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것의 현재적 의미-임 홍 순 (서경대대학원 문화예술학과, 철학)
우리 것의 현재적 의미
임 홍 순 (서경대대학원 문화예술학과,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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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의 ‘2008 추계 예술평론 심포지엄’의 주제는 “우리 문화 예술 상품의 국가 브랜드화 전략”이다. 주제를 접하면서 늘 화두처럼 제기되는 몇 가지 문제점들을 다시 음미해보기로 한다. 우리의 문화 예술이란 무엇인가, 바꾸어 말하면 한국 전통 고유의 문화 예술이란 무엇인가? 예술 상품화의 문제점은 무엇이며, 국가 브랜드화 전략이 함축하는 바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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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구 어느 곳의 정보도 동시에 전 세계에 전달되는 뉴미디어의 시대에 살고 있다. 삶의 양태와 도구, 심지어는 말(言)의 구조에 있어서까지도 내 것과 네 것을 분별할 수 없는 혼혈의 시대에 살고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새로운 문화적 혼혈의 세대들이 태어난다. 인간은 세계 속에서, 말의 구조 속에서 태어나서 자아를 형성한다. 인간은 말의 존재이다. 말로써 사회를 이루고 문명이 된다. 말은 세계의 한계이다. 말의 혼혈은 생활양식의 혼혈이고 의식의 혼혈이며 세계관의 혼혈이다.
이 시대의 문화 예술은 雜婚的 特性을 갖는다. 이러한 잡혼성의 시대에 독자적이고 고유한 문화 전통이란 무엇을 뜻하겠는가? 가다머(Gadamer)의 시사대로 열린 世紀는 세계 모든 지역의 폐쇄된 역사전통을 새로운 도전 앞에 노출시키면서 저마다의 자아동일성(identity)을 묻도록 요구하고 있는가.
사전적 의미에서 전통이란 전승과 같은 뜻으로, ‘전하여 이음’이다. 예부터 자생되어 체계화되었거나, 외부에서 유입되어 우리 나름으로 정형화되고 체계화되어 전하여진 것들이다. 전통은 살아서 움직이는 개념이다. 연속성을 띠는 것이다. 과거와 미래가 하나로 이어지는 개념이다. 그런데 문화 예술의 고유성은 전통을 담아내는 문법적 맥락에서 싹이 트는 것이다. 논자의 견해로는, 고유한 문화 전통이란 언어적 문법 구조의 소산과 다름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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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문화 예술은 한국적인 문화 예술이다. 우리말의 문맥 속에서 추상화된 문화 예술이다. 어휘는 늘 相異한 문화들과 뒤섞여왔지만, 특유의 문법 구조 안에서 용해된다. 우리 문화 예술의 고유성은 우리말의 구조 안에 내재해 있는 의식의 원류에서 찾아져야 한다.
세종은 한글을 창제할 때 첫째, 한국인의 의식의 원형 속에 天(⦁), 地(ㅡ), 人( l )의 조화적 세계관이 내재해 있음을 간파하였다. 지극히 인간 중심적이고 현실 중심적인 의식 세계이다. 이것은 또한 신화를 통해 본 한국인의 의식적 범주에서도 확인된다. 단군신화에서 인간은 神인 桓雄도, 동물인 곰과 호랑이도 동경하고 부러워하는 존재로서 이해된다. 신화는 신의 세계가 아닌, 인간이 현재하는 현실에서 이상향을 꿈꾼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서구의 기독교적 세계관에는 실낙원의 의식이 내재한다. 우리가 사는 현실은 고향을 상실한 天刑의 유배지로 인식된다. 인간은 동물과 신 사이에서 갈등하는 원죄적 존재로서 인식된다. 리꾀르(P. Ricoeur)는 이러한 기독교적 세계관을 ‘초점불일치의 신화’라고 은유한 바 있다.
둘째, 한글은 형식 논리적 구조로서 창제되었다. 口腔 構造의 형식성과 초, 중, 종성의 논리 구조로서 구성되었다. 본래 한국인의 기질은 지극히 현세적이며 감성적이고 인간 중심적이다. 삶의 현장에서 서로 어울려 춤추고 노래하며 격려하고 고무한다. 한국인의 고향 의식에서 타자는 고립된 개인이 아니다. 만남의 대상으로서 다가온다. 이것이 신라의 하늘이요 화랑의 하늘이다. 일찍이 孤雲 崔致遠은 이와 같은 한국인의 원초적 의식 범주를 風流 精神으로 집약한 바 있다. 외래 사상의 한국적 수용과 용해의 형식이다. 다양성의 통일과 조화의 논리이다. 풍류는 바람 따라 흐르는 것이다. 신바람 나는 기질이다. 動的이고 情的이며, 논리보다 비논리적 감성이 앞서는 세계관이다. 한글은 이와 같은 한국인의 감성적 기질을 형식과 논리로써 정서화 한다. 비논리를 논리로써 조화시키려는 妙合의 정신이다. 근래 韓流의 유행은 아마도 이와 같은 비논리와 논리, 비형식과 형식의 조화적 시각에서 현실의 삶을 노래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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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상품화는 예술을 팔 물건으로 만드는 일이다. 여기에는 생산과 소비의 매매 관계가 전제된다. 예술가의 입장에서가 아닌 수용자의 입장에서 욕구를 창출하고 소비를 진작시키는 일이다. 일종의 장사이다. 장사는 필요한 상품을 소비자에게 연결시키는 일이다. 또한 에스키모에게 수영복을 팔고 熱沙의 주민에게 모피 코트를 판매하는 것처럼, 인간의 허욕과 호기심에 편승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오늘날 예술은 거의 모든 분야에서 실험적 자유를 만끽하며 관객들을 당혹스럽게 한다. 때로는 수용자들을 전혀 즐겁게 하지도 않고, 교훈적이지도 않으며, 그들의 허욕과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지도 않는다. 오늘날 예술가는 관객과 유리되어가고 있다.
다른 한편에서, 정보통신의 발달은 예술 창조자와 수용자 간의 기존 질서를 무너뜨리며 예술가들을 곤혹스럽게 하기도 한다. 이 시대의 관객은 모두가 섣부른 전문가이며 평자이다. 심지어는 관객의 입장을 넘어서서 분석하고 비평하며 창작에까지 간섭하려고 한다.
상품화는 예술 창조자의 입장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관객과 연주자가 동시에 만들어가는 행위이다. 시장의 논리가 지배하는 현장이다. 공공의 지원이나 관심으로부터 자유로워야만 한다. 상품으로서의 예술 작품에 대한 시장의 평가를 과감하게 수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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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예술 상품의 국가 브랜드화는 당연히 한국적이며 독창적인 예술 행위를 확인하는 데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것은 외래적인 것 또는 전통적인 것이 우리의 혼으로 용해되어 현재화할 때에 드러난다. 외래의 예술 양식이 우리 예술가에 의해 구현될 때, 그것은 이미 외래의 것이 아니다. 지극히 한국적인 예술 행위이다. 반면에 우리의 옛 유산들이 보존과 재현의 자료적 가치로만 존재할 때 전통은 더 이상 살아서 숨 쉬지 않는다. “고려청자를 아무리 잘 복원해도, 신라 금관을 감쪽같이 복원해 놓은 들 그것은 고려청자도 아니고 신라 금관도 아니다. 그냥 복제품이고 눈속임일 뿐이다.” 그것들은 우리 앞에서 미래의 가능성으로 새롭게 태어날 때 의미체가 된다. 과거는 언제나 우리 앞에 보다 낳은 대안으로 제시될 수 있을 때 전통의 일부가 된다. 우리 것을 발굴하고 고증과 재현을 거치되 미래지향적인 새로운 생명으로 거듭나게 해야 한다.
한국적 토양에서의 모든 예술 행위는 형식과 양식을 넘어서서 고유한 전통의 일부로 승화될 수 있다. 외래적 토양에서의 모든 한국적 혼의 표현은 우리 문화 예술의 독창적인 전통으로 승화될 수 있다. 옛것은 개방 사회의 가치로서 참여할 수 있을 때 보편이며 특수일 수 있다. 외래의 것은 우리의 시각에서 용해될 때 보편이며 특수일 수 있다. 백남준과 문신의 예술 세계는 외래적 토양에서의 한국혼의 표현이다. 난타와 국수호의 춤사위, 금년 10월에 국립국악원에서 18번째 공연을 가진 이숙재교수의 한글 춤 이야기 등은 한국적 토양에서 세계화를 지향하며 우리의 전통을 만들어간다
동시에 그것은 공간과 시간의 제약을 넘어서는 문화 예술의 모든 교류를 통해서도 가능하다. 일생동안 한 번도 일본 밖으로 나가지 않았던 히지카타의 부토는 아시아 현대 춤의 세계화 가능성을 시사해 주었다고 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