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환주의에 대한 일고(一考)
- 표상, 미장센과 동맹한 사운드
장석용(문화비평가, 국제영화비평가연맹 한국 회장)
합리적인 것은 진실하며 진실한 것은 합리적이다.
-헤겔
○ 어울림-무한의 잠재력
예술 상호 간의 어울림으로 새로운 하나의 예술을 창조해내는 행위는 독립 장르가 갖는 예술의 한계를 초월한다. 이 행위에는 장르의 분류로 스스로를 고립시켜 왔던 예술이라는 외계 생명체에게 인간과 어울릴 수 있는 교감과 행위권을 부여하는 넉넉함이 담겨져 있다.
우리 예술가들은 지금까지 많은 실험을 거듭해 왔고, 상업과 예술의 양 축의 용광로 속에서 스스로를 용해시켜야 하는 선택을 강요당했다. 혹독한 빙하기를 거쳐 살아남은 예술가들조차도 투사적 용맹성만을 강조하거나 미학적 이론을 인력해내는 작업에 미약했다.
마르셀 뒤상은 1957년, 휴스턴에서 있었던 ‘단순한 예술가’라는 현대 미학 세미나에서, 소위 창의적 행위라는 신비로운 과정에서 관객이 취하여야할 역할에 대한 정의를 다음과 같이 내린바 있다.
예술가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혹은 왜 하고 있는지를 못하고 다만 영매(靈媒)적인 역할을 할 뿐이며,정작 ‘내면의 삼투작용’을 통해 작품의 내적 가치를 판단하고 해석하여, 그 가치를 외부세계와 연관시켜 창의적인 순환과정으로 완성시키는 것은 관객이다.1)
예술 환경의 변화로 ‘산업으로서의 예술’에 대한 인식이 팽배해 있으며, 근대적 아날로그식
사고방식은 ‘구멍가게’를 회상하는 대형 마트의 시각에 비유된다. 예술가 개개인은 통합을 이루는 유능하고 깨어있는 거대한 유닛이 되어야 한다.
집단에 의해 어울리고 창조되는 예술은 게임으로서의 축구처럼 각자의 영역에 대한 완벽을 요구한다. 생산될 작품에 대한 성공과 실패의 아트 라인에 대한 엄격한 지침이 있었으면 하는 바램을 우리는 최근에 많이 목도해 왔다.
장이모우 감독의 오페라 연출, 김지훈 감독의 연극 연출, 구혜선의 영화감독 등 역할 넘나들기는 흔한 현실이 되었다.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은 클래식(서사성 소지)과 가요(문학성 소지), 오페라와 플라멩코를 통해 춤과 비주얼과의 순환을 시도한바 있다.
시네마 베리떼나 다이렉트 무비가 지향했던 진솔성과 즉시적 어울림의 단초를 제공했고, 오늘날 미디어 산업의 커다란 발전에 기여했듯, 작곡가 임평용, 화가 에르도스 한, 영상 아티스트 이제권 등 일군이 추구하는 순환을 통한 대통합의 예술 작업은 시대적 소명이다.
이 도도한 물결 속에 프랑스 누벨바그의 신선한 순수의 정신과 독일 ‘오버하우젠 선언’2)에서 밝힌 영화 부흥에 대한 결연한 각오로서 예술에 대한 아방가르드적 전복의 가치가 아니라 현상에서 밝혀지는 아름다움에 대한 ‘미적 고양’으로 ‘예안거’(藝安居)를 지지한다.
나는 일군의 예술가들이 각기 다른 자유정신을 숭상하고, 이념과 출신을 떠나 통합과 평화를 추구하며 미적 아름다움을 밝히는 이러한 순환주의 정신의 작품들이나 예술행위를 인체의 5감각과 텔레파시에 이은 제7감각의 예술이라고 명명한다.
○ 그림자놀이에서 시작된 입체항해
영화 『아바타』의 흥행성공으로 지금 우리는 온통 입체영화와 3D에 관련된 매체에 온통 정신을 빼앗기고 있다. 스쳐 지나간 매체가 다시 각광을 받고 있는 셈이다. 입체영화는 1838년 찰스 웨스톤 경(Sir Charles Wheastone)이 두개의 그림을 다른 각도의 거울에서 보게 하는 입체경을 고안하면서 입체영상의 효시가 되었다.
1895년, 정사진이 『열차의 도착』(1895)같은 활동사진이 되었을 때, 영상혁명은 시작되었다.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흑백영화에서 색채영화로의 변신을 거치더니, 필름사이즈의 다양한 변화와 스크린 배율의 변화를 거쳐, 이제는 평면과 입체의 승부가 펼쳐지고 있다.
초창기의 영상의 역사는 영화역사와 더불어 진행된다. 고로 영화의 역사를 살펴보는 것이 곧 영상의 진화 혹은 발전의 역사이다. 영상의 발전은 특히 서구를 중심으로 국가 간에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프랑스에서 출범한 115세의 영화, 영상은 모든 예술을 선도하고 있다.
1900년 파리박람회에서는 애너글리프(Anaglyph) 방식3)의 입체영상이 소개되었고, 공개 입체영화 상영은 1915년 6월 10일, 뉴욕 애스터 극장에서 에드윈 포터와 윌리엄 바델에 의해 시도되었다. 최초의 상업영화는 『사랑의 힘, The Power of Love,1922』였다.
1926년 영국인 존 로지 베어드는 기계식 TV를 발명했고, 브라운관을 발명한 사람은 독일인 1897년 칼 브라운이다. 1936년 BBC는 세계 최초 정규방송을 시작하면서 마르코니 EMI 사가 개발한 전자식 시스템을 사용한다.
미국 최초의 흥행 입체 색채영화는 1940년 뉴욕 만국박람회에서 상영된 존 놀링의 크라이슬러 자동차 조립 영상이다. 1950년대 TV의 본격 등장으로 미국에서는 입체영화 붐이 일어 미국 내에서만 70편 이상이 개봉되었다.
헐리우드의 변모를 살펴보면 영상의 변모를 읽을 수 있다. 1952년부터 1962년 10년간 미국은 엄청난 영상 변화를 체험했다. 1952년 미국은 전국에 처음으로 1년 내내 TV 네트워크가 가동되었다. 와이드 스크린과 스테레오 사운드가, 보다 실용적이고 값싼 컬러가 등장했다. 이제 영화는 풍요로운 여가 시간을 빼앗기 위해 새로운 활동과 경쟁해야 했다.
1950년까지 100개의 방송국 개설과 400만 대의 TV 세트의 보급이 이루어졌다. 수천편의 장편영화들이 방송프로그램과의 경쟁을 위해서 독립방송국을 대상으로 직접 판매나 판매대행을 하였다. 1961년까지 지방까지 과거 주요 영화들을 방영하기 위해 방송망이 구축되었다. 1960년대 중반 쯤 직접 TV에 방여하기위한 영화들을 만들어 내었다.
1952년 가을에 처음으로 3-D 장편영화 『브와나의 악마』는 아치 오블러 감독에 의해 선보였다. 그 매력은 1년을 가지 못했다.
1980년대에는 아이맥스 입체영화가 등장하였다. 1986년 밴쿠버 만국박람회의 『변천,Transition,20분』은 캐나다 국립 영화협회가 제작한 작품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21세기 도래하자 입체영화는 디지털기술의 조력으로 전기를 맞이한다. 제임스 카메론은 2003년 개봉한 『지옥의 유령, Ghost of the Abyss』으로 디지털 입체영화의 서먹을 연다. 리얼리티 카메라 시스템으로 HD 카메라를 이용했다. 디지털 입체영화가 증가하면서 추가비용을 고려, 애니메이션이 급증하고 있다.
『스파이 키즈, Spy Kids 3D : Game Over,2003』,『치킨리틀3D, Chicken Little 3D, 2005』, 『베오울프, Beowulf, 2007』등이 등장했고, 새로운 에피소드들이 쌓여갔다. 디지털 입체 상영관의 평균 수입이 일반 개봉관의 3배로써 이 매체의 상업성이 부각되었다. 이로써 디지털 입체 영사설비가 붐을 이루고 있다.
2009년 개봉한 『몬스터 vs. 에이리언, Monsters Vs. Aliens』은 미국 내 4,104관 7,300개 스크린에서, 30%를 차지하는 디지털 입체 상영관에서 전체수입의 55%를 차지했고, 『 블러디 발렌타인 3D, My Bloody Valentine 3D, 2009』은 전체 수익 가운데 80%이상을 입체영화 상영으로 확보하게 된다.
2009년 12월, 『아바타』과 개봉과 흥행 성공은 대기업의 입체 영상산업 진출을 촉진시키는 도화선이 되었고, 이 세기적 사건의 주인공은 삼성 그룹과 콘텐츠 개발을 하기로 합의해앞으로의 추이가 주목되며, 입체영상 산업이 영상의 주조를 이루겠지만, 과거의 경험이 입증하듯 소비자들의 전폭적 지지가 없다면 매체의 향방을 가늠하기 힘들다.
○ 흑백 여린 추억 속의 채색 공간
영화 매체는 영사에서 환등을 이용한다. 영화의 태초에 빛이 있었다. 영화의 유아기에는 열차의 도착, 퇴근하는 공장의 직공들, 정원에 물 뿌리는 장면 같은 기록적 테크닉으로 출발한다. 영상만 있었던 무언극 시대였다. 그래서 악단의 음악이 가미되었다.
이른 빛에서 공유의 공간으로 이동한 영화는 영상과 빛, 음악을 공생시킨다. 영화 속에는 이야기들이 정좌하게 된다. 오버 랩, 클로즈 업 등 영화언어들이 생겨나고 점차 영화는 장편을 지향하게 된다. 멜리어스의 『월세계 기행』(1902)은 SF 영화의 효시가 된다.
그리피스의 『국가의 탄생』,(1915),『인토러런스』(1916),찰리 채프린의 『어깨 총』(1918)과 같은 장편이 산업으로 커온 미국영화는 1918년 말, 1차 대전이 끝날 때 까지 독보적인 영역에 이르렀고 1910년대에 미국에는 28,000개의 영화관이 존재했다.
시외스트룀의 『소택지 밭에서 온 소녀』(1917), 칼 테오도르 드라이어의『의장』(1919』,스틸러의 『에로티콘』은 초기 스웨덴과 덴마크 영화의 화려한 서막을 열었다.
독일의 무성영화(1919년~1925년』는 1)건축학적인 무대장치, 낭만적인 조명, 군중장면처리 2)표현주의적 무대장치, 오래된 전설과 민요로부터 주제를 따온 음울하고 환상적이고 섬뜩한 영화들 3)시간, 공간, 행위의 일치를 양식으로 실내극의 우수성을 입증하였다.
로베르트 비네의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1919),무르나우의 『노스페라투』(1922)와 『마지막 웃음』(1924) 등은 70년대 후반에 한국 독일문화원에서 상영된바 있다. 이들 영화들은 미국영화계들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몽타쥬론으로 세계영화사에 족적을 남긴 소련영화들(1925~1929)은 예술성과 변증법으로 소련영화를 철학적으로 접근, 논리적 근거와 이론전개의 틀을 마련하였다. 지가 베르토프의 『카메라를 든 사나이』(1928), 에이젠 슈쩨인의 『전함 포템킨』(1925), 프도프킨의 『아시아의 돌풍』, 도부첸코의『대지』는 당시 소련의 대표작이다.
키노드라마 『의리적 구토』(1919)가 등장한 한국의 어설픔과는 달리 전 세계 곳곳에는 영화운동과 이론 확립, 새로운 예술 형식들이 영화의 토양을 풍부하게 만들었다. 프랑스에서는 프랑스의의 인상주의자들과 아방가르드 운동으로 필름다르와 포토제니 운동으로 영화의 독창성을 추구하고 있었다.
이 시기의 영화들은 아벨 강스의 『나는 고백한다』(1919),루이 델뤽의 『열광』(1921), 루이 브뉘엘과 살바도르 달리의 『안달루의 개』(1928),장 엡스텡의 『세게의 종말』,장 콕토의 『시인의 피』등이 있다.
1920년대의 헐리우드 영화는 대량제작, 선전, 판매에 있어 탁월한 수완을 발휘하였고, 영화가 대기업화 되었고, 소비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모든 장르를 헐리우드는 충족시켜주었다. 『찰리 채프린의 『키드』(1921), 로버트 플래허티의 『북극의 나누크』(1922), 데밀의 『십계』(1923), 키튼의 『장군』(1927)등이 이 시기의 작품들이다.
영화는 1927년 10월 6일 대사와 음악, 그리고 기타 음향을 합한 최초의 극영화 『재즈 싱어』(알란 크로스랜드 감독)가 워너 브러더스에 의해 공개됨으로써 본격 사운드의 도래를 알린다. 이전의 작업들은 부분적 실험으로 간주되었다.
혼란스런 축복, 사운드는 영상, 대사, 음악, 소음의 대위법으로 복잡한 정서와 발현을 허용하였다. 물론 움직임과 리듬은 시각에 호소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1932년까지 후시녹음과 믹싱이 이루어졌고, 1935년까지 옵티컬 사운드는 비약적 발전을 하게된다.
당시의 주파범위 100~1,000 사이클은 1970년 돌비 작음제거회로가 부착된 35mm 스테
레오 옵티컬 트랙이 출현하기 전까지 표준적인 것이었다. 1930년 루이스 마일스톤의 『서부전선 이상없다』와 존 포드의 『제보자』에 이르면 완숙한 발성영화가 만들어 진다.
프랑스 영화의 황금기는 1935년부터 1939년까지 이다. 문학적, 연극적, 회화적 전통이 살아났다. 1930년대 말을 특징짓는 5인의 감독은 자끄 페데의 『플랜더스의 축제』, 쥴리앙 뒤비비에의『무도회의 수첩』(1937), 마르셀 빠뇰의 『세자르』(1936), 장 르노아르의 『게임의 법칙』(1939), 마르셀 까르네의 『안개 낀 부두』는 이 시기를 특징짓는 명작이다.
1930년대 미국영화는 지속적 매력을 제공한다. 미국 최초의 뮤지컬은 로이드 베이컨의 『42번가』(1933)였다. 춤은 시각적 무대장치가 제공하는 모든 암시로부터 나온다.
찰리 채프린의 『도시의 불빛』(1931),르로이의 『도망자』(1932),쿠퍼와 쉐드삭 공동 연출의 『킹콩』(1933),혹스의 『20세기』,카프라의 『디즈씨 시내에 가다』, 프레밍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존 포드의 『역마차』등은 이 시대를 읽는 핵심 키워드 작품들이다.
필름 누아르는 양식이나 태도에 있어 많은 진전을 이루었다. 1940년대 헐리우드 영화는 리얼리즘을 거치면서 알프레드 힛치콕, 윌리엄 와일러, 프레스톤 스터지스, 오손 웰스, 마이클 커티스, 존 휴스턴과 같은 명감독의 작품들을 감상하는 행운을 얻었다.
존 포드의『분노의 포도』(1940), 오손 웰스의 『시민케인』(1941), 마이클 커티스의 『카사블랑카 』(1943), 쿠커의 『가스등』(1944), 와일더의 『잃어버린 주말 』(1945),오일러의 『우리생애 최고의 해』(1946),카잔의 『부메랑』(1947),다신의 『벌거벗은 도시』(1948), 마르크 랍슨의 『참피온』(1949)은 시대의 영상 발전을 가늠케 하는 작품들이다.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은 로베르토 롯셀리니의 『무방비 도시』(1945)와 『독일영년』(1947), 비토리오 데 시카의 『구두닦이』(1947)와『자전거 도둑』(1948), 루치노 비스콘티의 『강박관념』(1942)과 『흔들리는 대지』(1948)등은 전후 이탈리아가 겪었던 실제 상황 을 사실감 있게 담아낸 작품들로 많은 에피소드들을 담고 있다.
1950년대 이후부터 아시아 영화의 예술성 탐구는 인도와 일본의 전통에서 발견된다. 인도의 사티아지트 레이의 『파더 판찰리』(1956)로 본격 알려진 인도영화는 현재까지 허리우드 영화를 능가하는 막강한 괴력을 발휘하고 있다.
일본영화는 『라쇼몽』(1950)의 구로자와 아끼라, 『산초대부』의 (1954)미조구찌 겐지, 『도쿄이야기』(1953)의 오즈 야스지로 3인의 일본영화의 황금기 배양은 지금까지 일본영화가 해외에서 인정받는 계기를 만들었다.
한국영화의 황금기를 연 대표감독들은 감독은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1961)의 신상옥,『오발탄』(1961)의 유현목,『하녀』(1960)의 김기영, 『갯마을』(1965)의 김수용 감독 등 이다. 이들의 후학들은 한국영화를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 표상과 미장센을 인력한 사운드
뉴 미디어의 탄생으로 힘을 실은 음, 색, 빛이 실시간에 일정한 순환(Circulation)을 통해 교감되고 새롭게 인지되어 완성되어지는 행위를 순환주의(Circulatism), 그 결과물을 네오 액티즘(Neoactism), 즉 순환을 통한 신 행위 혹은 신 행위주의라 일컫는다.
예술 간의 조화로운 어울림과 조력은 차원이 다른 신예술을 창조한다. 순환과 행위의 재발견은 새로운 개념의 이론창출 뿐만 아니라 예술 장르간의 새로운 이미지 확장과 시대에 걸 맞는 이미지의 수사학으로 창조된 예술적 상상력을 일반에게 제공한다.
전제 조건 혹은 오해에 대한 변명, 신 행위주의를 인력하는 예술 장르 간, 미적 요소들에 들에 대한 순환(순환주의)은 누구나 교감하는 동질 단순 조합이 아닌, 기 존재의 미적 아름다움을 일깨워 내며 재해석해내는 창의적 예술이다.
신 감각기관의 교차와 조합이 만들어 내는 사운드, 칼라, 영상의 조화로운 랑데뷰는 과거와 현재를 연결시키고, 미래의 무한가능성을 실증하는 ‘즉흥’ 세레모니이다. 이런 행위주의 예술은 텔레파시에 이어 7感을 찾아내는 일이다. 이 과정에서 여과, 순환이 이루어진다.
순환 작품들은 독립 장르이며 음악표현의 현재성, 타 매체와 하나 된 회화의 현재성, 영상의 현재적 수사, 중심으로서의 인간, 주제에 밀착되는 조형물의 배치, 움직임의 가세는 신행위의 익숙한 풍경이다. 특히 빛은 진실과 허구의 경계에서 비전의 주체로서 기능한다.
빛의 자유분방한 발광은 하이데거의 빈터의 트임(Lichtung)에 자연스럽게 귀착된다.
“빛은 말하자면 빈 터 안으로 그 빈터의 트인 자리 안으로 들어올 수 있고, 그 안에서 밝음과 어둠으로 하여금 서로 어울리도록 해줄 수 있다. 그러나 결코 빛이 먼저 빈터를 생겨나게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서 빈터, 그 트인 자리는 밝음과 어둠에 대해서만 열려있는 것이 아니다. 소리의 나타남과 사라짐에 대해서, 울림과 멎음에 대해서도 역시 열려 있는 것이다. 빈터는 현전하고 부재하는 모든 것에 대하여 열려져 있는 자리이다.”4)
트임의 행위는 빛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실 발자국 몇 개 만으로도 假진실의 공룡시대를 열 수 있다. 팩션의 진정성을 첨가키며, 영상의 포괄적 깊이에 따라 다양한 미장센과 행위의 실천 방향을 제시하는 창작은 침향처럼 깊고 긴 호흡으로 내면의 영혼을 일깨운다.
회화의 기본 미적 구성 참여는 첨단 영상을 채용, 붓끝에서 표현되는 예술 작품들을 3차원 영상 결과물로 전환, 빛으로 승화시킨다. 이런 새로운 예술에 대한 가치와 당위성을 천명하는 작업들이 순환의 일차적 책무이며, 즉시성 현대담론 생산의 공장이 될 것이다.
행위주의 판타지아는 솔거의 미작(美作), 우륵의 음림(音林), 태양을 반사하는 석굴암의 석불(Steinbudda)에 혼을 불어 넣어 생동하고, 현대 조각에 실핏줄이 돌게 하는 마법의 예술 영지를 확장한다. 이 작업은 단절된 문을 허물고 신 예술언어를 찾아가 고 있다.
신 행위주의 작가들이 다루는 청각의 기본 질료인 음의 구성은 살아 있는 것들만으로 만들어 낼 수 있지만 음악적 요소 중에 색채감과 공간감이 강조된 구성, 연주자 좌석배치의 조형적 구성, 연주 복의 회화적 바탕색 처리 등으로 들어 있다.
음과 비주얼의 관계를 밝힌 괴테와 보들레르의 글은 예술의 위치와 역할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회화적 구성은 회화적 요소 중에 공명감, 공간감이 강조된 구성, 자연의 소리와 악기재료를 배경으로 하는 표현, 연주자의 이미지를 소재로 삼는 표현, 화가의 청음을 통한 표현 등도 고려된다.
「괴테는 『색체론』에서 “시각적 세계의 무한함을 거부당한 맹인은 청각적 세계에서 삶의 무한함을 가질 수 있다.”는 발언을 남기고 있다. 보들레르 또한 ‘리하르트 바그너와 파리에 서의 탄호이저’라는 글을 통해 음악이 자신에게 불러일으킨 내적 공간의 무한한 역동성을 시각 이미지로 옮겨 놓으며 하나의 상징적인 시학을 선보인다. ‘풍경의 시학’이라 이름 붙일 수 있을 그것을 통해 드러나는 것은 생의 무한한 깊이다. 」5)
빛의 구성은 밴쿠버 동계 올림픽이 보여준 모든 것이 정답이다. 이 가변의 현대 예술 작업은 투자의 질에 따라 작품의 가치가 드러난다. 욕망의 모호함을 표현하는 빛의 향연 루미에르, 공명으로 연주되는 러시아 사운드, 발광하는 회화 등은 움직임을 감지시켜 준다.
개별 요소인 음, 빛, 영상이 발동하면 작동하는 장치는 고전이 되어버렸다. 재래시장의 상품진열에서 현대를 보거나 고무신에서 워커를 생각해내는 법고창신(法古創新) 정신과 작업이 거룩한 순환, 신 행위주의 자아 성찰의 핵심이다.
해바라기는 빛을 따라 움직이지만, 인공광은 주인공인 인물과 오브제를 따라간다. 다양한 칼라를 입히고 조형을 더한 빛은 입체단면의 분자들의 분포를 영상화 하게 된다. 기계적 빛의 흐름과 인간의 감성이 섞인 연주, 즉흥 회화 작업은 비주얼 영역을 극대화 시킨다. 세상의 암호를 여는 새로운 코드로서 순환주의 예술은 장애인의 카약타기에 비유될 수 있다.
순환을 통한 신 행위주의는 규정지우고 개념화 할 수 없는 색, 음, 광의 자유화 선언이다. 혹은 미래를 향한 통합으로서의 평화에 대한 갈망, 자연과의 교감 모색 혹은 불확실성에 걸친 미래에 대한 확실성 포획의 부분이다. 지속적 순환과 의미역사로서 예술 활동은 예술가들의 감성적 표현이며, 우리 사회의 발전과 가치를 높이는 촉매이다.
영상 산업의 비약적 발전으로 순환주의는 필연적 태생의 당위성을 갖는다. 미지와의 낯 설은 만남이나 부존(不存)의 확인이 아니다. 디지털 혁명, 그 다양한 영상 스펙트럼은 편광으로 거리 지각의 착시를 강화시킨 3D, 여기에 의자의 흔들림과 바람, 연기, 향, 물방울 등 특수효과를 접목시킨 4D를 개척하며 무한궤도를 질주하고 있다.
비빔밥은 고유한 색과 향, 맛을 유지하며 상이한 반찬과 재료들이 어우러져 섞이고 스며야 하나로 뭉쳐지는 음식이다. 이처럼 어우러져 하나가 되는 예술이 순환주의이다. 만다라 의식처럼 과정이 철저하고 의식이 끝나면 공유했던 사람들의 마음에 그 느낌이 각인된다.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예술들에게 ‘Sight and Sound' 의 주인공 중 하나인 빛을 동참시킴으로써 예술은 더욱 선명하게 관객에게 전달된다. 회화 속, 공명감을 띤 공간과 가시음이 존재한다. 음악에는 음이 주는 색채, 빛. 그리고 조형적 공간이 형성된다. 단 한사람의 주도적 예술가만 주목을 받는 행위는 배제되며, 모두가 다 영웅이 되는 작업이 신 행위주의이다
「낭만주의 시대 들라크르와(Delacroix)는 ‘회화라는 이름의 음악’을 늘 꿈꾸었다.
추상미술의 선구자라할 수 있는 칸딘스키(Kandinsky) 또한 ‘회화의 화성학(和聲學)’을
염두에 두고 색채의 음악가가 되고자 했다. 물론 작곡가 쇤베르크(Schönberg) 등과의
교분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겠지만 그에게 구성(composition)이란 콘서트의 오케스트라나
마찬가지이다. 파울 클레도 세계의 리듬, 생의 리듬, 존재의 리듬을 화폭에 옮기고자 애썼다.
스위스 베른의 미술관을 가득 채운 그의 회화는 순수한 리듬이다. 거기에 더해 순수 음악의
상태를 지향했던 상징주의 시인 말라르메의 언어 등등 이미지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
예술가는 무수히 많다.」6)
근대미술사에서 예술가들의 작품 소재가 되어 온 현대문명은 장르 간 순수 예술과 진보적 관계를 형성한다. 자연, 사회, 기계 문명, 과학 등은 인간과 함께 이러한 흐름과 시대를 조우하며 이것으로 형성된 예술들로 부터도 순수성을 찾아볼 수 있다. 순수한 사람들이 열정적으로, 신 행위주의의 장점을 능력껏 발휘하는 예술운동은 광폭지지를 받을 것이다.
신 행위주의 예술은 음악과 회화를 평면이 아닌 3차원의 공간에서 끊임없이 순환하는 순환주의라는 새로운 예술방식을 제시한다. 목지필화(木芝必花), 심기운 씨앗은 자라 나무가 되어 꽃을 피우고 반드시 증식을 위한 열매를 맺는다. 예술적 독창성을 인정하면서도 공유와 교차가 빚어내는 장점을 최대한 이용, 무한의 예술의 확장, 진보를 성취 하자는 것이다.
가공할 상상력의 수퍼 포스트모더니즘의 총합 혹은 초월을 지칭한 순환은 과거의 재현 혹은 추리를 바탕으로 클래식한 복고의 도도한 물결위에 수사적 테크닉으로 시공을 초월한 서사와 스토리를 창출해내고 있다. 위대한 예술 사상들은 재난과 혼란의 시기에 탄생되는 법이다. 가장 밝은 번개는 캄캄한 밤의 폭풍 속에서 나온다.
그래서 Neo 라는 접두어를 행위주의의 -ism 앞에다 붙인다. 이 운동은 사목단(寫牧丹)의 이미지처럼 곧고,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모든 행위는 주창자와 주변 집단의 동의로 이루어진다. 많은 영상에서 보았던 홀로그램 기법과 합성, 색의 가미, 리듬감을 실음으로써 환상이 현실처럼 느껴지는 예술 판타지아 시대를 열고 있다.
특히 영상과 인접 예술과의 신 행위는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2010년 밴쿠버 동계 올림픽 개/폐막식 공연은 그 전범(典範)이 아닐까 생각된다. 한 올의 건반, 한 터치의 붓, 한줄기의 빛이 이룰 거대한 네오 액션의 숲을 그려보자. 문학, 춤, 미술, 연극, 음악 등에서의 영상과 사운드는 개별 예술의 심도를 높이며 크로스 오버가 진행 중임을 알린다.
후기 표현주의의 만개, 그 순수의 혼합체는 거칠 것 없는 신 행위주의의 탄생을 알린다. 예술 장르 간의 통합, 공조, 즉시성은 균제, 시메트리의 예술을 고무하여 평화를 고양하고 자연과 인간이 하나 되는 순환과 소통의 새로운 예술 길을 닦아 강제와 억압에서 감상자의 자유로운 판단과 상상력을 제공한다.
느림의 미학에서 분, 초를 다투는 모든 예술적 제 행위를 수용하는 신 행위주의 상의 작업 개념은 고정적 편견을 부정한다. 디자인, 무대, 색채, 조명, 그래픽 등은 현대적 동선을 따라 단순하지만 치밀한 장치가 수반된다. 순환하는 물의 흐름과 같은 자유로움으로 영혼의 울림을 듣게 하고, 석고화된 그림이 아닌 이미지 이동이 가능한 신화(新畵)를 보여준다.
○ 경계 허물기 혹은 문 열어두기
영상과 예술의 접목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일체감을 나타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살아있는 영상은 1919년 『의리적 구토』의 배경무대용 영상이 효시라 할 수 있다. 일제 강점기의 최승희나 조택원의 춤은 영화에 독립적으로 살아있었고, 21세기 동시대의 영상은 다양한 매체와 기기와의 결합으로 모습을 달리하고 있다.
2010년 유월, 우리는 영상의 홍수 속에 계절과 시간을 잃어버리고, 뉴미디어 영상미학의 수혜자 혹은 방랑자가 되어가는 영상기술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타 장르의 발전을 위한 영상의 사용 및 융합은 필연적 선결 조건이 되어 왔다. 대량, 선동적 파급효과를 불어 일으킬 수 있는 영상은 매체의 카리스마적 성격을 여전히 소지하고 있다.
마야 데렌, 알렉산더 하미드 공동감독의 『오후의 올가미, 1943,16mm, 색채, 14분,』과 같은 실험영화 영상과 더불어 조던 벨슨의 『현상,1965,16mm, 색채, 6분』,『사마디,1967,16mm, 색채, 6분』,『모멘텀1967,16mm, 색채, 6분』,존 휘트니의 『카탈로그,1961,16mm, 색채, 7분』,『퍼뮤테이션,1967,16mm, 색채, 8분』, 존 스테후라의 『사이버네틱 5.3,1965-1969,16mm,컬러,8분』,테리 릴리와 아를로 액튼 공동 감독의 『공들의 음악,1969,하이-밴드 컬러 VTR, 15 ips, 23분』,필립 매칸나의 『사물의 제국,1969,하이-밴드 컬러 VTR, 15 ips, 20분』,제임스 시라이트의 『TV를 위한 카프리치오,1969,하이-밴드 컬러 VTR, 15 ips, 5분』과 같은 독자적으로 성장한 영상들, 백남준이 컬러-브라운관으로 수행한 3가지의 실험들과 같은 비디오 아트들을 비롯한 영상작품들은 인접 장르 예술들의 매너리즘을 깨는 역할을 하였다.
이후 로버트 알트만과 조지 쿠커와 같은 영화감독들의 작품들이 영화 실험작들로 상업영화들을 계몽시켰다. 오늘 이 시점에서도 지속적 실험적 영상 작품들이 탄생되고 있다. 기록영화의 기여와 비약적 발전, 3D의 주전으로서의 만화영화의 변신, 아방가르드 작품의 불멸의 현존으로 영상예술은 아직도 예술을 선도하는 파급력 높은 매체로 인식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무용가 김현옥7)과 영상 연출가 육정학8)이 춤과 영상의 접목을 계속해왔다. 또한 이 결과로써 얻은 영상들은 독자적인 기능을 하며 영상의 토양을 풍부하게 하는 자양분의 일부분이 되었다.
현대 영상은 결혼식장에서 볼 수 있는 단순 영상, 버스나 지하철의 광고, 휴대폰 등의 기기에서 볼 수 있는 영상, 무대에서 춤의 리얼함을 드러내기 위한 도구로 쓰이기도 하고, 프리젠테이션에서 없어서는 안 될 매체가 되기도 한다.
영상기술은 나날이 발전을 거듭한다. 사진의 발달에서 시작한 활동사진, TV의 등장, 채색 TV의 변신, 마그네틱 테입의 변신과 발달, 디지털 혁명에 이은 디지털 기기의 변형과 기술입히기는 기록이 힘들 정도로 빠르게 모습을 바꾸고 있다.
○ 행위예술과 접목한 영상
『아바타』에 이은 3D의 결정적 시혜는 밴쿠버 동계올림픽이다. 장엄한 서사를 특징으로 한 단판(短判)의 표상을 바탕으로 각(角), 색, 조명, 구도, 구성의 요소로서 연출과 사운드를 포함한 거대한 미장센을 이끌어 내며, 거듭된 진화와 개혁의 물꼬가 된 순환의 극치였다.
화장(化粧)의 공식처럼 3D 예술은 성공시의 화려함과 이미지 부각이 절정에 이르지만, 그것이 서투르거나 실패하면 안함만 못한 것 같다. 3D의 물결이 스쳐 간지는 반세기가 넘는다. 행복감이건 공포감이건 사실감의 확대 혹은 과장에서 우리는 위안을 얻고 싶어 한다.
3D 영화 및 주변 예술이 당분간 상승세를 탈 것 같다. 극장요금이 배가되어 수입이 창출되고, 새로운 영사사업이 시작되며, 가전제품의 새로운 시장이 형성되고, 실생활에서 사물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 것이다. 발상, 발화, 발원이 불꽃처럼 일어나게 만들 것이다.
폭주기관차처럼 선행하고 있는 테크놀로지의 위력 앞에 중심이 인간임을 알리는 작업이 순환주의이다. 순환주의 신봉자들은 예술사조의 변천과 과정이 세상을 변혁시킨 예술의 힘이 되었음을 인정하며, 섬으로 바뀐 예술 간의 통섭을 염원하는 순수한 행위를 지지한다.
붕괴와 균열의 틈을 메우는 흙손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통합에서 이루어낸 작은 행위들은 철조망과 담벽을 허물어내는 새로운 작품들이 될 것이다. 창의력과 소통의 능력을 지닌 작품들이 신 행위주의라는 Neoactism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이제 신 행위주의는 투쟁으로 예술을 왜곡시키지 않고 순수로의 회귀를 주창한다. 전통을 숭상하고 그 찬란한 자유정신으로 자연과 피조물을 관조하며 상처투성이의 자연을 복원하며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고자 한다. 이를 성취하고자 최첨단과의 슬기로운 만남을 주선한다.
각 분야에서 풍부한 경험을 쌓은 예술가 들이 성직자들의 수양과 같은 마음으로 지금까지 구축해온 순환주의의 예술작업은 일반인들의 적극적인 호응을 얻어낼 수 있다. 예술가들의 독창성과 창의력이 살아있는 통합의 장의 성공은 바른 뚫림,곧 바른 순환이다.
예술에서의 순환은 창작 행위를 통해 각각의 우수한 예술세계를 느끼며 한층 더 깊은 감성을 갖고 발전하는 것이다. 색다른 예술로의 변주, 타 예술을 이해하는 순환적 예술행위를 통해 균형과 균제의 예술체계가 생성하고 창출되는 것이다.
국내에서 천 3백만명을 동원한 아바타, 캐나다 동계올림픽의 신 행위주의 현장은 이어령의 자연과 신체가 교감하는 ‘생명자본주의의 발현’, 폴 호켄 등의 자연이 가져다주는 혜택을 강조하는 ‘자연자본주의’, 에르도스 한의 순환주의(Circulatism)는 모두 맥락을 같이한다.
21세기 시작되면서 모색되어온 통합 장르 지향의 예술 행위들이 결실을 이루는 작업인 새로운 빛을 수용한 그림, 영상이 인력한 즉흥 연주, 고정관념을 타파한 영상은 ‘한 예술가만 최고’가 아닌 ‘협동하여 최고로 만드는 예술’로써 순환의 역사성을 획득한다.
복합예술의 중심에 선 행위주의 예술과의 조우는 실험성과 통합 기능을 갖고 있어야 한다. 신 행위주의 정신은 자체와 정신 외 물질적 대상의 정신적 영상(표상)도 인식하며 '뉴 미디어 아트' 작업을 통해 시스템의 현대적이고 역동적인 예술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공감대와 동질감을 담보한 예술장르는 시스템의 다양성과 자유로운 어울림으로 영상과의 합일이 결부되어 새로운 아트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완성된 예술은 순수한 감성을 기초로 독창적으로 표현한 것이어야 한다.
○ 순환주의의 분발, 그 진지한 성찰에 대한 상찬
테마로 각인될 표상, 그 미적 탐구에 대한 진지한 고찰, 진리에 접근하는 영혼의 울림, 미래사회에 대한 비전 제시 등이 예술가의 삶과 사회적 동기라고 본다면, 선, 면, 음, 공간, 입체, 조화, 색 등도 타 예술장르들 속에 똑같이 내재되고 기능별로 자기 장르에서 표현된다.
순환 주의의 예술은 상호 순환을 통해 기하 공식처럼 다양하게 생성되고 창출되어 인류의 삶의 질을 고양시킬 수 있다. 탁월한 예술 행위를 통해 통합의 예술을 창조하고 선호하는 새로운 예술이 이해와 화합을 이루는 예술세계는 분발해야 한다.
순환주의를 극대화 시킬 있는 장치들에 대한 예술 행위들이 진지하게 강구되어야 한다. 영상을 비롯한 인접예술의 현대적 예술적 의미를 다시 파악해내며, 광고성, 선동적 발언에 경계심을 가져야 한다.
‘서울디지털포럼 2010’에 참가한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5월 13일 “한국이 3D 시장의 발전을 견인할 것이다”는 선언적 발언을 했다. ‘3D 디지털 혁명이 본격 가동될 것이다’라는 경이로운 수사를 우리는 여과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코리안 냄비, 뉴 브랜드 선호 근성을 간파는 카메론은 강력한 소비국 코리아, 3D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삼성전자나 LG전자가 공격적으로 3D 디스플레이를 선보이고 있는 것은 3D 산업에 매우 중요한 움직임이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콘텐츠 제작자들이 빨리 교육을 받고 적극적으로 3D 콘텐츠를 제작하도록 장려하면 된다는 것이다.『아바타』와 같은 콘텐츠 제작에 필요한 ‘인력과 예산의 절대 부족 ‘은
이의 맹목적 추종은 기술 종속국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미국 전역의 영화관들은 1회용 또는 재활용 3D 안경을 포함해 입체영화 입장료를 3달러에서 7.50달러까지 올렸다. 3DTV, LED TV, LCD TV, 3D TV, PDP TV등 용어들이 난무하고 있다. 3D의 파고가 어디까지 미칠지 가늠하기 힘들다.
우리가 보아온 대 순환의 퍼레이드는 1.벤쿠버 동계올림픽 2.상하이 2010 엑스포 3.양나라 박물관 4.베이징 올림픽 5.베이징 올림픽 실크로드 6.도하 아시안 게임 7.도하 아시안 게임 스포츠 프리젠테이션 8.중국 모바일 미디어 체험 9.킹 아부다비 과학 기술대학 개막식 등의 행사에서 치루어 졌다.
국내 1,996개 스크린 가운데 디지털 상영관은 571개(2009년 기준), 그 가운데 입체상영이 가능한 곳은 129개 내외로 전체 스크린의 6.5%에 불과하다. 곳곳에서 순환주의의 빠른 분발이 요구된다. 서로를 격려하고 상호 예술에 대한 깊숙한 이해로 포용하는 순환주의 작가들에게 책임감을 가지라는 부탁과 존중을 상찬한다.
○참고문헌
■KOFIC Issue Paper,2010 Vol.1
■‘3D영화산업 현황과 전망’(cinno-Nov., 2009, 영화진흥위원회)
■‘세계영화사,’잭 씨 엘리스 지음, 변재란 옮김,1988,이론과 실천
■‘이미지는 어떻게 살아 있는가?’,김우창․ 성완경 외,1999,생각의 나무
■‘뉴미디어 영상 미학’,권중운 편역,19194,민음사
■‘현대 영화이론의 이해’, R 웹슬리, M 웨스틀레이크지음,이영재․김소연 옮김,1995,시각과 언어
■‘아방 가르드 예술의 다섯 대가들’,칼빈 톰킨스 지음,송숙자 옮김,2000,현대미학사
1) 칼빈 톰킨스, ,아방 가르드 예술의 다섯 대가들, 송숙자 옮김, 현대미학사, 2000, p. 15
2) 오버하우젠 선언(OBERHAUSEN MANIFESTO):1962년 프랑스의 누벨바그에 자극을 받은 26명의 서독 젊은단편영화 감독들이 오버하우젠 영화제(Oberhausen Film Festival)에서 오버하우젠 선언에 서명을 통해, 기존 영화산업 즉 '아버지 영화 (Papas Kino)'에 사형 선고를 하고 자신들에 의한 국제적인 새로운 영화의 탄생 선언하였다. 이 선언은 뉴 저먼 시네마 (New German Cinema)의 시작을 알리는 최초의 움직임이었다
3) 좌우측에 각각 빨간색과 파란색 필터를 부착한 안경을 쓰고 보는 방식
4) M.Heiddger,Zur Sache des Denken,Tübingen, Niemer,1976, p 14, 이미지는 어떻게 살아 있는가, 영상과 더불어 철학하기, 김상환, 생각의 나무(1999), 재인용
5) 앞의 책, ‘이미지의 소리, 소리의 이미지’, 박철화, p 401,
6) 앞의 책, ‘이미지의 소리, 소리의 이미지’, 박철화, pp. 403-404
7) 계명대 무용학과 교수
8) 영남외대 방송영화과 교수
2010년 6월 11일 세종문화회관 세미나실에서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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