 역할을 했다. 영화 전문 저널은 영화들의 '소통'을 어떻게 이뤄낼 것인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어디서 영화의 순환장애가 생겼는지, 또 어떤 영화들이 지금 제대로 숨을 못 쉬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새로운 영화의 소생의 조건이 만들어지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만 한다. 많은 영화잡지를 통해 얻어내는 정보가 호기심을 만족시키는 시시콜콜한 정보들, 단지 소모적인 상품으로서의 영화에 치중될 때, 잡지 또한 시장에서 큰 위기를 겪을 수밖에 없다.

2) 대중 비평(mass criticism)의 배경과 전문 비평의 위기

2000년대 초반부터 세계적으로 비평은 대중이 주체가 되어 비평하는새로운 개념의 비평 양태를 만들어 낸다. 대중은 기존의 인쇄매체나 방송 등의 언론매체와는 전혀 다른 인터넷의 사이버 공간을 통하여 그들만의 독자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비판적 유통망과 배급망을 자유롭게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전문적인 지식이 없어도 비평을 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대중은 인터넷의 카페, 게시판, 블로그, UCC, 트위터 등 수많은 사이버 공간을 통하여 자신들의 자립적인 비평 공간을 스스로 확보해 나갈 수 있었다.

이렇게 대중비평에서 들어난 대중은 전문 평론가들이 제시하지 못했던 참신하고 색다른 각도의 영화보기에서부터 무차별적이고 파시즘적인 양상까지 다양한 얼굴을 보여주었다. 여기서 대중비평 속의 대중이란 단순한 감상평에서부터 개인적 낙관을 가지고 있지 않은 집단 지성으로 대중은 불특정 집단의 평균인이지만, “오늘날 사회의 모든 계급에서 볼 수 있는 우리 시대를 대표하고, 압도하는 종류의 인간으로 한없이 쪼개진 구심점의 덩어리들로 볼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전문적인 글쓰기는 전문가의 권위를 나타내는 행위였다. 17세기 유럽에서 계몽주의와 함께 태동한 예술비평은 전문가의 눈을 통하여 예술작품에 대한 이해와 안목을 길러주는 교육적인 기능을 맡기도 하였다. 예술비평의 형성과정에서 볼 때, 비평은 비평가의 독창적인 몫으로 대중들은 이를 수용하게 만드는 지위에 머물렀다.

기존의 영화 비평이란 영화예술작품에 대한 그 미적 향수의 내용을 어떤 가치의 판단에 의하여 표상하는 사회적인 행위로서, 실제의 비평에 있어서 영화가 비평의 미학적, 기술적인 과제와 만나게 되었다. 한편의 필름을 대할 때, 실제의 비평행위는 대상의 작품에 대해서 기초적인 평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작품의 주제가 요구하는 형식적인 수준의 표현을 하고 있는가. 촬영은 무리 없이 이루어져 있는가. 배우의 연기는 과장되거나 빈약하지 않는가. 음악이나 편집은 잘되어 있는가, 조명이나 채색은 어떠한가. 하는 등등의 작품제작의 일반적인 완성도를 살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훌륭한 작품 주제를 의도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작품의 기초적인 수준이 갖추어져 있지를 않다면, 그것은 좋은 예술작품이라고 평가할 수 없었다. 이러한 기초적인 평가의 조건 아래서 영화의 비평은 그 다음 단계로서 그 작품이 지니는 개성이나 특수성에 주목하게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인터넷의 발달과 함께 대중비평(mass criticism)이 유행하게 됨으로써, 이러한 영화 비평의 영역과 체제는 무너지고, 비평은 대중을 향한 비평이 아닌 대중이 주체가 되어 비평하는 새로운 비평 형태를 만들어낸다.

오랫동안 비평계는 대중비평을 전문비평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받아들였고,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비평으로 정의해 왔다. 구체적으로는 신문, 방송, 잡지, 인터넷 등에 실린 포플리즘에 입각한 대중적 비평을 가리켰다. 비평은 비평가의 독점적 몫임을 못 박아 기존 생산 권력의 독점을 연장시키는 이러한 정의는 대중의 지위를 수용자로 한정하고, 비평가와 대중 간의 주종 관계를 고착시켰다. “비평 생산의 주체는 언제나 전문 비평가이지만, 누구를 대상으로 하는가에 따라 대중비평과 전문비평으로 나눌 수 있다.”는 단순한 정보를 줄 뿐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의미의 대중비평은 사회 전반을 뒤흔들어놓았던 모두가 인정할 만한 획기적 사건들에 의해 모습을 드러내었다. 2002년 월드컵의 응원, 2004년 대통령 탄핵반대, 2005년 황우석 사태 논쟁, 2007년의 <디 워> 논쟁 등을 대중비평 사건의 예로 들 수 있다. 대중과 결부시켜 볼 때. “대중이 자기 결정권을 주장하고 행사하려 한사건들이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대중 스스로 가치를 결정하기를 욕망한 사건들로서, 사건 전개과정에서 자신들만의 소통 구조를 만들어 갔다. 비공식적 소통 구조 안에서 생산, 유통 그리고 피드백을 거치며 대중비평이라는 실체를 구성해 냈다. 지속적인 담론을 통해 구성원의 유대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며, 다른 사안의 대중비평과도 연속적으로 결합되는 과정을 거치며, 대중비평은 대중의 일상 속에서 큰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러한 대중비평이 등장하게 된 배경의 가장 큰 원인으로 인터넷 환경을 꼽는데 누구도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인터넷은 대중으로 하여금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정보를 손쉽게 끌어 모을 수 있도록 도왔고, 기존의 매체와는 달리 인터넷은 논의의 지속성을 가능케 했다. 기존 매체에서 일회적 논의로 그쳤던 내용을 인터넷에서는 지속적으로 공급할 수 있었다. 무한 복사의 기록성과 이동성을 겸비한 인터넷은 그 안에서 이뤄진 내용을 기존 매체로 쉽게 옮기도록 도왔다. 인터넷은 서로 다른 매체를 엮는 상호 매체성을 발휘해 논의가 이동, 지속, 반복되도록 도와준 것이다. 대중비평 사건들에서 전문비평과 대립하고, 자극적이고 단순한 내용을 갖고 거의 모든 비평 영역에 퍼트린 것도 인터넷 없이는 불가능했다.

두 번째는 대중비평의 등장은 지식계의 무능함 틈새를 비집고 대중이 자신들만의 영역을 구축한 결과다. 사회적 현실 비판과 지식생산의 책임과 사명에도 불구하고, 한국 지식인의 사회적 책무에 대한 평가는 바닥을 치고 있었다. 모든 지식인들은 결정적인 순간에도 비겁하게 몸을 숨기거나 숨을 죽이고 있을 뿐이었다. 최근의 김지미의 인터뷰에서도 들어난 것 같이, 90년대 말 연극출신 배우들이 영화계를 점령하다시피 군림했을 때도 이러한 현상을 분석하고 경계해야 할 비평계를 비롯한 영화계는 침묵하고 있었다.

지식인, 지식층의 정당한 발언들이 약화되고, 이 틈새를 비집고 불특정 다수에 의한 대중비평의 온상이 싹트게 되었다. 대중비평은 공식 비평계, 지식계와 대립하면서 자신에 공식 비평이 가해지면 단단하게 내적 논리를 강화해가며 그를 공격하거나 더욱 치열하게 경쟁을 펼쳤다. 황우석 사태나 <디 워> 논쟁 과정에서 때로는 전문지식으로 치열하게 전문 비평과 경쟁을 벌일 수 있었던 데는 공식 비평계에 대한 강한 반발, 불신이 원동력이 되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셋째. 지식계의 무능은 공식적 소통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결과를 가져왔다. 사이버 공간을 통한 새로운 소통 기술이 증대하고 있었지만 공식적, 제도적 소통은 그 반대의 길을 걸었고, 대중은 소통과 참여에 갈증을 낼 수밖에 없었다. 기존매체에 대한 불신과 지식층에 대한 불만은 사회적 테마에 직접 참여해 발언하겠다는 대중의 의지를 강화시켰다. 이는 지식계의 실패, 그리고 소통을 담당한 언론의 실패, 대중의 의사를 담당한 정치의 실패 결과다. 이른바 공적 영역의 비정상화로 인해 생긴 비공식적 소통, 직접 소통에로의 열망이라 할 수 있다. 대중비평이 대체적으로 언론과 정치권력에 불신을 표시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넷째, 과거에 없던 전혀 새로운 사회적 집단의 등장도 대중비평 편재에 한 몫 했다. 도저히 한 데 어울릴 수 없을 것 같은 사람들끼리의 결합이 활발히 이뤄진다. 세대와 이념을 초월해 사람들이 모여 형성된 팬덤도 한 예다. 스스로 정체성을 만들어 집단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정체성의 형성 재료를 제공해야 했다. 집단 속 논객들은 정체성 형성을 위한 진리체계, 감성적 일체감을 느낄 수 있는 상징체계, 하나로 묶여 있다는 분위기 등을 생산해내야 하고, 집합적으로 살을 붙여 대중 비평적 결과를 내놓는다. 그 과정에서 정체성, 일체감 등이 형성된다. 서로 어울리기 힘들어 보이던 구성원들을 묶어야 하는 탓에 대중비평은 모두를 엮을 수 있는 국가주의, 애국주의, 민족주의 등의 진리체제, 상징체제에 의탁하기도 한다. 사회의 불확실성 증대로 인해 새로운 집단의 형성은 늘고, 불확실성 감소와 일체감을 전할 메시지에 대한 요청도 늘었다. 대중비평의 증가는 그에 부응하는 새로운 소통 방식이고 내용이었던 셈이다.

대중비평은 사회가 인정하는 비정상적 공적 영역이 아닌 새로운 영역에서 대중이 스스로를 찾고자 욕망한 결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을 모으고, 모인 자들이 흩어지지 않게 하고, 새로 충원되는 자들을 교육하는 등의 역할을 맡은 대중비평이 등장하게 된다. 대중비평은 한국 사회의 위기감을 보여준 징후이기도 하고, 정당성을 지니지 못한 사회, 그것을 지적할 수 있는 공적 영역의 비정상성에 좌절한 대중이 스스로 소통공간을 구축하고 그 안에서 정당성을 구하려 연출한 풍경이었다. 황우석 사태, <디 워> 논쟁에서처럼 대중이 우회하면서도 동조적 태도를 보인 것은 막연한 불안감 등을 다스릴 자원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을 틈타 일정 세력이 자신들의 방향으로 사회담론, 분위기, 정세를 이끌었다. 공적 영역의 비정상성은 각 개인이 사적 영역에서 스스로를 감당해야 하는 분위기를 띄웠다. 이른바 독재적 대중주의 현상이 벌어졌다. 대중이 독재를 펴거나 독재를 도운 것이 아니라, 흔들리는 대중이 독재적 분위기에 휩쓸려 독재적 힘이 대중의 불안을 충분히 활용했던 것이다.

이러한 현상의 이면에는 대중의 자발적 힘을 활용해 주도권을 잡으려는 독재적 세력이 도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중이 주체가 되었다는 사실에 너무 흥분해서 광분하는 동안, 그 이면을 놓치고 있었다. 그럼으로써 대중비평은 공식 비평도 비켜가고, 유기적 지식도 외면하는 사이, 이를 이용하려는 독재적 세력의 파장만이 대중비평에 미치고 있었다.

 

3) 2000년대 이전, 영화비평의 위력과 양상

영화평론가의 말 한마디가 개봉 영화의 흥행과 실패를 결정할 수 있을 정도로 위력을 발휘하던 영화평론의 전성기가 있었다. 해박한 지식과 유려한 말발로 무장한 영화평론가란 직함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대중들은 그 전문적 영역의 권위를 인정하고 따랐다. 관객들은 교양 있는 지식인으로 대우받기 위한 지적 허영심으로 비록 자신의 취향이나 감정에는 위배될지라도 영화비평의 권위를 인정하고 따랐다.

대중비평 이전의 전문 비평의 위력은 공간적, 시간적으로 대중보다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첫째는, 비평의 공간과 연관된 권력, 기존의 언론매체는 유통과 공급에 있어서 대단히 독과점적이고, 대중의 접근이 어려운 체계적 구조를 가졌던 시대에는, 매체의 속성상 자체 지면을 갖고 특정한 생산자와 기획자만이 만들 수 있는 선별된 콘텐츠들로 구성되었다. 그래서 이러한 언론매체, 신문, 방송, 잡지 같은 전통적인 언론매체에 비평을 실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전문성이 있는 언론집단의 평가를 받았다는 것을 의미하며, 비평적 공간의 폐쇄성은 특정한 지면을 공유하는 특정한 집단의 전문성을 담보하는 가장 든든한 기반이었다.

두 째, 비평의 시간과 관련된 권력에서 볼 때, 영화시사회는 영화 개봉 전에 특정한 시점에서 특정한 극장에서 열렸다. 그래서 영화기자나 평론가 그룹은 일반인보다 영화개봉이전에 영화를 보고, 한발 앞서 영화에 대한 비평을 할 수 있는 시간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갖고 있었다. 비평시간의 타이밍과 함께, 개봉 전 비평의 리뷰 수요는 개봉 영화를 둘러싼 영화 산업계와 비평계의 긴장감을 낳았고, 비평가의 권위를 높여주었다. 영화평론가들은 관객들에게 영화를 선택하는데 중요한 나침반 역할을 할 수 있었다.

셋째. 비평의 내용과 질에 대한 핵심적 권력인 전문적인 비평에는 대중들이 영화를 보았을 때. 비평가는 해설자의 입장에서 한 발 나아가, 독자로 하여금 수잔 손탁이 언급했듯이, “비평의 기능은 예술작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예술을 예술 자체로서 경험해야한다.”는 것으로 예술의 성애학(erotics of arts)를 실현하는 것으로 보았다.

수전 손택은 일생동안 예술의 성애학을 주장했다. 요컨대 예술작품을 억지로 발가벗겨 흠집을 내며 강간하지 말고, 유혹을 즐기고 사랑하라는 것이다.

수전 손택이 궁극적으로 주장했던 건 예술을 인간의 이념과 도덕에 복무시키거나 문화를 좋은 것과 나쁜 것, 고상한 것과 천박한 것, 진지한 것과 가벼운 것 등으로 나누는 이분법에 대한 반발이었다.

소위 지식인들에 의해 좋은 취향이라 장려되는 것들이 실상은 예술의 의미와 가치를 훼손하고 도덕률의 노예로 만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손택은 예술을 내용이 아닌 형식, 즉 스타일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즐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손택에 의하면 예술작품의 내용이란 존재하지 않거나 무의미하다.

 

또한 벤야민이 언급했듯이 비평이란 '결코 씌어지지 않은 것을 읽는 것', 즉 사물의 언어적 본질을 인간의 언어로 번역하는 것이었고, 전문적 비평은 이를 가능케 했다.

벤야민에 따르면 조각, 회화와 같은 예술언어에는 사물을 닮으려는 미메시스 기능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예술의 언어는 음성이 결여된 물질의 형태로 존재하기에 아담의 언어에는 못 미친다. 하지만 미메시스의 기능이 있기에 예술은 언어가 다른 세계의 모든 사람에게 이해가 되는 만국공용어의 역할을 할 수가 있다. 예술은 침묵하는 사물이 가진 언어적 본질을 다른 언어로 옮기는 "번역이다. 그리고 이 번역을 통하여 우리는 신의 창조를, 즉 옛날 아담의 언어로 했던 그 '명명의 작업을 계속해나간다.

 

4) 외국 영화비평계의 현황

영화비평의 위기상황은 해외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세계적인 경기 침체는 언론에까지 영향을 끼쳤고, 영화평론가들도 이를 피해갈 수 없었다. 뉴욕타임스의 평론가 미놀라 다기스가 언급했듯이, 언론과 영화계에서 일자리를 잃는 평론가들이 늘어났다.

영화 저널리즘 분야로는 처음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유명 평론가 로저 에버트는 자신의 블로그에 영화평론가의 죽음, 연예종교(Celeb Cult)의 영광이란 글을 올렸다. 에버트가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최근 AP통신이 내건 정책이다. AP는 모든 연예 관련 기사의 단어 수를 500개 이내로 제한했고, 외도, 이혼, 마약중독, 스캔들 등 대중이 원하는 짤막한 연예 뉴스에 초점을 맞추라고 필자들에게 주문했다.

에버트는 연예종교는 우리의 문화를 산 채로 먹어치우고, 신문은 스스로 몸을 내 맡긴다젊은이에겐 초라한 가치관을 가르치고, 병적인 호기심을 충족시키며, 사생활을 침범하면서도 정작 의미 있는 성취에는 무관심하다고 비판했다.

영국의 월간 영화지 <사이트 앤드 사운드>2008누가 평론가를 필요로 할까?’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특집을 마련했다. 잡지는 많은 인터넷 유저들이 자발적으로 리뷰를 쓰는 상황에서, 신문이나 잡지의 평론을 읽기 위해 돈을 낼 필요가 있는가라고 되물었다.

 

3. 결론 : 영화비평의 전망과 평론가의 역할

영화비평의 죽음은 시대가 변화해가고 있음에도, 비평이 권위를 버리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제는 비평가들 스스로 과감하게 껍데기만 남은 권위를 깨트리고, 알에서 깨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로저 에버트는 영화평론가의 존재를 광산 속의 카나리아에 비유했다. 그는 평론가의 몰락이 문제가 아니다. 지적이고 의미 있는 일에 관심을 보이며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기능이 사라져가고 있다는 점이 문제라며, “뉴스는 여전히 거대하지만, 신문은 왜소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광산 속에 매몰되었다가 기사회생한 칠레광부의 기적처럼 큰 위기가 절호의 기회를 낳을 수 있는 계기를 만든다.

오늘날 비평은 널리 읽히지 않을 뿐 아니라 찾는 이도 드물다. 이를 스스로 대중과 거리를 넓힌 비평의 자가당착이라고 꼬집는다. 대중과 괴리된 채 전문성의 틀에 집착한 결과 비평의 기능을 잃었다는 것. 그는 비평이라는 것은 만드는 것과 보는 것 사이의 대화의 활동으로 간주했다.

오늘날 갈수록 대중들을 현혹시키는 예술들이 늘어나고 있고, 블록버스트, 스펙터클한 뮤지컬, 최신 기술로 무장한 3D, 4D등 영화들이 화려함으로 대중들을 현혹시킨다. 그럴수록 영화비평가들은 주류적 흐름에 대항하는 예술작품에 의미를 부여하고, 작품의 존재가치를 널리 알리는 노력을 이어나가야 할 것이다.

 

관객들은 역동적으로 변해가고 있지만, 평론가들은 그렇지 못하다. 평론가의 지적 수준이 절대적으로 우월하다고 믿는다.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권위, 여전히 대중들보다 더 탁월한 안목과 그들의 영화평론이 뛰어나다고 믿지만, 관객들은 인정하지 않는다. 그럴수록 대중과의 소통과 거리는 점점 멀어질 뿐이다. 전문 비평가들이 대중의 신뢰와 주목을 잃어버린 이 시점에서, 어떻게 다시 이를 되찾을 수 있는가하는 고민을 끊임없이 해야 할 것이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해서 영화계의 이슈나 영화작품에 관해서 심도 깊게 토론을 벌여서 더 많은 독자층을 끌어들일 수 있도록 다각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동안 평론가나 전문가 중심의 각종 영화제의 시상제도가 이해관계에 얽힌 여러 가지 문제점이 노출되자 이러한 스캔들에서 탈피하려는 시도로서, 대중들에 의한 인터넷 투표(60%)와 전문가 심사(40%) 등의 비율을 정해서 관객들의 관심과 참여율을 높이는 것도 이러한 노력의 하나라고 할 것이다.

대중비평을 대중의 퇴행성으로 비판해가며 각을 세우기도 했던 지식계, 공식 비평계는 대중의 조건을 변화시키기에는 턱없이 모자라는 능력을 가졌다는 자기 인식을 바탕으로 대중의 반란, 반역, 혁명과 어떻게 행보를 같이 할 수 있는지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비평과 관련된 지위 위계를 타파하고, 비평 공간의 계층화를 무너뜨리고, 대중비평과 마주하는 일이 시급한 과제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대중비평이 벌어지는 공간 자체를 새로운 공론장으로 인식하는 급진성도 요청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대중에 대한 인식 전환이 시급하다. 대중문화를 추구하는 포플리즘이 아니라 대중 반역, 반란 자체에 관심을 갖고, 그 조건을 챙기며 그것이 사회에서 해낼 역할에 대해 주목하는 일이 이뤄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지식계, 비평계의 대중 인식 전환이 전제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대중비평은 대중이 대중을 향해 벌이는 수행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지식계, 전문 비평계를 겨냥하고 있다. 그래서 반역이고 반란으로 부를 수밖에 없다. 이제 그 부름에 호응할 때다. 옆에 한 자리를 내주는 호혜가 아닌 동지적 태도로 대중과 함께하고 토론하고, 새로운 정동을 만들어가는 일을 더 늦추어선 안 된다. 지식계, 비평계가 스스로를 기존 인식에서 해방하는 일이 우선이다.

예술비평계 전반적인 개혁운동이 일어나야할 때이다. 다른 예술 장르와의 교류를 통한 예술비평의 영역을 확대해 나가야 할 것이다. 비평의 방법론을 교류하고, 타 장르와의 접목을 시도해야할 것이다. 과거의 인상비평이 아니라, 총체적 비평으로서, “비평이 제2의 창작품으로서 새로운 비평의 역사를 써나가야 할 것이다.

 

참고 문헌

1.발터 벤야민(1983), 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 중 기계복제시대 예술작품의 아우라>

반성완 역 민음사

2. 수잔 손탁(2002). <해석에 반대한다> 이민아 역, 이후

3. 원용진(2007). <대중비평 시대를 어떻게 볼 것인가 : 대중비평의 형성 과정>

문학과 사회, 20권 제4, 문학과 지성사

4. 전규찬(2007). <민주적 대중비평 전치의 시빌리테>

5. 백승찬(2009), 영화비평의 시대는 끝났는가> 경향신문 기사

6. 심영섭(2010), <대중비평 시대의 등장, 그리고 비평가와 대중의 거리>

부산국제영화제 영평 세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