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숙재 안무의『한글 25시』
한글 춤 열 여섯 번 째 작품 이숙재 안무의『한글 25시』
바람난 한글, 모던을 훔치다
2006년 10월 17일(화) 18일(수) 저녁 여덟시, 국립 국악원 예악당에서 560돌 한글날 기념 밀물무용단의 『한글 25시』 경축공연이 있었다. 한국 대표 안무가 이숙재(한양대 생활무용예술학과 교수, 무용학회 회장)의 한글 춤 연작『한글 25시』는 ‘몸으로 만들 수 있는 한글, 우리 속에 숨쉬는 한글’ 의 생태환경을 확연히 보여주었다.
해마다 시월이면 밀물 정기공연은 가을 공기를 받아 상큼한 한글 향을 내뿜는다. 이 번 공연은 1부 1991년부터 2005년까지 한글 춤 하이라이트 1장 <홀소리 닷소리>, 2장 <용비어천가>, 3장 <하늘+땅> 2부 나랏말씀 사람들로 1장 <백두대간에 한글이 산다> 2장 <안녕하세요, 한글> 3장 한글로, <태극기로 세계를 꿈꾼다> 로 구성되어 있다.
한글, 글을 넘어 이미 예술의 본향, 욕망의 오브제가 되어버린 ‘한글’ 25시의 창에 소도의 밤처럼 엄숙한 경외심이 피어오른다. 장엄한 의식과 그레고리안 성가의 리듬을 생각하다가 한글이 재롱을 부리며 웃으면서 같이 놀자고 손짓을 할 때 어림짐작은 기우임이 들어난다.
내 주변에 늘 있었던 연인, 내가 잊고 있었던 따스한 친구, 늘 가르침을 주는 스승, 인간과 우주의 근본을 깨우치게 하는 종교인 한글에 대한 경외심을 드높이는『한글 25시』는 글로벌 브랜드 가치를 보여주는 감히 모방할 수 없는 작품 이었다.
맛깔스런 한글이 멋을 보태고 장엄하게 한글 세상을 알리면 한글은 사물놀이의 리듬을 탄다. 부드럽고도 씩씩하게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수묵 비쥬얼의 이미지, 배경 막에 뜨는 코리안 알파벳 한글. 느림으로 전진하는 강건한 몸매의 예술, 사운드와 조명은 제례(祭禮)를 위한 준비과정에 들어간다. 원초적 몸짓과 감각적 안무의 접합점은 한글 이미지가 이 땅에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밝혀준다.
안무가 이숙재는 이전에 한글을 포획했다가 이제는 한글을 숭상의 대상으로 삼는다. 그녀는 칠전팔기의 배를 항해하면서 거시적 분석으로 몸의 한글화 작업에 집중해 한글의 모더니티를 확보한다. 이숙재의 몸 Semiotics(기호학)과 유희 리듬론은 클래식에서 비트까지 다양한 사운드로 연결된다. 그녀는 여전히 한글을 희망을 분출해내는 보고로 여기고, 이전의 작업과 연장선에서 한글의 장래를 엿보게 한다.
이숙재의 『한글 25시』는 전파를 타고 모던한 감각으로 코팅되기도 하고, 독립된 장들은 독립성을 견지하면서도 대 화합을 위한 세레모니를 계속한다. 우리 예술의 국제화를 선도해온 밀물의 전사들이 한글을 탐해 벌여 온 작업은 몸으로 말하는 애국이었다.
태극과 사괘의 조화로 한글이 힘을 얻어가는 장면은 가슴이 뭉클하다. 시적 여흥과 극적 구성을 소지한 작품은 가변선상의 춤의 변주를 파악하도록 하였다. 유네스코 문화유산 한글이 한글 춤으로 만들어 져 있는 이상 상설 공연을 하는 문화상품이 되어야한다.
현란한 의자무(舞)는 관객의 갈채를 받기에 충분하였다. 한글 제2기의 첫 작품은 집체 무용의 분위기를 풍겼다. 장면 하나 하나에 다양한 아이디어가 소스처럼 숨어 있었던 이 작품은 자발적 관객들의 풍부한 상상력을 자극시켰다. 이미 예술적 완성도와 흥행성을 아울러 확보한 작품이기에 세부적 각론은 필요 없을 듯 하다.
한글 연작의 휘날레는 그림에 낙관을 찍듯 언제나 철 구조물에 올라 무용수들이 몸으로 ‘한글’을 쓰는 것으로 종료된다. 『한글 25시』의 뜰에 모인 집현전 학사들과 세종을 찬(讚)하는 올해의 선무(善舞)는 누리꾼들에게 담론을 제공했다. 이숙재의 한글 춤은 나비효과로 전 세계에 알려지면서 새로운 한류가 춤을 통해 알려질 것이다. 장석용(문화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