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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권택 감독의 『천년학』-장석용

장코폴로 2014. 1. 12. 10:42

() 구름 위의 빛나는 혼

- 임권택 감독의 천년학

 

장석용(영화평론가)

1.

내가 만난 예술가 중 임권택 감독은 국제영화제가 동양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한 이래 그 끝물에 발굴해낸 감독이다. 수묵화를 연상시키는 임 감독, 춘향뎐이 칸영화제에서 공동감독상을 받았을 때, 임 감독은 환갑을 넘긴 나이였다. ,붉은 수수밭,비정성시,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등이 휩쓸고 간 뒤 맞이한 아침 고요 같은 기쁨이다.

 

청년 작가 시대에 유수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한 많은 아시아 감독들과 비교해 볼 때 80년대까지 우리영화와 감독들은 국제무대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고 푸대접을 받아 왔다.

 

사실 우리나라는 변방의 외로운 섬이었고, 세련되고 공격적 마케팅은 전무한 상태였다. 그만큼 칸, 베니스, 베를린은 공포의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소도였다. 우리영화는 88올림픽 전후를 계기로 비약적 인식전환의 계기를 맞게 된다. 공산권영화가 상영되고 붉은 영화의 실체를 몸소 체험하게 되었다. 막연한 두려움이 사라지고 우리가 만든다면 저 정도는 만들 수 있겠다는 자신감들이 생겨났다.

 

빈한한 영화제작 구조는 한국영화들을 초라하게 만들었고, 검열에 의한 소재 제약은 한국영화를 퇴폐와 폭력, 불교만 있는 단순 패턴으로 영화를 몰아넣었다. 그나마 균형감 있게 한국영화를 만들고 있던 감독은 임권택 이었다. 그래서 그는 한국영화를 본격적으로 알린 영화장인으로 기록된다. 물론 임 감독 이면에 한국영화의 상황과 현실을 솔직하게 알린 나와 같은 평론가도 있다.

 

감자 쩌 주는 형님, 옥수수 삶아주는 아저씨와 같은 이미지로 언제나 다가오는 임 감독은 일제치하인 19360502일 전남 장성에서 태어났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극심한 가난과 진보 이념의 후유증이 여름 그림자처럼 늘어져 있을 때 6.25 전쟁이 그를 또 덮쳤다. 더 이상 내려갈 데도, 도피할 것도 없는 시추에이션에서 호구지책으로 영화계에 자연스럽게 진입했다.

 

액션영화의 대부 정창화 감독의 연출부를 거쳐두만강아 잘 있거라, 61로 데뷔해 백 번째 작품천년학에 이르는 연출 작업은 한국사의 이면, 감독의 가족사를 읽게 해주는 촉수역할을 한다. 코엑스 메가 박스 시사회는 영화에 대한 철저한 보안과 칸 영화제 수상이 유력하다는 등 분위기 띄우기 속에 마련되었다. 그에게 준중과 존경의 찬사가 가득한 후배, 동료들의 뜨거운 격려의 찬사가 이어졌다.

 

추운 겨울과 뜨거운 여름의 열악한 촬영현장을 지켜 낸 그의 작품들은 베니스 영화제 여우주연상, 모스크바영화제 여우주연상, 베를린영화제 명예 황금곰상, 칸영화제 감독상,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최우수예술인 상, 한국영화평론가협회 최우수 작품상, 대종상, 청룡상, 춘사상, 프랑스 문화훈장, 아시아영화제 감독상 등을 수상하면서 영화제를 화려하게 빛나게 해주었다.

 

세계 4대영화제와 국내 영화제를 모두 석권하면서 국위를 선양시킨 임감독의 놀라운 장인 정신은 전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특히 고령에 만들어낸 수제품 천년학은 영화인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독특한 색감을 갖고 있는 그의 천년학은 판소리 가족의 사연만큼 절박함이 실리거나 춘향뎐의 수려함이 담기거나 서편제의 상큼함을 우회하지 못한 채 조용히 관객에게 멀어져 갔다.

 

씨받이등 여러 작품들이 독일어로 더빙되어 판매되고 임감독의 나이가 40대 후반 50대 초 일 때 만난 국제영화 비평가 연맹(FIPRESCI) 클라우스 이더(KLaus Eder) 사무총장과 나의 인터뷰 내용에는 늘 임감독이 끼어 있었다. 이후 만난 국제 연맹 회원들의 입에는 늘 임감독이 들어 있었다.

 

임 감독의 고운 품성이 엿보이는 부분은 품격 높은 영화를 만들면서도 예술작품만을 만들어야겠다는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제작자의 주머니 사정을 배려하는 상업영화 만들기에도 기꺼이 참여했다. 노는계집 창을 감독하다가 춘향뎐을 만들었고,취화선을 찍다가 하류 인생을 연출했다.

 

2.

 

이제 그의 영화들은 중간역 혹은 종착역 천년학에 머물러 있다. 학이 되고 싶은 것일까? 장군의 아들의 패기를 우회하여 영화에서 아버지처럼 그는 모든 엑기스를 후배들에게 남기고 떠나가는 심정으로 이 작품을 후학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로 띄우고 있다.

 

이데올로기로 고민하는 인물들을 그린 태백산맥개벽, 불교를 소재로 인간본성을 파헤친아제 아제 바라아제,만다라, 이산가족문제를 부각시킨 길소뜸,천년학의 전편 서편제,여성인권을 그린 씨받이등은 그가 생각하는 우주관과 연결선상에 있다.

 

임 감독은 80년대 이후 우리 영화들이 국제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본격적 론 그라운드를 만들어 준 장 본인이다. 10여년 지난 뒤 자신으로 보아서는 51번째 영화 잡초가 소재 선택과 연출방향을 선회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때부터 정제된 작품으로 영화를 본격적으로 다듬기 시작했다.

 

아시아 영화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던 베를린 영화제 측은만다라,길소뜸등에 깊은 애정을 보였다. 물론 이 중심에 클라우스 이더가 있었다. 그의 작품은씨받이의 강수연과 아다다의 신혜수가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타면서 존재가 크게 각인되었다.

 

80년대부터 근래까지 그의 연출 현장을 우연히 들를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 작은 만남에도 무조건 고마워하고, 정을 주는 그 살가운 마음씨가 고희를 넘긴 나이에도 아직 지속되고 있다. 겸양지덕을 겸비한 청년정신으로 영화 현장을 지키는 모습은 안주를 일찍 배운 후배 영화인들에게 귀감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예술가들은 나이가 들면 더욱 가치가 있어 보여야 한다. 임감독은 베를린영화제에서 한국영화가 최초로 본선에 오르게 하였고, 칸영화제에서 한국영화 최초 본선 진출작 취화선이 감독상을 타게 만들었다.

 

그가 세계무대에서 화려한 스포트를 받을 때 그는 그가 있게 해준 모든 난관과 역경이 스승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더 어려운 환경에서 작업해왔던 선배들을 생각했다. 그리고 그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던 수많은 동지들이 있었음을 모를 리 없다.

 

임감독과 만났던 수많은 모임들의 흔적들이 존경의 파편처럼 튄다. 그가 국내와 국외에서 평가 받는 부분들을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나도 작은 족적을 남긴다. 전주영화제에서 천년학이 깜짝 시사되던 스릴을 연출해본다.

 

임감독은 영화 표현방식 중 강조는 인연의 끈질김, 습성의 반복, 점층적 전개를 담고 있고, 변화는 로케이션으로 단조로움을 없앤다. 인생의 기구함을 설의적으로 처리한다. 임감독의 비유는 정치와 역사에 눈멀었던 시대의 희생물을 눈먼 송화로 은유시킨다.

 

임감독의 운명에 대한 과장은 사실보다 훨씬 더 진하게 혹은 훨씬 더 못 미치게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송홧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의 아련한 추억도 부족한지 도를 더해가는 절망은 이전 임감독의 액션물의 자취를 더듬는다. 그리해 그 인위적 고리, 운명의 돈호법을 들추어낸다.

 

친일파는 판소리를 향유하고 즐기는데 그 주체, 예술 창조자들은 뼈 빠지게 고생하는대구(對句)는 묘한 시사성을 띈다. 증오하면서도 증오할 수 없는 부의 형성과 부의 분배는 민들레처럼 끈질기게 독하게 살아가는 민초들을 상사(相似)하는 송화(오정해)를 통해 보여준다.

 

송화, 그 의미론적 존재의 다의성을 곁에 두고 치환되는 다양한 오브제는 신비감을 불러일으킨다.

 

  3.

 

천년학은 우리 소리(판소리)를 타고 날아오른 천년의 사랑과 그리움을 그린 영화이다. 천년의 고독을 뛰어넘을 만큼, 겹겹이 쌓여있는 그리움을 녹여 가는 과정의 영화이다. 임 감독의 러브로망에는 자신을 위해 희생한 모든 누이들이 자리 잡고 있을 것 같다.

 

천년학 이청준의 선학동 나그네를 모티브로 삼고 영화의 주연들은 서편제, 1993의 동호와 송화다. 두 작품의 아쉬움을 풀어주고자 하는 박수무당과 같은 역할을 자처한 이는 바로 임 감독이다. 임 감독은 인본주의자인가 아니면 다른 비밀이 숨어 있는 것일까?

 

천년학은 선학동에서 유년시절을 같이 보냈던 동호(조재현)와 용택(류성룡)이 중년에 만나 밤이 새도록 술잔을 주고받으며 지난 세월을 회고하는 것으로 짜여 있다. 하룻밤 이야기는 1956년 동호가 선학동에 당도했을 때부터 1980년대 중후반 선학동을 다시 찾을 때까지 약 30년을 헤아린다.

 

이야기의 중심축을 이루는 것은 여인 송화이다. 송화를 사모했기 때문에 두 사람은 송화와의 인연을 말하며 밤새워 술잔을 기울일 수 있었던 것이다. 어두운 시절을 이겨낸 세 사람은 선학동에서 사춘기를 함께 보낸 동무들이었다. 갈가리 찢어진 그들이지만 우연을 가장하여 두세 번 사내들은 송화를 만났던 것이다.

 

이야기는 불꽃을 타고 올랐다가 사그라져 갔지만 송화는 보이지 않는다. 재회를 통해 도출되는 사랑이 천년학구축의 핵심이다.

 

선학동 외로운 나루터

작은 양철 지붕 하나라도 행복했었다.

운명의 봇짐 위에 걸린 세 사람

이름을 빈 아비

애인처럼 여겨지는 누나

시지프스 운명을 뒤집어 쓴 나

 

후미진 곳으로 모여들던 사람들

유년의 쓸쓸했던 추억위로

동호, 송화, 용택의 사춘(思春)

강물위에 파편처럼 떨어진다.

천년학의 전설이 핀다.

 

고고하게 타오르고 싶었던

천년학

서편, 동편

한 섞인 소리를 타고

끝없이 날아오르는 학

누님을 향한 그리움은

만 가지 비단 줄이 되고

그곳이 어디든지

누님과 같이 있을 수 있다면

천년의 그리움과 고독을 헤쳐 나갈

천년학이 되고 싶다.

 

난 언제나 누님을 추억한다.

 

목월의 청노루의 서정과 윤사월의 눈먼 처녀사, 누이를 향한 애틋한 그리움과 사랑은 임권택의 느린 템포로 전개되지만, 그 무책임한 낭만과 절망의 세레나데는 남미의 산체스의 아이들의 분위기를 닮아간다.

 

남남으로 소리꾼 양아버지 유봉의 남매가 된 동호(조재현)와 송화(오정해). 소리와 북장단을 알아볼 정도로 성장한 두 사람은 서로의 애틋한 존재가 된다. 하지만 동호는 마음속의 연인을 누나라 불러야 하는 괴로움을 견딜 수 없어 집을 떠나버린다.

 

년 후, 양아버지 유봉이 죽고 송화는 장님이 되어 어디론가 사라졌다는 소식이 들린다. 동호는 송화를 누나가 아닌 여자로서 사랑할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송화의 고수(鼓手)가 되어 주고 싶은 동호는 송화의 자취를 찾아 나선다. 엇갈린 운명 속에 재회는 비껴가기만 하고, 그러던 중 동호는 유랑극단 여배우 단심(오승은)의 유혹에 넘어간다.

 

용택의 끈질긴 구애를 외면하고 있던 송화는 동호의 결혼 소식에 송화는 자취를 감춰버린다. 마침내 용택의 선술집을 찾아 온 동호는 자신이 미처 몰랐던 송화의 후일담을 듣게 된 것이다.

 

4.

 

가출 팔년 만에 동호는 강진의 유봉 묘소 앞에서 송화를 만난다. 모두 자유인이었지만 남매로 자란 인륜의 벽을 깨지는 못한다. 가족이라는 테두리가 생기고, 각자의 또 다른 영역이 생기지만 그것은 모두 겉돈다. 아내와 아들의 존재에 기뻐하거나, 백사노인의 부에 취할 송화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집착 없는 사랑은 동호를 방관자로 만들어 버린다. 연인이 될 수 도 있었던 행운은 그에게 따라오지 않았다. 동호의 비겁함은 용눈이 오름에 앉아 갈까부다 갈까부다 님을 따라 갈까부다를 노래하는 송화를 외면하고 중동으로 떠나면서 극한에 달한다.

 

천년학은 코리안 클래식 음악의 지존 판소리를 이해하지 못하고는 독해하기가 어려운 텍스트이다. 동호와 송화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유봉의 말 소리에는 길이 있고, 북은 소리의 길에 쳐주는 것이며, 그래서 북장단은 소리의 눈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속에 들어 있다.

 

  때론 동호가 아버지의 욕망을 의심하고 근친상간적 상황으로 파악하기도 하고 , 여인으로 곁에 두기 위해 송화의 눈을 멀게 한 것으로 확대해석 하기도 한다. 송화를 득음시키고자 하는 유봉의 의도적인 행위라는 비난도 인다.

 

천년학속에는 새타령’, ‘광대가’,‘춘향가등이 시퀀스를 나누듯 등장한다. 판소리, 시조와 민요 등이 도입되면서 열린 영역 영역에서 사운드, 이미지, 몽타주가 조화로운 변주를 한다. 약간은 지루하지만 이미 그렇게 되어버린 상황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한국영화에 판소리를 과감하게 도입시켜,춘향뎐에 이어 한 차원 승화시키는 임권택의 각고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천년학에는 허망이 씬 들이 긴 파장을 일으킨다.

 

유봉은 낙조에 물든 바닷가에 앉아 '이산저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 로구나/ 봄은 찾아왔건마는/ 세상사 쓸쓸하더라.'로 시작되는 사철가를 부르다 죽는다.

 

벚꽃이 봄눈처럼 내리는 가운데 백사노인(장민호)의 임종 장면은 인생의 허망함을 압도적으로 묘사한다. 친일 재산가의 소실이 된 송화가 꿈이로다 꿈이로다/ 모두가 다 꿈이로다/ 너도나도 꿈속이요/ 이것저것이 꿈이로다/ 꿈 깨이니 또 꿈이요/ 깨인 꿈도 꿈이로다/ 꿈에 나서 꿈에 살고/ 꿈에 죽어가는 인생/ 부질없다 깨려는 꿈/ 꿈은 꾸어서 무엇을 할거나하며 부르는 흥타령’’을 들으며 백사노인은 운명한다.

 

흐드러지게 피었다 떨어지는 꽃잎들은 인생의 덧없음과 허무 미학의 극치를 이룬다.

 

송화를 사랑했던 세 남자

 

학산 위로 나르는 두 마리의 학

 

동호는 유봉이 남긴 북을 끌어안는다.

 

유봉의 모든 혐의가 벗겨진다.

 

물에 비친 바람처럼

 

모든 것이 하나 되고

 

평정을 얻는다.

 

동호와 용택이 밤새 회포를 풀고 난 아침, 용택은 유봉의 유품인 북을 동호에게 건넨다. 해우소를 나서다가 용택은 앞에 펼쳐진 광경에서 동호가 북을 잡고 소복을 입은 송화가 박석틔를 부르는 광경을 상상한다. 곧 포구에 물이 차고 그 물위에 학산의 그림자가 드리울 때 두 마리의 학이 유유히 날아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