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 포럼 3회 토론에 대한 반론문]
(본문의 내용은 개인적 견해임을 밝힙니다.)
웰컴 투 ‘대학로’
정은영(국가건축정책위원회 행정사무관)
며칠 전 메일로 발송되어온 <오늘의 서울연극> 지를 읽었다. 그중 현장에서 활동하시는 연극인들의 대학로와 한팩(한국공연예술센터)에 대한 꿈과 희망, 그리고 비판이 들어간 좌담문을 읽게 되었다. 한팩 출범 당시 실무를 담당한 사무관으로서 맺은 인연 때문인지 한 문장, 한 문장 그냥 흘려보낼 수가 없었다. 연극인들의 촌철살인과 같은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폐부를 찔렀다. 연극인들께서는 지원하면서 간섭하는 정부의 생색내기를 질타하셨고, 한팩의 출범당시 완벽하게 세팅되지 못한 시스템에 대한 우려를 표하셨다. 공감하면서 죄송하고 자괴감이 들기도 하였다. 그러나 사실이 아닌 내용들이 사실인 것처럼 대학로를 떠도는 것에 대해서는 가슴이 멍해지면서 답답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변명을 해보기로 했다. 흔히 변명은 폼도 안 나고 옹색하고 비겁하게도 느껴진다. 그러나 가끔은 침묵하는 것이 진실을 가리고 상호소통을 저해하여 신뢰와 연대를 후퇴시킬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무책임한 침묵’보다 ‘수줍은 변명’을 선택하기로 했다.
한팩 출범에 대한 회고: 그대, 공공극장의 진화를 믿는가?
내가 처음 아르코극장을 방문했을 때, 당시 극장장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출신의 직원들이 순환보직으로 근무하고 있었다.(지금도 지방문예회관에 가보면 공무원들이 관장으로 파견나와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가 언제부터인가 아르코극장은 현장예술인 출신의 극장장 체제로 전환되었다(극장장은 전문계약직 형태로 충원되었다.) 그리고 그 극장장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직영 극장으로서, 최저 사업비로 대관 중심 극장으로서의 열악한 극장 환경 내에서 가능한 모든 실험을 다하였으며 최대한의 성취를 보여주셨다. 이 시기는 과도기이기는 하지만, 분명 이전시대와 비교해서 진화라 명명할 수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원회는 문예진흥기금을 배분하는 지원행정을 주로 하는 기관으로서 극장 등의 시설운영은 핵심 미션이 아니다. 따라서 행정인력이 중심이고 공연관련 전문 인력은 부족하다. 공연기획 및 홍보인력을 정규직으로 채용할 엄두도 내지 못했고, 불가피한 무대인력조차 정규직이 아닌 계약직 형태로 운영할 수밖에 없었다. 예산상황을 보면, 예술기관 및 단체 지원에 쓸 돈도 모자라는 판에 극장 사업에 돈을 쓸 수 없었다. 그래서 아르코극장의 공연사업비는 몇 년을 가도 절대 늘어나지 않는 ‘빈곤의 악순환’ 속에 있었다.
이런 문제점들 때문에 아르코예술극장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분리된 독립된 법인으로 만들자는 논의는 지속적으로 있어왔다. 역사에도, 공연장 정책에도 거스를 수 없는 도도한 흐름이 있다고 믿는다. 아르코극장의 독립 법인화는 반드시 실현될 수밖에 없는 역사적 대세였다. 행정인들이 극장을 운영하던 시대에서 극장 운영에 전문성을 갖춘 전문인력들이 극장을 운영하는 시대로의 전환인 것이다. 행정의 권한을 예술가들에게 환원한 것이다. 이 세상에 자신의 권한을 축소하기를 원하는 권력자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정의 권한을 포기한 것은 그것이 시대가 원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한팩으로의 전환을 공공극장의 진화라고 확신한다.
따라서 정치적 의도에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직영 극장을 재단법인으로 독립화시킴으로써 한국문화예술위원회를 무력화하려는 음모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예술성 높은 작품에 대한 대관을 줄이고 상업성 있는 연극을 유치해서 수입을 창출하기 위함도 아니었다. 극장운영의 전문성 제고, 이것이 한팩 출범의 진실이다.
공모제가 절대선인가?
좌담문을 읽으면서 공모제에 대한 야릇한 환상이 현장에 존재함을 느꼈다. 공모제는 모든 사람에게 동등한 기회를 제공하는 장점이 있다. 그것이 공모제의 매력이다. 그러나 동등한 기회 제공이 필요한 경우가 있는가 하면 역량 있는 분을 무조건 삼고초려하여 모셔야 하는 경우도 있다. 기업에서 공채를 하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는 스카우트를 하는 경우가 있지 않은가?
문화체육관광부 유관 예술기관단체들 중에는 경상비와 인건비, 사업비를 정부로부터 예산지원을 받아 충당하는 기관들이 많다. 이 기관들의 이사장 등의 임원들은 통상 그 기관의 정관 규정에 따라 임명된다. 따라서 서울연극지 대담에서 주장하듯이 문화체육관광부의 유관기관들의 기관장이 모두 공모를 통해 임명되지는 않는다. 최근 예술의전당, 명동정동극장, 국립예술자료원, 국악방송, 국립오페라단, 국립발레단, 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극장 용 등의 임원들은 공모를 통해 임명되지 않았다. 새정부는 공모제가 역량 있는 인물을 선출하기에 어렵다는 판단에서 대부분 공모 없이 문화예술 기관 단체장들을 임명해왔기 때문이다.
물론 관련법에 공모가 명시되어 있는 경우는 예외없이 공모를 진행한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한국영화진흥위원회가 대표적이다. 왜냐하면 그 기관은 기금을 지원하는 기관으로서 전문성보다는 형평성, 공정성의 가치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공모제가 모든 기관에 다 적용되어야 하는 절대선이 아니다. 그렇다면, 한팩에 대한 비판의 초점은 공모제를 했는가 여부가 아니라 임명의 권한을 제대로 행사했는가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한팩의 조직구조가 설계될 때 사실 많은 고민이 이루어져 왔음을 고백한다. 한팩은 무용과 연극, 정통과 실험 사이의 황금배분이 필요하고 대출 160억원이라는 채무를 안고 지어진 대학로복합문화공간이라는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서울국제공연예술제와 서울연극올림픽이라는 축제를 주관해야 하는 만만치 않은 곳이었다. 연륜과 경험이 중요했고 상임이사장, 예술감독, 사무처장간의 적절한 힘의 배분도 중요했다.
열정도 넘치고 기대도 많고 그렇기에 상대에 대한 비판도 많고 소문도 많은 도가니(melting pot)와 같은 격동의 장, 대학로. 그 대학로 한중심에 있는 한팩은 깨어지기 쉬운 유리와도 같아서 조직의 항상성을 지키는 것이 쉽지 않은 곳이다. 한팩은 영화계의 문제가 고스란히 조직의 안정과 항상성을 늘 헤치는 위협으로 작동하는 영진위의 오류를 반복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래서 한팩은 조직의 항상성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성공이고, 연극계나 정부에게 필요한 덕목은 지켜보는 자의 똘레랑스와 격려일지 모른다.
한팩의 예술감독제: 대학로가 쏘아올린 작은 공
<오늘의 서울연극 4호> 좌담문에서 내가 가장 납득되지 않는 대목은 한팩이 대관극장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강력한 예술감독제를 원하는 주장이었다. 대관극장제를 유지하는 공연장에서 책임있는 예술감독제가 가능할까? 대관극장으로 운영하려고 한다면 전문가 몇 분 모셔 와서 대관운영심의위원회 구성하고 회의를 통해 작품 선정하면 된다. 극장장은 공연에 비전문적인 행정인 누가 와도 상관없다. 공연기획 인력도 공연홍보 전문인력도 필요없다. 그건 극장을 대관한 단체의 몫이기 때문이다. 즉 공무원이 순환보직으로 근무하는 지방의 문예회관처럼 운영하면 되는 것이다. 2~3일 대관 공연으로 가득찬 곳 어디에 예술감독이 설 자리가 있을까? 과연 우리의 예술감독이 역할 없는 그곳에 가서 자신의 예술적 기운을 탕진하여야 하는가?
2010년 초,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직속 아르코 극장과 대학로문화재단의 대학로 예술극장을 통합한다 했을 때 가장 큰 변화의 핵심은 예술감독제의 도입에 있었다. 전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는 130개 극장으로 이루어진 대학로 한복판 공공극장을 2~3일짜리 대관 공연으로 채우고자 한다면 극장의 특성화는 요원한 것이며 이는 시대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예술감독제 도입을 통해 아르코예술극장을 특성화시키는 것 그것이 독립법인화의 궁극적 목적이었다. (물론 대관용 극장에 대한 연극계의 요구에 대해서는 공감한다. 그러한 수요는 다른 형태의 사업을 통해 해소하는 방법이 있다. 현재 쇳대소극장이 대학로예술극장 3관으로 전환되어 대관용 극장으로 활용되고 있듯이 말이다.)
처음에는 공무원인 나도 ‘끝발 있는 예술감독제’, 예술감독 책임제가 되었으면 했다. 케네디센터처럼 예술감독이 연임하며 극장의 색깔을 만들어나가는 그런 꿈을 꾸어보기도 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아르코예술극장과 대학로예술극장의 존재적 여건이었다. 아르코예술극장이나 대학로예술극장에는 국립극단이나 국립현대무용단 등의 전속단체가 없다. 예술단체가 없는 극장에서 예술감독제가 정착되기는 너무 어렵다. 예술의 전당에서도 시도하였으나 실패로 끝나지 않았는가? 게다가 공연사업비조차 국립오페라단, 국립발레단의 70~80억원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턱없이 부족하다. 물론 예산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공무원으로서의 반성과 자괴감이 사실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책임있는 예술감독제, 상임 예술감독제를 실천하기에 여의치 않은 한팩의 조직 및 예산구조가 외면할 수 없는 우리의 현실임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도 예술감독제는 해야 했다. 예술감독제가 없으면 독립법인화도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상임 예술감독 체제로 갈 수는 없지만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는 판단에서 극장 운영에 권한을 행사할 수 있도록 비상임 ‘이사’ 예술감독 체제를 선택하였다. 어쩌면 한팩의 예술감독제는 처음부터 ‘미션 임파서블’이었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팩의 예술감독제는 포기할 수 없는 ‘꿈’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팩의 예술감독제는 희망을 향한 몸부림, ‘대학로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다.
그 쏘아올린 작은 공이 비극으로 끝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차선이지만 현행 조직 구조 내에서 예술적 실천과 관행의 학습을 통해 하나의 성공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술감독을 비상임에서 상임으로 전환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어쩌면 한팩의 예술감독제는 한동안 진통을 겪을 수도 있다. 그 과정에 실패도 있을 수 있고 시행착오도 불가피할 것이다. 그 과정을 통해 연극에 대한 열정으로 서로를 배려하며 자신의 역할에 맞는 옷을 모두가 입을 수 있어야 한다. 다만 꿈꾸기를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면 대학로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큰 포물선을 그리며 홈런을 때리는 날이 있을 것이라.
지원을 하되 ‘전혀’ 간섭을 하지 않는다?: 시지프스의 요원한 꿈
예술적 자율성은 성스러운 영역이다. 그것은 그 누구도 간섭해서는 안 되는 헌법이 보장한 국가의 의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임에 대한 문제는 간과해서는 안 된다. 국민이 낸 세금으로 운영되는 극장이 그 사용에 대해 국민에게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국민의 비판으로부터 우리 예술계는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감시 받지 않는 권력은 부패한다’는 명언도 있지 않은가? 국민이 낸 세금을 쓰면서 그 세금을 씀에 따르는 의무는 망각한다면, 이는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닐 것이다. 예술계도 예술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책임성으로터 면죄부를 받아서는 안 된다. 지원은 받되 예술적 내용은 물론 행정적 영역까지 간섭받지 않으려는 욕심은 시지프스의 요원한 꿈에 불과하다. 적어도 압축성장에 따른 결과로 상식과 도리보다 편법과 로비가 우월한 대한민국에서는 말이다.
물론 지원하는 자는 지원했다고 주구장창 생색만 내고 관리만 하려 드는 유치한 행정행태 또한 후진적인 것은 마찬가지다. 정책방향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예술계가 움직야야 한다는 망상 또한 시지프스의 요원한 꿈이다. 예술계는 명령 복종으로 전세를 이기는 군대가 절대 될 수 없으며 무질서가 질서가 되고 창의성이 발현되는 카오스적인 세상인 것이다.
이념도 상처도 없는 웰컴 투 ‘대학로’
영화 ‘웰컴 투 동막골’에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 멧돼지 협공작전을 통해 서로 불신하던 국방군, 인민군, 연합군이 모두 한 팀이 되어 화합하는 장면이었다. 대학로는 상업화의 압력으로부터 예술특구의 모습을 지켜야 한다. 대학로의 상업화라는 공공의 적과 대치하는 과정에서 극장은 극장대로, 단체는 단체대로 각자의 역할을 존중하며 서로에게 예의를 지킬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가끔은 서로가 서로를 기다려 주었으면 좋겠다. 넘어지고 쓰러지면 일으켜 주고 박수 쳐 주는 마음씨 좋은 동료이자 응원자가 되는 연극계였으면 좋겠다. 한팩은 어떠한 어려움이 닥쳐와도 한팩 전환의 역사적 소임과 연극계의 바람을 실천해내는 전사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관공서 같은 극장을 만들려는 행정의 재미없는 일탈도 사라졌으면 좋겠다. 우리들의 천국이 아닌 당신들의 천국을 만드는 행정의 과도한 욕망도 절제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꿈꾼다. 대학로가 예술인, 공무원, 극장운영자들이 한데 어울리는 또 하나의 ‘동막골’이 되기를. 거센 자본의 힘으로부터 우리의 공연을 지켜내는 해방구로서 삶에 지친 이들에게 샘물 같은 기쁨을 주는 사막 속의 오아시스가 되기를...
[재반론문]
- 정은영 사무관의 글 '웰컴 투 대학로'에 대한 의견
채승훈(연출가, 대학로포럼 대표) chaihoon@unitel.co.kr
정은영 사무관의 관심에 대해서 고맙게 생각합니다. 다른 부서로 갔음에도 이렇게 관심을 가져주는 것은 그가 진심으로 우리 연극계나 한팩 등에 애정을 가지고 있었음을 반증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얼굴을 뵌 적은 없으나 기억하고 있겠습니다.
정사무관이 보내준 토론에 대한 의견을 먼저 읽어보고 몇 가지 부분에서 저와 의견을 달리 하는 부분이 있어 간단하게 지면으로 말씀 드릴까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대학로 포럼과는 관계가 없으며 저의 개인적 의견입니다.
앞으로 직접 만나서 얘기하면 좀 더 활발하고 건설적인 의견이 상호 개진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1, 정사무관의 첫 번째 논점인 “한팩 출범에 대한 회고: 그대, 공공극장의 진화를 믿는가?”에서 정사무관은 한팩의 필요성을 언급하며 한팩으로의 전환문제가 꽤 오랜 기간 논의되어 왔음을 강조했습니다. “....... 이런 문제점들 때문에 아르코예술극장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분리된 독립된 법인으로 만들자는 논의는 지속적으로 있어왔다.” 이렇게 말입니다.
이에 대한 저의 의견입니다.
- 저는 항상 연극계 행정의 지근거리에서 줄 곳 관심을 가져왔으며 실제로 협회장을 맡는 등의 일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논의가 시간을 갖고 진행되어 왔다는 것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바로 그러한 것이 문제의 출발점입니다. 연극인들이 모르는 논의, 누구누구가 했는지 궁금합니다. 문광부하고 문화예술위 직원들만 했는지요. 심지어 문화예술위 직원들도 한팩 설립 전후 만나보면 그 결정과정이나 설립속도에 대해 적잖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장관을 비롯한 문광부의 고위층이 일방적으로 주도한 인상이 무척 짙은 것입니다. 최 근년의 아르코나 대학로 예술극장을 둘러싼 일련의 과정들도 그렇습니다. 아르코극장을 무용중심으로 한다는 것도, 대학로 예술극장을 재단으로 하고 전문 극장장 체제(예술 감독제와 같은 형태의)를 도입한 것도, 그러다가 일 년도 못가서 그것을 뒤집고 아르코 극장까지 함께 묶어서 한팩으로 만들고, 문화위까지 그만두고 대학로예술극장 극장장을 맡았던 인사는 그냥 해직시키고, 재단이사장을 맡았던 교수출신 인사는 위로차 보은차원으로 다른 단체장을 주고, 급조된 한팩에는 국립극단장으로 올라간 지 얼마 되지 않은 인사를 이사장으로 임명하는 등, 이렇게 불과 1, 2년 사이에 정신없이 우왕좌왕 일들이 처리되었습니다. 밖에서 누가 보기에도 졸속으로 처리된 듯한 인상을 강하게 주는데, 이런 모든 일들이 그렇게 오래 전부터 계획되고 의논된 것인지가 무척 궁금한 것입니다. 밀실에서 몇몇 그룹이 모여서 일방적이고 졸속으로 처리하는 것, 그것이 바로 관료화이고 ‘지원은 하되 간섭은 않는다’는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사항인 것입니다.
2. 둘째는, 두 번째 논점, “공모제가 절대선인가?” 에서 정사무관은 한팩의 인사가 공모제는 아니었지만 그것은 법치를 어긴 것은 아니며, 공모제가 아니어도 좋은 인사가 될 수 있다는 요지로 말씀하셨습니다.
그에 대한 저의 의견입니다.
- 그것은 우리 토론의 핵심을 모르고 피상적으로만 바라보는 데서 비롯된 말이라고 봅니다. 우리는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치밀어 오르는 공분을 누르고, 그래도 점잖게 공모제니 하면서 돌려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한팩에 대해서 공모제니 뭐니 하고 나름대로 문제제기를 하는 근본적인 출발점은 공모제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한팩의 인사가 애초부터 잘못된 인사였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대학로포럼 1회 토론 때에 하였기에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만일 공모제건 아니건 정당하고 공정한 인사관리가 지난 3년간 한팩을 포함해서 문화예술계 여기저기서 잘 이루어졌다면 구태여 우리가 그런 말을 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3. 세 번째는, “좌담문에서 내가 가장 납득되지 않는 대목은 한팩이 대관극장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강력한 예술감독제를 원하는 주장이었다.” 라고 한부분입니다. 그 두 가지가 상호 배치되는 논리라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저의 의견입니다.
- 대학로 포럼은 여러 사람이 토론합니다. 한 가지 결론을 도출해서 발표하는 관공서와는 다릅니다. 어떤 이는 섭섭한 마음에서 대학로 예술극장이나 아르코 같은 시설 좋은 극장을 저렴한 대관료로 좀 쉽게 사용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얘기한 것이고, 어떤 이는 이왕에 한팩이 출범하였으니 예술감독제가 잘 좀 정착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얘기한 것인데, 무엇이 잘 못 된 건지......
얘기 틀에서 좀 벗어나지만, 한팩에 대한 저의 개인적인 의견을 말해 볼까요. 저는 여러 공공극장이나 극단들을 재단화 시키는 것에 있어서 각각 다른 전략과 속도조절이 필요했다는 의견입니다. 명동예술극장 같은 경우 재단화 시켜 전문경영자로 하여금 운영토록 하는 것은 지역 특성상 좋다고 봅니다. 그 결정은 빠를수록 좋았다고 봅니다. 한편, 국립극단을 독립시켜 재단화한 것에 대해서는 솔직히 말해 어느 것이 옳은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 과정은 너무 성급했다고 봅니다. 시설과 재정확보나, 목표설정, 단원들 문제, 중장기 계획 확립, 열린 토론 등의 과정이 없이 졸속으로 결정한 감이 짙습니다. 대학로의 공공극장들을 묶어서 재단으로 묶고 한팩을 만든 것에 대해서는 저는 명백히 반대합니다. 극장의 재단화는 아무리 공공성, 예술성을 담보한다고 해도 결국 시간이 흐르면 대중화됩니다. 물론 시설 좋은 극장을 대중화시켜 관객을 채우는 것이 낫다는 의견을 개진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의 의견이 틀렸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저와 그들과의 차이는 근본적인 철학의 문제입니다. 저는 적어도 대학로의 공공극장들은 문광부나 문화예술위가 직접 운영해서 공공, 예술성을 지켜나가도록 하고, 대중화 되어가는 대학로에서 신선한 허파역할을 해 주는 것이 옳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그것이 대학로를 세계의 대학로로 만드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다고 저는 믿습니다. 하지만 어찌되었든 간에 한팩은 출범했습니다. 한팩의 극장들이 앞으로 수 년 간 어떤 작품들로 채워지는지 깊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도록 해보지요. 한팩의 이사장과 사무처장은 면담자리에서, ‘올해부터가 시작이며 앞으로 2년 간 지켜 봐 달라’고 했습니다. 잘 되기를 바랍니다. 협조할 것은 하겠습니다. 대학로의 다른 공연장들처럼 대중, 상업화되어가는 흐름과 확실하게 차별화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대학로의 연극들을 선도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의 지속적인 지원확대가 필수적이라는 것도 말씀드립니다.
4. “지원을 하되 ‘전혀’ 간섭을 하지 않는다?: 시지프스의 요원한 꿈” 부분에서는 관이나 지원주체의 간섭은 피할 수 없다는 논지로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대한 저의 의견입니다.
- 결국 간섭해야 한다는 말인데, 대단히 위험한 생각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과거 독재시대의 당근과 채찍의 망령이 살아나는 기분입니다. 당연히 지원을 해 주었으면 그에 따른 사후 일 처리가 있어야 한다고는 봅니다. 그러나 그것이 ‘간섭’이 되면 안 됩니다. 그런 단어도 사용하면 안 된다고 봅니다. 그것은 어린아이를 키울 때 어머니가 사용하는 말입니다. ‘상호협조’라는 말을 사용하여야 한다고 봅니다. 연극계, 예술계에 대한 ‘간섭’의 대표적 예가 무엇일까요? 바로 낙하산 인사와 같은 것입니다. 만일 어떤 임명권자가 자신의 측근을 단체장으로 임명하고 권력을 부여하고, 그는 또 지원금 결정을 위한 심사위원들이나 극장장, 단장, 예술감독들을 자신의 뜻대로 위촉하여, 예술인들이 그들에게 눈치 보게 만드는 일, 그들의 입맛에 맞는 작품들을 창작하려는 작가적 사전검열, 이런 것이 간섭의 실체이며 폐해의 본질입니다. ‘예술인들이 떳떳하지 못하게 왜 그들의 눈치를 보냐, 하고 싶은 대로 하지!’ 하면서 손가락질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만든 것이 과거 정권들의 예술지원정책이었거든요. 그럴 싹을 아예 없애주는 것, 그것이 정부가 할 일입니다.
흔히 ‘국민이 낸 세금 운운’하면서 관에서 간섭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는 논리들을 말합니다. 우리가 지원받고자 하면 지원서류에 이것저것 항목들을 갖추어서 제출합니다. 그리고 지원 받으면 받은 경비를 어떻게 썼는지에 대해서도 재정적 보고를 합니다. 그리고 작품의 질에 대해서도 평자들로부터 평가를 받습니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더 이상 간섭한다면 그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과거처럼 맘에 드는 극단, 작품만 지원해줘서 정부, 정권 비판하는 작품이나 극단은 징계를 주는 식의 시대로 돌아가자는 얘기인가요? 설마 그것은 아니겠지요. 국민이 내는 피 같은 세금, 공정치 않게, 비합리적인 구조 속에서 낭비 안 되게, 공명정대하게 관리하도록 도리어 우리가 정부를 감시, 간섭해야 한다고 봅니다.
5.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념도 상처도 없는 웰컴 투 대학로”를 함께 이룩하자는 말로 끝맺으셨습니다.
- 진실로 그런 연극계, 대학로를 우리도 원합니다. 누구보다도 우리 현장 연극인들이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동막골을 만들려면 장관이나, 문광부 관료들, 국회의원들, 문화예술위원회위원장, 위원들, 한팩 이사장, 여러 극장장, 단체장들이 먼저 잘해야 합니다. 가슴에 손을 얹고 누구를 위해서 존재하는지를 스스로 생각해 봐야 합니다. 특히 그런 곳에서 일하는 연극인 출신들은 손에 쥔 한 줌 모래 같은 권한을 가지고 행여 동료 연극인들을 가벼이 여기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할 것입니다.
-[대학로 포럼 2010-2011 연속토론 - 5회 ]
2011년 1월 8일 오후 3시 민들레영토
참여 / 김태수, 서명수, 박상순, 전용환, 오세곤, 채승훈(사회), 김한아(기록)
채: 지난번에 게재되었던 토론회를 보고 한팩 전환에 관여했던 문광부 직원이 오세곤 교수에게 “당시 한팩을 만들었던 정신은 순수했고 공연문화 예술을 위함이었다.”는 요지의 메일을 보내왔다고 합니다. 그분의 뜻을 존중하며, 토론회의 반향이 있는 것을 보고 나름대로 토론회의 역할이, 작지만 중요한 자리로 잡아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지난달에 이어 최근 현안으로 대두된 대학로 연극특구 문제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 현안으로 대두된 이유는 현 서울시장인 오세훈 시장이 작년 가을쯤에 대학로를 연극특구로 지정하겠다는 선포를 하였기 때문입니다. 마침 연극계에 알려진 서울시의 대학로 연극 특구에 대한 기획안을 잠시 소개 해보자면 ‘대학로 공연예술발전협의회를 만들겠다’, ‘하드웨어 등에 수백 억 원을 투자 하겠다’, ‘디자인거리를 조성하겠다’, ‘대학로에 있는 여러 가지 업소들의 용도규제를 완화하겠다’ 등입니다. 그런데 전체적인 계획안이 2003년도의 서울시의 문화지구 지정 때의 계획안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고, 여기 나온 수백억의 투자 계획은 되면 좋지만 실현되기 힘들어 장밋빛 계획으로 의심되기까지 합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대학로를 연극특구로 만든다면 공연예술인들의 거리로 발전시켜나가야 한다는 명제를 지켜나가야 하는데, 주민과 상인들과 함께 만들어진 공연발전협의회를 통해서 의논해 나간다는 것이 연극의 거리 또는 예술의 거리에 걸 맞는 연극특구를 만들 수 있을 것인지가 의구심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토론하실 때 서울시에서 내세운 이런 것들을 염두 해주시고, 만약 특구로 지정되어야 한다면 그것은 서울시나 종로구의 조례가 아니라 국회를 통과한 법으로 보호받는 특구가 되었으면 하는데, 그렇다면 그 법은 어떠한 조항들로 이뤄져야 하는지를 얘기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그와 더불어 현재 상업화 된 대학로를 어떻게 하면 정화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이야기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김: 특구라는 것이 특별히 보호해주고, 육성해줘야 한다는 의미로 봐야 될 텐데 대학로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행태들이 좀 비정상적인 부분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 소극장들이 많아졌다고 해서 많아진 현상만 이용하려는 것이 아닌가하는. 소극장이 많다는 상태를 검토를 해서 정상인지 비정상인지 알아보고 이런 여러 가지 행태들을 더 육성해야 할 것인지 어떤 부분에 문제는 없는지 검토해봐야 할 텐데 어느 날 반짝 아이디어식으로 이런 게 있으면 좋지 않겠냐 하는 식의 무책임한 행정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이런 기현상을 무조건, 어떤 목적인지는 모르겠지만 배불뚝이 현상이 아닌가 싶습니다.
채: 현재 대학로가 지닌 본질적 어려움은 외면하고 거품일지 모르는, 외적으로 활성화 된 듯 보이는 것들을 전시행정의 일종으로 도리어 활용하는 것이 아닌 것인가 하는?
김: 네. 인체적으로 말하자면 배불뚝이현상인데, 현상에 대한 진단을 하지 않고 무책임한 정책을 펼치는 게 아닌가 하는, 연극인들에게 특별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은 그 대책들이 미약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고요. 지난 2003년도에 지정이 되고도 사실 우리 연극인들은 대관료만 더 부담하게 되어 더 어려워졌으니까요. 실제로.....
채: 자칫하면 어려움을 더 가중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죠?
김: 그럴 우려가 더 많다는 것이죠.
박: 대학로가 2004년도에 문화지구로 지정될 당시 대학로 포럼이 부단히 노력해서 그 시발점이 되었고요. 그런데 그 이후에 벌어진 것이 대학로 문화특구가 공연예술발전의 방향이었는데 실질 적으로는 그 이후 지가가 상승하고, 임대료가 높아지면서 공연환경은 더욱 안 좋아졌죠. 앞으로 ‘연극특구’로 하겠다는 의지가 있으면 과거에 했던 것을 반추해서 좀 더 나은 방안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것을 전제로 두고요. 지금 나온 얘기를 보면 과연 지역발전을 위한 연극 장르를 활성화시키는 것이냐, 아니면 연극이라는 장르를 위한 지역의 활성화냐를 명확히 방향성을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나온 이야기로 보면 용도 제한의 완화라던가 이런 상황은 그 지역의 활성화를 하기 위하여 연극이라는 장르를 가져다 놓은 제스처라는 오해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이어지는 현상이 공연예술발전협의회의 구성이 주민, 상인, 극단으로 구성된다면 지역건물주와 상인들이 주도권을 잡게 될 것입니다. 지난 2004년 문화지구 지정 당시에도 이와 같은 똑같은 구성이 되어있었고, 당시에도 상인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주도적으로 이끌어 지가, 임대료 상승 등의 목적을 이루었습니다. 이것은 동일한 포맷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정말로 연극이라는 장르를 특성화 시키는 연극특구로 발전시킨다면 발전협의회를 구성할 때에도 극단, 공연예술인의 의견이 중심이 될 수 있는 협의체가 되어야 할 것이라 봅니다. 그래야만 대학로 발전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준비해야 할 것인가 어떠한 시설을 해야 하고 어떤 제도를 만들 것 인가의 방향이 될 것 같습니다.
채: 대학로의 구성원이 연극인들만이 아니고 주민들도 계시고, 상업을 하는 분들도 계시는데..... 아시다시피 지난 문화지구 지정 이후에 분명히 유입되는 인구가 많아졌습니다. 한마디로 손님이 많아진 것이지요. 하지만 유입된 만큼 궁극적으로 연극계에 도움이 되었느냐 하면 꼭 그런 건 아니었다고 보거든요. 상인, 주민들과 연극계의 이익이 상충되는 측면이 있는데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요?
전: 아시아 국제공연축제 같은 경우 싱가폴 퍼포밍 아트 페스티벌을 벤치마킹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사실 싱가폴이라는 국가에서 공연예술이 그렇게 발달된 것은 아니거든요. 만일 한다고 해도 라이센스를 취득한 일종의 볼거리들 위주의 공연이고 이들 공연 즉 유명한 공연예술단, 무용단 등 즉, 이미 전 세계적으로 검증된 공연들을 모아 말 그대로 페스티벌 성격이 강한 축제죠. 그리고 지난 시간에도 말씀드렸지만 서울시장이 지하에 있는 극장을 지상으로 올려주고 임대 차액을 상가 주인들에게 보장해 준다는 것이 신문에 난적이 있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이러한 것들을 통해서 본다면 다분히 전시행정적인 측면에서 이 문화특구를 가져가려고 하는 것이지 그 안에 공연예술인들에 대한 어떠한 배려나 창작 공연을 활성화 하려는 것은 느낄 수 없네요. 임대료를 낮춘다는 부분 또한 ‘40만 원 정도 내리면 싸지 않느냐’라고 하는데 대표적으로 한 300~400석 극장이 140만원이다 했을 때 임대료를 내린다고 해 봤자 90~80만원인데요, 저희 같은 경우 이 정도의 대관료를 내고 공연을 할 수 없는 입장이기에 현실과의 괴리가 큽니다. 그런 개념적인 차이가 있는 것 같고요. 이런 일들이 현장에 있는 예술인들과 예술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을 위한 일이라 보기 어렵습니다. 저도 연말에 제 또래 극단 대표들과 만났는데요. 이야기들은 한결같았습니다. 연습은 계속 하고들 있습니다만 하나 같이 연습을 해도 공연을 올릴 수 있는 공연장이 없다는 거죠. 평균 500만 원 정도를 준비하고 있으나 도저히 극장에서 공연을 올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연습실 비용과 연습진행비용을 생각하면 항상 벽에 부딪칠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이뤄지고, 연습은 계속하지만 발표할 수 있는 장소는 없다는 거죠. 그런 점을 봤을 때 실체로 와 닿는 방법론적인 부분 자체에서 잘못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현장에 있는 예술인들과 충분한 이야기를 하고, 상인들이나 재단 사람들과도 이야기 해봐야겠지만 상인들에 대한 배려에 비해, 자본의 규모가 허약한 대다수의 극단은 제쳐놓고, 유명하거나 자본이 있는 극단을 한정해놓고 연극특구를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닌 가 생각해봅니다.
채: 대학로에 극장이 백 수십 개가 있는데도 공연 할 곳이 여의치 않다는 것, 문제가 있긴 확실히 있군요. 2005년도에 문화지구 지정할 때에 굉장히 요란했죠. ‘시설도 만들고 많은 투자를 하겠다.’ ‘연극 박물관이나 물품 보관소도 만들겠다’는 등의 꽤 많은 투자 계획도 있었고, 거리 정비에 관한 계획도 있었는데 실질적으로 이뤄진 것은 전무하다시피 하고, 방치 했던 결과로 거품만 생기고 땅값은 올라가고, 그러다보니 유사유흥업소만 많이 생겨 결과적으로 연극은 점점 더 힘을 잃어가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특구로 한다고 했을 때에는 다시 그때처럼 되지 않았으면 하네요. 방금 전 선생님 말씀은 포괄적이고 거창한 것도 좋지만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정책이 되었으면 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네요.
서: 우선 저는 서울시의 대학로 특구 계획에 대하여 의구심을 갖고 있습니다. 전체적인 틀로 볼 때 그런 제안에 다른 목적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굳이 연극특구로 지정하기를 원한다면, 이미 문화지구로 지정되어 있기 때문에, 정말로 공연예술을 발전시킬 수 있는 특구로 해야 한다고 봅니다. 대학로에는 여러 형태의 문화예술이 있지만, 퍼포먼스에 초점을 맞추어, 활성화 되도록 해야 할 것 같고요. 문화라고 하면 너무 광범위하고, 그래서 그것은 서울시 전체가 감당해 나가야 할 부분이고, 대학로는 퍼포먼스나 공연예술을 특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자꾸 의구심이 드는 이유는, 대학로가 문화 지구로 지정되어서 지금껏 이뤄진 것은 상업화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문화지구가 되면 상업화의 반대가 될 것으로 기대했었는데, 상업화만 가속되었고, 그 결과 문화 소비와 문화 생산 비용이 증대되는, 전혀 바라지 않던 결과가 발생한 것입니다. 문화지구가 되면서 상업화가 가속되고, 그래서 극장대관료가 오르고, 제작비, 공연료가 상승하여, 배급이 열악해지는 상황이 발생했던 것이지요. 그래서 만약에 특구를 지정하고자 한다면, 대학로의 상업화를 다시 진정한 문화화로 환원하는 방향으로 되어야 합니다. 즉 비디오방, 당구장, 노래방 등 상업적인 부분들은 억제하고, 경쟁력을 갖춘 공연예술 작품을 생산하여, 그 작품들이 세계화될 수 있도록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공연예술에 대한 특별한 지원이 우선되는, <특구>이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를 들어, 세금혜택이라든가 직접 지원이라든가 하는 형식으로 공연장을 지원하고, 또 공연을 활성화 할 수 있는 기금을 마련해야 한다고 봅니다. 특구를 지정하는 데에는 아까 얘기한 공연예술발전협의회가 주체가 되어야 하고, 공연예술발전협의회는 반드시 공연예술인들에 의하여 주도 되어야 합니다. 또 소수의 정예대표들을 선출해서 그 사람들을 중심으로 협의회가 움직여줘야 한다고 봅니다.
김: 이렇게 상업화 되어 버려서 우리는 재주만 부리고 모든 이익과 이득은 가진 자들에게 돌아가는 악순환의 구조를 보고, 특구세를 연구하고 여러 행정조치들이 짜여 진 후에 시행해도 문제가 많이 생길 텐데, 문화라는 말 하나로 극장을 가진 건물주들에게 혜택을 주는 듯한 모습을 보인단 말이죠, 아까 말씀하신 세금을 기금으로 만드는 제도가 외국에는 있다고 합니다. 특정지역에서 즉 대학로는 연극이라는 문화 때문에 사람들이 모이고 이 지역에서는 장사가 잘 되어서 건물주들은 돈을 벌기 때문인데요. 그걸 자본을 가진 자들의 자본논리만 앞세우면 연극특구가 아니라 삭막특구가 되는 것이죠. 그 괴리를 책임질 사람이 없다는 것이죠. 특단의 조치가 없는 한 문화지구 후에 어려워진 우리의 작업환경에 특구가 되면 상업적 분위기만 더 득세할 확률이 큽니다. 현재로서는.
서: 세금을 더 내는 것은 좀 문제점이 있을 것 같구요. 일반 기업들이 기금을 내면 세금감면을 받잖아요. 세금을 더 내라는 것보다는 감면해줘서 더 기부하게 해야 합니다.
김: 그러한 전체적인 국민 의식도 필요하겠지만 어쨌든 우리는 완전히 시장논리로 가버려서 건강한 자본으로 정책을 입안하긴 어렵잖아요. 그런 외국의 선례들을 보자면 문화로 이득을 보는 장소이기 때문에 외부지역보다는 세금 부담을 주는 경우도 있데요. 그렇게 까지 섬세하게 정책을 입안해야 할 텐데 정책입안자들이 얼마나 공부를 하고 실행하냐는 것이죠. 그냥 단순하게 극장이 들어서면 세금을 감면해 주겠다는 식으로 다가간다는 말이죠. 그렇다고 현장 연극인들한테 돌아오는 혜택이 무엇이겠느냐는 거죠. 문제죠.
채: 잠깐, 이 단계에서 또 다른 시각으로 이야기 하자면요. 반대로 상당히 호황을 누린 연극들도 있어요. 뮤지컬 단체들도 많이 들어오고, 개그극도 더 활성화되고 말이지요. 다수의 극장이 웰메이드 연극이라든가 스타시스템을 내세운 연극을 공연하구요. 그들은 우리가 말하는 방향과는 각도가 좀 다르죠. 우리는 지금 상업화되는 대학로를 진정시키고 순수연극을 살리려는 시각으로 바라보는데 한편에선 반대인 것이지요. 한쪽은 죽고 한쪽은 활성화 되었는데요. 특구로 지정하려는 측은 거기서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생각해야만 할 것입니다. 또 하나는 우리 같은 시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이제는 대학로를 떠나야 할 때가 아니냐는 생각도 해보고, 지금 시점에서 우리가 원하는 발전이 가능한가, 떠나는 게 현명한 선택이 아니냐는 것까지 보고 이야기 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한쪽에서는 대학로가 현재 잘되고 있지 않느냐는 시각도 있거든요. 극장도 늘고 객석점유율도 늘어나고 뮤지컬도 잘 되지 않느냐 이렇게 말이죠. 그럼에도 대학로를 특구화 한다면 유일한 방법은 특별법에 의해 보호 받는 것인데.... 그것이 가능할지가,,,, 이 시점에서 무슨, 법으로 규제를 한다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을까요?
서: 다른 나라에서는 문화관련 특구를 지정하고 잘 운영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는데, 제가보기에는 프랑스도 특구라는 개념은 없는 것 같아요. 대신에 센터개념을 갖고 특별히 그 지역을 활성화하고 그러는데, 대부분 마르세이유에 있는 <프리슈 라 벨 드 매>의 경우처럼 소외지역을 문화인들이 가서 점거하고 그것이 발전하면서 국가가 지원하는 문화센터가 되고 그런 식으로.... 베이징도 공장지대를 문화특구화 했더라고요. 그곳 역시 소외지역이었어요. 지금 대학로처럼 이미 상업화 된 곳을 특구로 지정하여 어쩌겠다는 것인지 잘 모르겠는 거예요.
채: 특별법에 보호를 받는 다는 것은, 음, 예를 들어 한옥보존지역 같은 것이죠. 거기는 집주인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을 정도로 여러 면에서 보호받고 지원받지요. 대학로가 그런 정도의 특별법에 의하지 않는다면 절대로 연극인들을 보호, 육성 할 수 있는 거리로 근본적으로 재생 될 수 없다는 것이죠.
서: 그래서 저는 굳이 특구를 지정한다면, 공연예술에 대한 집중적인 지원을 하며, 그것을 제외한 것은 잘 조종해서... 예를 들어 특구지역 내에서 영업을 통해 얻은 이익은 다시 피드백 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드는 것. 이것이 아닌 특구지정은 그야말로 전시행정이고, 정치적인 목적으로 밖에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국가에서 컨트롤 할 수 있는 제도, 그리고 거기서 발생한 이윤은 다시 피드백 할 수 있는 제도. 그리고 기금을 만들어서 상업적이지 않은 순수공연예술에 대한 특별한 지원체제. 그게 되어야 특구라고 봅니다. 지원대상은 상업적인 뮤지컬이나 이런 것은 아니고 ‘순수공연예술’쪽에 맞춰야한다는 거죠.
전: 그런데 과연 그러한 통제가 공연예술을 위해서 가능할까요? 절대로 가능하지 않을 것 같아요. 당장 재산권 침해에 대한 문제도 나올 거고. 차라리 그럴 바에는 관광이든 문화든 현재 대학로는 굉장히 상업적이고 말 그대로 스타들의 티켓파워에 이윤의 창출이 가능한 여건을 만들어주고, 혜화동로타리 위쪽으로 소극장들이 만들어지고 있는데 차라리 이쪽을 특구로 만들어줘서 세금감면혜택 등 지원을 준다면 어떨까요?
서: 특구로 하려면 오히려 문래동이 맞습니다. 공연, 음악, 미술을 하는 다양한 예술가들이 모여 있거든요. 그래서 그쪽을 개발제한을 하고 철저하게 컨트롤하고..
박: 문래동 얘기를 잠깐 설명을 드리면 현재 예술단체들은 거의 다 밀려났다고 볼 수 있어요. 그리고, 재개발도 거의 끝물이라서.... 더 이상의 논의는.... 거기에 예술 공장이라고 만들어 놓은 것이 외로운 섬처럼 남아있는 상황이고, 거기에 문화특구는 더 이상 힘들것 같아요.
서: 그러니까 제 얘기는 특구는 문래동에 지정 했었어야 했다는 거죠.
김: 자꾸 자생적인 건 죽이고, 인위적으로 축제를 만들고 하니까 활성화가 안 되는 것 아닙니까. 스스로 피어나는 꽃들을 좀 더 꽃피게 놔두고, 이게 스스로 자생력이 생기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말이죠. 이리 땜질하고 저렇게 바꾸고 하는 임기응변식은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말입니다.
전: 대학로도 사실은 80년도부터 연극인들이 공연예술의 메카로 만든 게 아닙니까. 이렇게 활성화되니 자본이 들어오고, 사람들이 모이고, 건물주들이 돈 있는 사람들로 바뀌면서 상업화되고, 연극인들은 당연히 변방으로 내몰리게 된거죠. 자생적으로 놔둔다 정도 갖고서는.... 어차피 상업적인 연극이 아니라 나름대로 작은 연극을 하는 친구들은 계속 밀려나갈 수밖에 없다는 것은 공연예술 전체에 있어 굉장히 큰 손해죠. 작은 공연들을 지켜 나갈 수 있는 강력한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것이죠.
박: 연극계가 신촌시대, 명동시대, 대학로로 자꾸 쫓겨 다녔거든요. 물론 상승하는 임대료의 영향이 가장 컸지요. 80년대부터 대학로에 모여 축적 되어온 공연예술의 힘이 대학로를 이렇게 키웠는데 상업적인 힘에 의해 또다시 밀려나가야 하는 상황인거죠. 그러니까 혜화초등학교 쪽으로 자꾸 생기는 거예요. 그런데 대학로 특구 종합지원계획을 보면.... 저는 여기서 의도가 무엇이냐, 대표적인 것이.... 용도제한완화에 대한 의지를 보면 공연예술발전협의회 상인과 주민이 이익을 예상하게 하는 일이라 생각되어요.
이렇다면 이것은 상업적 활성화를 위한 것이지 연극장르의 활성화를 위한 것이 아니죠. 이건 반대로 용도제한을 강화시켜야 하는 것이죠. 대학로가 과연 연극이라는 장르가 떠났을 때에 강력한 소비지구로의 생명력이 얼마나 강할까하는 것이죠. 서울시에는 이곳보다 재밌는 곳은 많이 있습니다. 연극이라는 것이 빠지면. 결과적으로 힘든 상황이 되겠죠. 그래서 용도제한은 도리어 강화시켜야하고 건전한 규제라는 건 더욱더 필요 할 것이고, 이러한 연극특구를 위한 ‘공연예술발전협의회’ 같은 것은 구성원이 공연예술인이 주도적으로, 그리고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두 가지로 나눠서 생각한다면 하드웨어적인 부분과 컨텐츠부분이 아니겠습니까.
먼저 하드웨어 쪽으로 봐서 웨스트앤드나 브로드웨이나 얘기합니다. 프랑스도 마찬가지고요. 대학로에 150개에 극장이 있다. 웨스트앤드와 브로드웨이에 비교가 되질 않아요. 약간 과장해서 말한다면 대학로에는 제대로 된 공연공간이 없다고 봐도 될 것 같아요. 다음에 컨텐츠 쪽인데. 정말 이것은 특구다운 특구가 되어 졌을 때 거기에서만 가능 할 수 있는 컨텐츠가 실현 될 수 있는 것 같아요. 이것은 정말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아요. 특구로서만이 시행 할 수 있는 인센티브를 가질 수 있는 컨텐츠의 개발 같은 것. 그것을 위해서는 서울시, 종로구가 아니라 국회차원에서 상위차원에서 진행이 되어야 하지 않겠나.
서: 현재 서울시의 제안 방식대로라면 특구지정을 전 공연예술인들이 거부해야하는 상황이 죠.
박: 먼저 번과 똑같아요.
서: 상업적인 영업을 완화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더 안 좋은 방향인 거죠. 저는 ‘공연예술발 전협의회’를 새로 만들고 나서 대학로를 특구화를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봅니다. 그것은 상인들이나 정치인에 손에 놀아날 소지가 많습니다. 우선 소수일지라도 공연예 술전문가들이 중심이 되어 대학로를 특구로 지정하는 것에 대한 제안서를 만들어서 그 걸 중심으로 움직여야한다고 생각해요. 그 제안서 안에는 그 공연예술특구가 되었을 때 에 운영방안이라든가 기금운영방안이라든가 그런 부분에 대해서 잘 정의돼 있고, 공연 예술전문가들이 중심이 된 운영체제지요. 물론 특구 지정에 대한 제안서 작성 체제랑 운영체제가 분리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특구를 지정하는데 어떻게 가야하는가 하는 부분은 먼저 모여서 제안을 하고 후에 운영에 관한 부분들이 정의되는 형식으로 진행되 어야 할 것 같아요.
채: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 가능하냐는 것이죠. 예를 들어 특구를 만든다면 거리정화를 위해 확실한 규제를 해야 하는데 그것이 과연 대학로에서 가능한가 하는 것이지요. 명멸하는 네온사인 광고, 밖으로 흘러나오는 노래방 소음 등은 모두 불법이지요. 그럼에도 현재 관에서는 규제를 하지 못합니다. 상인들의 생계가 걸려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함부로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물며 이 정도인데 우리가 원하는 대학로의 이상적인 모습을 요구해서, 그것을 특별법으로 만들어 달라는 것이 근본적으로 가능할까 하는 것이죠.
전: 연극특구가 생겼잖아요. 연극극장건물이 있으면 그 건물에 플랜카드 거는 것조차 심하게 단속을 했어요. 엄청나게 규제했죠. 매일 돌아다니면서.
채: 문화적인 것은 도리어 규제를 하고 상인들이 하는 건 규제를 못하는 실정에서 특별법에 보호 받는 대학로가 가능할까 하는 거죠. 또 만일 규제를 해서 대학로의 상업성이 진정되면, 같은 공연예술인이라도 싫어하는 분들도 많을 거라는 거죠. 어떤 공연물에 있어서는 술집 같은 유사유흥업소들이 많이 있는 것이 유리 할 수도 있는 것이지요. 미안한 얘기지만 대학로의 연극문화가 사실 그런 쪽으로 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전하고는 양상이 많이 달라졌어요. 언뜻 보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우리 입장에 동의할 것 같아 보이지만 사실 내면적으로 대학로 문화는 많이 바뀌었고 우리가 도리어 소수, 비주류적인 입장에서 얘기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지정하려는 측에게 요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어떤 측면에서부터 보호, 육성 받아야 할 것인가를 잘 생각해봐야 합니다. 연극인들이 이 거리를 만들었다는 기득권은 이제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서: 지금 애초부터 생각하는.... 두 가지가 완전히 다른 방향일수도 있고요. 제가 말씀드리려는 건 보완적일수도 있어요. 왜냐하면 우선은 대학로를 특구로 지정하는 것이 과연 필요한가라는 생각을 해봤구요. 굳이 특구로 지정한다면 일단 대학로가 극장이 130개가 있고 대부분은 소극장인데 이 소극장에서 제작되는 연극의 가치를 다시 한 번 재평가를 해야지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꼭 나쁜 쪽 만은 아니라요. 그런 인프라가 결국 대학로에 상업연극이라든가 다른 공연들을 키운 것이구요. 그것들이 저절로 덜컥 나온 게 아니라 대학로 소극장이라는 인프라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사실. 즉 오늘날 TV, 드라마, 영화, 등 한류라고 잘나가고 있는데 그것은 대학로 소극장에서부터 기초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잘되고 있는 것 같지만 이것이 특별한 지원제도가 없으면 소극장들이 떠날 수밖에 없고, 한류도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이다. 그 지원을 하는 큰 틀은 공연예술지원의 틀과 동일한데, 제작지원과 배급지원입니다. 특구에서는 특별히 이 지원을 더 강화시켜 나가야 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상업적인 것에 대하여는 컨트롤을 분명히 해야 하는데 상대적 컨트롤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무슨 말인가 하면 상업적인 공연이나 일반 영화에 대해서는 아무런 지원을 안하는 거죠. 대신에 그렇지 않은 예술에 있어서는 특별한 지원을 하는 거죠. 그렇게 되면 그쪽에 제약이라든가 이런 것 보다는 이지역내에서의 상대적인 컨트롤이 생기는 거죠. 통제들이. 다음으로는 소극장 공연예술, 순수(‘순수’라는 단어는 말이 모호하고, 좀 더 좋은 다른 표현, 설득력을 가진 단어를 찾아야 할 것 같아요)공연예술에 대한 특별한 지원체제가 있어야하고 그러려면 기금이 필요합니다. 기금을 마련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더 구체적으로 생각을 해봐야 할 부분 이기는 한데. 서울시가 일단은 큰 테두리에서 기금을 만들어 주어야한다고 봐요. 그건 이미 경기도도 했고, 일 년 예산이 1800억 원밖에 안 되는 작은 과천시도 했습니다. 과천시는 일 년 평균 예산이 1800억 원밖에 안되더라구요. 그런데도 300억을 만들었어요, 10년 동안. 그걸 보면 할 수 있는 거죠. 서울시는 이명박 시장 재임시절 한다고 하고는 안 했습니다.
김: 사람들이 쉽게 잊어먹곤 하니까.
서: 철저하게 기득권과 상업화되는 쪽, 경제와 경제발전 경영 쪽에 초점이 맞추어져있기 때문에 결국엔 문화마인드가 없는 거죠.
채: 곳곳에서 부정적인 요소들이 나타나기도 하고 그러는데, 우리가 원하는 건 궁극적으로 기초예술로서의 연극, 그러한 연극들을 살릴 수 있는 그런 방안으로서의 지원정책, 특구지정이 되어야 하는데, 지금 상황은 꼭 그렇게 될 것 같지는 않거든요. 아까 전 선생님도 말씀 하셨지만 포괄적이고 뜬구름 잡는 얘기보다는 기초예술로서의 연극을 살릴 수 있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자칫했다가는 몇 년 전 문화지구 지정 때와 같이 전시적인 결과만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서: 공연장들이 대학로를 떠난다는 우려들을 하는데 그걸 막기 위한 지원책을 모색해야 하는 데 상인들 구미에 맞추려고 하는 게 아닌지....
박: 상업공연을 해서 대학로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채: 그 분야는 도리어 살아남을 수 있을 겁니다. 외국의 예를 보더라도... 웨스트엔드는 유흥가라는 인상을 많이 받게 돼요. 공연장과 유흥업소들이 함께 공존하고 있다는 것이죠. 그 안에 뮤지컬극장들이 성황을 이루고 있고, 간혹 가다 연극 공연장이 있는데 그 곳도 거의 스타시스템으로 버티는 것 같아요. 뉴욕의 브로드웨이 중심가와 비슷한 거죠. 제 생각입니다만 우리 대학로에서 이상적인 특구나 특별법은 불가능할 것 같아요. 아쉽지만 그냥 놔두어서 웨스트엔드나 브로드웨이를 모델 삼아 발전해 나가도록 하는게 어떤가 하는 생각까지 듭니다.
서: 너무 비싸니까 국가에서 만든 극장에서도, 다른 곳과 비교하면 싸다는 말만 되풀이 합니다. 아니 국가에서 만든 극장이, 상업적으로 극장을 운영하는 곳과 비교해서는 말이 안 되는 거지요. 그럴 수로 더 가격을 내려서 다른 극장이 못 쫒아 오도록 만들어야죠.
채: 이렇게 상업적으로 활성화 되고 땅값이 평당 천 만 원이 넘는 이런 곳에다 우리가 원하는 전주한옥거리처럼 뭔가 푸근한 거리를 만들어달라고 하면 가만히들 있겠냐는 것이죠. 땅값이 푹 떨어지는데 가만히 있겠습니까? 근본적으로 규제 받는 특구는 불가능하다는 것이고......
전: 대안이라고 하기엔 뭐하지만. 극장이 공공기관의 지원과 혜택을 받으면 당연히 대관료도 낮춰줘야 하는 데.... 1년 운영비나 유지비에 혜택을 받는 경우가 많으면서 오히려 극장이 더 좋아졌으니까 대관료를 더 올려야겠다는 곳이 많다는 거죠. 그러한 부분들에 대한 규제가 없다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특구를 하든 무얼 하든, 그럼으로써 이득을 보는 곳들이 생길 텐데 아까 말씀하신대로 차라리 그런 기금들을 혜화동1번지 같은 극장들에 지속적인 지원을 해주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박: 이건 좀 다른 이야기 일 수 있지만 지금 전국적으로 우우죽순 문화예술의 거리를 만든다고, 도시정비를 한답시고 공통적으로 키 큰 나무 심고, 바닥에는 대리석을 깔고 대부분 물이 흐르죠. 그 긴 공간을 몇 개의 테마로 나누고, 대부분 LED 넣고, 문화 예술의 거리다 라며 지자체에서 진행합니다. 그것은 주민하고 문화예술단체 상인들이 구성원인데 상인들이 주가 되어 진행하게 됩니다. 그것을 유지 하려다보니 지역예술단체를 끼어서 진행하더라구요. 조그만 지자체도 그런 거 하는데 보통 유지하려다 보니 200억~300억을 쓰고 있어요. 대학로연극특구 계획은 현실적으로 이 지역과 예술의 거리에 필요한 지원책들, 의미 있는 지역의 특구를 만들어야 하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그렇게 됐을 때 보면 다음단계로 과연 현실적인 지원책이 무엇인가를 이야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오: 연극특구 이야기를 처음 꺼낸 게 아마, 서울시에서 한팩하고 같이 선언한 거 아닌가요? 그러니까 형식적으로는 연극계와 서울시가 같이 선포한 셈이죠. 그런데 당구장 완화 같은 얘기는 이미 여러 번 나왔던 거예요. 문화지구 선포 뒤로 몇 번 시도를 했는데 반대해서 안 됐던 거죠. 건물 공실률이 높으니까 1~2층만 안되고, 그 위는 허가를 해주자는 게 골자였는데, 건물주들이 강력히 주장하는 것이고, 처음엔 구청에서 적극적이고 시에서 반대를 했지만, 시까지도 이제는 어느 정도 수용을 하는 분위기 같고, 연극특구 얘기가 나오니까 옳다구나 거기 끼워 넣은 게 아닌가 싶네요. 사실 전문가들이 보면 엉뚱한 내용이 들어왔다는 걸 쉽게 알 수 있죠. 우리가 문화지구에서도 경험을 했지만 뭐든 잘 되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계획에서 꼭 이뤄져야 할 전제조건들이 있단 말이죠. 우리 요구로 문화지구가 됐는데 그 이후로 뭐 달라진 것이 없어요. 체감도 없고 오히려 좌절감만 생기고. 연극특구란 것도 말은 그럴싸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가 원하는 대로 내용이 다 채워지지 않으면 또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날 수밖에 없습니다. 특구를 하는 건 좋은데, 그 내용에 대해서 어떤 모양을 만들 것인가, 하나하나를 어떻게 이뤄나갈 것인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합의가 필요해요. 가장 좋은 것은 연극인들이 활발하게 공연을 하고 좋은 작품들이 많이 공연돼서 사람들이 항상 좋은 작품들이 있다며 안심하고 찾아올 수 있게 해야 하는데, 그것을 할 수 없게 하는 요인들이 많이 있잖아요. 대관료가 너무 비싸다. 제작비가 많이 든다. 관객들이 와도 안심하고 들어가기가 어렵다. 재미없을 것이라는 선입견이 강하다. 이런 방해요소를 없앨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우선순위가 있는데 갑자기 지금 지하에 있는 극장을 지상으로 모두 올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 그럴 만한 건물도 별로 없어요. 극장에 치명적인 기둥도 많고. 어쨌든 일단은 말씀하신대로 대관료를 전체적으로 어떻게 몇 년에 걸쳐서 낮출 것인가 생각해 봐야 하는 거란 말이죠. 개인건물이라 어렵다면 정부가 어떻게 지원을 해 줄 것인가? 공공극장을 확충하기위해서 어떻게 할 것인가? 방통대를 정말 내보내고 공공극장 단지를 만들 것인가? 이렇게 해서 공공극장이 대거 들어서고 그 극장은 상징적인 정도의, 그저 전기세 정도만 받고, 그런 파격적인 조치가 이뤄져야 하는데, 이게 안 되면 언발에 오줌눈다고 하잖아요. ‘문화지구’때도 그랬다구요. ‘문화지구’란 말은 대단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결국은 정부가 지원해주는 예산은 5억인가 6억밖에 안 됐잖아요. 그것도 정부의 직접 지원도 아니고, 맨 남의 손을 빌리는 식으로, 융자라든가, 세제 혜택이라든가 하는. 일반 극단들은 대상도 되지 않는, 그런 제도를 가지고 큰 소리를 치는 거거든요. 그런 식으로는 또 한 번 언발에 오줌누어서 동상 걸리게 하는 거밖에 안된다고 봅니다. ‘연극특구’란 말을 꺼내려면 거기에 합당한 아주 세밀하고, 실제로 실행 가능한 계획을 가지고 추진해야 하는 것이지, 그렇지 않다면 또 한 번 우릴 우롱 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서: 제 생각엔 구체적인 것들을 미리 스터디해서 제안하지 않으면 이렇게 그냥 될 거 같아요. 굉장히 홍보 효과가 높을 테고..
채: 구체적인 계획은 언제나 공개되는 것일까요?
김: 비공개로 가지고 있고 앞으로 공표를 하겠다는 것 같아요. 의견을 물어보는 거죠.
전: 의견을 묻는 게 아니라 추진해가고 있는 거죠. 예를 들면 지하에서 1층으로 올라온다는 것이 한 달 전에 이미 기자인터뷰에서 나왔고, 그러니까 추진하겠다는 거죠. 그리고 노들섬 계획이 백지화 되었잖아요. 그러니까 대학로 계획이라도 강력히 추진하지 않을까..
박: 연극계가 적극적으로 개입을 해서 예를 들자면 ‘현실적인 발전방안 톱10’을 선정해서 관계자의 발표와 토론의 기회를 가지는 것입니다. 이런 방법이 적극적으로 대항하는 방법이라고 생각되는데, 이왕 300억이라던가 하는 예산이 있다면 그런 에너지를 우리가 정말 필요한 에너지로 바꿀 수 있는 적극적인 방법으로 삼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채: 만일 예정대로 특구지정이 된다면, 어떠한 법과 조례에 의해 보호 육성을 받는 형태로 만드는 것이 좋을지, 아까 간간히 나온 얘기 외에 어떤 것 들이 또 있을지요?
전: 저는 특구가 되면 분명히 특구안의 극장들의 대관료가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건물주들이 나름대로의 프라이드를 가지고 더 좋은 혜택을 받고 좋은 극장 환경을 만들어 두었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익들을 어떻게 재분배 하는가에 대한 명확한 기준들을 두지 않으면 한마디로 전시행정이라고 밖에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서: 계속 같은 의견이지만 한 가지를 꼭 이야기 하자면 ‘순수연극을 위한 기금’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특구 안에서는 상업적인 공연이나 퍼포먼스는 자연 발생으로 내버려 두고, 특구 안에서는 특히 순수, 기초예술에 대한 지원을 해야 합니다. 제작비 지원이 없는 지원은 지원이 아닙니다. 결국은 실질적인 지원으로 기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죠.
채: 그 것이 서울문화재단 내에 특별하게 조성되던지, 대학로 특구 발전을 위한 순수 연극 기금이 되든지 해야 한다는 건가요?
서: 특구 개념의 기금이면 좋겠죠. 서울문화재단이면 단계가 또 한 번 걸러지니까. 특구를 위한 기금이면 더욱 좋겠습니다.
김: 공연의 활성화를 위해서 극장 4개를 문을 활짝 열고 전기값수준의 대관료로 활성화되었으면 좋겠어요. 상업자 마인드로 되기보다는 순수연극이 풍성해지도록 지향하고 관객의 수로 흥행 성공을 바라보지 않았으면 합니다. 또 호객행위가 없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문화의 거리가 아니라 경제를 앞세운 야만의 거리로 전체 사회분위기가 가니까 그것을 문화의 힘으로 이겨가자고 연극인들만 거의 투쟁하고 있는 양상을 보이는 것이 아니겠어요? 숨통이 확실히 트여 선명히 보일 수 있도록 아르코, 대학로 예술극장을 오픈하여 순수연극을 지향, 배려하고, 극장대관료를 거의 받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공연기획을 제작 시스템이나 구성원을 본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안정적인 시스템으로 가지 말고, 서울시에서 투자를 해서 그런 저렴한 공공극장들을 마련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채: 또 한팩으로 가고 있는데요.
김: 한팩이 마음을 바꾸면 하하....
채: 한팩 입장에서는 그런 식으로 이미 개방했다고 생각하는 측면도 있는 것 아닐까요?
김: 앞으로 공연되는 공연물을 보면 드러나는 것 아니겠어요?
채: 특구를 바라보는 시점에서, 대학로의 상업화를 진정시켜야 하는 공공극장의 책임이나 의무가 미진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김: 미진한 것이 아니라 없다고 볼 수 있지요. 우리는 공공성 이전에 천한 자본 재벌주의가 판을 치는 세상 아닙니까?
채: 한 편에서는 시설 좋은 공공 극장들이 텅텅 비어 있기 보다는 관객이 꽉꽉 들어차야 한다는 생각으로 웰메이드한, 대중성을 갖춘 작품들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향수자 위주의 공연장으로 만들어가야 한다는 논리가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역할을 대학로 극장이나, 아르코 극장이 해야 한다면 창조자 중심의 좋은 공공극장이 별도로 존재해야 하지 않느냐는 의견입니다. 또한 특구가 되어야 한다면 연극의 거리답게 적어도 지킬 것은 지키는 거리가 되어야 하겠지요.
박: 저는 연극특구가 되기 위한 방안을 여러 가지로 들 수 있는데, 대학로가 연극특구로 갈수 있는 모토는 사설극장의 특성화, A라는 극장은 어떤 프로그램을 가지고 방향으로 가는가하는 것을 들 수 있겠구요. 기존의 공공극장의 역할은 현장의 공연예술인들에게 유용한 역할이 되어줄 수 있도록 역할 조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여기 대부분의 공연예술인들이 필요로 하는 기능이 있는데 몇몇 사람들만을 위한 것에 치중되어있다는 것은 운영에 방향성을 수정할 필요가 있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세부적인 것으로는 공연관련 샵 지원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상설, 용품, 자료(영상, 출판 ..)를 위해 길거리에 ‘부스’를 마련해준다면 (임대료나 돈이 크게 드는 일이 아니니까) 공연관련 된 사람들이 운영하고, 그것에 대한 물리적이던 시간적인 것이던 지원을 해줘서 진행하고, 공연관련 단체 학회, 협회, 기관, 출판, 인포메이션, 언론을 위한 사무공간 을 마련해줘서 정보가 모이고 사람이 모이게 지원해주는 것. 지역 상권과 연극인이 상호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연계 되어 이웃으로서 도와 줄 수 있는 협찬이나 가게에서 원하는 행사에서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을 구성해보는 것은 어떨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오: 연극 특구로 가야 한다면 초점을 연극에 맞춰야 한다고 봅니다. 연극이 잘 되면 나머지도 잘 됩니다. 상인들은 순발력이 있는 분들이고, 그런 부분에 가장 약한 사람들이 바로 예술인들이기 때문에, 그쪽을 주로 보호하는 정책이 정답이라고 봅니다. 대학로 여러 구성원들 사이에 상호 이해가 충돌 안하도록 하면서 연극에 초점을 맞춰야 하지 않나 봅니다. 한팩도 그렇습니다. 굳이 외국의 예를 따를 것이 아니라 우리 실정에 맞춰 과감하게 개방하는 것도 생각해야 합니다. 저 번에 계산한 적이 있죠? 한팩의 4개 극장을 개방하고, 소극장은 2주일, 중극장은 1주일씩 제공한다면, 150개 극단은 일년에 한 번씩 정기 공연을 할 수 있게 됩니다. 물론 서울에 등록된 극단은 215개씩이나 되지만, 실제 활동하는 극단은 150개 미만이에요. 그렇게 된다면 모든 극단이 한 번씩은 정기공연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죠. 거기에다가 소극장 몇 개를 늘린다면 훨씬 원활해지겠죠. 물론 그 작품이 재미없을 수도 있고, 관객이 많이 모이지 않을 수 있어요. 하지만 오히려 그럴수록 한팩이 나서서 공연 홍보도 해주고, 중극장에서 일주일이면 5~6회 공연할 거예요. 관객이 2500명~3000명이면 꽉 차는데, 일반 극단이 그렇게 하기에는 너무너무 힘든 일이지만, 종합홍보부터, 맞춤형 홍보까지 해준다면 충분히 채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거죠. 대한민국에 있는 한팩이라는 기관은 이런 식으로 민간인들에게 지원을 하는 겁니다. 더 욕심을 부려서 “당신네들에 맞는 스폰서는 누가 좋은데, 이렇게 하면 될 것이고, 아니면 우리가 연결시켜주겠다.” 하는 정도의 컨설팅 지원까지 해주는 기구가 된다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한팩이 어렵다고 하면, 정부나 서울시가 나서서 공공극장을 10개 정도를 확보하고, 대관료 없이, 또는 전기 값 10만원 정도만 내고 쓸 수 있도록 할 수도 있겠죠. 또 같은 맥락으로, 연습실, 사무실 같은 공간은 지붕이 낮고 기둥이 많아도 되니까 몇 극단이 함께 쓰게라도 해주는 거예요. 대학로 안에 있는 것과 밖에 있는 것은 다릅니다. 지금은 일종의 후방 기지 비슷하게 돈암동이나 미아리에 연습실이나 사무실을 갖고 왔다갔다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럼으로써 연극인들이 자꾸 떠나게 되고, 공연할 때만 오게 되는 현상을 낳게 되거든요. 그런 연습실과 사무실을 공공시설로 배려를 해야 한다. 또 하나, 세트 제작소나 보관소도 가까운 곳에 있어야 하겠다. 예를 들어 우리 극단이 작품을 하는데 세트 만들 여건이 안 된다면, 법원에서 국선 변호인이 있는 것처럼 신청하면 ‘국선 무대 미술’이 있어서 최소한의 것들을 아주 저렴하게 해줄 수 있고, 규격화되어 있는 세트를 조립하여 만들어 준다거나 디자인해주고, 거기에 필요한 것을 보관소에서 가져다 조립해서 쓸 수 있게 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죠. 또 기획이 약하고 스폰서도 약하니까 최소한의 여건은 지원받을 수 있게 해주는 것, 더 나아가 인쇄라든가 하는 것도 표준화시켜서 그걸로 하면 저렴하지만 부끄럽지 않은 정도는 할 수 있게, 그게 싫으면 자기 돈 들여서 좋게 하면 되는 거고, 하는 식의 파격적인 혜택이, 특구라면 적어도 이러한 혜택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마음 놓고 연극을 만들고, 관객들도 “거기 가면 늘 볼거리가 있다.”라고 믿고 찾아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시작을 아예 하지 않잖아요.
무한 경쟁을 시켜두고 정글에서 살아남은 팀을 지원해주는 식의 방식은 어떤 면에서는 경쟁력이 있을 수 있지만 저는 그렇게 보지 않아요. 어리고 취약한 씨앗이지만 잘 보호해서 살려놓으면 정말 대단한 것이 될 수도 있는데 다 채 피기도 전에 비인간적으로 무한경쟁에 내몰려 죽고 마는 거죠. 획기적인 계획이 필요하고 보는데, 그렇다고 이것들이 돈이 많이 드는가? 저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하나하나 잘 생각해 보면 상당히 효율성을 높이면서 정부가 나서서 시, 구, 등에서 네트워킹하면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다고 봅니다. 정리하자면 기존의 극장을 확보하든 새로 만들든 무료 내지는 상징적 수준의 대관료로 극장을 제공해 주는 제도, 연습실 및 사무실의 제공, 무대제작실 및 보관실 확보, 무대나 인쇄물의 최소 제작 지원 제도, 극단의 부족한 점을 살펴서 지원해주는 컨설팅지원 제도 등이 자리잡아야 비로소 특구다운 기반이 조성된다고 봅니다.
김: 조명하는 스탭들이 이야기 하던데요. 디자인료가 150만원이면 그것을 다른데서 지원해주고, 단체들은 이용하면 될텐데.. 문화예술 위원회인지 어딘지에 그런 안이 들어가 있는데 활성화하지 않는다더라구요. 오래 됐답니다.
오: 그럼 스탭들도 일감이 많아지고 좋겠죠. 하여튼, 최소지원은 있어야한다고 봅니다.
채: 정부가 ‘선택과 집중’이라는 지원제도아래 사후지원, 간접지원에만 집중한다면 기형적인 예술계가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이 부분은 별도로 토론회를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김: 그러니까 지원을 받아도 그렇고, 지원을 받지 않으면 공연을 못한다고 하잖아요. 거꾸로 지원을 받지 않아도 공연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면.... 지금 이야기 했듯 거의 무료로 대관을 한다거나 하면 2~3천 받았다고 억지로 돈 들여서 없는 돈에 이렇게 쪼개고 저렇게 나눠서 포스타 만들고 의상 준비하고 세트 만드는 식으로 어렵게 공연할 것이 아니라 돈이 없어도 공연을 할 수 있다는 거, 너무 지원금에 의지하지 않고 맨몸으로 공연을 해도 오히려 살아있는 공연을 할 수 있는 분위기 조성도 중요하지 않을까요? 아마 100만원 공동체도 그런 연유로 시작한 것이겠죠.
채: 나온 김에 좀 더 하자면 어떤 분들은, 과거엔 돈 없이도 연극했다, 혹은, 요즘은 지원 없으면 작품 만들 자신이 없느냐 하는 등의 발언도 가끔 접하는데, 저는 그런 의견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옛날에는 적자를 봐도 어느 정도 단원들이 감수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도저히 개인적인 출혈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제작규모가 커졌습니다. 지원정책이 얼마나 중요해졌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지요. 그런데 과거와 단순비교해서 창작자들에게만 용기가 없네, 헝그리 정신이 없어졌네 하는 것은 좀 맞지 않는 것 같아요.
김: 또 하나 우려는, 특구가 되었을 때 공무원들이 특구법에 대한 집행과정이 있을 것인데, 현행 정치도 그렇지만 너무 삭막하게 법대로만 한다는 미명아래 모두의 숨통을 조이는 식으로 일반 시민들과 행위자들 편에서가 아니라 권력이나 소위 대학로 유지라는 건물주들 편에서 행정 처리를 할 게 뻔하다는 것입니다. 미네르바나 촛불시위에서 봤듯이 말이죠. 호객행위에 대해서도 똑같은 이들의 밥그릇 싸움 정도로만 보고 있으니 말입니다. 호객행위 처벌은 법대로 안하고 그것을 밥그릇 싸움으로 보는 경찰 관계자들. 이런 현실에서 이게 좋은 시안이 나와도 올바르게 적용이 되겠느냐. 호객행위는 잘하게 그냥 두면서 주차딱지는 하루에도 몇 번씩 끊어요. 그냥 대학로를 찾아왔다가도 한 번 왔다가 다시는 오고 싶지 않게 하는 그게 무슨 문화마인드냐 이거죠, 오히려 홍위병식의 운영을 하는 것이 종로 구청이고, 문화지구라는 이름으로 다른 지역보다 더 찬바람이 불게 하는 게 사람을 쫒는 행위가 아니고 뭐겠습니까. 삐끼들을 모아서 건강한 알바를 하게 한다거나 대학로 청소를 하게 한다거나 건전한 방향으로 유도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자신들의 자식이 아니라고 그냥 내버려 두는 겁니까? 도대체 이게 뭡니까? 하기 쉬운 것, 딱지떼는 것. 그런 것을 어쩌다 한 번도 아니고, 하루에 서너 번씩 밤10시 넘어서까지.... 올빼미들도 아니고 무슨 완장 채워 주고는, 서울시 행정에 반감만 사게 만드는 것이죠. 시민들 심성을 뭐같이 만드는 것이죠. 정도껏 해야죠. 밤 11시가 뭡니까? 도리어 저렴한 공영 주차장을 우선 만들어 주고자 하는 것이 문화마인드지, 어쩌다 차 몰고 처음 온 관객들이 헤매다 돌아가거나 주차딱지나 떼도록 하는...
채: 그렇군요. 네, 오늘 한 이야기들을 정리해보자면 두서는 약간 없었지만 할 이야기는 다 했다고 보는데요. 근본적으로, 대학로를 연극특구로 하는 것이 그 동안의 경험이나 대학로의 현 실정을 볼 때 상당히 무망한 일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갖게 만든다는 것이구요. 대학로를 연극의 거리로 만들려면 상업화 된 거리를 진정시켜야 하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 하는데, 대학로 구성원의 한축을 이루고 있는 주민이나 상인들은 그러한 방향은 반대 할 것이라 본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호간 이익의 충돌지점을 잘 해결하지 않으면 특구로 지정하더라도 현실성 없는 정책으로 갈 것이라는 우려들을 많이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만일 특구가 된다고 했을 때 수백억을 지원 하겠다, 극장을 몇 개 설립하겠다 등의 선포형 약속보다는 구체적이고 실질적, 지속적 지원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즉, 연극인들을 위해 대관료를 내릴 수 있는 방책을 마련한다든가 또는 개그콘서트의 호객행위를 이겨낼 수 있는 홍보 방법 등을 강구해 준다든가 하는, 좀 더 쉽게 창작할 수 있는 환경조성을 위한 직접적이고 현실적인 조치들을 말입니다. 바라건대 이런 특구 선포가 일회성의 전시행정이 아닌 지속성, 실효성 있는 조치가 되어 과거의 전철을 답습하지 않길 바라는 말씀도 있었습니다. 또 하나는 대학로에서 순수 연극을 지속, 발전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제2의 대학로를 조성하는 것인데 제2대학로 거리를 혜화동 로터리 위쪽에 조성하고 그곳의 극장들을 보호, 지원하는 문제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것도 지적하셨습니다. 박상순 선생님 말씀대로 대학로문제는 중요한 것이므로 논의를 오프라인으로 확산시켜 지속적으로 연극인들의 대화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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