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와 명상

기독교의 원형과 뿌리를 찾아야

장코폴로 2010. 1. 25. 11:53

기독교의 원형과 뿌리를 찾아야

 

 

   한국교회가 개혁을 외치고 보수를 주장하며 자신들이 장자교단이라는 등 자신들만의 정통이라 주장하며 정체성을 내세우고 있다. 장로교가 80%이상 자치하기 때문에 장로교의 위상을 높이려고 한다. 또한 외국선교사의 발자취를 따르거나 또한 그들의 뿌린 선교의 단체가 기관 및 교단을 줄기로 삼아 교단의 뿌리를 간직하며 과거를 전통을 고수하고 있다.

 

  이 글을 쓰는 것은 기독교를 파괴하거나 해체하기 위함이 아님을 먼저 전제하며 기술하고자 한다. 성경에 대한 칼럼을 거의 써 왔던 필자가 갑자기 역사와 현실성을 고려한 내용을 독자들에게 전하는 것은 갑자기 심경의 변화가 아니라 이 모두가 성경의 원형과 뿌리를 찾고자 하는 몸부림에 불과한 것이다.

 

  현재 기독교를 심층 분석해 보면 엄청난 껍데기를 벗겨 내지 않으면 기독교의 실체를 올바르게 볼 수 없도록 수많은 겉칠를 하여 위장과 변장을 하고 있음을 먼저 발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현재 보고 있는 기독교의 화려함과 가톨릭의 숭고함으로 치장되어 있음에 속지 않았으면 한다.

 

   그리고 그들이 주장하는 각종 사상과 신학을 심층 분석해 보면 각종 이방종교의 사상과 논리를 줄기로 삼아 가톨릭과 개신교가 뿌리를 내려진 것을 알게 된다. 이것부터 해체작업을 하지 않고 개혁을 해야 한다고 나서지도 말고 외치지도 말라. 즉 고대 그리스의 종교 울피리스에서 가톨릭과 개신교가 새끼를 쳤고 철학적 사상이 신학을 만들어졌다.

 

  이것이 유럽이나 서구 사회에서 발견되지 못했지만 한국의 어느 목사님이 수십 년 동안 연구하며 발견한 내용이다. 서구교회의 몰락된 원인을 모르고 기독교 역사를 공부한다면 다시 서구교회 역사의 허구성을 공부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몰락의 여파는 이미 한국교회는 더욱 말할 것도 없이 미국 기독교를 비롯하여 전 세계가 덮여져 있다.

 

  유럽 교회의 몰락과 침몰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한국교회가 할 일이 무엇인지 지금 기독교인들이 무엇을 해야 되는지 아는가? 구제도 아니며 사회정의 구현도 아니다. 개혁을 외치거나 보수를 주장하는 것도 아니며 정통을 내세우며 자기 교단의 정체성을 부르짖는 일도 전혀 아니다.

천주교와 개신교의 허구성을 감추지 말고 완전히 드러내야 하며 마귀 사탄의 위장전술에 휘말려 있는 허울 좋은 종교로 치장된 것들을 과감히 내버려야 할 것이다. 그들의 쳐 놓은 함정으로 인해 썩어져 있는 지독한 냄새와 종교적인 예배로 인해 자욱한 연기(미사나 예배할 때 피우는 향)를 제거해야 할 것이다.

 

  이런 왜곡과 위선을 뒤덮어 있는 내용들을 듣게 되면 이때까지 배워왔던 신학이나 각종 사상들 그리고 교회역사가 허구로 된 것을 발견한 이들은 어느 교수를 지칭하며 “죽일 놈”이라고 하며 “우리가 이때까지 믿은 것이 무엇이냐?”하며 기절초풍할 정도로 기독교의 허구성을 서슴지 않고 내뱉고 있는 현실이다.

 

 

  칼뺑의 신학이나 사상이 그리스의 스토아 사상과 철학을 근거한 것이며 신학이란 뿌리만 하더라도 플라톤의 사상에 줄기에서 파생되었다면 기가 막힐 정도가 아닐 것이다. 기독교 특히 개신교가 믿어왔던 헬라어 성경을 기반으로 초대교회가 형성되어 왔다고 하는데 헬라어 성경에서 ‘데오스(qeo.j)란 명칭으로 하나님을 불러 왔으며 지금도 그렇게 인식하며 이어져 오고 있다.

 

   그런데 데오스(qeo.j)란 어떻게 파생된 지도 모르고 부르고 있다. 데오스는 데미우르고지(qemiourougozi)에서 파생되었고 데미우르고지는 데미우르고스(qemiourgoj)에서 전해져 온 것이다. 이것이 고대 울피루스라는 종교가 믿어왔던 신을 지칭했던 명칭이었다면 이방종교의 틀에다 성경만 입혀 놓은 것이 드러나게 된다.

 

  아니 어쩌면 성경 위에다 각종 고대종교의 사상이나 논리와 철학을 도배해 왔으며 그들의 문명과 문화를 덮어 가톨릭으로 개신교로 변질된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이 내용을 듣게 되는 많은 목회자들이나 중직자들의 모습에서 이 내용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의아해 하는 정도가 아니라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각 신학교에서 이런 문제를 놓고 밤새도록 패널토의를 해야 할 것이며 각 교단에서는 대책마련을 위한 안건토의가 철야를 하면서 대안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이제 칼뱅주의와 알미니안 주의에 대한 사상과 신학에 찬반논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허구성을 찾아야 하며 본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독교로 바꿔 놔야 할 것이다.

 

   만약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성경의 하나님과 기독교의 하나님에 대한 차이는 점점 벌어지며 접촉점을 찾을 수 없게 된다. 이것이 바로 마귀 사단의 치밀한 계획 속에 이루어진 것이다.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어 놓은 덧에 놀아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은 마치 리모컨에 의해 움직이는 로봇과 같은 처지에 놓여 있다.

 

  이제 신학생들은 이 문제를 놓고 고민해야 하는 정도가 아니다. 이미 배운 목회자들은 밥줄에 목매어 주저하지 말고 과감하게 교단에서 제명된다 할지라도 아니 한국 교계에서 살아날 수 없는 처지에 놓인다고 할망정, 기독교의 원형과 뿌리를 찾아야 할 것이다.

 

  이때까지 마귀 사단에게 속은 것만 해도 억울하지 않는가? 이제 목회의 기술을 배우려고 신학생은 사라져야 하며 자기중심적인 공부에 매달려 도약의 발판을 삼으려고 한다면 과감히 버려라. 석사, 박사에 연연하지 말며 누구를 위한 학문인지 그것을 따서 하나님께 영광 돌린다던지, 아니면 주님의 일을 위한 공부라고 하는 표현도 하지 말라. 전부 다 자기 자신을 공부이지 진정 하나님이나 그리스도를 위한 연구가 아님을 백일하 드러난다면 너무나 허무하지 않는가?

 

  기독교의 본질을 찾고 뿌리와 원형을 복원시키려면 내 혼자 힘으로는 절대로 어림없다. 힘을 모아야 하며 접촉점을 찾아 규합이 되어야 할 것이다.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거나 자신의 인기와 명예를 위해 자신을 내 놓으려고 한다면 또 다시 이방종교의 탈을 뒤집어쓰고 그들의 사상과 철학에 따라 춤을 추게 되는 꼴이 되고 만다.

 

   만약 이것을 시도하게 된다면 마귀 사단은 또 다시 고도의 전략을 내세워 공격할 것이다. 현실 속에서 여러 가지 모양으로 우리를 위협할 것이며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우리들을 농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기독교의 원형과 뿌리를 찾고자 한다면 어떤 상황과 처지에 놓인다고 할지라도 주님께서 더욱 가만히 계시지 않으실 것이다.

 

  이제 마귀사단에게 속지 않기를 원하신다면 그리고 기독교의 원형과 뿌리를 찾고자 한다면 뒤덮고 있는 껍데기를 과감하게 벗어낼 용기가 필요하다. 아담과 하와가 무화과 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입어 나무 뒤에 숨어 있는 우리를 찾아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할 것이다. “당신의 뿌리와 원형으로 이루어진 하나님의 형상으로 된 존재가 되기를 진정 원합니다.” 라는 대답을 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얼굴과 내 얼굴이 하나가 되는 것이 바로 키스라는 것이며 두 얼굴이 하나가 되는 것이 바로 예배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지난번에도 언급했지만 얼굴이란 내 영혼(얼)의 통로(굴)를 의미하고 있다면 주님의 얼굴과 내 얼굴이 마주쳐 연합되는 사건이 바로 천국이고 영생이라면 이것이 성경의 원형과 뿌리를 찾는 것이다.

 

  이 일에 주저하지 말고 뒤에서 구경하는 자세로 관망하지 말며 응달진 그늘에서 나와야 할 것이다. 진정 하나님께서 비쳐주시는 빛 가운데로 나와서 그 빛을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성경의 하나님과 기독교 하나님이 서로 다르지 않는 성경에 비쳐진 하나님을 그대로 나타낼 수 있는 기독교가 되었으면 한다.

 

  이제 신학교에서는 허구로 가득 찬 신학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본질과 개념을 분명히 깨달을 수 있는 성경학을 배워야 한다. 교회 강단에서 신학적인 설교를 외치는 것이 아니라 성경적인 말씀을 선포해야 할 것이다. 교단은 일괄성이 없는 교리와 정통을 주장하지 말고 성경에 반영된 복음적인 교회를 관리하며 정통을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진정 성경적인 기독교의 원형과 뿌리를 찾고자 한다면 여러 겹과 층으로 덮여져 있는 딱지를 벗겨 내야 한다. 저 깊이 묻혀 있는 기독교의 본질을 찾기를 원한다면 암반층을 뚫어 내지 않으면 심층수를 발견할 수 없으며 그 물을 마실 수 없다는 것을 안다면 가만히 있지 말라. 각종 도구를 동원하여 가득 덮고 있는 껍질을 벗겨내자. 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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