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의 즐거움

궁사의 밤

장코폴로 2009. 9. 15. 08:10

붉은 소나무가 군락을 이룬 깊은 산, 너른 바위위에서 학처럼 한량무를 한 판 멋들어지게 친 뒤, 안 맹담은 방학천을 따라 걸었다. 소나무 위에 앉은 학들이 인기척에 몸을 뒤척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즈넉한 천변 위로 달 눈이 토실한 속살을 드러내며 휘영청 부어 올랐다.  망국의 한을 삭이기에는 수양이 짧은 듯  최 무사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다. 

 

멀리서 원혼이 된 밤 새들이 잠을 이루지 못한 듯 아침부터 울어 되었다. 밤 새의 검은 깃털이 스치운  문풍지 사이로 음산한 바람이 스며들고, 밖은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계곡을 타고 칼 바람이 스쳐 들어왔다.

 

달빛을 받은 수련용 칼들이 밤 하늘에 반사되고 있었고 별은 눈이  부신듯 그 빛나는 광채를 더욱 쏘아 되고 있었다. 칠석을 조금 지난 백로 무렵이었다.   

 

 정권을 갇다바친 배신배들이 몰래 염탐꾼을 푼지도 오래되었다. 오늘도 그놈들이 술이라도 마시고 왔는지  멀리서 바람을 타고 비릿한 냄새가 흘러들어온다. 십리 전부터 들리던 왁자지껄한 소리는 노해(갈대밭) 속으로  사라진다. 천민 출신의  조경오 대감의 횡포가 극에 이르던 1591년 말 풍경이었다. 낙향한  이오 대감이 조정하는 저치 풍조는 점차 학자들을 정치판에 끌어들이고 있었다.

 

 그래서 가시적 단점들을 모으거나,단점이 없으면 만들어 가거나,완벽주의자들에겐 협박성 설공(舌攻)을 구사했다. 일광도(一狂島)에는 분노로 타오른  적안족(赤眼족)들이  무술과 독서로 하루 일과를 채우고 있었다. 산야에서 채취한 약초와 채소들로 움막 비슷한 그들의 처소의 처마에는 늘 풍요와 희망의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집 고양이가 된  코양도 기회주의자의 심볼인양 늘 움박에 붙어 있었다.  

 

 당집 아들 김주만는 당연 조경오의 수구나 다름없었다.어쩔 수 없이 소개해주었던 만주는 소개해준 사람을 까먹고 있었다.그리고 장무사를 비난하고 수시로 자객을 풀어 암살을 시도하고 있었다.자객이 있을 곳을 감지해 낼 정도의 장무사는 김주만의 행각을 무시하였다. 

    

 책사 태금원은 탐욕이 극심하여 가렴주구형으로  가까이 가기를 모두피하는 편이나 생사여탈권을 쥐는 직책에서 야금야금 부를 쌓아가고 있었지만 후사가 없어 내내 고민이 떠나질 읺았다. 초당에 어린 두 딸과 가난한 부인을 둔 도청운은 태금원에게 몇 달 그린 작품을 송두리채 빼았기고 있었다.  

 

 더 이상 식솔 볼 면목이 없는지 도청운은 봇짐을 싸서 유람을 떠돌기 시작했다. 이 딱한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장무사가 초근목피의 형편이 진배 없었지만 도청운의 처에게 시은으로 쌀 몇가마니를 실어 날랐다.도화원의 화원이나 무사나 내침의 파장은 크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