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니 르콩트 감독의 『여행자,Une Vie Toute Neuve,A Brand New Life』
국제영화비평가연맹상
우니 르콩트 감독의 『여행자,Une Vie Toute Neuve,A Brand New Life』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1970년대 후반, 근대화가 가속화되고, 인명경시 풍조가 만연한다. 버려지거나 위탁된 아이들의 보육원 ‘성 바오로 집’, 우니 르콩트 감독이 일 년을 보낸 곳이다. 입양아 출신 프랑스 감독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추억의 실타래를 풀기 시작한다.
『여행자』는 대작 영화를 지양, 냉혹하게 자신을 성찰하는 영화로 만들어진다. 영화에서 아빠는 가부장적인 당시의 관습, 조국의 또 다른 비인간적 일면의 상징이다. 사할린에서 증발된 중앙아시아 거류 까레이스끼, 베트남의 라이 따이한 등도 먼 ‘여행’에 동참한다.
황량한 보육원에서의 차고 쓰린 기억들은 많은 등장인물들의 사연과 함께 『여행자』의 근간을 형성한다. ‘먹고 입는’ 문제가 생존의 처참한 조건으로 제기되는 시절, 자신의 이기심을 위해 뿌리를 자르는 비겁함이 핵심 명제로 도출된다.
냉정이 유지되고, 사실감을 최대한 살린 카메라 아이는 우울한 회색 보육원 풍경을 샅샅이 훑어간다. 약간은 느리고 어색해 보이는 이 시대의 대사와 행동, 어눌함이 진실감의 실존이 된다. 사무엘 베케트의 부조리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가 연상된다.
도덕률 제로의 희망이 차단된 공간에서 절대 고독과 진희(김새론)의 ‘시지푸스의 신화’가 쓰여진다. 단발머리로 상징되는 시대상 위로 ‘혜은이의 ’당신은 모르실거야‘가 오버랩 된다. 이창동 감독의 원격조율은 우니 르콩트의 우회의 오류를 사전에 차단한다.
차갑고, 황량한 내륙의 오지에서 ‘나’(진희)를 위한 투쟁은 추락한 참새의 운명과 비교된다. 나르지 못하고 떨어진 새는 아빠와의 약속이 파괴된 나의 현실이다. 서러운 나이는 나의 우울을 심화시키지만, 출구는 보이지 않는다. 온통, 영화 회색으로 울타리를 채운다.
『여행자』는 눈물과 분노, 체념을 거쳐 용서에 이르는 ‘버려진 자’, ‘잊혀진 자’에 관한 처절한 기록이다. 여성 감독 특유의 섬세함과, 차별되는 유럽 지성영화의 정서적 화맥(畵脈)을 자신의 과거에 투영해 체현한 이마쥬에는 냉철한 인내가 열정처럼 묻어난다.
연출력 있는 감독으로서 우니 르콩트와 장래가 기대되는 김새론의 연기는 『여행자』를 순식간에 옆마을 구리와 같은 친밀감과 침향(沈香)의 본소(本巢)로 만들어 버린다. 이미 이 작품의 국제적 가치는 국내외의 다양한 평가에서 감지되듯, 쉽게 가산(可算)될 수 없는 수준에 올라있다. 일상의 상흔, 사랑과 이별들은 ‘어쩔 수 없었다.’는 이기적 자아를 부각시킨다.
진희의 여행은 쓸개즙을 빼앗긴 곰처럼 씁쓸하게 시작된다. 달콤한 아빠와의 자전거 타기가 이별을 예비하기위한 ‘곰의 사탕’이 되고 보육원에 팽개쳐진 진희 처절한 투쟁은 무위가 된다. 아빠(설경구)에 대한 막연한 믿음과 배반에 대한 분노조차도 이 영화에서는 차분하게 세월의 중량감 속에 잊히고 홀로서기를 하도록 설정된다.
이 영화는 내면의 여행을 거쳐, 공간적 이동과 칩거, 뒤집어 세상보기를 통해 한국사회가 빚을 지고 있는 사회적 제 현상의 차분한 성찰을 우리 모두에게 권하고 있다. 감독의 영상철학, 문학적 감수성이 부각되는 가운데 김새론의 다양하고 천연덕스런 연기 스펙트럼은 미래로의 숙성시간을 거쳐 한 번 일내는 연기자가 될 것임을 확신한다.
한국의 사회상, ‘밥’, 냉대, 관용, 가난, 유대감, 서운함 등이 비빔밥처럼 엉켜져 체념으로 굳어져 갈 무렵, 다시 진희는 또 다른 희망을 만들어야 한다. 숱한 이별의 끝에 아빠가 새엄말랑 새 출발하듯, 진희는 보육원에 적응하고 영어도 공부한다.
‘길 떠나는 가족’이 아니다. 진희는 이제 스스로 길을 떠나는 여행자가 된다. 꿈결에 만나는 빛바랜 추억들은 사라질 것이다. 이 한 많은 여행객이 정착할 곳은 또 다른 보육원이다. 미적 영역으로 진입되는 해방공간이 될지도 모르는 미지의 나라이다.
『여행자』에서 신인 감독으로서 우니 르콩트의 연출력은 영화를 조련한다(타 부문과의 유기적 관계 조성)는 측면에서 합격점이다. 영화를 견지하는 관조적 자세는 철학자의 기품을 닮아 있고, 자신을 돌아보면서 흥분하지 않고, 당시의 사회상과 그 원인을 분석하고 있다.
카메라는 배경으로 잡은 지역의 거친 분위기와 버려진 약자들이 만들어 가는 따스함을 동시에 만들어 내고 있다. 여기에 부응한 조명은 빛바랜 백열등 이거나 의상들은 원색을 발견하기 힘들다. ‘느림의 미학’을 보여주는 이 영화는 곱씹을수록 단 맛이 난다.
이 영화를 보면서 찍기 싫어하고 다루기 힘들어하는 소재의 영화들이 우리영화의 활력소가 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여행자』는 알랑드롱이 프랑스 출신 배우가 아니지만 프랑스 배우로서 인정받듯, 우니 르콩트는 한국영화감독이 될 자질이 풍부하다.
낯선 곳에 버려진 상황을 묘사하고 이를 소화해내는 연기력과 특히 심리변화에 따르는 연기는 테마를 부각시키는 구성과 더불어 이 영화의 성공 요인 중의 하나이다. 군더더기를 걷어 낸 『여행자』가 슬픈 아름다움을 가지는 대목이다.
우니 르콩트는 국제영화비평가연맹 한국본부 선정 최우수작품상을 받았다. 감독의 이번 수상으로 일그러진 우리들의 초상을 씻어내는데 작은 위안이 되었으면 한다. 한국의 하늘과 산, 계곡은 아직 파랗고 푸르고 맑다. 그대의 영혼을 잡아두기에 충분하다.
*글 쓴 시점/장석용(국제영화비평가연맹 한국회장, 전 영평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