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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월, 3주… 그리고 2일

장코폴로 2009. 1. 11. 21:11

불법낙태를 통해 본 공산치하의 루마니아

   크리스티앙 문쥬 감독의 <4개월, 3주… 그리고 2일, 4 Luni, 3 Saptamini Si, 2 Zile> 


  ○임신 기간 4개월의 끝, 3주의 선택, 남은 2일에 치러진 낙태

80년대 루마니아의 암울한 초상을 읽게 해주는 소박한 영화가 중심가 영화관에 걸렸다.   임신 기간이었던 <4개월, 3주… 그리고 2일>은 철학적 사유, 시대적 조망을 요구한다. 113분에 걸린 드라마는 하이키 조명과 치장된 미장센을 차단하고 연기력으로 정면 승부한다.

게릴라전을 벌이듯 글레이, 마음 속 블루 톤으로 메마른 소도시의 루마니아를 훑어가다 보면 비린 독재의 흔적과 이념과 탈법의 곡예꾼들을 만날 수 있다. 눈물이 말라 더 이상 나오지 않게 하는 파렴치범들이 휘젓고 있는 사회, 통치자도 이와 다를 바 없다는 해석이다.

미국의 여러 곳, 유럽, 스페인, 스웨덴, 그리고 마침내 프랑스의 황금종려상이 경하한 작품은 몰입연기, 충격과 광기, 사회 고발, 유니크한 구성으로 평단과 언론의 절대 관심을 끌었다. <4개월..>은 촌티를 벗고 녹색벌판에서 황금으로 도금을 하게 되었다. 

창밖으로 눈이 내리는 기숙사, 금붕어 신세가 된 여대생 가비타(로라 바질리우)는 임신문제로 룸메이트 오틸리아(안나마리아 마링카)와 낙태문제를 상의한다. 대리인 오틸리아는 여러 곳에서 어렵게 돈을 빌려 거사를 치룰 돌팔이의사 베베(블라드 이바노브)와 접선한다.    일년에 10편의 자국영화도 생산 못하는 제작 시스템으로 칸 영화제 대상을 거머쥔 것은 소재가 되었던 루마니아 현실이 그만큼 충격이었고 감독의 연출력이 출중했다는 의미이다. 베베는 온갖 까탈로 부족한 돈과 조건 불이행을 핑계로 오틸리아를 능욕한다.

매장당한 역사, 파괴당한 루마니아인 들의 순수한 영혼들, 죽음으로 몰렸던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를 크리스티앙 문쥬(Cristian Mungiu)는 특유의 리얼리즘으로 그려내었다. 오틸리아는 절규대신 침묵을 택한다. 그래서 가비타의 낙태는 이루어진다.

발칸반도 동쪽, 흑해 연안의 기운이 스치는 농업국의 중심에서 최첨단 영화가 일으킨 풍향은 끝내 훈풍을 타고 오렌지 향기를 몰고 왔다. 누드로 황소를 타고 칸에서 내려 알을 까는 식이다. 문쥬는 루마니아의 불쌍한 영혼을 치유한 심령술사가 되어버린 것이다.

낙태가 극에 달했던 1987년, 자유를 차단당한 청년들은 분출구를 찾지 못하고 방황․ 좌절했다. 그 중에서 여성들의 희생이 컸다. 주인공 두 여대생들은 희생의 대표적 오브제이다. 그들의 얼굴은 예상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창백하고 미소는 사치스런 낭만이었다.   

감독은 등장인물의 규모는 최대한 줄이면서 연기력을 극대화하고 핸드 헬드 카메라 등을 수용, 빠른 템포로 현장감과 불안감, 긴장감을 최대한 살리고 있다. 특별함이 없는 그래서 특별한 영화는 감동적이다. 폐항의 밤처럼 희망 없는 삶을 연기해낸 연기자들도 특별하다.  

     ○불법낙태금지


1960년대부터 영화의 시대적 배경이 된 1987년 까지 인구 증가 책으로 루마니아에서 낙태는 금지되었다. 낙태가 되지 않은 어린 형제자매들이 호구에 편입되었다. 감독은 차우셰스쿠 정권하에서 한 여대생의 불법 낙태 시술 과정을 통해 독재가 파생시킨 희생의 여파가 얼마나 참혹한 비정상적 사회 현상을 발진시켰는가를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여성들이 원치 않은 임신을 하게 되면 목숨을 건 사투를 벌여야 한다. 제도와 남성으로부터의 폭력, 착취, 배설도구가 된 여성들은 몇 겹의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이 시대의 여성 인권, 공산 진영의 억압, 루마니아 애사는 단순 묘사로도 리얼리즘 영화가 될 수밖에 없다.   기숙사에서 출발한 영화의 시발, 순수영혼을 잠식하는 먹이사슬, 그들의 삶과 주변, 그리고 그것들을 옭죄는 사회를 우리는 동정과 아쉬움으로 지루할 정도로 찬찬히 뜯어볼 수 있다. 제대로 된 정면 커트를 볼 수 없을 정도로 카메라는 일그러진 사회를 디테일하게 그려낸다.

<4개월..>에서 문쥬의 연출력은 철저한 기초 다지기에 있다. 각본가, 단편영화 감독으로 영화 맛을 익힌 그는 올 사월에 만 마흔이 되며, 동네, 이아시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낭중지추, 문학에 접목된 영상들은 구성의 견고함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임신초기를 놓쳐버린 가비타의 낙태 시술을 빌미로 오틸리아를 겁탈한 돌팔이 베베는 독재가 배양한 비열한 인간의 한 유형으로 묘사되고, 영화는 정권 말기, 체제 유지를 위해 차우세스코가 자행한 타협과 거짓말을 베베의 행위로 드러내는 대목이다.

문쥬는 교사․평론가를 거쳐 부다페스트 영화학교를 졸업할 정도로 열광 영화 팬 이었다. 그는 외국영화 조감독으로부터 국제 감각을 길렀다. 장편 데뷔작 <내겐 너무 멋진 서쪽 나라, Occident, 2002>는 로테르담영화제에 출품, 테살로니키영화제에서는 관객상을 수상했다.

감독은 <4개월..>로 2007년 제60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이미 이러한 전조들로 전작 <내겐 너무..>로 문쥬가 서방세계에 루마니아의 현실을 기초로 한 루마니아 리얼리즘의 기수임을 입증하였고, <로스트 앤드 파운드,2005>에서도 수상이 점쳐지고 있었다.

<4개월..>은 루마니아 리얼리즘에 대한 승리로 상찬된다. 헝가리 보다 낙후했던 미지의 동구, 루마니아의 슬픔은 포장된 현재의 현실과 스타일과 타입에는 차이가 있지만 한국의 슬픈 역사와 유사점이 많다. 영화에서 나약한 인텔리의 상류사회는 역겨움으로 묘사된다.   

임신한 여대생과 그녀를 돕는 룸메이트의 이틀간의 낙태에 얽힌 이야기는 루마니아 영화에서 발견되는 숫자를 갖고 만들어진 제목 ‘하루 밤 이야기’와 같은 사건의 형식을 밟고 있다. 

이 영화는 많은 상징들과 은유적 표현들을 갖고 있다. 미국 담배로 통칭되는 서방사회에 대한 동경과 공산주의에 대한 간접적 비판들이 도처에 깔려있다.

탁월한 이야기꾼 문쥬는 1989년 12월 혁명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던 분위기를 지루할 정도로 강조하고, 실제와 같이 연기해낸 연기자들의 연기력은 화가 만들 정도로 탁월하다. 감독은 낙태 자체보다는 여성들을 처참과 치욕의 상황으로 몰아가는 사회와 영향을 사회학자적 입장에서 조망하고 있다. 

루마니아 영화는 혁명 중이다. 낡은 영화권력들의 대항세력 핵심에 문쥬가 있다. 다양한 문화적 전통, 다양한 인종과의 공존, 엄청난 모순과 압제를 경험한 나라의 소재들은 늘 관심거리가 된다. 칸 영화제는 루마니아의 시네아스트를 발견한 것이다.

생일축하용 꽃 개수를 바꾸듯 루마니아 사회는 관용이 있고, 버스표를 얻어 탈 정도로 서민사이에는 인심이 흔할지도 모를 일이다. 신분격차가 존재하는 루마니에서는 정치는 대해 돼지 같다고 욕하거나 TV드라마보다 못하다고 조소를 받아 마땅한 일이다.   

○혁명의 전조

4개월의 끝, 3주의 선택, 남은 2일에 치러진 낙태, 끝내 선홍빛 핏덩이는 쏟아지고, 사실적 태아가 접사된다. 오틸리아는 친구를 위해 감옥행을 감내하며 태아를 버릴 곳을 찾는다. 클라이맥스, 돌팔이 베베가 말했던 아파트의 꼭대기 청소 구에 오틸리아는 태아를 버린다.

허탈함에서 호텔로 돌아 온 오틸리아는 식당에 앉아 개념 없이 식사를 하고 있는 철없는 가비타를 바라본다. “잘 묻어 주었겠지?”라고 너무 쉽게 내뱉는 가비타의 말에 죽음까지 무릅쓰며 임무를 완수한 오틸리아는 “다시 이 말 하기 없기야!” 하며 허탈하게 응답하며 영화는 끝이 난다. 그녀의 힘없는 시선에서 우리는 한없는 절망과 분노를 느낀다.

친구를 위해 희생을 한 자나, 낙태 당사자나 정의, 도덕, 윤리 앞에 찜찜할 수밖에 없다. 허름한 206호 방의 추억, 결혼피로연에서 술 먹고 싸우는 사람들, 1987년의 루마니아는 아직 혼돈이다. 루마니아를 구원하소서! 그리고 1989년 루마니아에서는 혁명이 일어났다.

우정과 정의감을 앞세우며, 리얼리즘 계통의 사회물을 선호하는 문쥬도 나이가 들어 제작비 마련하기가 힘들어 서방에서 유혹이 오고, 할리우드 영화로 관객들이 쏠리듯 몰려갈 때 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만들지 모른다.

그래서 버스 안 카메라에 잡힌 오틸리아의 얼굴처럼 창백한 사회, 그 칙칙한 우울을 털고 문쥬가 여러 장르의 영화로 우리와 조우할 수 있기를 희구한다. 그때 쯤 루마니아에는 초록 비둘기 들이 문쥬의 우울한 가슴을 가라 안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수상한 숱한 상들은 밀레니움의 역사를 새로 창조하는 루마니아의 영화사의 자양분이 될 것이다. 이제 한창피고 있는 루마니아영화의 기폭제가 바로 이 작품이다. 칸은 언제나 후미진 곳에서 피어나는 영화들을 찾아 다녔다. 이제 루마니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