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녁엔 무얼 먹을까 고민했는데 장에 나왔더니 통통하게 살이 찐 양미리가 눈에 띈다. 물기가 적당하게 빠져 말려진 양미리는 구워 먹어도 맛있고 청국장에 넣어 조려 먹어도 맛있다. 지금쯤 알이 통통하게 들었을 것이다. 어릴 적 겨울이 되면 가장 흔하게 먹던 생선이기도 했다.
생선마다 특유의 맛이 느껴졌지만 양미리는 본연의 맛으로 먹는 것 보다는 양념을 해서 졸여먹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청국장에 넣어 먹은 것은 멸치 대용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특별한 맛이 없었다. 그래도 마다하지 않고 먹은 것은 붉은 빛의 통통한 알을 떼어 먹는 재미가 아니었을까 싶다. 청국장에 뭉퉁뭉퉁 썰어 넣은 양미리는 뼈가 굵지 않아서 굳이 발라 내지 않아도 꼭꼭 씹어 먹으면 다 먹을 수 있었다.
눈이 내려와 고드름이 달리는 지붕 밑에 두룹 채 걸어 논 양미리를 할아버지께서는 화롯불에 노릇노릇하게 자주 구워 주셨다. 술안주에 좋은 노가리도 가끔 구워주셨는데 딱딱하지 않은 양미리 구이가 먹기에는 더 쉬웠다.
지난번 속초에 갔을 때 항구에 갔더니 도루묵이 많이 잡혔다. 도루묵은 여름에 무를 넣고 시원하게 끓인 찌개로 많이 먹었는데 겨울 날씨가 예전 같이 춥지 않아 겨울에 많이 잡히던 명태는 안보이고 엉뚱한 것들만 잡힌다고 그물에서 생선을 빼는 작업을 하는 어부가 말했다. 바닷바람에 피부가 까맣게 탄 얼굴이 탄광 막장에서 일하는 광부의 얼굴과 다르지 않았다. 평생을 바다를 텃밭 삼아 살아가는 어부는 오늘 수입이 좋지 않다고 푸념을 늘어놓는다.
어부에게는 생명줄 같기도 한 바다가 또 누구에게는 아름다움 그 자체로 기억되기도 한다. 속초 아바이 마을은 1.4후퇴 당시 남하하는 국군을 따라 내려왔다가 고향에 가지 못하고 모여 사는 동네가 있는데 네모난 멍텅구리배로 줄을 당겨 움직일 수 있는 배가 있다.
'가을동화'에서 준서(송승헌)과 은서(송혜교)가 안타깝게 반대 방향의 배를 타고 가던 그 갯배이다. 배를 타는 시간은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영상으로 보았던 커플들은 직접 밧줄을 당겨보기도 하고 기념 촬영도 했다.
항구를 따라 생선구이 집들이 나란히 있다. 갯배를 운전하는 할아버지께 맛있는 집을 추천해 달라 부탁드렸더니 “이집도 맛있고 저 집도 맛있다”고 하신다. 평생을 함께 살아온 이웃이고 보니 누가 잘한다는 말씀은 아끼시는 것 같았다.
갑작스런 기상 변화로 조급한 마음에 생선 구이를 결국 먹어보지 못하고 왔는데 작은 아이의 볼멘 목소리가 아직도 들리는 것 같다.
어시장에서는 느끼지 못한 비릿함이 집안으로 들어왔다. 깨끗하게 씻어내고 소금을 살짝 뿌려 후라이팬에 올렸더니 치지직 소리를 내며 오그라든다. 한번 돌리고 다시 뒤집어 구웠더니 노릇하게 구워졌다. 예전에 엄마가 해 준 것처럼 청국장을 보글보글 끓이다가 두부를 넣는 대신 양미리를 뭉텅뭉텅 썰어 넣었다. 축 늘어졌던 육질이 금방 단단하게 탱글탱글해졌다.
청국장에 양미리를 넣어 조린 것을 좋아하지 않는 아이에게 오늘은 할머니가 해 주신 요리와 청국장 하나로도 대가족이었던 식구들이 모두 감사하는 마음으로 잘 먹었던 그 시절의 얘기를 해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